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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로역정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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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생여정

34012명의 네티즌들이 짤막한 글로 인생을 노래한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라는 조그만 책자에서 네티즌들은 인생 여정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한살 - 자고 또 자고, 잠에 푹 빠져버린다.
두살 - 기어가느냐, 걸어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살 - 떼를 쓰면 엄마가 들어줄 때도 있고 야단칠 때도 있어 헷갈린다.
다섯살 - 이제 투정부리면 돌아오는 것은 분유가 아닌 회초리.
열두살 - 방학숙제도 하루 만에 다 할 수 있다. 한달 일기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열네살 - 더 이상 엄마가 사다주는 옷은 입기 싫다.
열여덟살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하지만 그 중요성은 한참 후에나 알게 된다.
열아홉살 - 19살보다는 고3으로 많이 불린다.
스물한살 - 교복을 벗어버리니, 군복을 입혀주더라.
스물네살 - 꿈을 꾸려면 잠을 자고, 꿈을 이루려면 잠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서른세살 - 둘러보면 주위엔 노처녀들뿐이다. 있을 때 잡고 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흔살 - 나이 물어보면 '만 나이'로 대답한다. "어, 아직 30대야!"
마흔다섯살 - 자신의 말은 많아지고 남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
마흔여섯살 - 화장이 아니라 변장을 하는 사람들.
마흔일곱살 - 젊어 보인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
쉰살 - 요즘 애들의 추세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쉰세살 - 부끄럽고 촌스럽기만 했던 꽃무늬, 이젠 필수품이 되었다.
쉰여섯살 - 동네 꼬마들이 인사할 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지 아저씨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들을 한다.
예순한살 - 드디어 말로만 듣던 '환갑잔치'
예순세살 -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간다.
예순여섯살 - 지하철을 무료로 타고 나닐 수 있다.
예순일곱살 - 어릴 때는 할머니를 보며 나한테도 저런 날이 올까 했는데
예순여덟살 - 될 수 있으면 말을 짧게 해야 대접받는다.
일흔한살 - 질병도 삶의 일부가 되는 나이
일흔일곱살 - 자신을 지탱해온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자랑스럽다.
여든한살 - 70을 넘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80이 넘으니 오래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아흔두살 - 안 그런 척 하지만 죽음이 두렵다.
백살 -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실감이 나십니까? 이게 인생입니다.

희랍 신화에 보면 스핑크스의 수수께기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핑크스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발로, 점심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가? 물어서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살려 보내고 대답을 못하면 죽였다는 얘기입니다.

아침 안개같은 인생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는 교훈입니다.

II. 순례자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성경의 신앙 용사를 기록하여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그네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여행하는 자가 아니고 순례자라는 뜻입니다. 또 베드로 전서 2장 11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과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그네와 행인 또한 순례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순례자는 유랑자나 방랑자가 아닙니다. 목적이 있는 여행자이며 특히 거룩한 목적,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성지를 순례하는 여행자를 말합니다. 크리스챤 중에는 팔레스틴 성지를 순례하는 자가 많고 이슬람에서는 메카 성지를 순례하는 자가 많습니다. 믿는 사람은 마치 순례자와 같습니다. 순례자가 거룩한 땅을 순례하는 것처럼 믿는 사람은 모두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거룩한 목표를 향하여 여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베스트셀러가 담고 있는 양식」 그 세 번째 시간 고전 중의 고전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통해 생명의 양식을 나누고자 합니다.

존 번연은 설교가 기퍼드의 제자로 기퍼드가 죽은 후 비국교파의 설교자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국교회의 박해로 1660년 설교 금지 및 비밀집회 금지령 위반죄로 체포되어, 12년간의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존 번연은 '유익한 명상', '그리스도인의 행동', '거룩한 성',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등 많은 책을 펴냅니다. 감옥생활 마지막 기간인 1667년부터 1672년까지의 5년간의 감옥생활은 천로역정을 쓰는데 바쳤습니다. 1678년 출판된 이 책은 여러 세대 동안 성경다음으로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천로역정의 원 제목은 The pilgrim's progress - 순례자의 여정입니다.

한 사람이 광야같은 세상을 살다가 조그만 동굴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거기서 잠을 자다 꿈을 꿉니다. 꿈 속에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손에 책을 들고 등에는 커다란 짐을 지고 책을 읽더니 고통스럽게 흐느끼기 시작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어찌할꼬!" 이렇게 「천로역정」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꿈을 꾼 사람은 존 번연 자신이고 '동굴'은 그가 12년간 갇혀 있었던 영국 벽촌 베드포드 강 다리 위에 있는 습기찬 다락감옥을 말합니다. 남루한 옷이란 인간들이 자신을 자랑하는 의를 말하며 커다란 짐이란 죄악의 짐을 말합니다. 번연은 꿈이라는 형식을 빌려 주인공 <크리스챤>이 '장망성'(파멸의 도시)를 떠나 온갖 역경과 고난 그리고 유혹이 가득찬 험난한 길을 걸어 마침내 나그네 된 성도의 본향인 천성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크리스챤은 나와 너 -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외로운 순례자 <크리스챤>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좁은문'을 통과하고 '허영의 시장' 거리를 지나 '고난의 산'을 넘어 마침내 '죽음이라는 어두운 강'을 건너 천성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은 나그네길입니다. 어느 가수는 노래하길 인생은 하숙생이라고 했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저물었습니다. 마침 그 동리에 대궐처럼 큰 집이 있는지라 하룻밤 쉬어가길 청하니, 주인 가로되 "이 집은 여관방이 아니니 저 건너 객주집으로 가시오." 그때 김삿갓이 묻기를 "이 큰 집에 몇 대나 살아오시는 겁니까?" "16대를 살았수다." "그 16대가 생존하신가요?" "그야 다 세상을 떠났지요." "그렇다면 당신도 살다 갈 나그네 나도 나그네, 같은 처지의 인생 하룻밤 쉬어 갑시다." 그래서 그날밤 그 집에서 쉬었다는 얘기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지구는 여관방, 하나님은 여관방 주인. 그러므로 나그네된 인생은 끝내 모든 것을 다 비워두고 떠나야 할 존재들입니다. 전세 기한도 100년 미만에 끝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여러분, 외국에 나가 호텔 숙박계를 써 보셨습니까?
①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출신지
② 지금 무엇하러 여기 왔습니까? 용무
③ 내일 어디로 갈 것입니까? 행선지

여러분, 어디서 왔습니까? 이 땅에 태어난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까?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이란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여행길, 순례자의 길, 천로역정입니다.

III. 떠나라

고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가장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운 유프라데스강 유역에 아브라함이란 사람이 살았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의 명령이 아브라함에게 임하길 "아브라함아, 갈대아 우르 즉 바벨론을 떠나라." 그리하여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곳을 떠나 순례의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믿음은 곧 떠나 천성을 향해 행진하는 천로역정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이 멸망의 도시임을 알았을 때 신앙이란 그 곳을 곧 떠나 천로역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를 청산하고 여러 해 신앙생활 하다보면 가정도 평안해지고 살림살이도 먹고 살만하고 자식들도 클만큼 큽니다. 이때 처음 사랑도, 구원의 감격도 잃어버리고 세상에 푹 빠져 살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기도 네 자리가 아니니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더 나은 자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더 나은 본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The pilgrim's progress 순례자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옛날 얘기를 하나 하지요. 옛날 일산 땅에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세월만 보내고 있는 바보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아내가 그에게 무명 몇 필을 주며 이걸 팔아 돈을 마련하고 장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무명 판 돈을 가지고 어떤 마을에 가서 참외를 한 짐 사가지고 옆 마을에 가서 팔려고 지고 갑니다. 나무 밑에서 잠깐 쉬게 되었는데,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지라 참외를 몇 개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을 팔면 얼마만큼의 이익이 남을테니 그 남는 것 만큼만 먹으면 되겠다고 하여 남을 이익만큼을 먼저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 배가 불러 잠시 낮잠을 자는 동안에 나쁜 불량배들이 와서 참외를 모두 가져가 버렸습니다. 낮잠에서 깨어난 이 사람이 참외가 없어진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익 남는 것은 내가 다 먹었으니 그 참외짐은 가져가 보았자 헛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도 없는 걸 가져가는 바보같은 놈들 다 보았다"고 껄걸대고 웃더라는 겁니다.

이 바보같은 젊은이의 모습이 원금 다 잃고 참으로 소중한 것 다 놓치고서도 잃은 줄 모르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런지요. 나그네 인생길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별로 중요치 않은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변변찮은 것 쫓아다니다 인생을 마감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 인생의 손익계산이나 하고 사십니까? 오늘이 당신 천로역정의 종착역이라면 그 천성에서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 인생을 당장 마감하더라도 부끄러울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런지요.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십니까? 영생을 얻으셨습니까?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그것 놓치고 무엇을 위해 산단 말입니까? 이 시를 아십니까?

북은 울려 이내 목숨 재촉인데
돌아다 보니 해는 서산에 빗겼구나
아, 황천길엔 주막하나 없다거늘
오늘밤 이 나그네 뉘집에 쉬어갈꼬

형장에서 읊은 성삼문의 시입니다. 죽음에 용감한 사육신들이었지만, 죽은 후에 돌아갈 곳에 대해서는 어쩐지 자신이 없어보여 읽는 이들의 마음을 서글프게 합니다. 공자께서는 죽음 이후를 묻는 제자들에게 "살아 있는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죽은 이후의 일을 어떻게 알랴"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공허하고 절망스러운 유교의 가르침입니까? 바로 타종교의 공허와 허무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이의 말대로 유교는 깊이 들어갈수록 완고해지고, 불교는 깊이 들어갈수록 허무하고, 기독교는 깊어질수록 소망과 기쁨이 넘칩니다.

물은 바다로부터 왔기 때문에 바다로 흐르고, 불은 태양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고,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나그네 인생입니다. 본향길 가는 천로역정입니다.

IV. 고향으로

나그네는 지나가는 길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나그네가 지나가는 길에 너무 큰 미련을 둔다면 그는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다리! 지혜로운 자는 다리를 건너갈 따름이지 그 위에 집을 짖지 않습니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길에서 얻은 명예를 가지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예는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만이 나그네를 구원해 주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길에 서서 너무 많은 욕심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나그네가 짐이 많으면 그 여행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대신 나그네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투자 할 줄 압니다.

나그네는 자주 길을 확인하고 물어야 합니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이 바른 길인가? 그리하여 진리 앞에 겸손합니다.

나그네는 이 세상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곳이 인생삶의 마지막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어느 선교사님은 여러해 동안 많은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 아들이 아프리카 풍토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둘 다 죽고 말았습니다. 충격을 받은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선교사는 슬픔과 비감한 심정을 이기지 못해 끝내 선교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항구에 도착되었을 때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의 연주, 그리고 예포소리와 함께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부둣가에 나와 있었습니다. 배에서 대통령이 내려올 때 거기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주단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 홀로 고독하게 내려왔습니다. "사냥을 갔다 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잃고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 깊은 고독감과 실패감을 느끼면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참으로 고향에 돌아오는 날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너의 두 아들과 아내, 그리고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주단을 깔고 내가 친히 너를 마중나오마. 사랑하는 내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그 길로 다시 이 선교사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충성을 다 했습니다.

V. 천로역정의 승리자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는 인생여정을 실패하게 만드는 많은 유혹이 있음을 실감나게 그려줍니다. 「천로역정」에 의하면-

1. 가까운 사람들의 오해와 조롱 그리고 핍박과 박해를 이기지 못하는 크리스챤은 천성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2. 잠시 절망의 늪, 수렁에 빠졌다고 쉽게 낙심하고 도망가는 변덕쟁이는 천로역정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3. 복음신앙을 잃어버리고 세상 현자의 거짓된 가르침에 넘어간 자도 순례자가 될 수 없습니다.

4. 우리신앙 불꽃을 꺼뜨리기 위해 얼음냉수를 끼얹는 마귀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는 자도 천성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늘 사모하는 크리스챤은 마귀의 바람이 강할수록 더 많은 기름을 공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5. 이단에 빠진자, 배교자는 쭉정이처럼 멸망의 불에 던져집니다.

6. 크리스챤이 좁은 산길을 지나가는데 길 양 옆에 사자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공포에 떨고 있던 크리스챤에게 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크리스챤, 놀라지 마라. 그 사자는 발 묶인 사자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바른 길을 가라." 비틀거리는 사람은 천로역정의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7. 세상 허영에 눈이 끌려 이것도 사고 저것도 움켜쥐려는 자는 순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통도 즐기고, 손해볼 줄도 알고, 천성의 복이 좋아 세상 헛된 안개에 메이지 않는 크리스챤을 하나님은 열두 진주문 앞에서 두 팔 벌려 기다리십니다.

·어서오라 아들아.
·너를 위한 영원한 나라가 준비되어 있노라.
·천군천사 승리의 나팔 승리의 노래가 울려퍼집니다.

행군 나팔 소리로 주의 호령났으니 십자가의 군기를 높이 들고 나가세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면류관 의의면류관 받아쓰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면류관 예루살렘성에서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면류관 예루살렘성에서 (402장 1절)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388장 후렴)


영감있는 찬양으로 이 시대를 울리는 고형원 선교사의 노래 중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문 좁은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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