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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예수님 (사 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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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삶의 큰 동력원입니다. 공병호의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을 보면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인간성의 가장 심오한 부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자 하는 갈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역사의 종언』으로 필명을 드높인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도 인간 역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을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지나치면 화근이 되고 병이 됩니다.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Alice Miller)에 의하면 신경증 환자일수록 주변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거나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을 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주변의 인정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병의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요즘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명품족이나 짝퉁족 모두 어떻게 하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또 인정받을까 하는 심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람에게서 받는 인정은 가변적이고 한시적이며, 따라서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칠수록 더욱 불안하고 위태한 삶을 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인정은 사람의 그것처럼 가변적이거나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불변하며 영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에 목말라 할수록, 영혼의 갈급함을 느낄수록 세상의 그것과는 달리 우리의 영혼은 더욱 안정되고 편안해진다는 사실은 영적인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12절에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한 일을 하나님께 직접 보고 드린다고 하니 참으로 부담스럽고 두려운 일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생의 청지기인 우리에게 자기가 한 일을 점검하고 평가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셈의 결과에 따라 잘한 사람은 칭찬을 들을 것이고 못한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의 사역 책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낱낱이 기록되고 있음을 확신합시다.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들이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다는 것은 거룩한 부담입니다. "구름 같은 이 세상 모든 부귀영화 나는 분토와 같이 내어버리고서 오직 천국의 복만 사모하며 사니 주여 내 작은 이름 기록하옵소서"라는 찬송가 532장의 가사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역사에 기록되는 주의 백성으로 생명의 공동체에 아름답게 공헌하는 인생을 삽시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택하심을 입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셨습니다. 그는 연약하고 고운 모양도 없이 멸시를 받았으며 자발적으로 고난을 감수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죄인처럼 고통을 당하셨기에 기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었으므로 여호와를 신뢰하였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복종하셨으며 승리할 때까지 오래 참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돈이나 핵으로도 먼지만한 죄도 씻을 수 없습니다. 나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깨끗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찬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아시는 예수님
  본문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신 질고와 고난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것입니다. 이것이 대리개념입니다. 의로우신 한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악이 가득찬 자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난자'가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안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것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죄로 인한 고통과 불행을 다 아시기에 스스로 감당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약하며 쉽게 죄에 빠지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잘 알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자신이 아니면 죄와 사탄을 이길 수 없기에 친히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아시는 만큼 긍휼히 여기시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내 삶을 변화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믿음이니 복음이니 신앙이니 하는 이 모든 것은 본래가 긍정적인 것입니다. '안 되겠지'하는 부정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만일 신앙이나 복음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라면 하늘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피 흘리게 하시며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실 이유가 없게 됩니다. 믿음은 그 자체가 긍정적이며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구원받지 못할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는 고백을 담은 찬송가 410장 가사처럼,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각은 이렇듯 긍정적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수동적, 비관적이 되면 하나님의 시각을 놓치는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랑하시는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음으로 죄사함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희생하신 예수님
  본문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여기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그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사망이란 요구가 '종'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떨어졌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찔리시고 상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결국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최고의 희생의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말 몇 마디나 돈 몇 푼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죄를 해결하시고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희생이 없습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버리고 죽이는 일이 빈번합니다. 돈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 비열하고 몸서리쳐지는 세상입니다. 너무나도 무서운 세상입니다.

  자신을 나눔으로 함께 누리는 협력의 정신을 통한 생존은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극지방의 혹한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겨울의 기온은 영하 6, 70도가 보통입니다. 1968년 8월에는 영하 88도까지 내려간 적도 있습니다. 절기가 우리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남극은 8월이 가장 추운 달입니다. 거기다가 겨울 몇 달 동안은 해가 뜨지 않는 암야기가 이어지고 극지 특유의 강풍까지 몰아칩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생물은 살아갑니다. 특히 펭귄의 월동 지혜는 감동스럽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펭귄 무리는 극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는 게 생태계의 철칙임에도 펭귄은 반대로 제일 추운 곳을 찾습니다. 강풍을 피하자는 슬기의 소산입니다. 극점에 도착한 펭귄 떼는 서로 몸을 맞대고 촘촘히 포개 앉아 둥그런 원을 만듭니다. 그런 상태로 춥고 캄캄한 겨울을 보냅니다.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서 가혹한 시련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자리다툼을 자제한 채 하나로 뭉치는 지혜가 곧 펭귄의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펭귄은 자신의 체온을 나눔으로 상대방의 체온을 내 것으로 삼습니다. 진정한 협력은 내 것을 먼저 내어놓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결과 더 큰 시너지를 누리는 것은 은혜의 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것을 내어놓음으로 교회의 공동체 속에서 은혜의 덤을 누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버리고 반역을 일삼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사명을 받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았고 세계 만국에 구원과 심판을 전파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명은 영웅적인 정복 방법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수난과 형벌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친히 대속 제물이 되어 인간이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담당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셨습니다. 부모의 한없는 희생을 통하여 자녀가 되듯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의 희생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과 영생과 천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하늘과 바다보다 높고 넓으신 큰 은혜를 감사하며 사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완성하신 예수님
  본문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인간은 죄로 가득 차 있으며 스스로 구원할 상태에 있지 못한다는 전적 부패 교리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의 근거가 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심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구원 교리의 근거가 됩니다. 인간의 전적 부패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구원을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모두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사면되고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이 깨끗이 제거되어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 인간은 잘못한 일도 많고 이루지 못한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옳으시고 완전하십니다. 그래서 다 이루었다고 십자가 위에서 선포하셨습니다. 죄의 문제와 구원의 사역을 십자가로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인간이 더하거나 감할 것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구원의 작품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기만 하면 용서와 구원을 받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값을 치를 수 없기에 거져 은혜를 주셨습니다. 너무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최대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이 영원한 선물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신앙생활입니다. 세상의 작은 것과 바꾸는 불행이 없기를 바랍니다.

  정체성의 상실이 주는 삶의 혼란에 대해서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재미있는 예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고향인 덴마크에 있는 큰 상점에 침입한 도둑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 도둑들은 그 상점에 침입하였지만, 상점의 어떤 것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점원이 문을 열었을 때, 모든 상품이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도둑들은 그 상점의 모든 물건의 가격표를 뒤바꾸어 놓았을 뿐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에는 2달러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고, 가죽 신발에는 50센트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필의 가격은 75달러나 되었고, 아기의 딸랑이 장난감에는 5천 달러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도둑들은 사실 어떤 것도 훔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둑들은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을 훔쳐 갔습니다. 그들은 상품의 본질적인 가치를 훔쳐 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상품의 정체성을 훔쳐 간 것입니다. 정체성이 상실되면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정체성이 혼란된 사회는 싸구려가 귀중품 행세를 하고 천박함이 고상한 척하는 우스운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것이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우화의 의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제대로 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최고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은혜로 완전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정체성을 확실히 가져야 합니다. 흔드는 사탄을 명령하여 쫓아 버려야 합니다. 이 큰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전하며 사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우리는 화려하게 나타났다 곧 사라지고 마는 혜성(彗星)이 아니라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항성(恒星)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아시고 희생하시고 완성하신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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