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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왕하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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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펴볼 말씀은 구약시대에 엘리사 선지자의 시대에 있었던 한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나라는 남과 북으로 나뉜 상태였는데, 열 지파로 된 북 왕국을 이스라엘이라고 하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로 된 남 왕국을 유다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바알 숭배에 몰두했던 아합 왕이 죽고 그 아들 요람이 왕이 되어 다스리던 때로서,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는 이미 불말이 끄는 불수레를 타고 승천하였고 엘리사 선지자가 그의 뒤를 이어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가 물려준 선지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생도들이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적어도 100명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왕하 4:43). 이 선지학교는 요즘의 신학교와 비슷한데,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생도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하루는 선지학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를 찾아와서 울부짖으며 하소연했습니다.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이 여인의 남편은 선지생도로서 충실하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그나마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이 여인은 두 아들과 함께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남의 빚을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채주가 이 여인에게 최후통첩을 하였는데, 정한 일자까지 빚을 갚지 않으면 이 여인의 어린 두 아들을 종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채권자는 빚을 갚을 수 없는 채무자를 최고 6년까지 종으로 부릴 수 있었습니다(출 21:2).

목숨처럼 소중한 두 아들을 종으로 빼앗기다니, 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서 이 절박한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고 하자, 여인이 대답하기를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기름은 올리브유를 말하는데, 가진 것이라곤 작은 병 하나에 담긴 기름이 전부였습니다.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말하기를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여인이 집에 가서 선지자가 시킨 대로 이웃을 다니며 그릇을 빌려와서는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아이들이 그릇을 가져오면 이 여인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얼마 후에, 빌려온 그릇마다 기름이 가득 찼습니다. 여인이 아들에게 “또 그릇을 가져오라” 하자 “다른 그릇이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기름이 그쳤습니다. 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이 사실을 고하자, 선지자가 말하기를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 저는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가르침을 살펴봄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이 기적은 하나님께서는 자비가 한량없으신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서 호소한 것을 보면 이 여인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나 봅니다. 채주가 정한 날짜는 임박했는데, 대신 빚을 갚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제 채주가 와서 인정사정없이 어린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 갈 것입니다. 아이들을 종으로 데려가는 것을 어찌 차마 볼 수 있겠습니까? 그 절박한 순간에, 이 여인의 뇌리에 엘리사 선지자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사 선지자를 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선지자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이기도 하지만, 특히 모세나 사무엘이나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에는 그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찾아왔습니다. 이는 이 여인이 인생의 위기를 만나서 하나님을 찾아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여인은 아무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는 그 때에 마지막으로 기대를 안고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왔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 68:5)고 하였습니다. 율법서인 출애굽기 22장에는 “22)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찌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과부나 고아의 생계를 책임질 것이니까 너희는 그들에게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과부와 고아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계시니 너희도 동일한 관심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16장 11절에 보면, 절기를 지킬 때 너와 네 가족만 즐거워하지 말고, 네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너희 중에 있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더불어 하나님의 절기를 즐거워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과연,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온 이 여인은 기대 이상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본문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이 여인의 간구에 최선의 해결책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 하소연한 것은 참 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람은 누구나 한 평생 평안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고생하지 않고 형통하게 한 세상을 보내길 원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우리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여인의 경우가 그렇지 않습니까?

비록 가난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살아있을 적에는 빚 독촉을 받지 않고 오순도순 살았을 것입니다. 무럭무럭 자리는 두 아들을 바라보면서 부부는 흐뭇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남편이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남겨진 가족이 고생하기 마련입니다. 혹, 많은 재산이라도 남겨두고 간 경우는 다를지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는 고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가하면, 현대는 자동차가 많다보니 교통사고가 빈발합니다. 매년 6천명 이상이 죽고, 그 보다 몇 배 많은 사람이 다칩니다. 또한 질병으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가운데 90% 정도는 선천성이 아닌 후천성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살아가다가 중도에 장애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누가 그런 일을 당할 줄을 예상이나 했을까요? 지난번에 IMF를 만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위기에 직면했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닥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드라마 슈퍼맨을 잘 아실 것입니다. 몸에 달라붙는 파란색 쫄쫄이를 입고 붉은 장화를 신고, 붉은 망토를 걸치고 공중을 날아서 악당들을 쳐부수는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습니다. 그 멋진 슈퍼맨을 연기했던 배우가 바로 지난 2004년도에 타계한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미국 배우입니다. 그 드라마에 푹 빠진 사람들은 크리스토퍼 리브와 슈퍼맨을 동일 인물로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1995년에 그는 승마를 즐기던 중에 떨어져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부상은 사람들을 슈퍼맨의 환상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유한한 우리가 볼 때, 인생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지혜자 솔로몬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는 자기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는지 알 수 없으므로 자기의 지혜나 능력을 자랑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선지생도의 아내처럼 자비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부르짖었듯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성도님들의 사정을 부르짖어 고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의 부르짖음에 그 풍성한 자비하심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선지생도의 아내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먼저 자기가 당면한 어려움에 대하여 호소하지 않고, 이미 세상을 떠난 자기 남편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이 여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고 물은 것을 보면 남편에 대한 그의 말이 진실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남편이 하나님을 경외한 줄은 선지자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바로 이 사실이 이 여인에게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 호소하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비가 한량없으시므로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납해 주십니다.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 보면,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재산을 달라고 해서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며 허비했습니다. 빈털터리가 되고 나자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당장에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이 아들은 들판에서 돼지치기로 취직했지만, 돼지가 먹는 쥐염열매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 절박한 때에 이 아들은 떠나온 아버지 집을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는 염치불구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 나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환대에 황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을 불러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발에 신을 신기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처럼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념해야 합니다. 그는 아들은 고사하고 품꾼의 하나로 받아주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선지생도의 아내는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담대하게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일서 3장 21절로 22절에는 이 같이 말씀합니다.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가 힘쓸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고 힘쓸 때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발휘해서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면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구하는데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기도 응답을 받는 비결은, 우리 자신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성도님들의 가정을 생각해 보시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자녀와 속을 썩이는 자녀가 있다고 할 때, 어느 자녀의 요구를 더 잘 들어주십니까?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성도의 기도를 불순종하는 성도의 기도보다 더 잘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순종하는 성도들에게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고 하셨는가 하면,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평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뿐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 자체를 하나님의 능력 있는 팔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응답을 기대해야 합니다.

선지생도의 아내가 찾아와서 부르짖어 도움을 청했을 때, 엘리사 선지자는 그 여인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이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라고 하자, 그 한 병 기름을 가지고 기적을 행했습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의 자격으로 지시한 바를 그 여인이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선지자의 말을 통하여 역사하심으로 위대한 기적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그 때 엘리사 선지자가 그 여인에게 지시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기름을 붓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조금 빌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빌리라고 했습니다. 만일 이 여인이 자기 집에 있는 그릇에만 기름을 받았다면 빚을 다 갚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 선지자는 막연하게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고 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으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릇을 한 두 개씩만 빌리지 말고 빈 그릇이 있는 대로 다 빌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빚을 갚고 남아서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갈 밑천을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의 지시에 순종해서 모든 이웃에게 빈 그릇을 많이 빌려왔습니다. 방안에 빈 그릇들이 가득하고 부엌과 선반 위에도 빈 그릇들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온 천지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얼마나 단순한 말씀인가? 그러나 당신은 전세계 어느 백만장자가 ‘공중의 새들’을 단 하루 만이라도 먹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천부께서는 매일 그들을 먹이시고 계시며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지 않겠는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새들이 몇 마리나 될까요? 그 수를 세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무수한 새들이 매일 같이 일용할 양식을 먹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새들을 먹이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부요하신가를 보여주는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산림과 들판에서 서식하는 짐승들과 물속에 있는 물고기들 역시 새들보다 적은 수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을 누가 먹이십니까? 하나님께서 먹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같이 먹이시고 입히시지만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십니다. 너무 부담이 되어서 제한 급식을 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잘 사는 부모에게라도 시시로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려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알기 때문에 선지생도의 아내에게 “모든 이웃에게 빈 그릇을 빌라 빌되 조금 빌지 말라”고 일러주었던 것입니다. 이 빈 그릇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기대를 의미합니다. 빈 그릇을 많이 빌렸다 함은, 하나님께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신뢰하지 못했다면 그릇을 빌리되 몇 개 정도만 빌려서 하는 시늉만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히 신뢰했으므로 그가 지시하는 대로 모든 이웃에게 다니며 빈 그릇을 많이 빌려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였더니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본문에 보니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고 말씀합니다. 빌려온 그릇마다 기름이 가득 찼습니다. 큰 그릇이든 작은 그릇이든 그런 차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큰 그릇이라도 빌려 왔다면 올리브유로 가득 차게 되었을 것입니다. 작은 기름병에 담긴 적은 양의 기름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니 크고 작은 수많은 그릇을 채우고도 남는 기름이 계속해서 흘러나왔습니다. 기름이 그친 것은 더 이상 담을 빈 그릇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더 많은 그릇을 준비했더라면 더 많은 기름을 얻을 수 있었겠지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하나님을 인색한 분으로 알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하였습니다.

그뿐 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

주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은 구하고 무엇은 구하지 말라는 제한이 없습니다. 죄 짓기 위해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라는 책망을 듣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할 때였는데, 백성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우는 것을 듣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여쭙기를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일 고기를 주어 먹게 할 터인데,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모세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모세와 같은 신앙인도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잠시 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의 생각을 고치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큰 기대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리했더니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어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90센치 쯤 되게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나가서 메추라기를 잡아서 원이 없도록 고기를 먹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 사건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얼마든지 빈 그릇을 준비하는 대로 채워주실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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