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는 인간일뿐 그리스도가 아니라니요!(요일 2:22)

  • 잡초 잡초
  • 266
  • 0

첨부 1


요일2:22

예수님이 인간일 뿐 그리스도가 아니라고요?

요즘 자유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초대형 교회의 목사님마저도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가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신앙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도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건 자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진리요 옳기 때문에 이단적인 그런 말에는 절대로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혹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그들의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이 글에서는 이단적이고 거짓적인 이런 저런 주장들에 왜 성도들이 예수의 그리스도성과,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만이 구원이 가능하다는 신앙이 흔들리고, 그런 그릇된 주장들에 힘없이 넘어가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자기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는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만이 구원이 있다’고 하는 확신에 찬 신앙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분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확신이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현재 한국교회 성도들은 당연히 성경을 근거로 신앙을 해 나가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성경을 체계화한 조직신학적 교리를 중심으로 신앙 믿음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직신학은 말 그대로 신에 대해 학적이요 법적인 관계로 연구해서 체계화한 학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이란 물질적, 법적인 개념이 아닌 비물질적이요 인격적이요 영적인 개념인데 조직신학에만 의지해서 신앙을 하게 되면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알 수가 없게 되며, 이로 인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온전히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즉 신앙이라 할 때는 하나님과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를 갖는 것인데 조직신학적 신앙으로는 이런 차원으로 올라가기가 어렵고 단지 법적, 주종적인 관계의 신앙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조직신학이 틀렸다거나 잘못됐다는 말이라기보다도 학적, 법적으로만 신에 대해 연구하고 접근하는 조직신학으로는 성도가 온전한 신앙이 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말이요, 한 편으로는 법적 학적인 면의 조직신학적 차원으로만이 아닌 신과의 인격적 애정적 관계성으로 더 깊이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의 조직신학이 옳은 것임을 전제로 할 때 이 신학을 근거로 신앙을 해 나가면 첫째로는 성도 개개인적으로 이단적인 신앙으로 빠지지 않게 되는 것과, 둘째로 교계적으로는 이단의 교회침투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단점으로는 그 조직신학 이상의 깨달음을 주장하는 것을 금기시해서 첫째로는 인간이 체계를 세운 조직신학을 성경처럼 절대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로 인해 조직신학 그 이상의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애정적인 신앙으로의 깨달음과 성장을 막는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학적 지식에 의한 확신이기 때문에 역시 학적 지식으로 그릇된 주장을 해 올 때는 그 지식의 차원의 레벨이 똑같이 학적이기 때문에 그릇된 주장에 쉽게 흔들리고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한 예수로 통해서만이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설들이 판을 치고 있고, 이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구원의 유일성과 확신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며 이설들에게 미혹이 되는 것도 어찌 보면 한국교회가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구원의 유일성과,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조직신학적 교리로만 가르치다보니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난바 되지 못한 상태에서 주입된 조직신학적 지식에 의해 구원의 유일성과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알고 있다가 자유주의자들이나 이단자들이 역시 학적인 차원에서 그것도 세상의 서적이 아닌 성경을 가지고 그릇된 주장들을 하니 그만 그들의 말 역시 성경이려니 하고 그만 미혹이 돼서 신앙의 확신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가 보수신앙자이건 자유주의 신앙자이건 둘 다 성경을 근거로 각자의 신앙으로 나가는 것인데 보수신앙자들은 예수님을 겸손이나 희생 등을 한 분으로 보되 그렇게 하신 것이 주로 각 개인이나 교회 안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고, 각자가 그것을 본받아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고,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을 역시 겸손이나 희생 등을 한 분으로 보되 그렇게 하신 것이 믿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안 믿는 사람들과 인류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고, 자신들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수주의적으로 신앙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라든가 인류의 평화와 번영문제에는 소홀해지고 개인의 영달이나 교회 안으로만 마음이 향하다 보니 성경에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이런 교훈을 받는 기독교가 이 문제에 대해 등한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이 돼서 그동안 보수주의적 성경해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경해석(개인보다는 인류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해석)에서 나온 것이 바로 구원의 유일성이나 예수의 그리스도성마저도 부정을 하는 자유주의적 신학이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과의 인격적 애정적 차원에까지 이르지 못한 채 조직신학적 교리를 중심으로 학적이고 법적인 관계로 신앙을 해 오던 보수주의 계열의 성도들로서는 구원의 유일성이나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계열의 사람들의 주장을 들을 때 이 자유주의자들 역시도 자신들이 보는 것과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그런 주장을 하니까 그만 그 말에 쉽게 미혹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일반적인 예를 들어서 말한다면 나의 어머니에 대해 남들이 계모라고 말을 할 때 평소에 인격적이고 애정적인 면으로 어머니로 알고 있었다면 그런 말에 어머니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고, 친모라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단순히 생득적 호적상의 어머니로만 알고 있었다면 그런 소리를 들을 때 그들의 말에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쉽게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닌 말로 평소 어머니를 인격적 애정적인 면으로 알고 있었다면 설령 나의 어머니가 정말로 계모라고 한들 그간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효심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학적이고 법적인 차원의 신앙이 아니라 거기에서 더 올라가 인격적 애정적 차원의 신앙으로 살고 있다면 그 어떤 자들이 그 무슨 주장을 해도 그런 말에 나의 신앙이 흔들리거나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을 해 본다면 현금의 신학교나 교회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를 나와 인격적인 상관이 없이 하나의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그리스도에 대해 학적으로 어떻게 말하느냐, 어떻게 논하느냐’ 하는 면으로 가르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의 면면을 보면 첫째로는 ‘존재적 기준적 기독론(조건적 자격자 그리스도)으로 가르치는 것을 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두고 ‘이 분이 어떤 분이냐’ 하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 ‘만일 그리스가 있다고 하면 그리스도는 필연적으로 이런 이런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지목하지 않고 누가 그리스도이던 상관없이 그 자격이 구비된 자라야 그리스도요, 그 자격이 구비되지 못할 때에는 아무리 예수라도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예수 외에 다른 존재라도 이 자격이 구비되면 자칭 타칭으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기독론은 ‘만일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있다면 이런 이런 자격이어야 한다’고 하는 주관적 기독론입니다.  여기서 원칙이 명확치 못하면 많은 이단들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현실에서 실지로 보고 있습니다.

구약에 그리스도의 표준에 대해 말해 놓은 게 있는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보는 눈이 미달했습니다.  이들은 진리의 눈이 어두웠고, 표준을 잘못 세웠고, 이면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고, 잘못 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었지만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조직적으로 신학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믿었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지 않았고, 예수를 그리스도에서 버렸습니다.  그리스도는 믿었지만 예수를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예수를 안 믿은 신앙이요, 그리스도를 안 믿은 신앙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모른 채 막연한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현금에는 그리스도를 내어버리고 다른 것으로 그리스도를 세우고 있습니다.  내가 신앙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시인할지라도 어떤 사건, 어떤 환경에 가서는 예수를 그 자리에서 버리고 갑니다.  어떤 때에는 버리고도 버린 줄을 모릅니다.  자기가 표준에 미달한 것은 몰라서, 무식해서 그런 결과가 온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인데 예수를 안 믿었으니 그리스도를 안 믿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이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로만 가르치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표준이 없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니 그 예수를 대상으로 세워 두고 그리스도에 대해 연구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은 그리스도론이라고 하기보다는 예수론이라 함이 타당할 것입니다.  예수를 대상으로 세워 두고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예수가 어떤 분이냐’ 하는 것에 대해 많은 논쟁을 하면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대개 일반적인 신학자들이 연구한 기독론은 여기에 가깝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니 나사렛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냐?  대상은 그리스도를 연구하는데, 나사렛 예수를 연구하는데 그 어떤 인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나사렛 예수님의 그리스도성을 연구하는 것이 이 기독론입니다.  그리하여 이 나사렛 예수는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고, 또 ‘그는 예수로서는 어떻게 활약을 했으며, 그리스도로서는 어떤 사역을 했느냐’ 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이나 신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 예수는 어떤 인물인가 보자’ 하며 신신학적으로 나갑니다.  ‘예수는 우리 인간과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을 연구해서 ‘이래서 예수는 그리스도다’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하고 궁극적인 뜻을 모른 채 이렇게 나가다 보면 인간의 노력이나 이종교로 통해서 구원이 될 수 있다고 하거나,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는 ‘객관적 상대적 기독론’으로 교훈하기도 합니다.

다른 모든 인간은 못했지만 마리아가 낳은 예수만이 유일무이하게 인간에 대한 책임을 다 하고 가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리스도가 인간 예수로 왔다는 말입니까?

‘예수는 아무도 하지 못한 그리스도의 일을 한 분이므로 곧 그리스도다’ 하게 되면 이 말이 맞습니까?  말은 맞으나 꺼림직합니다.  ‘기독교는 최고의 종교다, 세상 역사 중에서 최고의 종교다’ 하면 이 말이 맞는 것 같으나 앞으로 기독교보다 더 나은 종교가 나오면 그 때는 기독교가 최고의 종교의 자리를 그 종교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주장은 론적으로는 맞으나 실은 틀린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실 때에 예수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라 하면 마리아의 몸에서 난 물질적인 그리스도를 말하고, ‘그리스도’라 하면 비물질적인 예수를 말합니다.

이상은 기독론적 관점들이고, 인격적 애정적 면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접근하고 연구하는 것은 기독론이 아닌 기독관이라고 하는데 이 기독관은 ‘예수로 오신 그리스도와 나와 어떤 관계냐, 어떤 일을 하시고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하는 나와 인격적 직결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학적 교리적으로 이단사설들을 밝혀내고 물리치는 것도 시급하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온전하지 못하고, 또한 그런 식의 신앙으로는 하나님에 대해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이단 사설들에게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차원의 신앙은 인격적 성품적으로 주님과의 친밀성과 단일성의 차원 높은 신앙으로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론’적 관점이 아닌 인격적 애정적 주님과의 관계적인 ‘기독관’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메일을 주십시오.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email protected])

(김석준목사님의 기독관을 기초로 작성했습니다)

http://909.mchol.com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