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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자취마다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총 (수 1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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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수12 : 1 - 24절         
제  목 : 삶의 자취마다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총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 이란 책에 보면 
프랭클이 유대인으로서 나치 포로수용소에 감옥생활을 할 때
      너무 혹독한 고통으로 죄수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프랭클이 보니 사람들이 고통으로 죽는 것보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절망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 형제 여러분 저 조그마한 창이 보이지 않습니까?”
한 죄수가 신경질적으로 대답을 합니다.
“창 너머 봐야 희색 담벼락 밖에 더 없지 않소.”
“아니 그 희색 담벼락 넘어 푸른 하늘을 보십시오.
    밤에도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십시오.”
<프랭클>은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곧 쇠약해졌다.
  희망을 끝까지 가진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자기 혼자 희망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이웃들을 도와주고 희망을 계속 갖도록 격려하던 사람들이     
몸과 마음도 가장 건강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요단강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 - 사방에 장벽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요단강 너머 여리고 성 너머 축복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결과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시간 수11장은 23절에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하면서
  사실상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났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 수12장은
    지금까지 가나안 정복사에 대한 요약입니다.

1절-6절까지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
  즉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모세가 정복한 요단 동편 지역의 범위와 왕의 이름이 서술되어 있고, 7절-24절까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여호수아가 정복한
  요단 서편 지역의 범위와 왕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싸움에 개입하셔서 승리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에서 안식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가나안 정복사를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살펴봄으로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왜? 가나안 정복사를 다시 일목요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1. 왜 다시 가나안 정복사를 일목요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말씀 수12장에는 
이스라엘에 의해서 패망한 나라들과 왕들의 이름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6절까지 보면 요단강을 건너기 전, 즉 요단 동편에서
  아모리의 왕 `시혼`과 바산의 왕 `옥`이 이스라엘에 패하고
  그 땅은 이스라엘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하게 됩니다(민21:21-35, 민32:29-42).
그리고 7절-24절까지는 요단강을 건넌 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한
    가나안 남쪽지역의 16명과, 북부지역의 15명
    도합, 31명의 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에게 분배됩니다.
왜? 지난 사건들을 다시 기록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가나안의 문화는 뛰어났습니다.
도로와 성읍들은 잘 정비되었고,
    뛰어난 건축 기술로 가옥들도 잘 지어져 있었습니다.
배수 시설 또한 발달되어 있었으며, 성서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벌서 그 때에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금, 은, 동 세공기술이 발달하여
  주변 국가들과의 활발한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부하는 말이
[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저들 풍속 좇지 말라 ] 신신 당부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들 풍속 따라가는 것은
      저들이 문화적으로 훨씬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군사력은 최강이라고 할 만큼 강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견고하고, 강하던 성읍들이 이스라엘의 손에 의해 다 무너지고,
그 강하던 군사력도
        이스라엘의 오합지졸들에게 다 떨어져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화려한 명성과 문명의 축복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애굽의 노예들에게 다 빼앗기는 비운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예상이라도 했겠습니까?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리라 예측했겠습니까?
이것이 역사의 비밀입니다.
이 세상은 우연히 저절로 자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진행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우주의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역사가 토인비가 이 지구상에 60억의 인구가 있지만
    세계를 이끌고 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소수를 창조적 소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창조적 소수를 움직이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은 인간이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
다윗의 고백처럼
    강하게 하심과 크게 하심이 그 손 안에 있는 만유의 주재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가나안의 화려한 문화와 강한 군사력도
      하나님께서 접으시니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 오합지졸들이었지만 하나님이 붙잡으시니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의 새 주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축복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23,000여 개의 종족과 200개가 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민족들은
    세계 열방에서 큰 복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민족들은 대개가 미개하고 발전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을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시고
오늘날 복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시33:12절에 [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 말씀처럼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민족과 개인은
      반드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가장 열심히 기도하고, 가장 열심히 예배드리고,
    가장 열심히 선교하는 이 나라를 하나님이 왜 사랑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왜?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역사의 비밀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역사관이 바로 되어져야만이
  그 나라가 그 백성이 또한 그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분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이들에게
      놀라운 세계가 열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자녀들의 주관자,
    여러분 사업의 오너가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메뚜기 같은 이스라엘이
    아낙 자손 대장부의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부쳐 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바로 하나님이 붙여주신 그 땅과 왕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근간에 매일경제 신문에
“한국경제, 4대 샌드위치에 직면`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샌드위치 위기론보다 한술 더 떠
대한상공회의소가 3월 20일 상의회관에서 개최한
  `샌드위치 한국경제 진단과 해법`세미나에서
    오노 히사시  -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지점장은
최근 한국경제가 기술장벽. 이익장벽. 시장지배. 첨단산업이라는
    4가지 샌드위치에 끼어있다고 지적했다.
기술장벽이란? - 선진국의 상위기업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하고
          하위기업의 가격경쟁력에 추격당하는 기술장벽을 말하는데
그 사례로 한국 자동차. 부품소재업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기술 차별화 전략이 요구된다고 충고합니다.
저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지만
    언제 우리 경제가 전망이 밝다고 한 적 있습니까?
한국교회가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바로 인식하고
  하나님의 선택된 나라와 국민으로써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면
욥8:5절 말씀같이 정직하게 행하고 부지런히 기도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4대 샌드위치에 끼워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세계 속에 대한민국으로 세워 줄 줄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사를 다시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자 봐라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렇게 정복한 것은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다시 일목요연하게 기록을 한 것임을 믿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봅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사를 다시 기록하면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정복한 성읍, 그리고 여호수아가 정복한 성읍,
이렇게 나누어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2. 모세와 여호수아가 정복한 성읍을 나누어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6절, 7절)

요단 동편의 땅을 정복할 때의 지도자는 모세였습니다.
하지만, 요단 서편의 땅을 정복할 때의 지도자는 여호수아였습니다.
본문도 그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6절에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 
그리고 7절을 보시면
[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하면서 괄호 안에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왜? 이렇게 나누어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정복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1) 시대적 구분입니다.
  역사가들이 역사를 기록할 때 시간적으로 구분을 하면서
  100년 200년 또는 19세기 20세기 그렇게 구분은 하지 않지요
시간적으로 구분을 할지라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시간을 구분합니다.
마찬가지로 모세 시대와 여호수아 시대로 구분하는 것은
        여기에 신앙적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특히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모세시대라면 율법시대를 말하고 있고
    여호수아시대라면 복음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요단 동편 땅을 정복했고
    여호수아는 요단 서편 땅을 정복했습니다.
본래 요단 동편 땅은 하나님의 언약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이 통과하는 것을 거부하다가 저들이 망한 것이고
    덤으로 이스라엘이 얻은 땅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약속 땅에 들어가
          복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킴으로 유익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율적으로 말하면 2:31입니다. 비교가 안 되지요.
율법적인 신앙에 머무르지 말고
복음의 감격 속에 신앙생활 하므로
    더 엄청난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신앙의 교훈적 구분입니다.
1-6절까지 모세를 통해서
아모리의 왕 `시혼`과 바산의 왕 `옥`을 죽이고 요단동편 땅을 점령한 사건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오픈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어디서 증명되는가 하면
수2:10에 이스라엘 정탐군에게 기생 라합이 하는 말이
[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항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
그러니 모세를 통한 요단 동편의 정복은
요단 서편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소문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정신이 앗찔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그 다음 가나안 정복은
여호수아 갈렙의 말처럼 - 그들은 우리의 밥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약의 하나님 역사를 바로 알고 나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즉 식은 죽 먹기 누워서 떡 먹기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약의 하나님의 역사에 눈이 뜨여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복음의 감격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내 인생 여정 반드시 승리할 줄 믿습니다.

오늘 가나안 정복사를 보면서
왜 이렇게 상세하게 정복한 성읍들과 왕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앞에서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정복한 성읍과 왕들의 이름들이 열거한데 대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교훈이 또 있습니다.
그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3. 왜 정복한 성읍들과 왕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까?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이 났을 때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겠습니까?
야~! 자꾸 싸우다 보니 우리도 참 강해졌구나.
    우리도 이만하면 대단하다 그지? 그랬겠습니까?
오늘 이렇게 정복한 성읍들과 왕들을 기록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놀랍다 는 간증의 구체적 증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까지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
      그리고 하나님의 격려와 초자연적인 능력이 함께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행적과 자리마다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언제나 한결같이 신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실하심은
    아브라함의 발걸음마다 은총을 베푸심으로 더욱 빛났습니다.
하나님이 에서보다 야곱을 택했을 때 -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야곱의 얼룩진 삶의 자취를 따라가보며
          하나님의 은총이 묻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그들을 위해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예비하심으로         
그들의 삶에 은총을 베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은 신실하심으로 동행하셨습니다.
민33장은 모세가 애굽 땅에서 나올 때로부터 시작하여
    요단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걸어 온 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33장을 읽을 때도 수12장과 같이 대충 잃고 넘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33장에서도
    비록 광야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지나온 모든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라, 엘림, 르비딤, 시내산, 가데스 바네아, 신광야,
어느 한 곳 하나님의 은총이 묻어 있지 아니한 곳이 없습니다.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어 나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심으로
죽음의 사자가 그냥 지나가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검푸른 홍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길을 막을 때에는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땅으로 행하게 하셨습니다.
마라의 오염된 물 때문에 낙심할 때에는
    한 나뭇가지를 통해 물을 정화시켜 주셨고,
    바로 곁에 엘림의 샘물을 준비하셔서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주셔서 광야에서 굶주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목마름이 극심할 때에는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샘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민33:에서 모세는 요단까지의 길은 멀고 험한 길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자신들이 걸어온 길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간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온 광야의 여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31명의 왕과 그들의 성읍을 정복하게 된 사실을
      아주 상세하게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9절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10절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라.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때로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모든 삶의 자리마다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깊이 새기려 한 것입니다.
요단강 도하, 여리고 점령, 아이성 정복,
특히 남부지역 정복 때  - 기브온 골짜기
    북부 연합군 하솔왕 야빈과의 싸움
어느 한 곳도 하나님의 은총이 묻어 있지 아니한 곳이 없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이런 노래가 있지요.
`내 일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여러분들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자리,
여러분의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은총이 묻어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저 힘들고 어려운 것들로만 채워져 있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 같으나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나의 평생에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다윗의 인생의 발걸음마다에 하나님의 은총이 묻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 고 고백하며 돌아보는 인생의 발걸음마다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함으로
    인생의 행복과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이 남긴 승리의 흔적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전 지역에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의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오늘 나의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4.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자취마다 하나님의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나타낼 수 있는 삶의 자취가 되시기 바랍니다.
비록 광야생활 같은 고난의 여정 속에서도
    그리고 가나안 정복사 같은 승리의 자취 가운데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총이 숨 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들과의 싸움에서
    승승장구한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나안 족속들의 반항은 거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33개 부족의 왕들을 물리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유적비 남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온 나라 구석구석에 유적비가 널려 있습니다.
열녀비, 치적비, 순교비, 생가...등등,
심지어는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유적비를 남기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만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남한에서도 살아있는 대통령 생가 복원한다고 얼마나 떠듭니까?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디에 자기 이름이 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명예를 구하고, 돈을 구하고, 권력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남긴 흔적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흔적을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그들의 절기는 하나님과 관계 된 것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칠칠절은 가나안 땅에서 첫 번째로 거둔 곡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수장절은 광야생활에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총의 흔적입니다.
에벤에셀 -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흔적입니다.
길갈에 세운 12개의 기념비 -
    요단강을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흔적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든 자리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남겨야 할 인생의 흔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6:17절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의 삶을 보면 예수님의 흔적이 묻어나옵니다.
예수님 때문에 매 맞고, 핍박받고, 고난 받은 흔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보면 예수님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이 보이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보이고, 예수님의 재림이 보입니다.
바울이 있는 곳에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회복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삶 속에
      예수님이 흔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발걸음마다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이 흔적으로 남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영국 황제 루이스가 민정시찰을 위해서 시골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물fp 방앗간을 지나가는데 안에서 찬송소리가 울려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황제는 방앗간 안으로 들어가 보니
초라한 방 안에는 한 노인이 빵 한 조각과 물 한 컵을 앞에 놓고
    감사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그 광경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날마다 진수성찬을 먹으면서도 감사함을 몰랐는데
노인은 빵 한 조각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지 않는가!
노인은 찬송을 계속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찬송을 듣고있던 황제가 노인 에게 2절을 더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노인은 2절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황제는 2절은 이렇게 부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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