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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 : 진정으로 회개하라 (시 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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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 진정으로 회개하라 (시 51:1~10)

회개는 부흥의 표징이다.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는 회개가 동반되었다. 회개란 헬라어인 「메타노니아」를 번역한 것인데 ‘사람의 마음을 돌이킨다’는 뜻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회개는 구원의 필수적 관문이요 더 나아가 부흥을 갈망하는 사역자에겐 피해갈 수 없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바울, 베드로에게 이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회개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시편 51편은 간음과 살인의 죄를 짓고 무너져 버린 다윗의 철처한 눈물의 시이다. 우리에게 전형적인 회개의 단계를 보여주는 다윗 왕의 모습 속에서 다시 사는 부흥의 표징을 보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법을 깨닫게 된다.

첫째, 내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51:3)

시51: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하였다. 다윗은 이 죄에 대한 인식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다. 죄를 제대로 대면하거나 직시하지 않았다. 죄를 짓고 난 후 나단을 통해 죄를 지적 당하고 자신의 삶을 살펴보았을 때 다윗은 자신의 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로 인해 다윗은 자신을 낮추게 되었고 눈물로 통곡하는 회개의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회개의 첫 단계는 죄를 자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하던 일만 계속하려는 것은 갓난 아기만도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점검할 줄 알아야 한다. 다윗이 나단의 책망 때문에 자기 죄를 인정하였듯이 우리도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자신을 점검하자. 말씀이라는 거울을 들고 살피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려하지 말고 주의 인자와 긍휼을 얻기 위해 문제가 되는 죄악들을 바로 점검하자. 그러면 회개가 터지게 된다.

다윗의 회개 속에 담긴 자신의 행실에 대한 인식은 죄악, 죄, 죄과이다.

① 시51: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에서 다윗은 죄악을 말하고 있다.
죄악이란 일그러지고 어긋난 행위, 왜곡된 행위를 말한다.

② 시51:2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하였다.
다윗은 죄악이란 말에 이어 죄를 회개하고 있다. 죄는 무엇인가? 죄는 목표에서 빗나가는 것이란 뜻이다. 즉 죄악 그 이상의 문제를 의미한다. 죄가 죄악을 저지르게 하는 기원이다. 'Original Sin'이라 불리는 이 죄가 사람을 추하고 더럽게 만드는 것이다.

③ 시51: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여기 다윗은 죄악 그리고 죄라는 단어 이외에 죄과란 말을 쓰고 있다. 다윗은 죄과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것이다. 죄과란 무엇인가? 즉 죄의 종노릇하여 죄악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 짊어지는 죄짐이 바로 죄과이다. 살인, 음행, 사기, 추함 등으로 나타난 죄과는 곧 사망이다.

다윗은 이 죄과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①죄악에 대해서는 말갛게 씻기시며
②죄에 대해서는 깨끗이 제하시고
③죄과에 대해서는 도말하소서. 이렇게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라. (시61:4)

시6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다윗은 사람에게 죄를 범했다. 밧세바에게, 그의 남편 우리아에게, 또 전사한 병사들에게, 자신에게 복종하는 백성들에게 죄를 범했다. 그런데 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특별하다. 자기 자신의 소행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고 본질적으로 주님께 대한 범죄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윗은 그리하여 사람에게 행한 악을 주의 목전에서 행한 악이라고 고백한다. 즉 자기 자신의 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지은 죄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이다.

죄를 짓는 사람들은 대개 후회나 반성을 한다. 교회 안에서도 후회하고 뉘우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자기의 죄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며 회개하는 자는 많지 않다. 따지고 보면 다윗의 죄란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 죄는 곧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거역이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죄를 짓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뜻, 그리고 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것은 사람에게 짓는 것이지만 이런 의미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요셉도 다윗과 같았다. 그는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 죄를 지을 수 있는 유혹을 받을 때 창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크게 깨달아야 한다. 사람에게 죄악을 저지르는 것은 곧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따라서 회개란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어떤 잘못된 일에 대한 후회나 반성의 도덕적 수준은 회개가 아니다. 아직도 후회와 회개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로 방향을 틀어 회개를 하라.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용서를 구하자.


셋째, 자복하되 핑계대지 말아야 한다. (시51:4下)

시51:4下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이 말은 주님이 아니고서는 불의함과 더러움 뿐이라는 말이다. 어떤 말은 구실로 잡고 핑계 대어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주님 앞에 저지른 죄는 모두 다 제 잘못이라는 자복이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를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자복이 있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마음 속 한 구석에 ‘내가 죄를 짓기로서니’ 하면 참된 회개가 아니다. ‘이런 일로 저주를 받고 삶이 불통된다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라고 생각된다면 그것도 참된 회개가 아니다. 회개란 죄값을 받는 것이 마땅한다. ‘아! 죽게 될 내 존재여!’하고 어떤 경우에도 핑계대지 않는 자복을 해야 참 회개이다.


넷째, 내면 속에 있는 깊은 죄성을 통회해야 한다. (시61:5)

시6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참된 회개를 하는 자는 회개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의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무엇이 나를 망가뜨렸나? 무엇이 시기, 질투, 탐욕, 욕망, 정욕으로 부글거리게 했나? 모든 것을 가졌어도 더 가지고 싶고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하면서도 더 내 맘대로 하고 싶게 하는 이 원인이 무엇인가? 죄가 그렇게 한 것임을 틀림없는데 이 죄가 언제 들어와서 거했는가? 다윗은 통회한다. 의로운 것이 하나도 없이 태어난 내가 문제다. 내 본성은 부패했고 내 마음이 악으로 가득한 것이 바로 잉태되는 때부터다. 바로 조성되는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구나!

그렇다.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부패한 것은 조직이나 단체, 법이 아니고 바로 사람이다. 사람의 본성이 문제다. 다윗은 여러 죄들에 대해 깨닫고 죄를 자백하다가 마침내 자기 자신이 죄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통회하는 것이다. 사람이 회개하고 정결케 되는 것은 죄성을 깊이 알고 하나님의 사함이 없이는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전적인 무능한 존재임을 통회해야 한다. 죄를 스스로 벗어 던질 수 없는 것을 아파하고 울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시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에게 은혜를 구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 예수는 나의 죄를 씻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죄값을 치르셨고 나의 주홍빛 같은 죄를 흰 눈처럼 희게 하신다. 우리는 삶의 방향을 바꾸어 그분께 들어가는 것을 결단만 하면 된다.

지금 방향을 바꾸라. 하나님께로 U턴하라. 인생의 가는 길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서라. 다윗은 지적인 회개, 정적인 회개, 의지적인 회개로 다시 일어섰다. 하나님이 용서하고 백성들이 용서하고 가족들이 용서하였다. 다윗은 회복되었고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아들까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릴 것인가? 아니다. 회개하는 자에겐 회복이 약속된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부흥의 표징이 회개이다. 회개하므로 그리스도인이 되고 회개하므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회개의 순간에 절망은 바뀌고 회개의 시간에 기쁨이 찾아온다. 회개하면 희망이 보인다. 회개는 고통이지만 큰 복이 되고 죄 짓는 잘못보다 회개하지 않는 잘못이 더욱 큰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이 민족이 1907년 평양에서 큰 부흥이 일어난 것은 지도자들의 회개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디의 회개, 길선주의 회개가 부흥의 씨가 된 것이다. 길선주는 친구가 자기에게 맡긴 돈을 떼어 먹은 사실을 회개하였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가슴에 통회하는 회개를 가져왔다. 어느 교인은 자기가 교회에서 일하면서 교회 돈을 떼어먹은 것을 회개하고 회개하였다. 윤승근은 1906년 원산 사경회에서 은혜를 받고 20년전 봉급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은 것이 생각나서 강화에서 제물포 주전소로 갔다. 그리고 주전소 문이 닫혔기에 탁지부로 갔다. 그리고 그들은 그 돈을 내밀었다. 이들은 양심전 영수증을 써주었다고 한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는 우리는 회개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자. 회개란 일종의 토해냄이다. 감추어 둔 것, 부끄럽고 창피해서 숨겨둔 것들을 토해내는 것이다. 회개하면 산다. 깨끗함이 주어지고 부흥이 시작된다. 한 주간동안 회개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원수 맺은 것, 남의 돈 떼어먹은 것, 미워하는 것 등 맺힌 것을 다 풀고 회개의 열매 맺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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