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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 안에 생명의 변화가 일어났는가? (요 6: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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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에 생명의 변화가 일어났는가? (요 6:47-59)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

그리스도인이라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만,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별로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었지만 그 후에 되어진 일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열광하며 예수님을 찾아 다녔지만 예수님은 한사코 그들을 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반응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찾던 무리들이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곧 다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무리들이 어떤 느낌이었겠습니까? 34절에 보는 것처럼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계속하여 떡을 만드는 기적을 베풀어주기를 원했습니다. 배불리 먹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는 말이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울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먹으려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고 했으니, 무리들은 질겁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 미친 사람 아냐?’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52절)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그렇게 그들은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라!’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성경과 역사를 다 아는 우리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당시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웠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떡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내가 생명의 떡이니 먹으려면 내 살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은 단지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려는 것은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51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영생을 얻었다는 말은 예수님과 생명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참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그 사람 안에 임하셨음을 말합니다.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그렇습니다. 영이 산 사람은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식을 할 때마다 성찬 떡을 먹으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내 안에 거하시는구나 하고 주님의 임재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신 것은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57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예수님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그 사람도 영생하는 것입니다.

(58절) “...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것은 단순히 교회다니는 것과 다릅니다.
여전히 무슨 말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예를 들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복음학교에 참가했던 한 성도의 간증입니다. 이 분은 평소에 직장에서 성실했고 가정적이었으며 교회도 열심히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남의 돈을 훔친 적도 없고, 남의 아내를 탐한 적도 없고, 아들에게도 삶으로 본을 보이며ꡒ내가 내 어머니를 섬기는 것처럼 너도 이다음에 네 어머니를 섬기도록 하라.“ 고 당당히 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와 아들이 복음학교에 다녀오더니,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인생의 목표가 바뀌었으니 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허락해 달라더랍니다. 그 때 아들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평소에 교회에 다니며 거룩한 척하고 살던 이 분은 순간 당황하게 되더랍니다. 그러나 차마 안된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좋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꼭 그렇게 해야 하겠냐...” “지금 그렇게 해야 할 필요야 있겠니?” 등 이상한 질문만 하였답니다. 그런데 아내가 당연히 반대하고 나설 줄 알았는데, 아내 마저 아들 편을 드는 것입니다. 정말 걱정이 되더랍니다.

  그런데 더 난감한 것은 툭하면 아내와 아들이ꡐ자기는 이제 죽었다ꡑ는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죽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자기는ꡐ나는 살아있다.ꡑ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시체들 옆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더랍니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가며 집안의 시체들을 다시 살려보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더랍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아내와 아들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를 제대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고민하다가 아내가 이야기하는 복음학교에 가 보기로 결심하였답니다. 가보면 해답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래서 복음학교에 들어가기로 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물었답니다.ꡒ그곳에서 5박 6일을 지내려면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지낼 수 있어?ꡓ 라고 묻자 아내의 대답은ꡐ밥 많이 먹으면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ꡑ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자신이 없었답니다. 자기는 몸이 불편하여 군에도 가지 못한 사람이라ꡒ나는 군대도 가본 일이 없고, 사람들 하고 합숙을 하면서 먹고 자고 하는 일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그곳에서 5박 6일을 살다보면 나 죽을 지도 몰라.ꡓ라고 했더니, 아내는 너무나 기다렸다는 듯이ꡒ확실하게 죽으세요.ꡓ라고 말하더랍니다. 너무나 서운하더랍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분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는 절대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답니다. 믿음 따로 삶 따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학교에서 관념적으로 알고 지내던 예수님의 피와 죽음을 체험하였습니다. 드디어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복음의 진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는 말씀이 실재가 되었습니다. 죽은 척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진짜 죽은 자로, 그리고 새 생명을 얻은 자로 살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들에게 말했습니다.ꡒ아들아, 네가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할 때, 기쁘게 대답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ꡒ하나님이 너를 도와 주시겠지만 나도 너의 후원자가 되어줄께.ꡓ라며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선교사님들을 돕는 자가 되든지 아니면, 제 아내와 더불어 선교사가 되어  주님이  보내시는 그 곳... 이 세상의 땅 끝에서  죽어... 하늘 복판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이 바뀐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감이 잡히십니까? 

우리 중에 말할 수 없는 시련의 때를 지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다 불쌍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어려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막연히 믿던 사람이 예수님을 생명의 주님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 부흥회를 인도하고 온 송천교회 김여일 목사님은 그 아들이 2000년 여름 몽골로 단기선교를 갔다가 태풍으로 날아간 교회 지붕을 수리하다가 전기 감전사를 당해 순직했습니다. 김우현 감독이 만든 팔복 2편 부흥의 여정에 목사님의 아들 김정호 선교사의 죽음의 현장이 그대로 나옵니다. 김여일 목사님은 사랑하는 아들 김성호선교사를 세 번 하나님께 바쳤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교역자로 바쳤고 두 번째는 선교사로 바쳤고 세 번째는 순교자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김선교사의 순교를 계기로 몽골 선교가 꽃이 피었습니다. 김선교사가 순교한 지역에 기념 교회와 선교 센타가 세워졌습니다. 선교 센타 건립비로 김여일 목사님은 김선교사 장례식 조의금과 사랑하는 딸 결혼식 축의금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몽골 선교 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이번에 부흥회에 가 보았더니 아버지인 김여일목사님이 아들의 순직이 헛되지 않게 하기 원한다면서 자원 은퇴하고 몽골선교사로 가기로 결단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선교사 훈련을 받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면 반드시 생명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되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사람이 성격이 바뀌고 개과천선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성품이 고쳐진 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변화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ꡓ
(에베소서 2장 1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ꡓ  (로마서 6장 3-4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ꡓ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생명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미국 제자훈련 세미나에서 어느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정말 예수님과 함께 내가 죽었다고 믿으면 정말 예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질문에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해 드렸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는 자는 반드시 살아계신 예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나의 생명”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우리 교회에 24시간 연속 기도회를 60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온전한 철야기도회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24시간 연속 기도회도 문제가 안된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환경과 여건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터넷에 빠진 사람, 도박에 빠진 사람을 보십시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아무도 못 말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따라 인생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여자 분들이 입는 옷이 유행에 가장 민감한데, 요즘 보니까 아예 속치마를 밖에 입고 다니더군요. 저는 그 오묘한 감각을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것을 억지로 누가 시켜서 하겠습니까? 그렇게 입고 싶은 마음을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여건이 어려워서 못합니다.” 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여 사람이 거듭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생명이 바뀌니 마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고 싶으면 환경과 여건이 문제가 안됩니다.

이따금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에게서 악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성질 내고 싸우는 것도 봅니다. 그것은 아직 예수님의 생명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 일을 하다가 내가 다 수고하여 놓은 일에 다른 사람이 와서 더 잘 되었다면 기뻐하고 기뻐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괴롭고 억울한 사람은 여전히 자기 중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내 생명이 되시면 문제가 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서 뛸만 하였지만 오히려 슬퍼하였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던 원수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금식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참 생명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참 생명으로 살았기에 세상 염려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염려하지 않는 것은 나도 염려하지 않고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시편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도 세상 염려와 두려움이 없습니다.

  제가 요즘에 건축헌금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가장 감사했던 것은 제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저도 두렵지 않습니다.성도 여러분도 건축헌금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헌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헌금만 드리십시오. 기도를 하되 헌금이 기쁨이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헌금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생명이 바뀐 사람은 더 이상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중국 선교사로 가시는 권태환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났습니다. 이 목사님은 10년 전, 선교사로 부름을 받으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두려워하기에 결단을 하지 못하고 소명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3년 전에 위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목회도 내려놓고 요양을 하고 계신데 다시 주님이 중국 선교사로 부르셨답니다. 건강도, 사모님도, 다 불가능한 여건인데 어떻게 선교사로 가나? 하다가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었던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완전히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했답니다. 주님이 보내시려면 주님이 하실 것이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건강도 사모님도 주께 맡기고 중국 단기선교를 갔다 왔더니 주께서 하셨습니다. 사모님이 마음이 바뀌어져서 완전한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리던 담임 목사님께서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시고 후원하기로 결정하였답니다. 그래서 건강할 때도 못갔던 선교사의 길을 암 수술을 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바뀐 사람은 “못해요.” “안돼요.” 하는 것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생명의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보면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내 속에 들어와 계신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이것이 진짜 믿음이고 정말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에게서는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지난 주간 터키의 송창섭선교사로부터 급한 기도 요청 메일이 왔습니다.
  지난 4월 18일 오후 1시30분 경 쿠르드족 지역에서 독일인 선교사(틸만)와 현지인 목사(네자띠) 성도(우우르) 등 3명이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범인들은 19-20세의 다섯 명의 청년들로 최근 3개월간 교회에 참석하며 친분을 쌓은 후 당일 사무실에 침입해 칼과 권총으로 위협하고 의자에 손을 묶은 후 입에 타월을 물리고 뒤에서 목을 자르는 극악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특히 독일인 선교사 틸만은 156군데나 칼로 난자를 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터키 성도들이 동요하거나 위축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24365 홈페이지에 현지 선교사님 가족의 글이 올라 있습니다. 남아 있는 선교사님과 목사님의 사모님들이 너무도 당당했고, 믿음이 충만해있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서도 “여전히 터키를 사랑하며, 터키의 영혼들을 사랑하며, 회교의 이름으로 공격한 테러 집단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과 믿음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선교사님의 가족들은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현지에 남아 있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 외에는 갈 데가 없습니다. 주님이 보내신 땅이 여긴데 다른 어느 곳에 가겠습니까?” 그 고백을 듣고 동료 선교사님들이 모두 울었습니다.
사역자 가정에 많은 현지인 이웃들이 찾아와서 용서를 구하고, 음식들도 만들어온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찾아와 위로하였고, 동네에 있는 회교 사원 이맘(성직자)도 찾아와 위로하면서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진정한 사랑과 용서가 흘러 나옵니다.

여러분, 순교의 사건 자체는 끔찍한 일이지만 그로 인해서 복음의 놀라운 승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그대로 사랑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이 바뀝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기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염려하고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 하며 사는 것입니다. 기가막힌 삶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가 오직 복음에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면 주님이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 안에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를 느끼지 않으십니까? 그 예수님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 전체를 바꾸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삶 속에 드러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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