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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 (렘 3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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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광대한 국토 개발을 위한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때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살게 되었던 중국인들이 아주 놀란 것 중에 하나가, 미국에서는 집을 살 때 그 땅도 함께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인 중국에서는 모든 토지가 국유 아니면 집단소유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개인이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그 중국인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부동산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저 기본 권리에 불과한 것이며, 또한 그것을 사고파는 부동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경제활동의 일부로서 '부동산 경기'도 훌륭한 경기(經紀)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일반 경기가 침체되고 있을 때 부동산 경기는 더 활발하게 됨으로써 전체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국가 경제를 운영함에 있어서 상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막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중산층의 주택 소유나 구입까지도 더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정책을 남발함으로써 사태를 점점 더 악화시키는 실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부당한 투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에 대한 투자 자체가 무조건 다 나쁜 것처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모든 땅을 옛날처럼 왕 한 사람이 독차지하거나 공산주의 사회처럼 집이고 땅이고 간에 모든 것을 다 국가가 소유해야 한다는 소리와 비슷한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에는 물론 '땅 투기'를 하라는 말씀은 없지만 '땅 투자'를 하라는 말씀은 분명히 있습니다.
  1절부터 5절의 말씀에 보면, 이 본문의 사건은 "유다 왕 시드기야 제 십년," 그리고 이미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을 때에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찍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바벨론 왕의 손에 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해 왔던 선지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의 미움을 받아서 감옥에 갇혀 있던 때였습니다.

  바로 그런 와중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는 아주 희한한 명령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땅 투자'는 재산증식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차원 높은 '영적 투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지금 함락 직전에 있는 예루살렘 성 안에 갇혀서 완전 절망에 빠져 있는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미래에 내려주실 해방과 축복을 믿고 소망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일종의 '상징적 행위'였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교육관 구입에 관한 교회의 공식 광고를 들으면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기도와 결단의 자세를 함께 나누었으며, 오늘 주일부터는 이제 이를 위한 '교육관 2천 평 헌금운동'에 모든 교인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고자 합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이 '아나돗의 밭'을 왜 우리가 꼭 사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상속권과 무를 권리가 있는 땅'이기 때문에 사야 합니다.

  6절부터 8상반절 말씀에 "6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7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8a여호와의 말씀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지금 "시위대 뜰 안"의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여호아의 말씀이 임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네 숙부 살룸의 아들" 즉 예레미야의 조카뻘 되는 "하나멜"이라는 사람이 와서 자기의 밭을 사라고 부탁해 올 것이라고 예언해 주셨는데, 과연 그 말씀대로 하나멜이 예레미야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가 예레미야에게 팔려고 한 밭이 있던 "아나돗"이란 예루살렘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네로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멜은 아마도 전쟁 중에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는 그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에 대하여 "기업의 상속권"과 "무를 권리"가 예레미야에게 있음을 상기시켜 주면서 그것을 사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빚을 갚기 위해서나 혹은 돈이 필요해서 땅을 팔 때에는 반드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팔게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살 의향이 없으면 그 땅을 살 수 있는 권리는 그 다음으로 가까운 친족에게 차례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열두 지파에게 각각 지파별로 나누어진 땅이 시간이 갈수록 섞여 버리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그처럼 땅을 살 수 있는 우선권을 가리켜 '기업의 상속권' 혹은 '무를 권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리는 어떤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특권'인 동시에 명예로운 '책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고자 하는 '아나돗의 밭' 역시 우리 경향교회로서는 이런 영적인 권(權)이 있는 땅입니다.
  이미 현재의 교육관들은 포화 상태에 이른지 오래였지만, 이 경향학원에 속한 일반 교실들은 법적 제한 때문에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이 학원의 터 바깥으로 교회의 교육 공간을 더 확장시켜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사실인데, 그렇다면 아무래도 지금의 교회당과 바로 붙어 있는 선교원 건물과 그 주변의 땅들이 가장 적절한 장소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우리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사들인 선교원 건물의 주인 역시 '이것은 언젠가는 경향교회가 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고 그래서 그 주인이 이 건물과 대지를 팔려고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우리 교회 측에 구매의사를 물어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 아직까지는 정식 계약은 못했지만 우리가 또 한 군데 더 마음에 두고 있는 건물의 주인도, 둘이 서로 짠 것도 결코 아닌데, 꼭 같이 '우리 건물과 땅은 경향교회가 사야 할 것'이라고 무슨 매매 광고를 내지도 아니하고 우리 교회 측에 일대 일로 접촉해 왔던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 아닙니까?
  이 '아나돗의 밭'의 임자들부터가 이 건물은 경향교회가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건물이라고, 이 땅은 다른 건축업자가 사용하기에는 부적당한 땅이라고, 이 부동산은 오직 경향교회가 그 '상속권과 무를 권리'를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사실이 그렇지 아니합니까?
  우리가 이 건물과 집에 대한 권리를 다른 어느 누구에게 양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부동산업자에게 넘어가서 우리 교회 지척에 무슨 유흥업소들이 판을 치는 건물들이 세워지게 만들겠습니까, 아니면 무슨 이단교회가 들어와서 우리 목에 사단이 칼을 겨누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이 선교원과 그 주변에 있는 건물들과 대지는 우리가 결코 놓칠 수 없는 '상속권'이 있으며 우리가 결코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무를 권리'가 있는 '아나돗의 밭'인 것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사라고 명령하신 땅'이기 때문에 사야 합니다.

  8하반절부터 12절에 기록하기를 "8b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9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 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취하여 12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증서에 인 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라고 했습니다.

  조카 하나멜의 제의를 받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즉시 그 '아나돗의 밭'을 사게 됩니다.
  당시의 매매 관례대로 그는 먼저 "은 십 칠 세겔"을 저울에 달아서 정확하게 지불했습니다.
  그 밭의 실제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비싼 가격인지 싼 가격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평상시 거래될 때 통용되는 정당한 가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예루살렘이 적군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고 나라가 곧 망하게 될 것이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 그런 정식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6.25 사변 당시 물밀듯이 밀려오는 북한 공산군 앞에 서울이 함락 직전에 있을 때 누가 '내 집을 사시오.'라고 한다고 하면 그 어떤 바보가 그것을 사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십중팔구 휴지 조각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땅문서를 쥐고 있는 것보다는 한 푼이라도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백배 더 낫다는 것은 상식에 불과한 일인 것입니다.
  또 만약에 서울 수복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을 산다손 치더라도 그 거래 가격은 현시세보다는 훨씬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음은 사는 사람뿐 아니라 파는 사람에게도 당연히 인정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레미야가 지불한 '은 십 칠 세겔'은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돈을 지불하고 모든 토지 매매 계약의 절차들을 정확하게 밟았습니다.
  일단 "증서를 써서" 그 원본은 내용을 고치지 못하도록 진흙이나 파라핀 따위로 "인봉하여" 토기에 담아 영구보존하도록 했습니다.
  저 유명한 쿰란 공동체의 '사해(死海) 사본'들 역시 토기에 담겨서 잘 보존된 까닭에 오늘날까지 발굴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언제든지 읽어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의 사본도 만들어서 구매자가 소지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지금 옥에 갇힌 몸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친구이며 개인 비서였던 "바룩"에게 맡겨서 역시 토기에 담아 보존하도록 조치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왜 그처럼 현실적으로 손해되는 계약, 당장 꼭 필요한 돈을 날려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매매계약을 체결했던 것입니까?
  오늘날의 투자가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한다손 치더라도 소위 '구매자의 시장'(buyer's market)에 해당되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니 그 값을 마음껏 깎을 수 있었을 것인데, 왜 예레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것이 곧 "여호와의 말씀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구매 제의는 하나멜에게서 들었지만 그 '아나돗의 밭'을 사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인 줄로 깨달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자기 조카의 의도가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도 없었고 땅값이 얼마냐 하는 것이 궁극적인 문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선교원 건물과 대지를 구입하기 위해서 교육관구입 추진위원회를 통해서 그 주인과 오랫동안 흥정을 해 왔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떤 부동산을 거래할 때에는 자연히 통과하게 되는 절차입니다.
  파는 사람은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고 싶어 할 것이고 사는 쪽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깎아서 사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어떤 매매에서도 예외가 없는 당연한 과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주인 쪽에서 처음에 제시했던 가격보다는 훨씬 낮게, 그리고 우리 생각에는 지금의 현시세로 볼 때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가격으로 정식계약을 맺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로서는 그 주인의 의도가 어떠한가 하는 것보다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항상 먼저였습니다.
  또한 지금 구입한 가격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었으면 물론 더 좋았겠지만, 교육관구입 추진위원들은 이 가격도 충분히 공정하다고 판단했으며, 무엇보다도 이 일은 반드시 성사시켜야만 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제일 우선에 두고 일사불란하게 이 계약을 추진시켜 왔던 것입니다.
  교회 이름으로 무슨 거래를 할 때에는 결코 장삿속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인가?'라는 여기에만 판단의 최종적인 기준을 두고 결정할 뿐입니다.
  지금까지 교육관구입 추진위원들이 지켜온 자세 그대로, 이 선교원을 비롯한 주변의 건물과 대지를 우리가 사야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명령'인 줄로 깨닫고 이제 그대로 준행하는 일에만 모두의 마음과 힘을 함께 모으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축복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땅'이기 때문에 사야 합니다.

  13절 이하 15절에 "13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14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15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매매계약을 끝낸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가 왜 그 '아나돗의 밭'을 샀는지, 아니 하나님께서 왜 그 땅을 사라고 명령하셨는지 그 이유를 이제 공포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려주신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나돗의 밭'은 다른 유다의 모든 땅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는 이미 바벨론 군대의 점령 하에 들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예루살렘성 역시 느부갓네살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만 생각한다면 그 '아나돗의 밭'은 '은 십 칠 세겔'은커녕 사실상 단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실로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만약 예레미야가 그 밭을 다시 팔려고 내어놓아도, 그리고 그 가격을 설혹 반값으로 내려 준다고 해도 아무도 살 사람은 없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니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바벨론 군대가 침공한 이래 이미 부동산 거래 자체가 중단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땅" 즉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다시 사람들이 "집과 밭과 포도원"들을 사고파는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날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입니까?
  바로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을 받고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날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여기서 자신의 매매문서를 토기에 담아서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바벨론 포로 70년' 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많은 날'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유다의 국권을 회복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토의 소유권을 되찾게 될 축복의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날이 오면 지금 예레미야가 사 둔 밭 한 뙤기의 매매문서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물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 땅을 사게 한 것이 어떤 '부동산 투기'를 위한 목적이 아닌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70년 후면 예레미야 선지자 자신은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 토기에 담아 보관해 두었던 땅문서를 자기 손에 다시 쥘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미래를 훨씬 더 크게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바로 그런 예레미야의 '상징적 매매'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달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아나돗의 밭'을 조카에게서 사는 모습을 보고 그 주변에 있던 "증인들"이나 구경하던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왜 바보 같이 저 땅을 사나?'하고 모두들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바로 그들 앞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지금은 적군의 손에 넘어가는 유다 땅이고 예루살렘 성이지만, 장차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유다 백성의 손에 다시 넘겨주실 축복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그것을 믿고 소망하게 했던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미래를 바라보는 데에 있어서 불신자들보다 훨씬 더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야말로 '부동산 투기'하는 '복부인'(福婦人)이 아니라 '영적 투자'에 지혜로운 진짜 '복신자'(福信者)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들이 세상 경제활동에서도 불신자보다 더 뛰어나야 마땅하지만, 특히 영적 가치 창출, 영적 이익 획득, 영적 재산 증식에 있어서는 진짜 '투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미래의 축복을 내다보면서 '시가의 변동에 의하여 생기는 차액의 영적 이득'에 대해서 예지가 있어야 하고 확신을 가지고 투자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강서구청 사거리'는 그냥 세상의 경제 상식으로만 보아도 앞으로 크게 발전될 지역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미 강서의 중심 지역이 되어 있고 앞으로는 더욱 번창하게 될 것입니다.
  주변지역들이 계속 개발되면서 이 사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집과 밭과 포도원을 사게 될' 날이 이미 누구의 눈에도 빤히 내다보이는 것입니다.

  그것만 생각해도 이 '아나돗의 밭'의 가치는 틀림없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새 교육관 공간을 통하여 우리 교회와 우리 자녀들이 받을 복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 절로 가슴이 뛰게 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중심'이라는 생활원리를 붙들고 사는 개혁주의 기독신자는 또한 '교회가 잘 되어야 그 교회에 속한 나 자신과 내 자녀가 복을 받는다.'는 원칙을 꼭 믿고 또한 체험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축복의 미래가 틀림없이 보장되어 있는 땅'에 이처럼 '교회를 통한 영적 투자'를 함으로써 장차 경향교회가 반드시 누리게 될 엄청난 축복 역시 꼭 함께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에 이 광고가 나갔을 때부터 우리 경향의 주일학교 학생들은 "우리 교회 교육관을 산다면서요?"하면서 제일 먼저 기뻐했습니다.
  자기들은 헌금할 것도 아니면서 좋아하기는 제일 좋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실제로 '돈 낼 사람'에 해당되는 경향교회의 당회원들부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현재도 교회를 위하여 일반 교인들이 전혀 모르는 실로 무거운 짐들을 힘에 지나도록 많이 지고 계시면서도 이 '교육관 구입 추진'과 '교육관 구입 헌금'을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만장일치로 가결했습니다.
  저는 우리 경향교회의 장로님들께서 당회에서 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그처럼 '가벼운 마음과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결정하시는 그 신기한 장면을 비디오 촬영이라도 해서 경향교회 성도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경향학원이 우리에게 '가나안 본토'이며 '예루살렘 본성'이라면 이 강서 사거리 쪽의 대지와 건물들은 '헤브론 산지'인 동시에 또한 '아나돗의 밭'에 해당됩니다.
  지금 계약한 이 선교원 부지뿐 아니라, 그 주변에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우리의 밭과 산지는 더 넓혀져야만 하고 또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 '아나돗의 밭'이 '축복의 산지'가 되고야 말 미래를 여러분들 각자가 한번 마음속으로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낙 자손'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대대로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강서의 중심지에 있는 한 모퉁이가 '경향 코너, 경향 광장, 경향 센터'라는 멋진 새 명칭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낮에는 우리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들의 만국기가 펄럭이고 밤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네온사인이 번쩍거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주중에는 선교원을, 주일에는 교육관 사이로 뛰어 다니고, 천국잔치가 있는 주일에는 전도해 온 아이들이 와글거리고, 노인들을 위한 '모세 회관'도 만들고 하면 이 지역이 아예 '경향동'이 되어 버릴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바로 눈앞에, 이 강서성전 바로 건너편에 이런 축복의 땅이 될 총 2천 평의 대지와 건평이 매물(賣物)로 나왔습니다.
  그것도 바로 오늘 이 '어린이 주일'에 우리 부모들이 우리 주일학교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관 헌금을 시작할 수 있도록 날짜까지 딱 맞추어졌습니다.
  이것은 제가 맞춘 것도 아니고 교육관 구입 추진 위원들이 의도적으로 맞춘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인간의 능력으로 맞추려야 맞출 수도 없던 타이밍이었습니다.
  이 '아나돗의 밭'을 사게 되는 절묘한 타이밍은 실로 하나님께서 맞추어 놓으셨다는 사실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엄청난 축복의 투자로 바뀌게 될 미래 역시 하나님께서 이미 맞추어 놓으신 일, 우리에게는 그리 '많은 날'까지도 걸릴 리가 없이 이미 지척에 보이는 '여호와의 이레'가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나돗의 밭'을 사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무를 권리'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통해서 누리게 될 '축복의 미래'가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데 어떻게 이 '산지'를 쟁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난 주일에 '교육관구입 추진위원'들과 '당회'가 먼저 헌금을 작정했으며, 오늘은 '제직회'에서 장립집사들과 권사들이 역시 작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경향의 모든 성도들 역시 이 '밭'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내 자녀를 위해서 한 평씩, 내가 맡은 반과 교육부를 위해서 열 평씩 혹은 백 평씩, 힘껏 헌금하십시다.
  비록 우리 자신은 이것을 사느라고 지금 당장은 힘들지라도 우리의 아들딸들과 우리 교회가 반드시 받게 될 미래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아나돗의 밭을 사는' 경향의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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