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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을 파괴하는 여우 (아 2: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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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켄이라는 사람이 쓴 책 가운데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연간 세금 1000만 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2억 이상의 납부자 1만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보내고 그중 약 1천명을 직접 인터뷰하여 부자의 의식세계를 연구하여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이 연구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들과 비교가 되는 평범한 사람들 2천명을 다시 인터뷰하여 무엇이 부자의 인생을 평범한 사람과 다르게 만드는 가를 비교하였습니다. 저에게 관심을 끈 것은 그들의 가정생활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부자에 대한 인식과 다르게 그들 대부분이 배우자와의 가정생활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며 그들 가운데 이혼자는 2%미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통계가 일본이외의 다른 선진국에서도 같은 통계로 나타나 있다고 서술하면서 건강한 부부관계는 인생성공의 기초이며 행복의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역설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간의 사랑의 노래를 기록한 일종의 연애편지와 같은 것입니다. 16절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 부부가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지를 보게 됩니다. 남편은 백합꽃 속에서 양떼를 먹이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며 평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또한 17절에는 땅거미가 가리우기 전에 노루 같이, 그리고 사슴과 같이 사랑이 있는 가정으로 빨리 달려오라는 부부간의 사랑이 노래로 표현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사랑해서 생긴 보금자리인 가정을 본문은 포도원으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사랑의 보금자리인 포도원에 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그것은 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이 생겨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원래 팔레스타인지역엔 많은 여우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우란 놈은 이스라엘 사람이 애써서 만들어 놓은 포도원을 무너트리는 일을 종종 한다고 합니다. 포도원에 땅을 파기고하고 구덩이를 만들어 포도나무의 뿌리를 갉아먹기도 하고, 줄기를 뜯어냄으로 포도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의 파괴자들이 바로 여우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우는 교활하고 의심이 많은 변화 무쌍한 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교활한지 말뚝처럼 서 있다가 새들이 그 위에 앉으면 잡아먹습니다. 또한 자기의 모습을 바꾸어서 넘어뜨리는데 탁월한 지혜가 있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이 여우들이 맹렬히 극성을 부리는 때가 포도 꽃이 한창 피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결국 여우들이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기다리는 포도원을 망쳐 놓고 맙니다. 그러므로 15절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여기 '쫓아내라' 하지 않고 "잡으라" 한 것에 유념해야 합니다. 쫓아내면 언젠가 다시 옵니다. 하지만 잡아서 없애버리면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을 허는 것을 다시는 들어 올 수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아침!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우리들의 포도원이 어디입니까? 바로 여러분의 가정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가정에 든든히 서 있습니까? 아니면 조금씩 흔들거리거나,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잘한다하더라도 가정이 무너진다면 어찌되겠습니까?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이요, 인간을 위해 주신 최상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행복한 가정이 흔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물질적으로는 상당히 풍요로워졌지만 많은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회학자는 오늘의 한국 가정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 엄마는 교육 마마, 아이는 공부벌레가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심한 말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인할 수도 없는 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가정을 허는 여우는 그냥 여우가 아니라 "작은 여우들"이라고 했습니다. 여우라는 말이 본래 복수로 되어있습니다. 작은 여우들! 이는 우리가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들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이 여우의 역할이 마치 마귀의 역할과 같습니다. 마귀는 희랍어 말로 두 단어가 결합된 것입니다. 무엇인가 던져서 사이를 가른다, 참소자, 이간자를 뜻합니다. 부부 사이를 이간시키고 부모와 자녀 사이를 이간시키고 모든 아름다운 관계들을 파괴하는 것, 이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의 역할입니다. 틈새를 벌리는 일을 합니다. 가정에도 굉장한 큰 원인으로 무너지기보다 아주 작은 일로 인해서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일로 우리들의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내 가정을 파괴하는 작은 여우들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첫째로, 그것은 분주함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왜 그런지, 분주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결혼 초기에는 결혼 초기대로, 중간 기에는 중간기대로 또 지금은 지금대로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 바쁘다는 것을 자랑삼아 말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바쁘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바쁘다는 것이 결혼생활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모릅니다. 바쁘기 때문에 가정에 충실할 수 없습니다. 자녀들에게도 그렇고 아내에게도 그렇습니다. 이 바쁨의 과정 속에 우리는 서서히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화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사이에, 형제 사이에 대화가 막히는 것만큼 심각한 고민이 없습니다. 그것은 불화의 불씨입니다. 불화를 일으키는 잡다한 요인들이 제 아무리 서로의 마음 밑바닥에 많이 깔려있다 할지라도 대화만 이어지면, 대화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언젠가는 가정이 화목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문제는 현대사회의 가정에서 점점 대화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밤늦게 남편이 귀가합니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린 그는 초인종을 누를 힘마저 빠져버린 듯 기진맥진해서 돌아옵니다. 가족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도무지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입을 다물고 있으려고 합니다. 가끔 이런 일이 있을 때는 가족들이 이해를 하지만 계속적으로 이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면 드디어 가족 간에 하모니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비행사인 니카엘 콜린스의 위트 있는 말을 들어보세요. 그의 말에 따르면 남자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25000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한편 여자는 남자보다 조금 더 많은 수치로 하루에 평균 30000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남편이 하루종일 직장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그는 이미 25000 마디의 말을 다 해버린 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각, 아내는 겨우 몇 마디의 말을 했을 뿐입니다. 남편이 돌아오면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신체를 연구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남자와 여자의 성대 길이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지금 옆 사람을 한번 보십시오.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성대의 길이가 다릅니다. 우선 남자의 성대는 여자보다 길이가 3배나 더 깁니다. 그 말은 곧 남자가 말을 하려면 여자보다 3배 정도의 산소가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의 공기가 있어야 성대가 채워집니다. 그러니 남자가 말을 잘 하고 많이 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말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공기도 많이 필요치 않고 어휘력도 남자보다 훨씬 풍부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전화기에 대고 두 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고도 이렇게 전화를 끊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다시 하자." 그러니 이것이 보통 문제입니까? 남편이 말을 할 기운이 없어서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아내는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다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잔소리를 합니다. 그래도 남편이 받아주지 않으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급기야는 남편을 향해서 쌓였던 온갖 불만을 터뜨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사회의 하나의 단면입니다. 또 현대 가정의 고통스러운 일면입니다. 가족 간의 대화가 어려워지면 처음에는 힘들어 하다가 그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면 나중에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생기게 됩니다. 말을 하기가 귀찮으면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집안 분위기가 어색하면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대화가 끊어져서 가족들이 고통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풀어주려는 노력조차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예 대화 없는 것을 가족들의 습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대화가 단절된 가정에 따라오는 것이 무엇인 줄 압니까? 그것은 '고독'입니다. 자기 마음의 텅 빈 공간을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채우지 못할 때는 고독이 찾아옵니다. 누구라도 대화의 대상을 잃어버릴 때 진한 고독을 느낍니다. 한 침실을 사용하는 부부 사이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모 자식 관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진 바르도 교수는 "고독만큼 무서운 살인자를 본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독은 사람을 말려요. 뼈를 썩게 만듭니다. 따라서 이 고독이 심해지면 합병증이 생깁니다.

그 합병증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소위 오해라는 감정입니다. 고독하면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마땅히 대화를 나누어야 할 대상과 말을 할 수 없게 되면 섭섭한 감정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 섭섭한 감정이 결국 오해라는 것을 낳습니다. 그 섭섭한 감정을 계속 풀지 않고 있으면 이 오해가 쌓이고 쌓여서 인간관계를 송두리째 마비시키는 독침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점점 서로가 마음의 벽이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이런 가정이 없나요? 부부 사이에 형식적인 인사는 오고 가지만, 서로가 웃음을 나누기는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 않는 비극적인 가정이 없나요? 여러분 바쁜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우리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요인은 무관심과 무감각입니다. 겪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내가 무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가정을 떠나서 밖에서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과 남편들과 아내들을 붙잡고 한 번 물어 보십시오. 먹을 밥이 없어서 그런다고 말합니까? 누워 잘 침대가 없어서 그런다고 말합니까? 아닙니다. 무관심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사랑과 관심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사랑하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 사랑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어디에선가 그 부족한 사랑을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관심입니다.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을 아름답구나.' 역시 관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정을 위해서 시간을 많이 가진다고 해도 관심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관심이 있다는 것은 사랑이 있다는 것이며 관심이 없는 것은 사랑이 식어진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관심이 결혼과 동시에 달라지는 것을 종종 봅니다. 결혼 전에는 상대방의 지극히 적은 것 하나에라도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고, 갖고 싶어하다가도 막상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알 것 다 알았다는 듯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남성들은 어떻습니까? 특히 우리 한국 남편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아내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다는 것을 때때로 표시해야 합니다. 아내의 생일을 잊지 않고 챙긴다든지 결혼기념일 같은 날을 특별히 기억해 두는 것, 그밖에도 아내의 기분이나 건강상태, 또 가정의 여러 일, 특별히 처가의 일들에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은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고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아내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들을 위해서 자기의 몸단장에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성들이여! 도대체 누구를 위해 화장을 합니까? 또 집안 분위기, 음식 식단 같은 데에도 신경을 쓰면서 남편에게 감각 있게 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항상 신혼 때와 같은 관심으로 아내를 대하고 남편을 대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시간이 지나 갈수록 그런 관심들을 주지 않고, 또 관심에 대해 무감각해 짐으로 결혼 때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지키지 못하여,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매력을 잃고 지루함을 느끼게 되며 그것이 결국은 가정의 행복을 좀먹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로는 이기심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본능입니다. 또 그것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지키게 되고 돌보게도 됩니다. 그런데 이 본능이 자칫하면 이기심으로 작용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 이기심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결혼생활의 행복을 빼앗기는 요인이 됩니다. 여기 16절을 보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속했다'는 단어는 바로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함께 하는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 됨'입니다.

결혼도 알고 보면 이인삼각 경주와 똑같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다리를 묶고 함께 뛰려면 호흡이 잘 맞아야합니다. 한 사람이 마음이 급해 너무 멀리 뛰거나 박자를 맞추지 못하면 힘이 약한 사람이 쓰러지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부부관계의 성경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부부가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됨이며 결혼의 서약은 하나됨의 서약인 것입니다. 창2:15절에서 결혼을 정의하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부부는 마땅히 하나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 됨의 중요성은 먼저 남성들이 아내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십니까? 사도 베드로는 벧전3:7에서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더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남편이나 아내가 다 그릇으로 묘사됩니다. 우리는 다 깨지기 쉬운 그릇 상처받기 쉬운 그릇들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아내들은 더 그렇다(더 깨지기 쉬운 그릇)는 말입니다. 정서적인 감수성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수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남편들의 무례함으로 아내들이 상처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 사랑의 시작은 이런 아내의 마음을 보호하려는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귀히 여기라'는 말을 보석처럼 여기라는 말로 번역한 학자가 있습니다.

오늘 고통받는 아내들의 목소리는 하나입니다. "제발 나(아내)라는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당신의 말로 행동으로 보여만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가정의 붕괴의 위기는 아내의 존재의 가치감을 너무 쉽게 유린하고 박탈해온 남편들에게 90%의 책임이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자기 아내가 남편의 성적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아내의 90%는 자기라는 존재가 남편에게 짓밟히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과의 동침을 거절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려는 마지막 자존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정 세우기의 역할에서 아내가 결코 책임 면제된다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아내의 책임 가운데 하나가 남편을 머리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머리는 리더십의 상징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가정에 리더십의 상징인 아버지를 주신 이유는 땅의 아버지를 통해서 자녀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를 아버지 되게 하는 것이 아내의 책임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면 자녀들이 또한 리더십의 상징을 잃어버립니다. 아동 범죄 연구소에 나온 통계를 보니까 교도소에 수감된 문제아들의 45%는 아버지와 함께 자라나지 못했고, 다른 40%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라났고 다시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준 제1원인은 어머니인 것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으면 아버지를 집에서 세워 주십시오. 심리학자들은 인간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열망을 가르쳐 'father-hunger"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우리 자녀들의 마음속에서의 아버지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입니다. 남편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세우고 아버지를 세울 때 그것이 바로 자녀의 미래를 세우는 것임을 잊지 알아야 합니다. '아바의 자녀'라는 책을 쓴 작가 '브래너 매닝'이 어느 날 뉴욕의 전철을 탔는데 아이들 넷을 데리고 탄 흑인 어머니가 어린아이들이 울고불고 전철 안을 돌아다니는데 무표정하게 방관하는 것을 보고, 보다 못해 참다못해 "부인, 어떻게 아이들을 타이를 수는 없으신가요?"했더니 부인이 의외로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글세 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럴 때 늘 아버지의 말을 들어 왔는데 어제 애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이 순간 그는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존재를 감동으로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하늘 아버지처럼 완벽한 존재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을 통해 하늘 아버지의 존재를 배워가야 한다면 우리의 어머니가 그 아버지를 세우고 높이는 중보자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이 하나 됨은 우리 가정의 울타리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누군가가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의 인상'이란 제목의 시를 남겼습니다. "내가 네 살때 아버지는 전능한 신이었고 요술쟁이 산타였지./ 그러나 내가 7살이 되자 아버지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으시고 모르는 것이 많은 무능자 이셨다./ 내가 14살이 되었을 때 그는 캐캐 묵은 귀찮은 꼰대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27살 결혼 나이가 되자 그는 다시 내게 조금은 필요한 존재가 되었지./ 내가 35살이 되자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의견과 충고를 처음으로 묻기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50세가 넘어서자 나는 아버지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60세가 되자 나는 너무나 그의 의견을 필요로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

아내 여러분, 여러분의 남편을 좋은 아버지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섬겨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남편을 리더로 세우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보다 인생을 건강하게 여행하는 행복한 비밀의 주인공이 되실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고 진정한 가정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을 허는 여우가 무엇이었습니까? 왜 여우를 잡아야합니까? 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식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두를 위해서 입니다. 작은 문제가 더 커져서 가정이라는 행복의 공동체를 무너뜨리기 전, 아직 그것들이 작을 때 해결하여야 합니다. 가정을 상처 입히는 우리 안에 잠재되어있는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우를 잡으려면 여우가 숨어있는 굴에 불을 놓아야 합니다. 여우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불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심령 깊숙이 잠재하고 있는 여우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성령의 불을 붙여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엡5:18절에 보면 "오직 성령 충만 받으라" 성령이 충만하면 됩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 하시면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여우를 잡아내고 상한 심령은 치료될 것입니다. 그래서 당초 하나님의 창조하신 뜻과 같이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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