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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민족을 살리는 길 (느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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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오늘 이 시대같이 정말 어려운 시대는 거의 없었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총체적 위기라는 말을 합니다.  이 전에 전쟁과 가난과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었지만, 요즘은 왜 그런지 모두 다 방황하고 모두 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국가의 모든 분야가 어려움이 많습니다.  모든 곳에 안정이 없습니다.  이것은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누구의 잘못입니까?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이렇게 모든 분야에 부작용이 오는 것입니다.  모두가 노력하지만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민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노력을 안 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느헤미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인 1~7장까지는 느헤미야가 주도한 제 3차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의 중건에 관해 서술하고 있고, 오늘 본문에서부터 시작되는 8~13장까지의 후반부는 느헤미야가 에스라와 더불어 실시한 종교 개혁에 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무사히 완공시킨 후에 그와 같은 외부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유대 사회 내부의 영적인 부흥을 도모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신 것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이방 신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세상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느헤미야는 잃어버렸던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신앙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도의 첫 단계로 유대 백성들 앞에서 율법책의 내용을 낭독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든 사건이 본문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된 후에 첫 번째 맞이하는 7월 1일의 나팔절을 지키기 위해 유대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에스라는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은 유대 백성들 사이에 커다란 회개 운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위기에 빠진 이 민족을 살리는 길은 영적 부흥을 새롭게 일으켜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의 완공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유대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영적 부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일제시대와 6.25 전쟁 그리고 군부 독재 시대를 지내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고, 120여년의 짧은 교회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 다음으로 선교 강국의 위업을 달성한 이 나라와 한국 교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영적 부흥이라는 사실입니다.

  영국은 17세기 말 산업혁명의 결과로 인하여 얼마나 방황하고 어려움이 왔는지 모릅니다. 성공의 뒤에는 항상 이런 방황이 오는 것입니다.  영국은 그때 문예부흥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따라오는 이 계몽주의로 인하여 신앙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계몽주의가 뭡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이성주의입니다.  이성에 맞지 않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걸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성주의가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상당히 발전을 시켰습니다마는 그 다음에는 위기가 오고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영국이 위기를 당했습니다.  이 때 영국을 위기에서 건져낸 분이 누구입니까?  요한 웨슬리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에 있던 이 웨슬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회개운동하고 경건 운동하고 말씀운동 하면서 영국을 위기에서 건져내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사회를 치료하는 길, 우리 모두가,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도덕이 바로 서고 정신이 바로 서고 윤리가 회복 될 수 있습니다.  무너진 우리의 모든 정신들을 건강한 정신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1절)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짓고 또 성곽을 다 회복한 다음에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모든 백성을 수문 앞 광장으로 모이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 운동이 일어납니다.  모두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자복할 때 영적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민족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살릴 수 있습니다.  기적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은 못 하실 것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사는 것입니다.

  아모스 5장 4~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세아 6장 1절에서도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사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적 회복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병들면 모두가 병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건강하면 모두가 건강해집니다.  영적으로 풍성하면 모두에게 풍요로움이 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우리는 바른 인생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바른 인격이 됩니다.  바른 양심이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안전해야 평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영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면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이 될 때에 동물과 차이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동물처럼 이렇게 과격하고 동물처럼 추하고 동물처럼 살게 되는 이 모든 위기가 바로 하나님을 떠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나를 회복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에 모두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적인 자유가 있을 때 참 자유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세상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돈과 권력에 매이게 되고, 술과 도박에 매이고, 우울증과 자살에 매이게 됩니다.  그리고 가정파괴와 불행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여기에서 못 벗어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여러 모로 성공적인 삶을 유지한다 할지라도 영적인 부흥을 계속해서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결국 우리 인생은 하나님 보시기에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나라와 이 사회를 살리는 책임은 누구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 부흥은 어떻게 시작해야 합니까?

  첫째로, 영적 부흥은 말씀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본문 2~3절을 봅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회개를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참된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유대 백성들이 커다란 회개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에스라가 낭독하고 해석해 주는 율법책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기에 충분합니다(히 4:12).  이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과연 자신의 믿음과 삶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에 합당한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참된 회개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전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했을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 찔림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에스겔이 환상을 보지 않습니까?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니 골짜기에 수많은 뼈들이 꽉 차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에스겔아 너 무엇을 보느냐? 예, 뼈를 봅니다. 이 뼈가 살겠냐? 소망 있냐? 뼈가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뼈들이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뼈는 못삽니다. 우리는 못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뼈든 흙이든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국가도 세계도 인류도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살아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을 보고 “너 말씀을 전해라”하니, 뼈를 보고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뼈들이 살이 붙고 힘줄이 붙어서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 너희들이 지금은 소망이 없고, 바벨론에서 사는 너희들은 지금 마른 뼈다귀와 같지만 그러나 내가 너희들을 축복할 때 너희들에게 영적 계절이 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을 때에 너희는 세계적인 위대한 민족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 14장 1~2에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때 개혁자들이 외친 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말씀으로’였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으로 다시 영적 부흥을 일으켜야 합니다.  바벨론과 같은 이 세계화 속에서 지금 우리가 마른 뼈다귀와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은혜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세계 속에 위대한 민족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영적 부흥은 기도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사무엘상 4장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패하고 하나님의 법궤마저 블레셋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지도자였던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은 죽게 되고,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엘리와는 달라도 많이 달랐습니다.  사무엘상 7장 3절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긴 이유, 이스라엘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제대로 올바르게 섬기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외친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잘 섬기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시작한 것이 ‘기도운동’이었습니다.

  사무엘상 7장 5절에,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그 날 종일 금식하게 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기도운동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7장 6절 중반에 보면,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했습니다.  회개 없이 기도 운동이 시작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나라가 지난 30여년 사이에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인 면에서는 많은 발전과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을 멈추면서 영적으로는 더 타락해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그리스도인답게 살았는가?  우리 기독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얼마나 그 역할을 잘 감당해 왔는가?를 되돌아보고,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기도를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나라의 경제 성장으로 교회도 부유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줄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철야기도를 통해 밤새 교회에 모여 기도했는데, 지금은 철야 기도하는 교회를 찾기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금요일 밤에 한 두 시간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 엘리 제사장이 어떻게 죽었는지 한 번 보세요.  삼상 4:18을 보면,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엘리는 나이가 많고 비대했습니다.  가난할 때는 그렇게 열심히 모이고 기도했는데, 부유해 지니까 잘 모이지 않고 기도 소리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은 죽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교회가 죽고, 교회가 죽으면 나라도 죽게 됩니다.  한국 교회의 어머니 교회인 새문안 교회 성도들인 우리가 먼저 기도를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기도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또 다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사무엘상 7장 9절을 보면,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7장 10~11절을 보면,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했습니다.  엘리 제사장 때에는 블레셋에 완전히 참패하고 법궤까지 빼앗겼었는데, 이제는 완전한 승리를 한 것입니다.  이 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7장 12절에서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이 사회가 왜 이러냐?  나라가 왜 이 모양이냐?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시고,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회복을 통한 영적 부흥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을 살리는 새문안의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영적 부흥은 주의 성일을 바로 지키는데서 시작합니다.  본문 9~10절을 봅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우리의 날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 날로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주 5일제 근무로 인하여 더욱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일을 주님의 날로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행위가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부흥은 예배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도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이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영광과 봉사와 찬양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예배학에서 말하는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응답의 행위”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주체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교회의 위기는 세속 문화에 오염되어가며 예배의 본질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예배가 인본주의로 흐르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예배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해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배의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배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릭 워렌 목사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 그 분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 삶의 첫 번째 목적이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모든 행동이 예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배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며, 우리는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예배하고,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목적은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고, 나와 내 삶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올해 2007년은 평양에서 일어났던 영적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래서 2007 한국교회 대부흥 1백주년 기념대회를 위해 구성된 기념사업위원회에서는 기념대회의 주제를 “교회를 새롭게, 민족에 희망을”로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가 교회를 새롭게 하며, 누가 이 민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병들거나 잠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병드는 건 개인에게도 위기이지만, 국가에도 위기인 것입니다.  영적 회복만이 우리 모두가 살고 이 나라의 문제를 회복하는 길인 것입니다.

  오늘은 나라를 위한 기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길은 무엇보다도 우리 믿는 자들이 영적 부흥을 새롭게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그리고 우리 한국 교회 가운데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회복을 통한 영적 부흥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힘써야 하겠습니다. (정영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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