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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는 사랑의 표현 (마 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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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7-8 기도는 사랑의 표현

주제가 기도입. 어떻게 보면 설교를 통해 늘상 들었던 주제입. 여기계신 여러분들이 신앙생활 하시면서, 아마 이 ‘기도’를 주제로 들으신 설교 횟수가 엄청 나실 것입. 뭐 이번처럼 꼭 특별한 기도집회를 앞두고 있지 않았더라도, 기도에 대해 도전이 담겨있고, 은혜가 있었던 설교를 참 많이 들으셨을 것입. 많이 들었다는 것은, 설교자가 많이 말했다는 것입.
왜 그럴까요? 두 가지 이유. 첫 번째는, 중요하기 때문에!
3대요소 - 말씀 읽는 삶, 찬양 드리는 삶, 기도하는 삶.

두 번째는 안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도 특별 기도 집회를 하루 앞둔 이 시점에서 그 집회를 참석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기도에 대해 꼭 숙지해야 할 한 가지 진리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합.

오늘 본문은 우리가 참 많이 듣고, 보았던 기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입.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 어떤 필요도 지니지 않으시면서도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
이것이 기도의 역설입. 이 말씀은 주님께서 기도한다고 주님앞에 앉아서 아무 의미없이 재잘거리는 것을 비난하시고 있는 말씀입. '중언 부언'이란 말은 잡다할 정도로 말을 길게 끌거나 아무 의미없는 말을 거듭 반복하는 것입. 사실 이 말은 우상을 섬겼던 이방인들이 그 우상 앞에서 일반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문과도 같은 내용을, 지겹고도 공허하게 계속 반복하는 모습을 일컫는 말입.
주님께선 ‘말을 많이 해서 그것들로 자신의 요구를 들어 주게 하려는 시도가 기도다’ 라고 이해하고 실천한 이방 사람을 비난하고 계십. 그러면서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십. 이 말의 저의는 무엇? 이방인 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입.
왜 예수님은 재잘거리는 기도를 비난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기도의 본질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 그럼 기도의 본질은?

다른 종교에도 기도라는게 있습. 불교.
지금은 서울 서초동에서 담임 목회를 하고 계신 목사님이신데, 이 분이 학생부 시절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도저히 하나님이 믿기지 않아서, 진리를 찾아 교회를 떠났다고 합. 그러다가 우연히 불교란 종교를 접하게 되어 약 10년 가량 절에 다녔던 적이 있다고 합. 열심히 집회를 쫓아 다녔는데, 불교의 집회들 중에 기도 집회가 있더랍.
이런 집회를 10년여 참석하다가 이 목사님이 20대 후반에 하나님을 알게되어 다시 교회에 다니게 됐는데, 교회 기도회를 참석하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 왜? 교회의 기도회가 불교의 기도집회와 유사한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
불교의 기도모임은 먼저 스님의 설법으로 시작하는데, 설법의 내용은 주로 열심히 기도한 이들의 기도응답 사례와 흔히 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들이었답. 그 이적의 사례중에는 이런 사례도 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불상앞에서 열심히 기도하던 중 환상을 본 겁. 거대한 부처상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만, 자신을 보고 씨~익 하고 미소를 짓더랍. 그 이후 이 아주머니의 기도하던 것들이 이루어지고 잘 풀리는 사례도 있었다는 겁.
그 기도집회는 이런 일종의 간증으로 시작을 해서 분위기를 돋우고 난 후, 모든 사람들이 일정한 염불을 함께 외우며 기도하기 시작한답.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시작하던 염불소리가 점점 더 커져 절정에 이르면, 흐느끼고 울부짓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토로하고 부르짓는 가운데 어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하고, 또 환상에 젖는 사람도 있더랍.

교회의 기도모임도 자신이 경험했던 절의 기도집회와 마찬가지로 설교하는 목회자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며 간절한 기도로 응답을 받은 여러 사례를 말하면 성도들이 아멘으로 화답합. 목회자가 더욱 목소리 톤을 높여 극적인 기도응답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면 성도들의 아멘소리를 더욱 커집. 그러다가 주여 삼창을 하고 몇 분, 또는 몇 시간을 기도하면서 울고 불고 하다가 병이 낫는 체험이나, 환상을 보는 체험 또는 속이 시원해지는 체험을 한다는 것입.
전체적인 틀도 이렇지만, 기도의 내용도 별반 다를게 없더라는 것입.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기도의 내용이 거의 대부분 자기 자신의 안일을 위한 내용이 거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더라는 것입.
이렇게 만약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를 단지 이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의 기도는 헛된 신, 우상, 결국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기도하여 그들의 속임으로 응답받는 그네들의 기도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입.

이런 의식을 갖고 기도하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이방인, 즉 중언 부언 하는 자들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입.

왜 기도합니까? 라는 물음에 단지 내 간절한 소원을 응답 받기 위해서 라는 대답이 정답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채, 지금까지 헛된 기도생활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

신 13:1-5에 이런 말씀이 있습.

13: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13: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 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13:4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13:5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중요한 것은 응답이 아니라는 말씀입. 만일 기도응답이 기도의 본질이 되면, 누구에게 무엇을 왜 기도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모든 관심이 기도응답의 여부에만 있게 됩. 어떻게 기도했든, 얼마나 기도했든, 누구에게 기도했든, 어디서 기도했든, 응답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
그럼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입. 그리고 좀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도구가 기도인 것입. 기도가 단순히 내 어려운 사정을 아뢰어 해결함 받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것처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는 도구가 된다는 것입. 기도란 나의 어떠한 요구나 바램을 얻어내려는 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드리는 우리의 애정의 표현이 되야 합.
왜 이 말이 맞는가? 8절에 나와 있습.
‘왜냐하면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들이 그분께 구하기 전에 너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을 수 있습. “하나님이 미리 아신다면, 그분이 이 기도와 별도로 그분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신다면 굳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분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 시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그것이 기도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에서 내리는 결론입.

하나님께서 사실 우리의 기도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점은 확실합.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이루어 달라고 하는 필요를 아시기 때문입.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기도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 예수님은 거듭해서 “기도할 때에”라고 서두를 여십. 기도할 것을 당연히 전제 하시며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
하나님께서 우리가 굳이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의 발로로 우리를 창조하셨습.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뜻하신 바와 일치하여 행동하기를 원하십.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을 통해, 특히 우리들의 간구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의 유대가 유지되기를 원하시는 것입.

하나님은 우리가 그 창조주이신 그분 안에 피조물로서의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를 지니기를 원하십. 그래서 주님께서 이 기도가 모든 기도의 표본이다 라고 하시며 가르쳐 주신 기도문 첫 서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 하시는 것입.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뜻임을 분명히 하게 됩. 하나님은 끊임없이 하늘 아버지와 대화하는 사람을 원하십.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 안에서 정작 원하시는 것은 당신께 대한 신뢰요 사랑입. 누구라도 이같이 기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과 신뢰를 드러내는 한 그 기도는 응답되어질 것이라 약속하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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