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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히스기야의 형통 (왕하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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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변화하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우리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환경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미루는 것입니다. 생각은 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은 “앞으로는 달라질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방아쇠는 언제나 당길 생각이세요?” 미루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곧 병원에 갈 거야. 언젠가는 필요한 수술을 받을 거야. 언젠가는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거야. 언젠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겠어요. 나중에 교회 생활을 좀 더 열심히 할 거야.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할 거야. 체중 조절을 곧 할 거야. 곧!” 그러나 대개 그날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태고 이래로 문화를 이끌어가며 전인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인류의 평화와 공영에 기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혹은 사상적으로 많은 공헌을 한 사람들을 우리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일컫습니다. 여러 위대한 사람 가운데 우리들의 산 모범이 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종교개혁자 히스기야입니다. 그는 종교의 개혁 뿐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과감히 개혁한 인물입니다. 세상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힘들고 속상하게 됩니다. 때로는 밤잠을 설치고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한국 국민의 50% 정도가 여러 가지 일로 인해서 눈물과 고통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소식입니다. 만사형통하면 모두가 기쁘고 행복할 텐데 꼬이고 부서지고 터지고 막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힘들어서 헉헉거리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 형통의 이유와 비결을 본문을 통해서 발견하고 우리도 그대로 순종하여 형통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정직한 삶

  본문 3절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이러한 특별한 찬사는 유다 왕들 가운데 오직 아사와 요시야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북왕국의 열왕들에 대한 평가와는 아주 대조적인 것입니다. 아마도 그 아비 아하스와 선지자 이사야의 접촉이 잦았던 점으로 보아 히스기야는 어릴 때부터 이사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영향이 히스기야를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켰을 것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라는 인정을 받게 된다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정직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합니다. 사람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그의 모든 말과 행동과 소유물들은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경멸을 받게 됩니다. 이 보다 더 비참하고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는데 성경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삶이 변화되고 있습니까?
  남태평양의 한 섬에 살고 있는 회심한 어느 식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커다란 항아리 옆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을 때 헬멧을 쓴 한 인류학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원주민이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인류학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현대 문명인들은 더 이상 그 책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세요? 그 책은 그저 거짓말 꾸러미일 뿐이에요. 그 책을 읽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 식인종은 그 사람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본 다음 천천히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책이 아니었다면 선생님은 벌써 내 배 속에 처박혀 있을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을, 즉 그의 식욕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성경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암기하고 묵상하며 적용해야 합니다. 믿음이 약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묻곤 합니다.
  “성경책을 규칙적으로 읽고 있습니까?”
  “아니오.”
  “그럼 성경을 공부하고 계십니까?”
  “아니오.”
  “성경을 암기하고 있습니까?”
  “아니오.”
  “그런데 어떻게 믿음이 성장하기를 기대하십니까?”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사람을 정직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으로 돌아갈 때 정직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히스기야에게 주셨던 형통한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내가 정직하면 됩니다. 그 나머지 부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형통케 하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거짓과 악한 모든 것들을 성령의 불로 태우시기를 바랍니다. 비로소 평화와 만족과 행복이 충만케 됩니다. 히스기야처럼 정직한 삶을 살아서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형통케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우상을 파괴하는 삶

  본문 4절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는 우상을 철저하게 파괴하였습니다. 선왕 때부터 계속해서 내려오는 우상을 철저하게 배척했습니다. 먼저 그는 산당을 철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왜냐하면 산당이 히스기야 이전까지는 많은 선왕들에 의해 폐지되지 않고 그대로 영위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점차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이방의 우상숭배처럼 변질되어 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산당뿐만 아니라 주상과 아세라 목상까지도 모조리 부수어 버림으로 신앙의 결단을 보여주었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분신처럼 여길 뿐만 아니라 분향을 하기도 했던 모세의 놋뱀을 과감히 부순 것은 히스기야의 신앙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즉 그는 아무리 오랜 동안 지켜온 전통이라 할지라도 반신앙적 악습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제거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된 매개체라 할지라도 그것이 숭배의 대상이 되면 가차 없이 없앴던 것입니다. 우상을 파괴하는 것은 신앙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믿음과 결단을 보시고 그와 함께 계셨고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평양에서 가장 큰 교회였던 산정현교회를 섬기는 담임목사였습니다. 193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제27회 조선 예수교 장로교 총회는 강압적으로 신사참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참배 대상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일본의 신이 아니며, 따라서 신사참배는 국가에 대한 충성의 다짐이므로 신앙과 관련이 없다는 억지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과 그가 시무하는 산정현교회만은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다는 언약과 계명을 굳게 지키기로 다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일제는 주기철 목사님을 감옥에 가두고 갖은 위협과 고문을 다하였고, 산정현교회는 못 박아 폐쇄해 버렸습니다.

  한 번은 일제가 경찰서 앞마당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옥에 갇힌 성도들을 모아놓고는 주기철 목사님을 끌어내었습니다. 그 앞에는 대못이 무수히 박힌 널판이 놓여 있었습니다. 일본 형사가 신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신사참배를 하겠다 하면 주 목사가 못 위를 걷지 않아도 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위를 걷게 할 것이다.” 그러자 주기철 목사님은 “성도 여러분, 나 주기철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주님의 계명만을 굳게 지키십시오.”하고는 자진해서 못 판 위로 올라섰습니다. 그 순간 성도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찬송가 383장). 한 발 한 발 내딛는 주 목사님의 발에서는 피가 흘렀고, 내딛는 발자국마다 붉은 핏자국이 얼룩졌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기가 무서워서 의를 버리고 죽음을 모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찌 죽든 인간은 한 번 죽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사형장에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영광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열 번 죽고 백 번 죽어도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년 살고 천 년 살면 무엇합니까? 오 주여! 이 목숨을 아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나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다만 일사 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예수를 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같이 시들어 떨어질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더럽게 무릎 꿇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을 향한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다만 나에게는 일사 각오의 결의가 있을 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르고, 백합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 요한도, 스데반도 청장년 때에 뜨거운 피를 뿌려 그들의 최후를 마쳤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오늘 십자가를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께서 내가 준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였느냐 물으시면 무슨 말로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나에게는 일사 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주목사님과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다짐을 지킨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투옥된 지 6년째인 1944년, 따뜻한 숭늉 한 그릇을 마시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차가운 감방에서 옥사하셨습니다. 당시 나이 47세였습니다. 신사참배를 인정하며 우상 숭배를 묵인했던 모든 한국 교회와 달리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순교하신 주 목사님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정통성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만큼 성장한 데는 이러한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짐한 언약을 그대로 지켜온 그 헌신과 각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그 신앙의 다짐 위에 오늘의 교회가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 같아도 피를 흘리는 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도 히스기야처럼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처럼 우상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섬으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

  본문 5-6절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의지하며 신뢰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동행하여 주셨고 형통의 복을 주셨습니다. 앗수르는 부친 아하스 때만해도 섬기던 나라이고, 블레셋은 사다 시대 때부터 숙적 관계의 나라이었으나 이들을 물리친 것은 이방 신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이자 이스라엘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향한 정열이 처음부터 끝까지 식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만 의지하기 위하여 모든 우상을 버렸고 여호와만 의지함으로 특별한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호와만 의지하는 삶은 가장 아름답고 힘 있고 편하고 안전한 삶입니다. 모든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높여 주시고 존귀케 하십니다. 이방신이나 우상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시기에 문제보다 더 크신 분임을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는 루터가 종교재판을 받기 전에 하나님 앞에 한 고백입니다. 당시 수도사였던 루터가 교황청을 대상으로 싸움을 하며 신앙의 의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그의 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한 유명한 기도가 있습니다.
  “Here I stand, help me God!"
  우리는 어떻게 강력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약함을 드러내고 도우심을 구할 때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문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그림을 본 적 있습니까? 그 문에는 고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그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고치시기 전에 우리 스스로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 원하십니다. 여호와만 의지하면 반드시 여호와께서 형통케 하십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형통한 삶을 원하십니까? 히스기야처럼 정직하고 우상을 파괴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관계된 모든 것을 형통케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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