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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대사 (사 14:32, 고후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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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밥’이란 아주 읽기 편안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이런 대화의 장면이 나옵니다. “나는 빨래하는 것을 좋아하네. 대야 가득 물을 채우고 더러워진 셔츠나 양말을 집어넣어 박박 문지르면 회사일로 엉켜 있던 머릿속이 말끔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 빨래는 참 재미있습니다. 더러운 것이 깨끗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빨래와 설거지의 공통점은 바로 더러운 것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빨래와 설거지는 아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남편이 빨래와 설거지를 하면 아내의 일을 내가 대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도 남편 일의 한 부분입니다. 최근에는 남성화장실에 아기 기저귀대를 설치하여 젊은 아빠들이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기 기저귀 가는 일이 아빠의 일입니까? 엄마의 일입니까? 아내의 일을 대신하는 것입니까? 나의 일을 내가 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모든 일의 공통점은 나의 일은 남의 일을 대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을 남이 하고 있습니다. 남의 일을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할 일을 내가 하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크리스천을 ‘타자를 위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나의 일은 남의 일입니다. 남의 일을 나의 일처럼 잘 해야 좋은 크리스천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그 사람의 필요를 따라 대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대사는 국가를 대표하여 외교교섭을 행하기 위하여 외국에 파견되는 외교사절을 일컫습니다. 대사는 상주외교사절로서 파견되는 대사와 임시외교사절로서 파견되는 대사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에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신’ 즉 ‘대사’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Now then we are ambassadors for Christ)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사신’이라는 말은 ‘프레스뷰오멘’이라는 헬라어입니다. 이 말은 로마 황제가 보낸 대사를 의미할 때 사용한 말입니다. 왕의 전권대사를 의미합니다. 대사는 전적으로 왕의 업무를 위임받은 직책입니다. 우리는 왕의 업무를 위임받은 왕의 대사입니다. 우리는 임시대사가 아니라 상주대사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위임하신 상주외교사절입니다. 대단한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고 지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신’이라는 말은 오늘의 본문 외에 에베소서 6:20에도 나타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두 곳에만 ‘사신’이라는 말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신’을 ‘사자’(messenger)와 동의어로 사용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이 어떤 사람인지 성경을 통하여 익히고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삶을 멋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대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라고 합니다. 대신하다는 말이 두 번이나 반복으로 나타납니다. 대사는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대신 말을 하고, 대신 가고, 대신 일하는 사람이 대사입니다.

  대사는 자기 마음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버지니아 공과대학 총격사건 때에 범인이 조승희라는 한인 교포로 발표되자 주미 한국대사가 서둘러 사과하였습니다. 미국인들은 한국인이 사고를 냈다고 보지 않는데 너무 앞서 가므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적절하지 못한 발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요? 국가의 말이 아니라 자기 말이기 때문입니다. 대사는 자기의 말이 아니라 자기를 보낸 자의 말을 대신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보낸 자가 누군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세요. 사사나 선지자 등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나가서 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출애굽기 5:1에는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고 합니다.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0:3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대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대사의 임무입니다.

  선지자는 ‘신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외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하였다고 합니다.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예언하였습니다. 에스겔 6:1-2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라고 합니다. 에스겔서에는 거의 모든 장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라고 적고 있습니다. “너는 예언하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그의 책에서 “당신이 진리를 말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대사인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재산을 충직하게 관리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매니저인 것이다. 당신이 용서를 선포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대변인인 것이다. 당신이 육체의 영혼의 병을 치유해 주면 당신은 하나님의 의사인 것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보내어진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대로 말하고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이사야 48:16에는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대사입니다. 세례 요한도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1:6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세상에 대사로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작은 자가 예수님을 대신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고 하십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대신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십니다. 내가 친구를 대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대신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예수입니다. 작은 그리스도입니다. 루터가 말한 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사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12일에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의 차가 음주운전 혐의로 조사를 하려고 하자 음주측정을 거부하여 8시간 30분간 동안 경찰과 대치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중국 공사는 자동차문도 열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고 그 오랜 시간을 버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찰은 외국의 외교관을 마음대로 끌어내지 못하고 밤새 대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외교관의 차는 차 안이 치외법권 지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외교관의 권리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런 권리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외교관이라고 하지만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법과 질서도 존중할 줄 알아야 외교관의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중국 외교관은 중국의 얼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그리스도를 느낍니다. 우리를 보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를 보고 그리스도를 욕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대사로서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사인 우리가 잘못하면 그리스도께서 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대사의 역할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사는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권면하시는 것 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통하여”라고 한 것은 내가 주체가 아니라 단지 그 일을 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복의 근원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찬송하지 않습니까? 복은 근원은 분명히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복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는 복음성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을 대신 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통로가 되는 삶이 대사의 삶입니다.

  제가 잘 아는 어느 목사님은 카투사로 군복무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미군 헬리콥터를 관리하였답니다. 사실은 그 헬리콥터는 누구나 탈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걸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의 권리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군인들이 목사님의 빽으로 타려고 잘 보이려고 애를 많이 쓰더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헬리콥터의 주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타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통로입니다. 제일 큰 빽입니다. 주인보다 더 확실한 통로가 관리하고 있는 졸병입니다. 이것이 통로라는 것입니다. 대신하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대리자는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일을 하지만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일은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모든 영광은 주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대사의 일은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대사의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대사의 일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9:16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대사는 전했다고, 말했다고 자랑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제비를 뽑아 사람들을 군대에 보냈습니다. 한 가지 예외는 뽑힌 사람 대신 누군가 대신 지원해주면 면제를 받았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뽑혔는데 징집위원 앞에 서서 자기가 2년 전에 이미 사형을 당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당신이 살아있는데 무슨 소리야?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니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은 2년 전에 징집을 당했지만 자기 친구가 대신 군대에 가주었습니다. “자네는 결혼도 했고 가족도 많은데 나는 아직 독신이니 내가 자네 대신 가겠네.” 친구가 대신하여 군대에 갔습니다. 이 친구가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사형을 당했다는 기록조사를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나폴레옹에게 보고하였고 황제는 징집하지 말게 하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친구가 이미 대신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신 하는 것은 이렇게 목숨까지 바쳐야 할 일입니다.

  최근에는 홍보대사가 많습니다. 어느 기관의 사업을 알리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주로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맨들이 이 일을 합니다. 헌혈홍보대사, 한국영화홍보대사, 홀트아동복지회홍보대사, 제가 섬기는 ‘새누리 좋은 사람들’도 홍보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애견홍보대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홍보대사는 죽을 일은 없습니다. 목숨 걸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홍보대사는 주로 얼굴을 가지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대사는 뭘 가지고 합니까? 목숨 가지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어야 대사입니다. 대신 죽어야 진짜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미국 어느 주지사가 가장 신임하던 비서 톰이 갑자기 잠을 자다 죽었습니다. 지사는 모든 것을 톰에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톰은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톰의 자리를 탐내던 정치적 야망을 가진 자들이 주지사와 톰 사이에서 틈을 찾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장례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 야심 있는 자가 지사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톰의 자리를 대신할 기회가 있을까요?” 지사는 장례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그 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이지, 그러나 빨리 서둘러야 할 걸세. 장의사가 일을 다 끝내 가니까 말이야”. 실제로 죽는 자리는 대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으면서까지 그리스도의 대사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요 하나님 나라의 대사입니다. 우리 집, 사무실, 교회 그리고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어디든지 천국 대사관입니다. 우리가 자리하는 것이 어디든 치외법권을 가진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 만듭시다. 내 말, 내 행동, 내가 가는 곳, 내가 하는 일 이 모두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일이 되게 합시다.

결론

  “대사는 당신의 나라를 위해 해외에서 거짓말 하도록 파견된 정직한 사람이다”(Ambassador is an honest man sent to lie abroad for the common wealth)라는 말이 있습니다. 와턴경이 1606년 베니스로 가는 중에 친구 플랙모어의 앨범에 라틴어로 적어준 것이 기원이 된 말입니다. 대사의 정직은 생명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대사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해야 하나 봅니다. 그리스도의 대사는 거짓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직하게 말하고 바르게 살면 가장 좋은 그리스도의 대사가 될 수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대사는 바뀝니다. 왕이 바뀌면 대사는 바뀝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항상 우리의 왕이시고 그 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영원히 하나님 나라의 대사입니다. 잠시 일하다가 일을 바꾸는 대사가 아닙니다. 한번으로 영원한 대사입니다. 임시 대사가 아닌 상주 대사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대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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