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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이 구원의 날 (겔 18:30-32, 딤전 1:14-17,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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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엊그제 우연히 식당에 갔다가 이런 얘기 들었습니다. 제 아내하고 두부찌게 시켜서 먹는데 손님이 많아 자리가 비어있지를 않고 꽉 찼는데 제 옆에 식탁에서 젊은 여성들이 아주 스스럼없이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디 어디 교회 다녀. 그 교회 가니까 설교시간에 많이 웃기고 예배도 힘차서 참 좋긴 한데 너무 웃기니까 진지한 게 좀 없지 않니. 그게 어느 교회야 하니까 어디라고 합디다. 제 혼잣말이 교회 오면 그런 게 없는데. 두 번째 대목입니다.

한참 얘기를 하다가 어느 여성하나가 얘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말 많은 거 싫어하잖니. 그런데 교회가자고 하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말만 많고 얌체 같다고 안다니신데. 아 교회 다니면 말 많고 얌체구나. 예수 믿으면 말없고 진지한데. 제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시려고 먼 길을 출발했습니다. 여리고 지역을 지나갔다 그러셨는데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시는 길인데. 가는 길마다 사람들 만나서 병도 고쳐주시고 위로도 베푸시고 그 중에 오늘 삭개오라 이름 하는 세관장이 키도 작고 부잔데 예수님의 얘기를 듣고 구원을 좀 받아 볼까합니다.

그는 너무 키가 작아서 또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지탄을 받고 살기 때문에 멀리 있는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의 얼굴을 보고 말씀을 들으려고 뽕나무에 올라갑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예수님 당시에 세금을 거둬들이는 사람은 세금을 거두어서 세리들이 착복도 하고 또 상당 부분 로마 제국 왕에게 가는 세금이기 때문에 가렴주구도 심했고 그래서 세관장, 세리는 전부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죄인이라고까지 낙인을 찍었습니다. 유명한 삭개오가 세리장이 되가지고 뽕나무에 올라갑니다. 자세한 얘기를 드릴필요는 없습니다만 사회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또 체제상 죄인으로 낙인찍혀서 예수님 앞에,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을 예수께서 발견 하십니다.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에게 하는 말입니다. 삭개오야 내려와라. 삭개오는 유대교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 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는 이 사람을 하나님한테 접근을 금지시켰습니다.

직업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합니다. 유대교 교인으로서는 따돌림 받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살 것 같아서 뽕나무에 올라갔더니 예수께서 응답을 하셨습니다. 내려와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집에 가서 하시는 말씀은 오늘 네 집이 구원을 받았다. 이미 삭개오는 뽕나무에 있을 때 예수께서 삭개오야 하고 이름을 불렀을 때부터 이미 삭개오는 변했을 겁니다. 자기 이름을 불러줄 때 혹시 보통사람이 삭개오야 그랬으면 두려운 마음으로 들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장면은 결론적으로 보면 삭개오야 예수의 부름에 너무 좋아서 그냥 뛰어 내린 겁니다.

자기 이름을 불러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길을 걷다가 아니면 어디서든지 자기 이름이 불리면 여러분 마음이 어떻습니까? 누가 부르냐에 따라서 언제 불러짐을 받느냐에 따라서 어느 상황에서 불러지냐에 따라서 마음이 기뻐지기도 하고 마음이 서글프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럴 겁니다.

오늘 삭개오는 분명히 죄를 많이 지은사람 그리고 증오의 대상이 된 사람. 예수께서 삭개오야 부를 때 삭개오는 해방을 받았습니다. 내려왔습니다. 예수의 말씀입니다. 나는 잃은 것을 찾으러 왔다. 오늘 네 집에 구원이 있고 나는 이사회가 종교가 이 교회가 버린 그대를 내가 구원하러 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 삭개오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영 멸망 받을 것같이 생각했다가 예수의 말 한마디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삭개오와 같은 사람이 예수님 당시에 유대 땅에 참 많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는 벽 때문에, 신분의 벽 때문에, 직업의 벽 때문에, 그리고 인종의 벽 때문에 역사적 상황의 벽 때문에, 선조 때문에, 인종 때문에, 하나님의 접근이 금지된 수많은 사람들. 예수는 십자가에 가시면서 이 모든 벽을 깨고 싶었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와라. 그 말은 삭개오야 나한테 올 때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를 따라오라. 그 다음에 이어질 말씀은 오늘 네 집에 묵어야 되겠다. 구원이 임해야 되겠다. 사실 삭개오는 회개했습니다. 회개하고 내려왔더니 예수의 말씀. 네 집에 구원이 있다. 삭개오의 회개는 구체적이었습니다.

예수님 제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도 못했는데 제 재산의 절반을 구제비로 내겠습니다. 유대교 랍비 규정에 의하면 회개 수단으로 구제비를 낼 때 자기 소득의 20%만 내면 됩니다. 이 사람은 절반을 내겠습니다. 20%와 절반 사이는 양의 차이만이 아니라 이 삭개오란 사람의 결단의 차이입니다. 혹시 제가 억지로 강제 징수했거나 억울하게 징수한 것이 있으면 원금의 1/5만 추가하여 내면 되었을 것을 원금의 4배를 추가하여 내겠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오늘 예수 앞에서 합니다. 이미 삭개오는 뽕나무에서 내려올 때 회개할 것을 결단했습니다. 저 자신의 배를 채웠습니다. 절반 드리겠습니다. 제가 실제로 가렴주구 했습니다. 억지로 거둬다가 저도 착복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보는 대로 저는 백성들이 원하는 살만큼 세금을 갖다 바쳤습니다.

원금의 4배를 보태 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경제적 용어가 아닙니다. 이걸로 저는 회개합니다. 예수의 말씀은 회개한자는 나는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무엇이었든 어떻게 했든 회개한 죄인은 내가 오늘 죄를 용서하고 내 집의 사람으로 받겠다. 그래서 오늘 네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삭개오 얘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우리 사회나 세계 각처에서 삭개오와 비슷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조금 환경을 바꾸어서 인도 좀 가보겠습니다. 혹시 인도라는 나라 가보시면 그 많은 인구의 나라, 이젠 굉장히 부자가 되는 나라로 모든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 덕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민주주의가 나름대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인종차별제도인 계급제도가 있습니다. 카스트라. 제가 이 얘기를 다 드릴 수는 없는데 힌두교 경전에 베다라 이름하는 경전에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인류의 원 조상이라고 하는 프르샤라고 하는 사람이 원조상입니다. 네 종류의 후손을 낳았는데 입으로 낳은 것이 브라만 계급이고 팔에서 나온 족속이 크샤트리아라는 두 번째 카스트고 허벅지에서 나온 것이 바이샤라는 세 번째 카스트고 발에서 나온 게 수드라.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네 카스트 있는 거 아시지요.

입에서 나온 브라만은 승려계급 지주 계급입니다. 5%미만 이라고 하구요. 팔에서 나온 것이 크샤트리아 계급인데 군 장교나 왕족출신 한 10%된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상인들 주로 경제인들인데 허벅지에서 난 바이샤가 있고 수드라는 발밑에서 낳기 때문에 하류층입니다.

근데 불가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어디서 나왔냐 했더니 옆구리에서 나왔다. 그게 무슨 뜻인가 읽어봤더니 제왕절개해서 낳은 게 아니고 팔에서 나왔다는 말을 인도식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해서 그렇게 썼다는 해석을 제가 읽어봤습니다. 중요한 얘기는 제가 계급 얘기 보다 일 계급, 이 계급, 삼 계급까지는 주로 상류계급이고 수드라가 하류계층이고 수드라보다 더 못한 계층. 아예 카스트에 들지 못하는 비 카스트 족속도 있습니다.

이 족속들 다 합치면 전체적으로 한 40%된다고 합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은 현생에서 열심히 하면 다음 생에서 위의 계급으로 다시 복원돼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소위 윤회설을 믿습니다.

왜 중요한가는 최근에 하류층에 들지도 못하는 카스트에서 지나간 사람 소위 아웃카스트 층입니다. 카스트에 들지 못하는 지역의 한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신문에 보셨지요. 방송에 들으셨지요. 폭동의 내용은 뭐냐 하면 우리보고 제 5계급. 소위 불가 쪽 천민에 들지 말게 하고, 혹시 수드라라 이름 하는 계층 중에 낮은 계층에 들게 하지 말라.

그보다 더 계층을 더 내려주어서 아예 우리를 비 계층 카스트로 좀 삼아 주십시오. 상층이 아니고 하층으로 내려가겠다는 데모를 했습니다. 그래서 불상사로 인해서 30명이 죽었다는 보도를 읽어봤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올라가면 상관이 없는데 내려갈 때는 불가 쪽 천민도 아니고 그보다 더 내려가면 소외계층 일반사람에게는 민주주의 원칙 때문에 인도에서는 공무원을 뽑을 때나 신입생 뽑을 때 적어도 10%에서 25% 정도는 계급이 없는 이름이 없는 계층 사람들한테 할당을 합니다.

거기에는 사회보장 받는 것도 그렇고 경제적인 대학 입학할 때 공무원 취업할 때. 차라리 중간층에 적당히 있는 것보다 아예 내려가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에 혜택을 받고 싶다. 우리 계급을 더 낮추고 싶다. 그런 데모 보셨습니까?

상향식 데모는 있는 줄 알지만 하향식 데모는 처음 봤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지금 인도에서는 골칫거리다, 이런 기사를 제가 읽어봤습니다. 우리 땅에는 이런 카스트가 없어서 참 고맙기는 합니다만 민주주의와 카스트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인도란 나라와 중국이란 나라 합치면 최근에는 친디아 그럽니다.

이 둘을 합치면 세계인구의 1/3이 넘습니다. 이분들이 만들어 내는 앞으로의 문화는 어떨까? 오늘 인도에 와서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답변을 할까? 저희들이 잘 아는 사람들 중에 소위 언터처블이라 이름 하는 불가 쪽 천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간디란 사람은 불가 쪽 천민들을 없애려고는 안했지만 이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대화하고 싶어서 사실 간디 자신이 불가 쪽 천민 중에 양딸도 입양을 해서 길렀습니다. 그러면서 불가 쪽 천민이란 하류층 사람한테 간디가 부여한 이름이 있습니다.

이분들도 신의 아들들 그래서 하리잔. 최근에 우리 인도에 불가 쪽 천민들을 저는 기독교인들이 주로 책에서 많이 나왔는데 만나면 하리잔 이름을 거부합니다. 우리가 신의 아들들이라고 이렇게 위로받는 이름을 받고 있으나 우리는 그게 아니라 핍박받는 백성들 저주받는 백성들. 저주받는 백성들 그래서 달리트. 자기를 스스로 그렇게 부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 일어서야 하겠다. 값싼 동정을 받는 것 보다는 우리 스스로 핍박 받는다. 그리고 정부 정책에 의해서 약자보호 정책에 의해서 차라리 떳떳하게 보호를 받고 우리 끼리 일어서고 싶다. 저는 이분들 만나서 물어봤더니 왜 하리잔 이름이 좋지 않으냐. 아니 우리 현실이 아니다.

우린 스스로 일어서고 싶다. 유대 땅에 카스트는 아니나 사회의 통념상, 사회의 구성상, 소위 달리트에 속하던 계층이 오늘 삭개오와 똑같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디 속했던지 간에 나는 오늘 삭개오를 구원해야겠다. 삭개오가 지은 죄가 큰 것 안다.

그러나 회개하고 나면 삭개오도 구원하여 카스트가 없는 사회적 차별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누구나 평등한 이 나라에 한 시민이 되어 하겠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실은 엄청난 말씀이었을 겁니다. 유대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보고 각층을 초월하여 나는 적을 없애고 싶다.

삭개오도 오고 제사장도 오고 유대인 모두가 다 와라. 나는 벽을 허물고 싶다. 오늘 이 말씀은 에스겔서를 통해서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제발 벽을 허무십시오. 하나님과의 벽을 허무십시오. 어떻게 허무십니까.

벽이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이 지은 죄가 벽입니다. 죄를 회개하면 벽을 무너뜨리면 하나님을 여러분이 상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회에서 죄를 회개하면 벽을 무너뜨리면 상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피조물인 인간과의 인격적 만남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싶은데 죄 때문에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죄는 고해바치십시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살아가면서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저도 죄인입니다. 예수님 말씀입니다. 저 죄인은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는답니다. 단, 죄는 받으시지 않는답니다. 죄는 버려야할 대상이고 죄 때문에 고생하는 인간은 구원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저는 오늘 현실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고려해야 됩니다. 삭개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삭개오야 내려와라. 삭개오는 구원해야 되게다. 그런데 삭개오가 지었던 죄는 회개시켜야 되겠다. 버려야 되겠다. 삭개오가 기꺼이 버립니다. 그러고 나서 삭개오를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예수께서 받아들입니다. 삭개오는 죽은 다음에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했겠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죽은 다음에 시간이 지나간 다음에 이 세상이 끝난 다음에 받을 영생의 축복이 중요하지만 그 축복을 오늘 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교회 여러분, 오늘 축복받읍시다. 오늘 미루지 말고 구원을 받으십시다. 그것이 완벽한 구원은 아닙니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받으십시다. 오늘 작든 크든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십시다. 오늘 받는 구원이 미래구원의 보증입니다. 미래 구원받기를 정한 사람이 오늘 멸망하는 법은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는 사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통틀어서 구원을 베풀 사람.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지금 구원을 받으십시오. 지금 회개하고 이 나라에 들어갑시다.

그러면 영생의 구원이 여러분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회개하고 구원 받읍시다.
주님의 축복이 오늘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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