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전도] 예수님의 지상명령 (마 28:16-20)

  • 잡초 잡초
  • 1373
  • 0

첨부 1


<헨드릭 크래머(Hendrick Kraemer)-네델란드>라는 신학자는
“교회의 본질적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냉동된 자산`이 되어 있다고 하면서
교회가 ‘ 사람들’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정립하고
      그들의 ‘냉동된 자산’을 일깨워 `활동하는 자산`으로 변화시킬 때
교회는 비로소 그 사회에 진리의 빛을 비추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선교의 위기가 곧 신앙의 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쉽게 말씀 드리자면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그 교회에 신앙의 위기가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선교를 해야 합니다.

교회가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것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왜 긴급하게 선교를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지상 명령입니다.
말 중에 가장 무게를 지닌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언입니다.
유언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고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28:19-20절
[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의 마지막부분에서
예수그리스도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
        혹은 <예수님의 위대한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주님의 명령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에 즐겨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언제 이 명령을 했습니까?

16절에 [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으르러 ]
이 말씀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7절에는 천사를 통하여
10절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갈릴리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출발지입니다.
갈릴리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곳입니다.
여기에는 신앙의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뜻이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은 믿음에 실패한 사람,
        배신으로 괴로워하는 제자들에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잊고 새 출발을 하라는 의미에서
    제자들을 갈릴리로 오라 하셨습니다.
지난날의 `과오와 실수를 용서`를 해 주신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들을 비판하시거나 책망하시거나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시고   
과오와 잘못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아시고 오히려 위로하시며 새 힘을 주시며
  다시 시작하라고 갈릴리에서 만나자 하신 것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주님의 명령이 듣기워집니다.
      전도와 선교에 눈이 뜨여집니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암 부스 사령관이
마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한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검푸른 바다에 파도가 높이 솟아올랐다가 부서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바다에 빠져 살려달라고 큰 소리로 울부짖다가
    물속으로 들어가서는 나오지 못하곤 했습니다.
이때 큰 바위가 바다에서 솟아 올라와 넓은 자리가 마련되니까
    물속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들이 바위에 올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위에 올라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못 본체 하면서
    먹고, 마시며 춤추며 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전도하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하면 전도에 대해 눈이 뜨여질 수밖에 없고
특히 우리나라가 어떻게 복음을 받게 되었는가를 알고 나면
    선교에 눈이 뜨여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천 직전
    이 땅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예수님의 지상명령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말씀은
17절에 [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
왜? 의심하는 자도 있다는 말을 여기에 삽입을 해 놓았겠습니까?
명령자가 누구인가를 말하면서
누가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암시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즉 예수 부활을 믿는 자는  예수를 뵈옵고 경배를 합니다.
  여기에 경배한다는 말은 왕께 절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 왕 되신 예수님 앞에 엎드린 자 만이 왕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의심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주님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는 사람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자만이
      그 앞에 엎드려 순종할 줄 믿습니다.

왜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을 하지 않습니까?
  바로 부활의 신앙, 살아계신 주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상명령을 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이십니다.

살아계신 주님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명령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2. 우리에게 명령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18절)

18절 [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선교가 중요하고 긴급한 것은
    명령하신 분이 바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명령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다르지요.
그런데 선교하라고 명하신 분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십니다.
왜? 오늘 교회가 교회의 머리되시며 만유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명령에
  머뭇거리거나 무관심합니까?
그것은 인간의 무지 때문인 것입니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워 와서는
      집에서 할아버지 앞에서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하도 기특해서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얘 2 곱하기 3은 뭐지?` `예 그것은요...6요`
`오 그래 잘 맞추는데 그러면 7곱하기 8은?` `56요` 
`그러면 10 곱하기 12는 뭐지?` 
`에이 할아버지 이 세상에 그런 것은 없어요. 할아버지는 바보야` 하더랍니다.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 지식에 대한 거부는
    이 어린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크신 분이 명령을 하니 이 명령이 설마 나한테 한 명령이려고 하고
    지금 멍청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유의 주재가 되시는 주님은
    실패하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셔서 명령하십니다.
    [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라 ]
이 명령이 네게 주어진 명령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에서 펴온 글입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를 소개하는 글인데
자기가 고등학교 시절 그 교회를 처음 나갔는데
그 당시 300명 쯤 모이는 아담한 교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교회 장로님이 세 분이 있었는데
  교인들의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도 친절하게 하시니까
처음에는 사람 좋은 할아버지 집사 정도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 분 들의 신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습니다.
한 분은 독립운동가 이셨고, 한 분은 적십자사 도지부장이셨고,
      한 분은 지방법원 법원장이 섰습니다.
마치 머슴 같았던 분들이 사회의 저명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저렇게 훌륭하신 어른들이 허리를 굽혀 성도들을 섬기는 모습이
    너무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후 교회가 장년들만 4000명이 넘게 모이는 큰 교회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평화로운 교회로 참 좋은 교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섬길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 왕 되신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못 할 것이 없지요 ] 하더랍니다.
맞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낮아지라 하면 낮아지고
        가라고 하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핵심은 무엇입니까?(19-20절)

19-20절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선교 명령 동사 4가지 -
① 가라, ② 세례를 주라, ③ 가르치라, ④ 제자를 삼으라 -를
희랍어 성경원어의 문법적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4가지의 명령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명령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제자를 삼으라`는 단어가 주동사이고,
나머지 `가라, 세례를 주라, 가르치라`는 동사는
    주동사에 속한 분사동사(Participle)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명령에 나타난 주 명령동사는 `제자를 삼으라`로서,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제자삼는 선교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희랍어 원문의 번역에 가깝게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므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 

이 말씀을 직접 받았던 제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 는 말씀
지금 제자들의 처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갈릴리는 이스라엘에서도 소외 받은 땅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의 한계가 잘해봐야
    유대민족공동체, 그것뿐입니다.
그런데 이 갈릴리 촌부들에게 세계를 향해 나가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예수의 복음으로 정복해야할 대상은 모든 민족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도 요즘이야 세계라는 말이 익숙합니다.
그러나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라는 말은 우리에게 낮설기 짝이 없는 단어였어요.
그런데 2000년 전 세계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
    갈릴리 촌뜨기들한테 주께서 명령하십니다.
[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
이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선교 - 생각지도 못할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명령이라면
    우리는 온 몸과 재산 드려 선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한 청년이 아침 산책으로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 보니까 어떤 한 노인이
모래 위에 있는 불가사리들을 주워서 바다에 던져 넣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청년은 걸음을 빨리하여 그 노인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노인은
‘조금 있다가 해가 뜨겁게 비치게 되면 모래 위에 남아있는 불가사리들이 죽기 때문에
그것들을 바다에 던져 넣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합니다.
‘할아버지, 이 넓은 바닷가에 모래사장에는
수십만 마리의 불가사리가 널려져 있는데,
그 중에 몇 마리를 주워서 바다에 던져 넣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효과가 있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
그 때 그 노인은 손에 들고 있는 불가사리를 바다로 던지면서 하는 말이
‘그런데 바로 이 내 손에 들려 있는 불가사리에게는 큰 차이가 되지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바닷가의 불가사리를 한 노인이 다 살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의 손에 들려진 불가사리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그 수많은 영혼을 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내 손에 맡겨진 영혼,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참으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선교지 - 최선을 다해 선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또 한 가지 놀랄만한 일이 있습니다.

4. 예수님은 지상명령과 함께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습니까?(20절)

지금 주님은 떠나려하고 있습니다.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홀로 있어야 할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떠나시는 분의 말씀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씀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
누구에게 이 약속을 주셨습니까?
당신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지난번 부산 수영로 교회에서 총회 세계선교대회 때
격려사를 맡아서 선교사들에게 무슨 말로 격려를 할까?
제가 대책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니 선교사님 가운데서는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왜? 인간적으로 대책이 없을찌라도
  대책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 마28:20절에
  세상 끝날가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대책을 갖고 계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 했더니. 아멘! 아멘 !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예수님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느냐?

5. 나는 지금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라” 고 합니다.
즉 우리에게 선교사가 되어라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나 보고 선교사로 나가라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내가 선교사로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로 물질로 후원하는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는 선교사와 보내는 선교사로서
    복음의 교제와 협력이 이뤄지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 땅의 최초의 선교사는 로버트 토마스 목사입니다.
토마스는 23세 때 목사 안수를 받고
런던 선교회에서 중국 상해 선교사로 선임되어 파송을 받았습니다.
선교지로 혼자 떠나는 토마스는 <캐롤라인 고드페리>와 결혼을 하고
중국으로 떠나는데 4개월 반을 심한 파도에 시달리며 중국에 도착을 합니다.
그러니 선교지 파송길이 신혼여행 길이었습니다.
임신 중인 아내는 입에 맞지 않는 중국 음식과 매서운 겨울 추위와 싸우며
24세 때인 1864년 3월 11일,
거처를 마련하고 선교 방향을 정하고자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토마스는 한구로 떠났습니다.
캐롤라인은 현지 적용을 하지 못하여 유산을 하고 하혈이 멈추지 아니하여
        이국땅에서 숨을 거둡니다.
토마스 목사는 상처가 컸지마는 선교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서공회 총무인 알렉산더 윌리암슨 목사를 만나
        조선의 형편을 전해 듣고는
25세 때인 1865년 9월 4일, 토마스는 윌리암슨이 준
      한문 성경을 가지고 조선으로 향하였습니다.
토마스는 약 두 달 반 동안 조선의 서해안에 상륙하여 
      조선 사람들에게 조선어를 배우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조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 해 12월 초 천진으로 돌아갔습니다.
천진에 돌아온 토마스는 조선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는 조선으로 가는 미국 상선 제너널 셔면호를 만나
    천진에서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토마스를 비롯하여 선장, 기관원 등 모두 24명이 승선했습니다.
이 배의 선주는 무역을 위해 조선에 간다고는 하였지만,
  그의 속셈은 조선에서 금 은 보화를 얻는 데에 있었습니다.
1866년 8월 9일. 천진을 떠난 셔먼호는 백령도를 지나
때마침 장마로 인해 물이 불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당시 조선은 기독교 포교가 금지된 상태이므로
토마스의 상륙을 허락할 수 없다는 관군들의 통고를 받고서도
      계속 강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서양 오랑캐`에 대한 적개심이 폭발한 관민들은
서양 오랑캐 선이 황강정을 지날 때에
    일제히 화승포로 사격을 하기 시작하였고
    조선군은 조그마한 배를 여러 채 연결해서 불을 질러
        셔먼호에 닫게 하여 셔먼호까지 불이 붙었습니다.
모든 선원들은 강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하였고
토마스 목사도 더 이상 배에 있을 수 없어서
성경책 몇 권을 품에 품고 강으로 뛰어내려 헤엄처 나왔으나
조선 병사인 박춘권에게 붙잡혔습니다.

토마스는 박춘권이 목을 베려하자
그는 그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성경책을 읽어보라고 성경을 준 후
26세의 청년 선교사는 1866. 9. 2. 그의 칼에 죽었습니다.
박춘권은 처음에는 성경을 받지 않았다가
토마스를 죽이고 돌아 갈 때 성경책을 주워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후에 성경을 읽고 회개하여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는 한국 교회 최초로 안주교회에 영수가 되었습니다. 
박춘권의 조카 박영태도 예수를 믿고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레이널즈의 조사가 되었고
    한국인 성서번역위원의 한 사람으로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받은 또 다른 사람 박영식은
    성경을 뜯어 도배를 하였습니다.
박영식은 도배가 된 성경 말씀을 앉아서도 읽고, 누워서도 읽다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자기 집을 예배처소로 내어놓았는데
    그의 집은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평양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고 복음의 소식은
    조선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토마스의 시신은 강변에 버려졌고 나중에 사람들이 묻었다고 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 땅 대동 강변에 초라하게 묻혀 있습니다. .
26세의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는 우리들이 진 복음의 빚입니다.
빚진 자는 반드시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선교는 복음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김성덕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