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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부담 (롬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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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담

로마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1장에서 11장까지와 12장에서 16장입니다

1장에서 11장은 교리를 말하고 있고 12장에서 16장은 윤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1장에서 11장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어떻게 믿어야 하는 가를 말하고 있고 12장에서 16장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1장에서 11장까지를 다시 한 번 두 부분으로 나뉘어 이해 할 수 있는데 먼저는 1장에서 8장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말씀을 들었던 1장에서 8장은 구원의 복음을 다루고 있으니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있으며 인간의 노력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자가 한사람도 없으니 이 점에 있어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이가 없다는 것이요 여기에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어 칭의 의롭다함을 얻게 된다는 것이요 구원의 백성이 되는 것이니 이렇게 구원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맺어 지면 이 관계는 그 무엇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깨질 수 없다고 우리는 로마서 8장에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로마서 9장에서 11장은 로마서의 핵심으로 유대인의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잘 감당하던 사도 바울이 이제 골육 친족인 조국 유대인들을 가슴에 품고 처절한 울부짖음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 질 지라도 나는 이것을 원한다 하며 극단적 표현을 쓰면서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는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렇게 복음의 정상에서 확신에 찬 승리의 외침을 외치던 사도가 왜 갑자기 이렇게도 처절한 울부짖음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인가 복음의 정상에서 더 이상 울일도 두려움도 없이 이제 앞으로는 승리의 찬가만 부를 줄 알았는데 왜 사도는 왜 사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뜨거운 확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처절하게 울부짖는 것일까 이제 로마서 9장의 문을 열면서 여러분에게 이 아침 먼저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정도의 소망을 가져 보셨습니까

여러분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으로서 이런 정도의 슬픔은 있어 보셨습니까 이런 정도의 고통이 있어 보셨습니까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이런 정도의 거룩한 부담을 가져 보았냐는 것입니다 나로 인한 것 말고 말입니다 내 문제 말고 말입니다 또 다른 나 조국과 친족과 가족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것도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거룩한 부담 영적인 문제로 말입니다 내 일가 친척이 내 조국이 지금보다 더 부강한 나라 였으면 좋겠다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민주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정도가 아니라 내 자신은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는데 이 영광스런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는데 이방인들 가운데 엄청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 영광스런 복음이 정작 조국에게는 정작 가족에게는 외면당하고 있는 안타까움에서 울부짖는 울부짖음 입니다 예수를 만나 복음을 아는 자로써 여전히 복음을 외면하고 있는 가족을 향한 처절한 외침 입니다 이 마음을 안고 먼저 바울은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로마서 9장 1절 말씀을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로마서 9장 1절 시작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니 사도는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이 참이요 거짓이 아니라고 강조 합니다 사도는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 했음이 부족했는지 다시한번 성령 안에서 내 양심이 증거 한다 하며 말을 합니다 무엇인가 비장함이 느껴 지지 않습니까 적어도 사도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청중들이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것은 사도가 유대인을 향하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유대인을 향한 영적 사랑이 내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향하여 거룩한 부담이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부담이 아닙니다 그 부담은 내 안에서 근심으로 자리 잡아 버렸고 이 근심은 계속 되어 져서 육신의 고통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나는 예수를 아는데 나는 예수를 영접했는데 나는 주님의 사람이 되었는데 나의 형제들 골육이의 친척이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가족 구원을 위해 애를 태우고 있는 성도님들은 어느 정도 바울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 이것이 사도에게 근심이 되어 버렸고 그 근심이 지나쳐서 육신의 고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육체가 아픈 것을 고통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아픈 것을 근심이요 슬픔이라고 합니다 사도에게 마음의 아픔이 지나 쳐서 그 마음의 근심이 애절하여 이것이 육심의 고통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몸이 아플 정도로 고통으로 승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이런 애절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참이요 거짓이 아니란다라고 강조하고 있을까 물론 같은 유대인으로 같은 유대인을 사랑하는 것 말로 당연하다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아무리 유대인들을 향해 마음을 열어 사랑한다 해도 유대인들은 잘 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에게 문제가 있기 보다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지는 문제입니다 왜냐면 복음을 전하는 바울사도를 유대인들이 그동안 앞장서 핍박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핍박의 정도가 어느 정도 였습니까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증거 하자 유대인들은 밤낮으로 성문을 지키면서 바울이 나오면 죽이겠다고 진을 칩니다 이때 제자들이 밤에 그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어 피신 시켰을 정도 입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루스드라에서도 멀리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얼마나 돌로 쳤는지 바울을 얼마나 돌로 쳤는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죽은 줄 알아 유대인들은 그 바울을 성 밖으로 질질 끌어 다 버렸을 정도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공격했고 이고니온에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능욕하고 돌로 치기까지 했습니다 사도행전22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향하여 이런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자가 아니라하며 떠들고 옷을 벗어 던지며 티끌을 공중에까지 날리기까지 했으니 오늘날로 하면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하고 있는데 누가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먼지를 강단에 날리는 것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열성 분자 유대인들 중 40여명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결사대까지 조직하여 맹세하며 바울을 핍박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있어진 바울의 간증이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았고 돌로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다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이렇게 핍박하고 여러 번 죽일려고까지 했으니 바울이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면 저들이 함께 구원받은 백성이 되기 원한다고 하면 저들이 믿었겠냐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자신의 진심이 오해되지 않도록 거짓이 아니라 참이라 하면서 서론을 길게 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없이 자신을 핍박하고 해 하였던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도망을 가도 열 번은 더 도망갔을 터인데 믿어주지도 않는 저들을 향하여 사랑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사랑은 단순한 사랑이 아닙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영혼 사랑입니다 가족이 복음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동족이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처음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그래 바울사도의 사역은 유대인들 보다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웃기는 것은 바울사도가 이방인을 향한 사명을 안고 수천킬로를 이동하면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데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아닌데 유대인들은 결사대까지 조직하여 수천킬로를 따라 다니면서 복음을 방해하는 자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복음만 출발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방해 하는 사단의 역사도 함께 출발하여 움직이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어 바울의 근심이 무엇입니까 바울의 고통이 무엇이었습니까 놀랍게도 바울은 저들을 통하여 돌로 수없이 맞았고 죽었다고 수없이 내 던져 지기도 했는데 바울의 고통은 저들로 있어지는 피박보다는 왜 저들이 밉지 않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움이 더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바울사도에 있어 이방인 전도 사역이 얼마나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바울사도가 가기만 하면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우상단지가 무너지며 기적이 일어나되 손수건만 던져 만져도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가 치료 되었으니 놀라운 일들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기적이 있어질때 마다 바울마음 한쪽 구석에서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 동족은 우리 가족은 우리 가족들도 이렇게 복음을 영접했으면 우리 가족들도 이렇게 예수님을 만났으면 하는 애절함이 한쪽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목사가 되어 예수를 잘 믿는다 하여도 마음을 바다처럼 넓혀 보려고 했어도 사람은 사람인 것이 참 바울의 마음이 이해가 가요 제가 전국을 다니면서 부흥회를 인도하다 보면 너무너무 아름답게 지어진 교회를 봐요 그러면 참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그러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나 자신도 모르게 살그머니 욕심이 생겨요 우리교회는 그래가지고 허락만 된다면 산을 옮길만한 믿음으로 인해 교회를 옴팍떠다가 고잔부지에 갔다 놓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요 참 사람이 신기하죠 때로는 부흥회를 가서 식사 대접을 받아요 그러면서 저한테 자랑을 해요 목사님 나는 이렇게 예수를 믿어서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이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업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잘 되고 있는줄 모릅니다 간증을 듣다보면 그냥 은혜만 받으면 되는데 한쪽에서 우리교회 지금 사업하다 어려워진 성도들이 다지나가요 그래서 될수만 있다면 그 사업 빼어다 우리성도 주었으면 좋겠어 아니 정말 그냥 듣고 있으면 되는데 그 빼앗아 주면 좋겠어 때로는 집회를 하다보면 그냥 가볍게 기도해 주었을 진대 강사님 나 치료되었어요 나 하나님 은혜를 입었어요 하면 우리 교회 아픈사람이 다 떠 올라요 그게 사람인것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우리 그 사업장을 뺏어다가 우리 성도들 주었으면 좋겠다 싶은데 여러분들 제가 그런 마음만 갖고 있어야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도록 저로 하여금 절제를 잘 하도록 착각하지 않도록 기도를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착각이 무섭거든요 어떤 결혼 주례자가 결혼 주례를 서다가 신부가 너무 이뻐서 반해 버렸데 잖아 그래가지고 서약을 받는데 신랑에게 서약을 받고 신부에게 서약을 받으면서 이렇게 물어 봤데 신부는 주례자를 사랑하느뇨 그랬더니 이 정신없는 신부가 네 그러더라고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데 내 가족은 곳곳에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을 보면서 내 가족은 이런 바울의 애절함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한 사람 한 가족이 복음을 영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바울 사도에게 이방인을 향하여 나타났던 능력들이 손수건만 던져도 일어났던 기적들이 정작 가족을 향해서는 아무 역할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면 기도를 하면 귀신이 떠나가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굴복하는 것을 수 없이 보았는데 오히려 자신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는 말씀이 말씀되지 못하고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전하고 예수를 영접한다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노력으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믿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거룩한 부담이요 처절한 부담이었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전도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교회가 세워지는데 정작 가족들이 믿지 않는다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참 이상한것은요 우리 교회에도 전도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요 복음을 전하면 어떤사람은 머 복음을 자세히 설명도 안했는데 말씀을 전하자마자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하면 때로 가까이 있는 가족들은 아무리 매달리고 애원을 하고 보따리 보따리 사다주어도 날 잡아 먹어라 참 이런일들이 요즘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제 외사촌 형제중에 남다른 사명을 안고 그리스에 선교사로 간 동생이 있습니다 그의 애절함이 무엇입니까 가족이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부담을 안고 멀리 나가서 선교 하고 있지만 가족은 올 2월에 이곳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 다가 돌아가면서 오빠 우리 형제들은 어떻하죠 함께 기도하는 친구 목사 그의 애절함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개척하여 받들어 섬긴지 20년이 되어가는데 목사의 아버지가 아직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술드시고 예배하는 교회 문을 열고 와서 돈내노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함께 기도제목을 나눌때마다 아버님 예수 믿게 해주세요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정말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 같습니다 때로 새가족들이 교회 오는 것을 보면 그래서 때로는 남편은요 그러면 다음주에 함께 나올께요 아무 힘아리 없이 나와가지고는 그냥 그냥 신앙 생활 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성도들은 수십년째 울고 울어도 눈하나도 깜빡안하는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애절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때로는 절망을 해요 별생각이 다 들어요 남편도 전도 못했는데 내가 누구를 전도해 가족도 전도 못해는데 내가 이렇게 나와서 전도를 하면 머해 봉사는 하면 머해 그리안해도 절망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한마디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남편하나 못 꼬셔서 교회도 못데리고 나오냐고 꼬셔서 될것 같으면 내가 빨개 벗고 춤이라도 춘다 안되는 거여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이방인들은 역사가 일어나는데 가족이 안돼 이것이 바울의 근심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남편이 믿지 않아 외짝 믿음으로 아내가 교회에 나오지 않아 남편 혼자 애절한 마음으로 자식들이 믿지 않아 울부짖는 어미 부모가 믿지 않아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식들 때로는 절망이 밀려오기도 하겠지만 여러분 모두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참 예수님이 좋은 것은요 이런 우리를 위로하고 싶었는지 예수님도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형제들 한명도 전도 못해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아 봅니다 예수님 십자가 길목에 어머님 혼자 따라 왔지 형제들은 다 반대하는 자였습니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 다니며 아멘아멘했지만 제자가 되겠다고 날린데 가족들은 집에 버티고 앉아 오히려 반대하는자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구원의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무덤에서 살아나 부활 승천하신 후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예수님의 가족들 이름이 다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돌아가실 때까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 돌아가신후에 가장 복된 자리에 있어지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면서 구원의 때가 있구나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론 안되지만 구원의 때가 있구나 사실 여기 있는 목사도 이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아픔이 있습니다 기도 할때마다 눈물 흘리는 것이 있습니다 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예수를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삼십년을 넘게 여호와증인에 깊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저희 형제가 9남맨데 별로 안 놀래는구나 제가 여덜번째입니다 그리고 동생하나 있습니다 이 동생이 삼십년을 넘게 깊이 깊이 여호와증인에 빠져있습니다 잘 만나 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애절함이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흥회를 다니면서 목사님 우리 동생 오늘 왔어요 이야기 하면 마음 한쪽 구석에서 쏟아 오르는 소리가 있어요 내 동생 한 번은 부흥회를 갔는데 내 동생이 사는 마을 교회에 부흥회를 갔어요 동생은 연락도 없어요 4일동안 집회를 하면서 4일 내내 울었어요 하나님 내 동생은요 내 동생은요 돌아오기만 하면 믿는다고만 하면 내게 있는것 다 줄수 있을것 같은데 안되는거여 남편이 믿지 않는다 자식이 믿지 않는다 형제가 믿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애절한지 아십니까 바울은 저들을 어느정도 인도하고 싶었습니까 3절말씀 다함께 일어 봅시다 시작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 간절한 소원은 결코 감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렇게 얘기 합니다 내 형제들이 예수만 믿을 수 있다면 내 형제들에게도 복음이 복음만 될수만 있다면 내가 저주라도 받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저주는 헬라어로 아나대마입니다 천벌입니다 이 저주의 각오는 단순히 경제적 손실정도가 아닙니다 육적인 죽음정도를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영과 육이 지옥으로 떨어져 멸망으로 떨어지는 무서운 정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아나대마 였습니다 니느웨성의 멸망이 아나대마 였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예수를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형제가 예수를 믿을 수만 있다면 내 가족이 예수를 믿을 수만 있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도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앉아 예배를 하고 있는 모든 분들 어찌 생각해 보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보다 마음이 여려서 아니면 심지가 견고해서 자연스럽게 믿기 시작했고 오늘이 오기까지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온것 같아도 아닙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여기 앉아 이정도 예배하는 사람으로 봉사하는 사람으로 여기 까지 오기까지는 여러분 주변에 누군가가 이정도의 대가를 지불하고 여러분은 예수를 믿었고 오늘까지 온것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중에는 가족들이 이십년을 기도했고 삼십년을 기도한 후에야 주님앞에 나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족들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는데 이곳에 외면하고 있는분 없습니까 여러분 사시는 중에 죽어도 좋겠다 이런 경우 있습니까 세상에 죽어도 좋을 만한 일은 없습니다 부자가 된들 죽으면 머하겠습니까 출세한 뒤에 죽으면 뭐하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아멘 합시다 예수를 믿는것은 죽는 것일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 혹 여러분에게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느껴 질 수 있습니다 선물을 해보면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은 별 것 아닌 것으로 받을 수 있지만 그 선물을 준비하여 선물을 하는 사람은 사실은 많은 대가를 지불하여 그 선물을 준비 할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오늘 예수를 믿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 언제든지 왔다가 갈것이라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여기 앉아 예배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가족들이 울었는지 아냐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가치가 어느정도 입니까 나를 던져서라도입니다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한다는 것입니다 내 가족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수고와 희생을 지불할 어떤 수고와 희생이라도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영접한다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저절로 되어 지지 않습니다 대가를 지불해야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때도 하늘의 12형도 천군 천사를 불러 세상을 뒤집어 엎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고난을 받았고 하나님의 아들 이심에도 끌려갔고 매 맞았고 십자가에 달려 예수님부터 던져 지면서 구원 역사가 있습니다 적어도 구원역사는 저절로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보여지는 복음의 특징이 있습니다 복음은 복음은 내안에서 차고 넘쳐 또다른 나를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내 안에 있지만 이 복음이 흘러 넘쳐 또다른 나를 향해 흘러 가지 못한다면 복음이 복음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이 유명한 말인데 별루 느낌이 없나 본데 이 안산 골짜기에서 있어지는 말이라 우습게 아는것 같은데 다시 이야기 합니다 복음은 내 안에서 차고 넘쳐 또다른 나를 향할때 복음이 복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그 예수로인가 감격으로 인하여 이것이 차고 넘치니 나만 알고 나만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특징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들이나 조용히 믿지 죄송합니다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안에서 조차 누가 요란을 떨면 옆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점잔게좀 믿지 죄송한데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설교를 하는데 우리 친구 목사가 설교 테이프를 어디다 갖다가 들었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야 유목사 살살해라 그 설교하고 죽을려고 작정했냐 제가 이렇게 얘기 합니다 나도 사실은 시작은 살살해 근데 하다보면 가슴에 불이 붙어 견딜 수 없어 복음을 제대로 맛보면 안되는 거여 전하지 않고는 미쳐버리는 거여 누구에겐가 전해야하고 누구에겐가 말해야하고 사랑안고 어디라도 찾아가는 거여 사실 본문에 있어 바울사도의 사랑은 꼭 유대인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물론 가족이기 때문에 울부짖기는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만은 아니여 이것이 복음의 특징이요 어느날 누군가를 위해 거룩한 부담을 가지는 거여 사실 바울사도에게 있어서 부담은 이방인들이죠 그 부담에 이끌려 이곳 저곳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지요 문제는 숨겨진곳에 가족에 대한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선교사들 멀리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만 그들의 가족중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때 애절한 거여 내 가족이 다 믿기에 이제 내 주변에 믿을 사람이 없기에 가는 게 아니여 그대로 있는데 어느날 거룩한 부담을 주어서 남미로 쓰리랑카로 아프리카로 걸음을 옮기는 거여 물론 바울 개인적으로 보면 어떤 역사가 이방인들에게 일어났어도 가장 사랑해야 했던 친족이나 가족을 복음화 하는데는 실패 했다 싶어요 이만큼이나 사람의 힘으로 능력으로는 안되는 거죠 한 영혼 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십니까 이런 생각을 해봐요 내 가족 내 친족중에 살펴봐도 다 예수를 믿고 다 복음을 영접한 상태 속에 있어서 내 주변에는 더 이상 가족들로 인하여 복음을 가슴에 안고 울지 않아도 된다 이런 은혜가 있다면 이거야 말로 큰 은혠것 같아요 그런 은혜 입은 사람만 아멘 복인것 같아요 쉽지 않잖아요 이렇게 목회를 하면서 많은 성도들을 섬기면서 느껴지는 건 무엇이냐면 저사람은 꼭 믿어야 할 사람인것 같은데 안 믿는 사람 있고요 저 사람은 믿기 어렵겠다 싶은데 그 복음을 가슴에 안고 우는 사람들 하나님이 한사람 한사람 찾아와요 집사님 내외 분이 저를 한번 만나재요 만났더니 말씀이 이거요 목사님 가족이 신천지에 빠져 있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소리 안고 그들의 손을 잡았어요 나도 그런 아픔이 있답니다 예수가 저절로 믿어 집니까 여러분이 오늘 여기 앉아 예배 드린다 하여서 여러분 스스로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줄 아십니까 우리 교회안에는 청년 자매중에 한 자매는 엄마가 무당인 자매가 있습니다 그 자매가 얼마나 예쁜지 눈물로 기도하는데 열심을 내는데 그냥 미안한거여 이렇게 예배를 맞히면 집에 돌아가는데 엄마에게 가야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은 무당집으로 꾸며져 있고 그 틈바구니서 하나님을 붙들고 우는 거여 목사님 우리 엄마는요 목사님 우리 엄마는요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가슴에 품어보면 애절함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향한 바울의 안타까움을 하나 더 보면 반드시 복음에 앞장서야할 유대인들이 복음을 외면하는거여 우리 주변에 믿음의 해택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형제중에 목사가 있고 이렇게 교회 전도 되어 오시는 분 보면 지지난 주에도 한분이 그러세요 어떻게 신앙생활은 하셨었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그래요 우리 형이 장로요 그런데 교회 안다녔데요 얼마나 형이 울었겠어요 우리 교회 오신 분중에 이런 분도 있어요 꼭 보니까 예수 잘 믿어야 할 사람 같아요 그래서 신앙생활은 하셨습니까 아니요 아니 교회 다니셨었야 하실을 것 같은데 예 고등학교 때까지 다니다요 안 다녔는데요 왜그러셨어요 아니 사실 우리 아버지가 목사에요 애절하죠 사실은 복음의 해택을 입고 믿지 않는 거여 유대인들이 그랬어요 유대인들이 사실 그 엄청난 복음의 해택을 입은 민족인데 하나님이 주신 복들이 많이 있는데 믿지 않는 거여 그 유대인들이 받은 복은 어떤 거입니까? 4절 5절을 다함께 읽어 봅시다 4절5절 시작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하나님이 일찍이 유대인들에게 주셨던 영적인 해택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양자됨입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녀로 택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가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쓰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택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이스라엘이 복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에게 자녀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영광을 주셨습니다 여기에 있어지는 영광은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비전이요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 엄청난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원하심을 심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영광이 저들에게 외면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특별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은 이스라엘과만 맺은 언약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맺은 언약은 앞으로 이스라엘 뒤에 영적인 이스라엘 앞으로 믿어야 될 수천 수만 수억의 사람들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함께 언약을 맺어 주체 된 이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들은 복음을 영접하는데 이 유대인들이 빠져 버린 것입니다 이들에게 복음이 복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안타까움입니다 네 번째가 무엇입니까 율법입니다 세상의 어느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까 세상 어느나라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역사에 간섭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무대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서 하나 정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성경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 말씀의 현장을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지만 저들은 복음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보면 그 사람들이 십자가를 팔아요 그런데 저들에게 복음이 복음아니에요 가나 혼인 잔치집에 가봤더니 항아리가 다섯 개 있어요 그때 그 항아리는 아닌데 하여튼 다섯 개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또 찍을 때마다 1달러씩 받아요 근데 믿지 않아요 누구보다 은혜를 입었지만 복음이 외면 당해요 다섯 번째는 예배하는 복이에요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것 아닙니까 너와내가 만나자 너와내가 교재하자입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갈수 있는 원리 아닙니까 세상 어느 민족에게 하나님이 스스로 만남봐 되어주셨습니까 세상 어느 민족에게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셨습니까 그런데 그 예배마져 죽어버렸습니다 여섯 번째로는 약속들입니다 성경에 32500가지들의 약속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근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지 않고 세상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조상에 복을 받았습니다 저들에게는 믿음의 조상들이 있지 않습니까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 막 이름만 들어도 막 기절할 정도로 그 조상들이 얼마나 화려 했습니까 그 조상들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만약에 제게 아브라함같은 분이 우리 조상이었다 그러면 전 자랑 어지간이 했을 거여 유브라함이라고 우리 조상 유브라함을 아냐고 그 아름다운 조상들을 다 두고 정작 자기들에게 와서 복음이 죽어버린 거여 제가 우리 교회 장로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언젠가 장로님 영적인 노후를 준비하십시오 장로님 늙어 편안하게 살수 있는 방을 준비하는 것도 늙을때까지 돌아가실때까지 병원비 생활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노후가 더 중요합니다 젊을때 열심 내었는데 늙어서 초라해지지말고 젊을때 열심이었던것 이상으로 늙어서 하늘의 별처럼 그 신앙이 아름다울수 있도록 영적인 노후를 준비하십시오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여기에도 여러분 윗세대에 정말 복음이 복음되어 예수님을 가슴에 안고 신앙적 열심을 가지고 살던 부모들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 신앙의 유산을 물려 받은 사람들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 선조들이 신앙의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복음이 여러분대에 와서 흐려지지 말고 여러분들에게 더 선명한 역사가 있어지길 축복합니다 여기에도 복음의 해택을 입은 사람들이 사실 많이 있습니다 부모들이 형제들이 그렇게 예수를 믿는데 당신들에게 와서 복음이 흐려졌다면 이것이 문제 아니겠는가 이 모든 복위에 진짜 복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그들에게서 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다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이런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고 배척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더니 이제 그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향하여 핍박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마귀를 모릅니다 천국을 모르면 천국을 모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모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으면 나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 미쳐 세상에 유린당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일 없었다고 언제까지나 아무일 없는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제가 지금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잘 믿고 살아야 할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고 살아야 합니다 대강 믿어도 될 사람은 대강 믿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여러분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복음의 해택을 입었고 얼마나 형제들이 기도를 했고 얼마나 주변에서 나하나 잘되기를 했었습니까 대강 믿어서 안됩니다 옆에 사람들 한테 손 한번 잡고 한마디 해 주십시오 나도 나지만 너도 대강 믿었다간 일나겠다 지금 자기 맘대로 고쳐서 열심히 합시다 왜그러는 거여 이렇게 꼭 말씀이 가다 지맘대로 고쳐 진단 말여 아 그리 하라는게 아니라 나도 나지만 니 얼굴 보니 니 대강믿어서는 일 나겠다 알려 주라니까

오늘 말씀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는 만물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받으실 하나님이시라 다같이 아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하나님될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마음에서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말입니다 혹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하나님 되지 못한채 그 무엇인가에 복음이 은혜가 밀려나 있진 않습니까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도 그러하시겠지만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찬양의 대상이길 원합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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