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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자의 마지막 간청 (눅 16: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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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검시관이 죽은 시신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그 사고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몇 구의 시신을 보는 순간 의아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시신들이 빙그레 웃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하다가 죽었는데 이렇게 웃다가 죽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원인을 조사해 보았더니 첫 번째 사람은 너무 가난하게 살았는데 로또 복권을 사서 당첨이 되었습니다. 몇 십억을 벌게 되었으니 너무 좋아서 웃고 춤추다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사람이 또 빙그레 웃다가 죽었는데 조사를 해 보니 아들이 3년간 재수를 했는데 3년 만에 서울대에 합격을 해서 너무 좋아서 춤을 추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세 번째 시신도 “히~” 하고 웃고 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번개를 치는데 누가 자기를 사진 찍어 주는지 알고 “히~” 하고 웃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웃긴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누구나 이렇든 저렇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올 전반기 동안 서울 지하철에 투신해서 자살한 사람이 22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자기 몸을 던져서 생명을 잃은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은 사고사로 죽습니다. 하루 동안 전국적으로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아침에는 가족들과 함께 단란하게 아침식사를 잘 했는데 저녁에는 영안실에 누워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찌 보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너무 편리한 교통의 이익이지만 또한 문명의 위험한 무기도 됩니다. 차량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어 가는지 모릅니다.

어느 교회에 여자 집사님이 계시는데 남편이 차를 사더니 그렇게 과속을 했다고 합니다. 옆에는 무서워서 탈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문제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이 남편 운전대 앞에 이런 문장을 써 놓았다고 합니다. “여보 앞으로 운전할 때는 지루하니 찬송을 부르세요. 당신이 60Km 로 달릴 때는 이런 찬송을 부르세요. ‘내가 매일 기쁘게’ 그리고 더 속도를 내서 80Km로 달릴 때는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그리고 속도를 더 내서 100Km를 달릴 때는 ‘요단강 건너 만나리’, 더 속도를 내서 120Km를 달릴 때는 ‘주여 나 이제 갑니다.’를 부르세요.” 그러자 남편이 서서히 운전습관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가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천국 갈 때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나봅니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지혜로운 인생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인생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잘 살아야 하지만 죽음 후에도 잘 살아야 합니다.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현실의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서로 사랑하라. 정직하라. 용서하라. 인내하라.” 기독교의 말씀은 적극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에서도 국회의원이나 장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크리스천 수가 많습니다. 종교의 분포에 비해서도 기독교인이 훨씬 많습니다. 기독교 자체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늘 로마서 8장 28절을 먼저 묵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삶 속에서도 늘 용기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전진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잘 되는 것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이 땅에만 관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들어갈 영원한 천국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도 훌륭한 삶을 살고 죽어서도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잘사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얕은 지식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영원한 천국과 그리고 고통스러운 지옥에 대해서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말씀을 잘 기담아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이 어떻게 살아왔던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인생에 큰 유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가정용 비행기가 한 대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를 늘 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비행기 운전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한번은 서점에 갔는데 비행기 운전하는 법이라는 월간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서 집에서 비행기를 타고 연구를 하고 책대로 하면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하라는 대로 시동을 켜고 순서대로 했더니 비행기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신나게 푸른 하늘을 날았습니다. 한참 날다보니 배도 고프고 기름도 떨어지고 그래서 착륙을 해야 했습니다. 급한 김에 책을 뒤져보았습니다. 마지막에 뒤져봐도 착륙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장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착륙 법은 다음호에…….”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 까요? 상상에 맡깁니다. 우리의 얕은 지식으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오늘 성경은 천국에 대해서 지옥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아주 재미있는 비유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에 실상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부자가 한명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붉은 자색 옷을 입고,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자색 옷은 그 당시에 구하기 어려운 옷입니다. 그래서 귀족이나 아주 부유한 사람들만 입는 옷입니다. 베옷 중에서도 아주 고운 베옷, 게다가 그 사람은 호화로이 연락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날마다 잔치를 베풀고 술과 고기와 모든 즐거움에 파 묻혀 있었던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 집 대문 앞에 한 가난한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나사로라고 소개가 되어있습니다. 이 사람은 가난했기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게다가 그의 몸에는 헌데가 있습니다. 진물이 나면 동네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할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죽음후의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이 부자는 어디로 갔을까요? 눈을 떠 보니 음부라는 곳에 왔는데 우리말로는 지옥입니다. 사람이 견딜 수 없고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물 한 방울조차 마음대로 구할 수 없는 그런 곳입니다. 여러분이 들어가는 사우나 보다 훨씬 뜨겁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몇 초도 견디기 힘든 그곳에 깨어보니 자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너무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보니 천국에서 자기 집에서 구걸하던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평안히 휴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합니다. 나사로를 시켜서 내 혀에 물 한 방울만 넣어주게 하소서. 그러나 그곳도 되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서로 분수 있지만 큰 구렁이 있어서 서로 왕래할 수가 없습니다. 이 부자는 마지막 부탁을 합니다. 그것도 안 되면 저는 천국과 지옥이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네 다섯 형제가 아직 방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형제들에게 저 나사로를 보내서 나와 같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권면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도 거절합니다. 이 땅에는 선지자도 있고, 설교자들이 있어서 그들의 설교를 들으면 다행일 뿐 죽었던 사람이 다시 가서 증거를 못하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여러분 죽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가 부유하던 가난하던 대통령이던 장관이던 건강하던 그는 분명히 죽습니다. 제가 예언하건데 100년 후에 여기 앉아계신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마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100년 후에 이 땅을 떠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관문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공평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고생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는 부유한 집에 태어나 별로 고생하지 않고 공부하고 성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은 공평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죽음 앞에서는 똑같은 적용을 받습니다. 돈이 있어도 자기 생명 얼마 연장 시키지 못합니다. 대부분 다 가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누구나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왜 죽음이 끝이 아닙니까?” 여러분 죽음이 끝이면 이 땅에서 불의하게 살고 살인도 하고 남의 것도 빼앗고 부정하게 살다가 죽으면 끝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죽음 후에 심판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성경 히브리스 9장 27절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선악 간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됩니다. 그가 살아간 대로 그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누구든 심판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끝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 한번 결정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부자와 나사로는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데 이 한번 결정된 것을 누구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서로가 왕래 할 수도 없고 오고 갈수도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토나스 주남 이라는 한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해서 20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결혼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교회 초청주일에 초대를 받고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예배가 마음에 들었고 목사님 설교가 자기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생각을 하고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는 기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깊은 기도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 중에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를 데리고 지옥을 구경시켜 주는데 그곳은 사람 살 곳이 못됩니다. 아비규환이고 비명소리가 들리고 유황냄새가 진동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국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한국말로 고통 하는 비명이 들리는 것입니다. 자세히 봤더니 그분은 자기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려운 집에 시집을 와서 가문을 일으키려고 힘을 썼는데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구타하고 때리고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고생을 하시다가 40을 못 넘기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불쌍한 어머니가 지옥에 와있는 것이었습니다. “아! 예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너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분이 다시 한 번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는 자기의 아버지와 어릴 때 죽은 자기 여동생이 그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환상을 보고 나서 그 후부터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도했습니다. 자기 이웃에게 친척들에게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고, 정직하게 살아도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세한 내용들을 기록해서 책을 냈습니다. 그 책 제목이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입니다.

어떤 분이 외국에 이민을 갔는데 차를 운전하고 갔다가 차선을 어겼다고 합니다. 경찰차가 달려와서 차를 세웠습니다. 한국 같으면 봐달라고 하고, 사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 봐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영어로 어떻게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봐주세요.”를 “Look at me”라고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미국 교통경찰이 그 말을 용하게 알아듣고는 한마다 했다고 합니다. “No soup!” 이라는 것입니다. 미국경찰들은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봐주는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천국과 지옥은 한번 결정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만이 영원한 천국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믿는 자 만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 지옥에 가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옥의 실상을 아시기에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큰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당해야 될 저주와 고통을 그분이 다 담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져야 될 죄의 십자가에 예수님이 대신 달리셨습니다. 내가 맞아야 할 채찍을 예수님이 대신 맞으셨습니다. 내가 흘려야 할 피를 그분이 대신 흘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분을 믿는 자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바로 내 죄 때문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부활절을 앞두고 세례교육을 하고 세례 문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분 한 분 질문을 하는데 어느 할머니 성도님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죠?” “그럼 죽었죠!”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이 “예수님의 누구의 죄 때문에 죽었는지 아세요?” “그것도 몰라요? 저는 다 알아요!” 라고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누구의 죄 때문에 죽으셨죠?” “아! 우리 며느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죠!” 라고 대답했습니다. 며느리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 이제 그는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부자의 마지막 간청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있는 내 동생들만은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것이 부자의 마지막 절규였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 고통 받는 지옥에 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 20년 전쯤 이야기 같습니다. 저의 형님이 수학 선생님이어서 태백 광산촌에서 한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계셨습니다. 제가 그때 태백을 간 기억이 있습니다. 워낙 광산촌이니 어디를 가더라도 새까만 연탄 검정이 여기 저희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태백에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라면 강을 검게 그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연탄재가 들어가서 강과 모든 것이 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광산촌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광산촌에 생활하시는 분들은 자신을 스스로 막장인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분들은 탄을 캐기 위해 지하 100m - 300m 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면 지하 온도가 한 40도 된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연탄재를 마시면서 연탄을 캐는 것입니다. 연탄재가 물통을 통해서, 공기를 통해서 허파로 폐로 들어갑니다. 그것이 쌓이면 규폐증이라는 아주 무서운 병을 앓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도 많고, 나이 들어서 광부 일을 그만 두지만 그 고통 때문에 신음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을 막장인생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인생입니다. 그분들의 소원은 우리 자식이 광부가 되지 않는 것이 그분들의 소원입니다. 나는 광부가 되었지만 우리 자식만은 광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 지역에 초등학교 어린이가 글짓기 시간에 글을 썼는데 그 글이 한 잡지에 실렸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신다. 나는 공부를 못하니 광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나는 어차피 광부니까 열심히 일해야 되겠지만 너는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광부는 되지 말라 하신다.” 이 아이가 이렇게 글 짖기를 하고 있습니다. 피맺힌 아버지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너만은 이 고통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만은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광부 아버지의 절규요 오늘 성경에 지옥을 간 한 부자의 절규입니다.

오늘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른 선택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시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는 길을 택하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여기 오신 것은 혼자 오신 것 같지만 성령님을 통해서 여러분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결단을 하시고 바른 선택을 하셔서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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