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연히 만난 은인 (룻 2:1-13)

  • 잡초 잡초
  • 1058
  • 0

첨부 1


우연히 만난 은인 (룻기 2:1-13)

영국에 처음 오던 해 추석날 한인회 초청 추석잔치에 참석했다가 그 해 처음 온 가족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신고식으로 노래 한 곡을 부르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 아내와 제가 듀엣으로 노사연 씨가 부른 ‘만남’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하는 노래지요.  저는 그때 스코틀랜드 아버딘이라는 지역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한인들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고 영국이라는 나라와의 만남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신 일일 것이라는 뜻에서 타지에서 새롭게 만나는 분들에게 인사하는 마음으로 그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대다수는 지금은 왕래가 없지만, 87년도부터 3년간 신대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기 목회자들 몇 사람을 다시 영국에서 만난 이후로 그 분들과의 교제는 새롭게 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옥스포드에서 목회를 하면서 이곳을 오고 가는 수 많은 분들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만남 그리고 교회 안에서 교우들 사이의 만남이 우연이 아님을 믿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옥스포드에 와보니 한인교회가 하나 있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우연히 나오기 시작한 분들도 있겠지만 그 우연 속에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랍니다.  교회에 왔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이 바뀌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만남은 우연처럼 생각되지만 우연으로 불리어지는 하나님의 예정하심 속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룻의 이야기 속에도 우연한 만남이 나옵니다.  이삭줍기를 하러 밭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큰 은혜를 입은 룻의 인생은 이 만남을 통해 놀라운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보리 추수가 시작될 때에 베들레헴으로 온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하여 즉시 행동에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이곳 사정에 어둡고 아는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집에 들어앉아 마음만 졸이며 시간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말 그대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섬기기 위하여 일을 시작하는 룻이었습니다. 

보리 추수하는 밭에 나가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입으면 그 사람을 따라 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어다가 먹을 양식을 준비할 터이니 허락해 주시길 청하였습니다.  40대 연령 이상이 되신 분들은 어릴 때 시골에서 농번기 방학을 하면 방학이 끝날 때 학교에 벼나 보리 이삭을 담은 노란 봉투를 제출했던 기억이 있지요?  이스라엘의 추수철 풍습에는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밭에 떨어진 이삭을 다 거두지 않고 남겨두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9장을 보면,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9,10절) 하였고,  23장에도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22절)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 땅에서 나는 소산은 땀 흘려 수고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은 주위의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들에게 그 은혜를 나누며 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따라 추수하고 남은 이삭을 모두 거두지 않는 미풍이 있었습니다.  외국 땅 베들레헴에 온 이방 여인 룻이 이 은혜의 법을 의지하고 혹시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있으면 그로부터 은혜를 입어 이삭을 주어오겠다고 어머니에게 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에 기대를 걸고 밭으로 나가는 룻의 성실한 태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봅니다.  혹시 룻이 처한 상황처럼 지금 나의 형편이 힘들고 난감하다고 여기는 분들은 룻의 적극적인 자세가 좋은 본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내가 만난 어려움의 현실을 두고 망연자실하여 있거나 신세타령과 원망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고 은혜를 찾아 나서는 사람입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그것도 젊은 과부가 낯 모르는 사람들을 따라 나서 밭으로 나간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룻은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밭으로 내보낼 수 없었고 하늘만 바라보며 한숨 짓고 있을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작은 데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나는 운이 없다’’내 길이 열리지 않는다’’기회가 오면 크게 한 판 벌이겠다’’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돕지 않는다’하지 않고 룻은 먼저 작은 걸음부터 실천에 옮겼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7:7, 8절) 하신 주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룻의 행동에서 그대로 실천되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은혜를 사모하고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구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이삭줍기를 보면서 우리들이 실천했으면 하는 또 한 가지 작은 일을 제안합니다.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일이지만 그 계기를 마련하지 못해 미루던 중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 이 기회에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다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삭줍기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각 집마다 사용하고 남은 1p, 2p 또는 5p짜리 동전들이 어딘가 굴러다니거나 처리 곤란하여 빈 통에 모아두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낙전을 수집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사용하기도 했는데 우리 교회에서도 이삭줍기 운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런던의 어느 교회는 ‘1p 는 1피(血)’라는 캐치플레이를 걸고 동전을 모아 아프리카로 보내는 선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작지만 매달 100파운드를 한국의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는 일에 보내고 있습니다.  일년이면 천이백 파운드가 되는 이 금액이 어린 가장들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밭을 소유한 농부는 추수한 곡식으로 한 해를 살 수 있지만, 땅이 없는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은 그 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거두고 남은 이삭과 같은 작은 물질이 어떤 이들에게는 하루의 끼니를 해결하는 생명줄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남겨둔 작은 동전들을 한데 모으면 적지 않은 금액이 되어 고국의 어린 가장들 또는 다른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룻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추수꾼들을 따라 누군가의 밭에 들어가 이삭을 줍게 되었는데 우연히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라는 사람은 1절에서 간단히 소개한 것처럼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유력한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베들레헴 지역에서 땅을 많이 소유한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룻기의 저자는 베들레헴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 여인 룻이 의도적으로 보아스의 밭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고 추수하는 농부들을 따라가다 우연히 그의 밭에 왔다고 말합니다. 

베들레헴의 하고 많은 밭 중에 어찌 그 밭으로 올 수 있었을까요?  보리 추수기에 그 밭 말고도 추수하는 밭이 많았을 것인데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오게 된 것은 사람 편에서 보면 우연일 수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룻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룻기의 저자는 마침 보아스가 그날 따라 베들레헴에서부터 그 밭을 보러 왔다고 말함으로 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앞으로 이루어질 룻과 보아스의 만남이 어떻게 전개되어 질 것인가 독자들이 기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옥스포드에 우연히 온 것 같지만 그 우연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언젠가 어떤 경로를 통해 발견하고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로우신 손길에 감격하는 순간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룻의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의 이야기를 이웃들과 함께 감사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룻이 사람의 눈이 두려워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집안에 들어앉아만 있었다면 이 만남이 이루어졌을까요?  보아스가 그날 그 밭에 나가 농부들을 살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그 만남이 이루어졌을까요?  룻이 오늘은 이 밭에서 이삭을 줍고 내일은 이 집 주인에게 또 신세지는 것이 미안하니 다른 주인의 밭으로 갈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마침 보아스가 그날 자기 밭에 왔다가 낯 모른 젊은 여인이 부지런히 이삭 줍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날 보아스는 사환들에게 ‘이 소녀가 누구냐?’고 물었고 사환으로부터 룻의 이야기를 들은 보아스는 룻에게 다가와 특별한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우연한 일이 한 번 있으면 혹 모르지만 우연이라는 것이 계속 반복이 되면 그것은 필연이 되는 것이지요?  마치 정해진 일인 것처럼 룻과 보아스의 관계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이미 나오미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이방 여인 룻에 관하여 좋은 소문을 듣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날 우연히 자기 밭으로 찾아온 룻을 만난 보아스는 ‘내 딸아 들으라’하고 최선을 다해 룻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을 따라 이삭을 주으라고 했고, 혹시 젊은 남자들이 룻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일꾼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라는 배려까지 하였습니다.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자기 밭에 있으라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밭, 저 밭 옮겨 다니면서 주인들에게 구차하게 자기 사정 알리고 허락 받아야 하는 나그네의 어려움을 잘 알아주는 보아스의 너그러운 배려입니다.  더구나 신변보호까지 약속을 하고 추수기의 뜨거운 날 추수 밭에서 생수를 공급하는 배려는 단순히 나그네를 향한 대우를 초월한 특별대접이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이런 특별 은혜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처음 만난 이방 여인에게 베푸는 그 지역 유력자의 호의는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따르는 보아스에게서 더 풍성하게 표현이 되었습니다.

룻은 감당할 수 없는 이런 은혜에 감격하여 땅에 엎드려 보아스에게 ‘나는 이방 여인인데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고 나를 돌아보십니까?’ 하고 사례하자 보아스는 룻의 아름다운 성품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이미 자세히 들어 알았노라고 칭찬하며 축복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넉넉히 갚아주시기를 원하노라” 이런 축복에 감동한 룻은 ‘당신의 시녀보다도 못한 나를 이처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시니 저는 이미 당신으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보아스의 넉넉한 마음에서 룻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1장에서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분위기는 이제 막을 내리고 2장에서는 위로와 기쁨의 선물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내려오고 있습니다.  밭에서 우연히 만난 은인 보아스를 통해 받은 감격스런 돌봄과 배려에 이방 여인 룻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 받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풍성하고 넉넉합니다. 

룻이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종일 이삭을 주워 모은 곡식은 시어머니와 하루 먹을 귀한 양식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품꾼으로 일한 대가를 얻은 것이 아니라 주인의 은혜를 입어 자기가 수고한 만큼 거저 얻는 선물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다고 한 룻은 보아스를 만나 그의 은혜를 입어 그의 밭에서 마음껏 이삭을 주울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룻은 하나님의 사람 보아스의 눈에서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찾았습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장 힘이 없고 소외된 계층이었습니다.  나그네요 과부였던 룻은 보아스의 넉넉한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 얻기를 구하는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나그네와 이방인의 대접을 넘어 자기 백성으로 환영하며 하나님의 밭에서 마음껏 하나님의 선물을 얻도록 하시는 너그러운 은인이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과거의 삶을 떠나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 들어와 평안을 누리시는 성도들이기를 바랍니다.

보아스는 약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넉넉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뜨거운 여름날 자기 밭에서 일하는 추수군들을 축복하는 주인이며, 나그네를 사랑으로 대접하는 후덕한 주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얻은 것으로 함께 나누는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을 이웃들과 나누는 충성스런 청지기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우리 모두가 이런 청지기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깍쟁이 예수쟁이, 비정한 기독교인이라는 불명예스런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을 위해 풍성한 마음을 나타내길 바랍니다. 

옛날 어머니들이 시장에서 콩나물 10원어치 사던 시절에 한 줌이라도 더 빼오려고 실랑이 벌이며 악착같이 아끼고 모으면서 정작 엉뚱한 곳에 가서 바가지 크게 쓰고 마는 식의 어리석음을 보이기 보다는 너그러운 여유를 가지고 어려운 자들을 살피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손해 안 보려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으로 너무 따져가며 각박하게 살지 말고 마음을 넓히고 손을 펼쳐 나누는 기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옥스포드가 특별히 나그네들이 많은 곳입니다.  우리 교회가 반복되는 나그네 영접에 식상하고 지칠 염려도 있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소중히 여기며 넉넉한 마음으로 나그네들을 맞이하고 돌보는 소중한 사명을 잘 감당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오는 나그네들에게 쉼과 양식과 생수를 풍성히 나누어 줄 수 있는 풍성한 추수밭의 사명을 기쁨으로 할 수 있기 바랍니다.  룻이 보아스를 우연히 만난 것으로 보였지만 그 우연 속에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습니다.  옥스포드에 우연히 들른 것 같지만 그 우연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고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