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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역자를 주소서 (행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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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를 주소서
사도행전 18:1~4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직접적으로 만나고 사귀게 되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잠시 곁에 있다가 스쳐지나가듯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귀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서 함께 사귀며 살기를 우리 모두는 원합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과 만나서 사귄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좋은 사람을 만나 사귈 수 있도록 또한 우리들의 길을 이끌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울의 일생에 만나 사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바울이 보낸 여러 편지들에서도 거의 빼놓지 않고 이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정도로 바울에게 있어서 정말 귀한 사람들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믿음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아테네에서의 바울의 전도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실패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각 도시에서 당했던 유대인들에 의한 훼방과 핍박은 없었으니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단지 편하기 위해서 지금 전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이 바울의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들어가는 이유도 비록 핍박과 어려움은 따를지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고자 하는, 지금까지 그들이 알지 못해서 믿지 못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구주가 되신다고 하는 것을 전하고자 해서입니다. 지금까지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거의 죽음 일보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습니다. 수없이 두들겨 맞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상관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테네에서는 저들과 함께 토론을 벌이게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울도 학문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서 가장 존경 받는 가말리엘을 스승으로 하여 학문을 닦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토론에서는 조금도 밀리지 않고 이긴 것 같았는데 막상 그들이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는 사실상 실패를 했습니다. 부활에 관해 바울이 전하는 말을 듣고 바울을 따르게 된 사람은 아레오바고 시의회의 의원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와 그 밖에 몇 사람이 더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도 감사합니다. 한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바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힘이 빠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 누가 쫓아내는 것도 아닌데 바울은 아테네를 떠라 고린도로 옮겨 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낙심한 바울에게 정말 귀한 만남이 이곳 고린도에서 이루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니까 바울이 처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나 변화되고 난 다음에 유대인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오히려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또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려고 앞장섰던 바울이 변화됐다는 것을 아직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그러니까 바울이 가장 힘들어 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나바를 보내 주셔서 바울에게 큰 힘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핍박을 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자신을 한 나머지 아테네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다 그만 기운이 다 빠져버려 고린도로 옮겨온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바울의 남은 사역에 큰 힘이 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 사역에 있어 또 다른 전환점을 가져오게 된 사람은 바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입니다. 아굴라는 본도 지방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로마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들은 다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믿는 여호와 사상이 황제를 신으로 받들도록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로마로부터 모든 유대인들이 다 쫓겨나게 되니 아굴라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닦아왔던 모든 기반을 다 잃어버린 채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로마로부터 고린도로 옮겨 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역시 지금이 가장 어려운 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혀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 때 바울과 만나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모두 가장 어려운 때에 서로 만나게 된 것이요 이 만남이야말로 그들 서로의 일생에 가장 소중한 만남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고백처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역시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들어준 만남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먹고 사는 일에 바쁜 그런 삶이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고 가장 소중한 일에 그들의 삶을 전부 드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자 이를 위해 바울을 도와 협력하는 동역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도 처음에는 바나바를 통해 하나님께서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고 이제는 실라와 디모데와 같은 동역자를 통해서 함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더니 이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의 만남을 통해 더 이상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신 하나님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은 새옹지마라고도 합니다. 가장 어려운 때가 가장 복된 때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는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 어떤 말 보다고 더 귀한 말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힘들 때가 오히려 가장 복된 때라고 하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고백을 통해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삶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좋은 동역자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을 생각한다면 역시 우선을 부모가 되겠고 다음으로는 선생님들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부모 밑에서 자란다고 하는 것처럼 귀한 일은 없겠고 우리들을 끊임없이 격려하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좋은 격려자가 되시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로서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해야 하고 교회학교 교사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귀한 믿음을 우리들이 가르치는 어린이나 학생들에게 심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좋은 믿음의 본과 끊임없는 격려와 축복은 저들의 복된 인생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곁을 지켜줄 수 있는 동역자야 말로 정말 귀합니다. 이 동역자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배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선생님들은 우리들의 자녀들이 좋은 친구를 만나고 사귈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지도해 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한 평생 좋은 돕는 배필이 그들 곁에 있도록 어릴 적부터 기도하며 축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혼기에 달한 청년들은 정말 좋은 배필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위해서 끊임없이 또한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우리와 모든 일에 함께 할 수 있는 그러한 좋은 동역자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릴 적부터 직업교육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방면에 전문가가 되도록 지도를 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갖다 놓아도 그 기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기술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늘 외적에 의해서 침략을 당하고 그래서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일도 많았습니다. 한데 그렇게 포로가 되어 끌려간다고 해도 어떤 기술이 있으면 그 기술로 인해서 마구잡이 대우를 받지 않고 비록 포로일망정 조금은 낫게 생활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술을 익히는 것은 그들의 생존전략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학문을 닦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이 받은 직업 교육은 천막을 만드는 일입니다. 오늘로 말한다면 이동식 주택이라고 할까요? 유대인들의 경우 목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동식 주택으로서의 천막입니다. 그것은 어디를 여행할 때도 휴대할 수 있기에 굳이 여관과 같은 곳을 찾아들어가기 보다는 간편하게 천막을 치고 머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니 여행을 하다보면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해가 지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잠시 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막 만드는 일도 우습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굴라 역시 천막을 만드는 기술자였습니다. 그가 로마에서는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는 몰라도 이곳 낯선 땅 고린도에 와서 제일 쉽게 자기의 기술을 이용해서 천막을 만들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의 편지들에서 보듯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좋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찾아가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곧바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을 합니다. 그리고는 잠시 바울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함께 합니다. 이는 곧 바울이 안정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거점이 마련됐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 평상시는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함께 하면서 그들과 함께 묵습니다. 그리고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를 만난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 같은 일을 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 흔히 우리가 동역자라고 부릅니다마는 이런 좋은 동역자가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승리하는 목회의 기반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같이하여 일할 수 있는 협력자가 있을 때 그 일을 신이 나서 할 수도 있고 따라서 결과도 좋은 것은 당연합니다. 모세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기는 해도 그 곁에 아론과 훌 그리고 여호수아와 같은 동역자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이끌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툭하면 불평하고 원망해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찌 모세 혼자서 이끌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늘 우리교회가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좋은 동역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좋은 동역자가 되었듯이 이렇게 모든 일에 마음을 같이 하여 협력하시는 좋은 동역자로서의 두 분 장로님 부부가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며 두 분 안수 집사님 부부가 계시기에 또한 가능한 일이며 또한 좋은 동역자로서의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참 행복합니다.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이렇게 행복할 때가 없었습니다. 물론 어느 곳에서건 좋은 동역자를 허락해 주셨지만 특히나 모든 동역자가 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야말로 제게는 정말 귀한 보배와 다름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들이 날마다 저를 위해 중보자가 되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서로를 위한 동역자가 되심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내게도 좋은 동역자를 주시옵소서. 함께 협력하며 주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축복해야 합니다. 또한 좋은 동역자가 되는 일꾼을 보내 주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중보하며 기도하지 않고는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고서는 이런 좋은 동역자가 우리 곁에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기억할 것은 우리가 가장 힘들어 할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진정 좋은 동역자를 내게 알게 하시고 보내주시는 때라는 사실입니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변하여 내게 가장 좋은 동역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도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하고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나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던 사람이 나의 가장 좋은 격려자요 동역자로 바뀌게 된다면 이보다 더 귀하고 복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바울과 아굴라 부부처럼 처음부터 좋은 동역자가 되어 함께 일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동역자가 그렇게 귀합니까?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좋은 동역자로서 힘을 함께 할 때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또한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바울과 아굴라 부부가 함께 지내며 함께 일하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를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함께 수고할 뿐 아니라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요 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중보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동역자란 단순히 일만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이고 함께 예배하며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우리 마음을 바로 세워 함께 예배하며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두 사람이 무엇이든지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어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동역자는 함께 예배하며 함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특히나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우리가 함께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예배하며 찬양하고 기도하며 주의 일에 한 마음으로 수고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이 시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저는 좋은 동역자가 되시는 성도 여러분들로 인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리고 좋은 동역자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비단 이 고백은 저의 고백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백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요 주의 종의 좋은 동역자이며 서로에게 좋은 동역자가 되기에 우리는 다 행복합니다. 잠시는 마음이 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좋은 동역자라고 해도 이건 아닌데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때 오히려 더 사랑을 고백하고 더 격려하며 손을 잡아 줄 때인 것이요 그것이 참된 동역자가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내게도 좋은 동역자가 더욱 많아지게 하옵소서” 기도할 뿐 아니라 나 역시 다른 분들에게 좋은 동역자가 되어 마음을 함께 하여 수고하며 서로를 세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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