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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 (엡 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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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엡 5 : 15 - 21
제 목 :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다 시인하는, 그런 보통의 신앙의 삶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특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삶의 특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이라, 그렇게 말 할 수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러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이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령께 사로잡혀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나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삶,  이전에 우리의 삶이, 본능이 지배하는 삶이었고, 죄가 지배하는 삶이었다면, 이제 예수를 믿고, 변화를 받고 난  다음에 나타나는 삶은, 성령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삶이다.  아멘!! 

오늘 본문 앞 절에 있는 14절 말씀을 보게 되면,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신분은 어떤 신분입니까?  이제 예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소유하고 태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과거의 세상 적이고, 육신적인 삶의 방식은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는 삶,
이것이 바로 오늘 설교 제목과 같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우리는 많은 부분, 주님의 방식을 따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내 자아가, 내 속에 살아 쉼 쉬고 있고, 아직도 내 뜻이 내 인생의 대부분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권세에 속해 있는 죽음의 자리에서 이제는 벗어나, 나의 삶을 주장하시고, 온전히 이끌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걸어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빛을 외면하고, 고개를 어둠의 세상을  향해,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빛이 크게 비취면, 어두움은 작아지게 되고, 결국에는 그 어둠이 흔적 없이 물러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삶에 어두움이 크면  어떻습니까?  빛이 작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상태로 계속 있게 되면,  나중에는 그 어두움이, 빛을 완전히 삼켜 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예전과 비교해 별로 변화된 것이 없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헤메며, 오히려 더 무능력한 가운데, 오히려 더 고통스런 가운데, 삶을 살아가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모습이, 과연 이러한 것이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결코 이러한 모습의 삶은  아닌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변화된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것도 어정쩡한 변화가 아니라, 확실히 변화된 삶을 요구하십니다.  믿습니까? “아니 저 사람 예수 믿고 나더니, 완전히 달라졌네!” 이런 평가와 칭찬을 듣는, 그러한 삶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찬송이 있지요?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 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 씻었네.” 
할렐루야!!  예수를 믿고 나서, 자신의 모든 것이 변화되어 지는 것, 바로 이러한 놀라운 삶의 변화의 역사를,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기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가운데, 나의 모든 것을 주의 권능으로 채워주시며,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하나님을 평생에 섬기며 따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믿습니까?  다윗은 담대하게 신앙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선언하지요.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할렐루야!!!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너는 못한다고 말할지라도,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할 수 있다고,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며, 믿음으로 밀어부처야 하는 것입니다.  삶에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입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오늘도 나의 삶에 나타나기 때문에...  믿습니까? 
“너 가는 길을 누가 비웃거든,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어라.  성령이 친히  감화하여 주사, 저들도 참 길을 얻으리”  할렐루야!!!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다스림 속에서, 성령의 인도함 속에서, 이런 확실히 변화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줄로 압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답이, 바로 오늘 본문 18절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18절 말씀을 다시 보세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 뭐 다른 게 있겠습니까? 
내 속에 성령의 크기를, 내 자아보다 더 크게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성령이 내 속에 끊임없이 임하게 만들어서, 그 성령이 나의 삶을 온전히 주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신앙을 가꾸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성령이 언제 어느 때에,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 성령이 임합니까?  가정에서 설거지 하고, 청소할 때 성령이 임합니까?  학교에서 공부할 때 성령이 임합니까?  언제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어집니까?  성전에서, 이 교회에서 우리가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송할 때, 성령이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언제 성령 받았습니까? 
각 가정마다 모여 예배하고 말씀 들을 때, 또 마가 다락방 같은 곳에 모여,  그들이 기도하고, 찬송할 때,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이, 홀연히 그들 가운데 임하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가정에서만 성경보고, 기도하라는 얘기 아닙니다. 
그때는 그 가정이 곧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곧 가정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회 가운데, 좌정하여 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언제나 여러분이 교회에 모여 성경보고,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할 때, 성령이 임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홀연히 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갑자기라는 말이지요. 
성령이 언제 임할런지는, 우리가 알 수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적당히 말씀보고, 적당히 기도하고, 적당히 찬송할 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예배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전심으로 기도하고, 뜨겁게 찬송할 때, 성령은 우리 가운데 분명 임하게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내 삶 속에 말씀 보는 시간을 늘이고, 기도하는 시간을 늘이고, 찬송하는 시간을 늘이면, 그 때서 우리도 성령에 충만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16절 말씀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 취하여, 하나님의 주신 시간들을 자기 임의로 사용하며, 허송세월로 보내지 말고, 우리의 시간들을  영적인 부분들에 할애해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시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변한 가운데, 그 뜻대로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이, 성령이 원하시는 대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성령의 지배함을 받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성령에 충만하게 되면, 우리의 삶에 어떤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지혜와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세상에 능력을 행하게 되지요.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도 힘 있게, 당당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사단의 올무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며, 주의 이름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는 삶, 이런 역사들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은 신앙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성령에 충만한 성도들입니까?  성령의 충만하여 삶에 이러한 역사들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가, 성령에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성령에 충만해야겠지만, 특별히 1년 열 두 달 가운데, 언제 우리가 성령에 충만함을 이뤄야겠습니까?  시기적으로 볼 때에, 특별히 이 7월 8월에, 우리가 더욱 더 성령에 충만함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이 7, 8월 여름에 얼마나 중요한 교회 행사들이 많이 있습니까?  교회학교 여름성경학교, 여름 수련회, 또 교회적으로도 낙도선교, 해외선교,  낙도어린이 초청행사, 부부행복캠프, 이런 영아로부터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중요한 행사들이 많이 있습니까? 
이런 행사들을, 우리가 어찌 감당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요, 인간의 경험으로요, 인간의 재주로요..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빠진 인간의 힘이나, 경험, 성령의 도우심이 빠진  인간의 재주나 재능,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겁니다.  그 속에 열매가 없습니다.  무슨 열매요?  생명의 열매, 변화의 열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숙의 열매들이 나타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자라게 만들 뿐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열매가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그 나무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멋있게 자란 나무이고, 가지도 무성하고, 잎도 너무나도 푸른 나무이지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님의 저주로 인해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줄로 압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행사를 준비하고, 치루고 있습니까? 
이제까지의 경험입니까?  교사로서의 노하우입니까?  여러분, 교사로서의 노하우가 어디있습니까?  이것만큼 교만한 표현이 없습니다. 
나름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도 안 하잖아요.  연구 안 하잖아요.  그래서 기도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이제까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재능만 믿고, 행사를 치르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당장에는 행사를 잘 치르고, 멋있게 성공한 것 같은데, 행사가 끝나고 살펴보면 남는 게 없다는 겁니다. 
원상복귀지요.  회복이 이루어진 겁니다.  좋은 의미로서의 회복이 아니라,  나쁜 의미로서의 회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교사 여러분, 교사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멘!!  은혜를 더욱 더 채우기를 갈망하고, 능력을 더욱 더 채우기를 갈망하고,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행사가 있을 때마다 더욱 더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더욱 더 말씀 앞에 나아가 묵상하며 연구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영혼을 사랑하고, 자신의 직분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감당하는 신실한 성도, 신실한 교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7월, 8월 무더위로 육신이 지치기 쉬운 때이지만, 여러분이 맡은 직분과 또 여러분이 맡은 사역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할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 전반에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성령 충만함으로 강건해지면, 육신은 저절로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 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할렐루야!!!
그러면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성령에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삶이나,  그들의 사역에,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변화는 무엇인가?
첫째는, 생산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속한 인생은 어떤 인생입니까?  낭비하는 인생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살 때에 보였던, 그 허랑 방탕한 인생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허비하고 낭비하며, 모든 것들을 다 날려버리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해 있으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있는 것을 허랑방탕하게 다 없이 만드는 인생이 아니라,  없는 것도 있게 만드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생산적인 인생을 살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어떻게 저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통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저렇게 살다간 실패하지 하는데, 오히려 더 성공합니다.  저렇게  하다간 망하지 하는데, 오히려 더 흥합니다.  성도들을 향해 우습게 여기며 접근했는데, 나중에 오히려 큰 코를 다칩니다.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안다는 것이지요.  무엇을 압니까? 
그 능력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인 줄,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성령이 나를 주장하고 다스리시는데, 그 인생에 어찌 실패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인생에 어찌 망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진짜 문제가 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성경은 가짜입니다.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라면, 결코 인생에 실패함이나, 망함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그 인생에 어찌 약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범사가 형통케  되어지는, 그런 귀한 역사들이, 실제적으로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런 강함을 소유하기 위해,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엉뚱한 것에 관심을 가지며, 세월을 낭비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별하지를 못한 채, 계속해서 세상적으로 나아가 낭비하는, 그런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 싶습니까? 
그러면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잘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건강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하시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성령에 먼저 충만케 해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아니 그것과 성령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아직도 이런 어리석은 질문하시는 분들은, 적어도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 가운데는 없는 줄로 압니다. 
왜 상관이 없습니까?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니 상관 정도가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의 성공을 위해, 세상적인 학문을 연구하고,  세미나에 다니며 목회에 관한 기술을 연마해도, 그래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어도, 기도하며, 말씀 보며, 찬송 하면서, 성령에 충만을 위해 힘쓰는 목회자들을, 결코 앞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목사 안수를 받고서도, 목회지가 없어 쉬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 지 아십니까?  수 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들이 실력이 없어 쉬고 있는 것은  아닌 줄로 압니다.  목회자가 목회지가 없어 쉬고 있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그들이 목회를 하고 싶고, 그에 합당한 목회지를 원한다면, 정말 목숨 걸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실정을 비판하고 불평하면 뭣합니까?  그런다고 해서 자신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럴 시간에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목회지 달라고, 사역지를 달라고 목숨 걸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교회를 만들어서라도, 그들에게 목회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줄로,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목사 안수를 받고, 새로운 임지를 위해 1년을 기도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1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라 여겼는데, 실제는 안 그렇습디다. 시간이 금방 갑니다.  정말 나중에는 시간이 촉박해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해운대에 있는 한 교회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임지를 옮겨 남울산 교회로 갈 때, 또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석 달을 기도했습니다.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고, 때로는 부부가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1,200명이 모이는, 제법 큰 교회로  저를 보내주셨습니다.  또 우리 성천교회로 오게 된 것도, 저는 기도의 능력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냥 하나님 빽만 믿고, 디립다 기도만 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서울에서도 가장 은혜로운 교회로 소문만, 우리 성천교회로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제 개인적인 간증이지만, 여러분, 이 일이 어찌 개인적으로 국한된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이겠습니까?  누구라도 기도하면 이런 은혜가, 이런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가 생명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렇다고 여러분, 사업을 등한시하고 기도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을 등한시하고 기도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등한시하면서 기도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에 목숨 걸고, 이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것에 온 힘을 다 쏟게 되면, 결국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헛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낭비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것들보다 먼저,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아는 가운데,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그것을 먼저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인생의 실패함이 없이,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루며, 또한 얻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생산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면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변화는 무엇인가?  집중력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포기하지를 않습니다.  쉽게 절망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끈기 있는, 집중력이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도, 남들과 다릅니다.  언제까지 기도합니까?  응답될 때까지 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신실이 뭡니까? 
믿을 신자, 열매 실자 아닙니까?  말 그대로 우리가 믿는 대로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것을 의심 없이 믿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간이 문제지, 응답은 반드시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기도가 응답이 안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귀찮아서라도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풀게 한 것은, 한 여인의 끈질긴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집중력 있는 기도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또 이런 성도들은, 전도를 해도 남들과 다릅니다.  언제까지 전도합니까?  전도한 그 사람이, 교회 나올 때까지 전도합니다.  정말 귀찮을 정도로 작정한 그 사람을 만나고, 전화합니다.  또 편지합니다.  아주 집요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두 손 두발 다 들게 만들어서, 결국 교회 나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너무 심한 것 아니냐?  그러다 그 사람 교회 안나오면 어떡하느냐?

그러나 이런 소리는,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안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제 발로 나옵니까?  어차피 안 나올 거라면, 한 번 강하게 밀어부처 볼 필요는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여기서 강권이라는 말은, “멱살을 잡아서라도, 손목을 비틀어서라도”의 뜻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 건져내는데, 멱살 잡아 끌면 좀 어떻습니까?  손목을 비틀어  끌면 좀 어떻습니까?  사람 살리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물에 빠진 사람 건지러 가서는, “저 죄송합니다만, 당신 멱살 좀 잡아도 되겠습니까?  저 죄송합니다만, 손목 좀 힘을 가해 비틀어도 되겠습니까? 
좀 불편해도 참을 수 있겠습니까?  아님 말구요.”  이렇게 말하고 구하는 사람 있겠습니까?  그러는 사이 그 사람은 죽고 맙니다.  그냥 끌어내는 것입니다.  사람 살리고 보는 것입니다.  욕 좀 먹으면 어떻습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옛날에 저희 집에 중이 찾아왔어요.  분명 교패가 붙어 있는데 초인종을 누르고는 시주를 하라는 겁니다.  반짝이는 그 머리를 보고 있노라니, 참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교회가 전도에 집중하는 그런 시기라, 집에 전도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 천 원을 주면서, 스님 예수 믿으세요. 이렇게 말하며  전도지를 건네 줬습니다. 
그 중이 그러더라구요.  “지금 뭐하는 겁니까?”  정색을 하고서는 저를 쳐다봅니다.  중도 화나니까 무섭더라구요.  그 때 제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살짝 금니를 드러내며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전도하고 있는데요.”  아마 열 좀 받았을 겁니다.  그런다고 지가 나를 때리겠습니까?  지가 나를 죽이겠습니까?  그걸로 끝입니다.  지는 교패 붙어 있는 집 시주하러 와 놓고서는, 나는 땡중한테 전도하면 안 됩니까?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겁니다. 
그 전도지로, 나중에 그 땡중이 회심하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이런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흥하는 교회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와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뭡니까?  전도에 열심이라는 겁니다. 기도에 열심이라는 겁니다.  요즘 교회마다 홈페이지가 다 있지 않습니까? 
그 홈페이지를 열어보면, 무슨 기도 운동, 무슨 전도 운동해서 날마다 슬로건이 실려 있습니다.  스팟 광고가 뜹니다.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참 역동적인  교회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 교회 가보지는 아니했지만, 정말 활동적인  교회다. 라고 하는 것은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의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하는, 그것 밖에 없다.  우리가 힘써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집중력을 가지고 사역을 하는 교회, 이런 교회가, 바로 성령 충만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성천 교회의 특징이,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이런 집중력이, 특징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전도하자 그러면, 온 성도 모여서 다 전도 하러 나가고, 기도하자 그러면 온 성도가 다 기도하러 나오고, 어떤 사업이 있고, 행사가 있다 그러면, 전 성도가 다 모여서 그 일에 합력하는, 이런 집중력이 있는 교회.
여러분 수 백명, 수 천명 모이는 큰 교회만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아닙니다.  그와는 비교가 안 되게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우리 교회와 같이 천 명도 안 되는 중소교회라 할지라도, 이런 집중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큰 교회 못지않은,  아니 그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집중력으로, 무서운 집중력으로, 이 지역 주민들과 다른 교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우리 성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비단 하나님의 일만 그렇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도 그런 줄 압니다.  여러분이 성령에 충만하여, 성령에 지배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면, 이런 집중력을 발휘해,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도, 어떤 시련이나, 어떤 어려운 환경도,  능히 극복하며 성공할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분들의 얼굴을 보면, 늘 웃음이 가득합니다. 활기가 있습니다. 오늘 죽도록 일했는데, 내일이면 금방 회복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힘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일하고도 지지치 않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또는 여러분이 교회에서 맡은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 자꾸만 힘이 들고, 자꾸만 내가 피곤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여러분의 사역에 나타나는 열매는 없고, 자신의 힘만 고갈되는 그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모든 것 그냥 포기하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드십니까?  혹 이런 가운데 지내는 분들은 없으십니까? 

여러분, 곰곰이 생각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이 많아 힘든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어려워 힘든 것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내가 성령에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힘이 든 것입니다.  내가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 내 힘과  내 뜻으로 살아가려고, 그 일을 감당하려고 했기 때문에 힘이 든 것입니다.

19세기의 사역자, D.L 무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역자들을 망가뜨리는 것은 과도한 사역이 아니라 성령 없이 일하는 것이다” 참 멋진 얘기 아닙니까?  우리가 과도한 사역을 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성령 없이 일하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기계가 망가지는 게 기계를 많이 돌려서 망가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윤활유 없이 돌리기 때문에 망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은혜를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사역들 감당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한 번 따라합시다.  “주여 성령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성령에 사로잡힌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의 지배함을 받아, 남은 한 주간동안도, 나아가 여러분의 남은 평생의 시간도, 이런 생산적인 인생, 집중력 있는 인생으로, 지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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