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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넘어짐의 은혜 (고전 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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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짐의 은혜
고전10:1-13

제 개인적인 과거 삶 중에 자전거를 배우다가 크게 한번 넘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면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운동장에서 배우던 경험을 기초로 하여 거리로 나와 대로의 언덕길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경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커브를 트는 곳에서 너무 길게 도로 가의 담쪽으로 커브를 틀면서 오른팔쪽이 결국 시멘트벽에 부딪히면서 상처를 입고 자전거는 나뒹굴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도 저의 오른팔에 흉터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자전거에서 넘어진 이후에 저는 자전거를 탈때마다 교만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타게 됩니다. 심지어는 운전을 할때에도 조심하게 됩니다.
비록 한번 넘어짐으로 인해서 상처는 있었지만 긴 인생길에서 그 한번의 넘어짐은 오히려 저에게 성숙을 향해 가는 은혜가 되었습니다.

넘어짐은 우리의 신앙길에서도 나타납니다. 개인적으로 신앙 생활에서 넘어졌을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넘어짐이 오히려 주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징검다리가 되는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믿음 생활하다보면 우리는 믿음의 길에서 넘어짐을 경험할때가 있습니다.그런데 분명한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넘어짐도 은혜가 됩니다. 넘어짐을 통해서 너머지지 않게 하십니다. 너머짐을 통해서 아버지를 향해서 바르게 온전하게 걸어가게 하십니다.

너머지는 사람들은 이미 성경속에서 있었습니다.본문에서 바울은 구약의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넘어지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먼저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교회가 알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넘어짐의 뜻이 바로 고린도교회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 우리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다수의 넘어진 구약의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넘어짐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1. 진리를 아는 은혜가 있습니다.

본문10:1은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원래 원어 성경에는 "왜냐하면"이란 말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그렇게 되어져 있습니다.
여기 바울은 넘어진 다수의 형제들의 일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기 실패한 다수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7절에서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멸망을 받았습니다.
8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3천명이 죽었습니다.
9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뱀에 멸망당하였습니다.
10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멸망당하였습니다.

여기 소개되는 죽고 멸망당하는 어떤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다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방 사람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 구름아래 있고 바다가운데 지나면서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광야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다 세례를 받은 사람이요 다 신령한 식물을 먹은 사람이요 다 신령한 음료를 마신 사람인 것입니다.

여기 다 신령한 체험을 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신령한 음료와 식물과 세례는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으로 말하면 죄악으로부터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신앙의 복을 얻은 자로서 결국 다수의 어떤 사람들이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다수가 결국 자신의 몸을 죄악에 내어주었습니다.홍해에서 구원받은 다수,만나를 먹고,메추라기를 먹고,생수를 먹은 그 다수가 광야에서 너어졌습니다.
물론 이 실패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죄악에 넘어진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죄악에 넘어졌을 때 우리는 결국 상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열심히 달음질하는 선수가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승리하면 살을 줍니다. 올림픽의 금메달 상을 얻기 위해서 4년동안 얼마나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땀을 흘리고 수고합니까? 이와 같이 넘어지지 않고 잘 달린 그리스도인들을 주님께서 때가되면 상을 주십니다.그러나 넘어지면 상이 없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바울이 "교회"'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자이면서 넘어진 형제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과 삶의 실패의 교훈을 교회에 적용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넘어질까요?
넘어지는 다수의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복종이 없습니다.구약의 이스라엘 백성 다수가 복종하지 않앗습니다.
7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32-16에 보십시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더디내려오자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고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고 합니다.
이들이 결국 애굽에서 행하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 우상숭배의 삶의 불행이 나타난 것입니다.영적지도자 모세가 없자 결국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삶에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엿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였습니다.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마음 속에 위안과 평안을얻고자 하여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살아게심을 통하여 엄청난 역사를 보았는데 40일이 못되어서  극단적인 범죄 속에 빠진 이스라엘을 보십시오.송아지 형상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거기에 제사하면 범죄한 것입니다. 그렇게 다수가 우상숭배에 넘어간 것입니다.

여기 송아지 형상의 우상이란 것은 "생각하다"“상상하다"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을 의지하면서 그것을 마치 하나님인것처럼 섬길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그 몸으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범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기를 쳐서 복종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죄가 바로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우상숭배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것을 하나님처럼 만들어놓고 그것에 의지하면서 스스로 자유롭게 즐기는 위험이 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그런데 광야에서 애굽의 신인 송아지 바알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보십시오.애굽으로부터 자유하였는데 애굽의 신을 만들어놓고 절하고 숭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신을 만들어놓고 ‘너희를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합니다.출애굽하여서 이미 자유를 얻었지만 스스로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 우상을 숭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다가 조금만 어렵고 힘이 들면 순간적으로 하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그냥 세상대로 살아볼까? 세상과 타협하고 하나님보다 어떤 것들에 방자하게 우리 자신들의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음에 자신을 쳐서 복종하지 않으면 나타나는 대표적인 죄악 중에 두번째가 바로 간음입니다.이것은 바로 쾌락을 좋아하는 육체의 본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  간음으로 인해 심판을 받습니다.

민수기 25장을 보십시오.싯딤에서 모압여자들과 간음을 합니다.그리고 염병으로 이만 삼천명을 죽입니다.우리 속에 진리에 대하여 복종이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 자기 욕심 속에 일어나는 대표적인 범죄가 바로 간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간음죄를 음욕을 품고 있는 자도 간음이라고 하엿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요즈음 포르노 중독의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섹스와 관련된 잡지와 컴퓨터에 중독된 사람들이 전체의 20%에 해당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 평신도와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한 목회자가 인터넷의 포르노로 인해서 망가지는 사실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미국인 목사님은 사역을 하면서 부부사이에 문제가 일어나서 상담자를 찾았더니 그 상담자가 섹스비디오를 권해주면서 보라고 하엿습니다. 그러면 멀어진 부부사이에 사랑을 회복할 수 잇다는 권면이었습니다. 그뒤로부터 이 목사님은 포르노 비디오와 인터넷을 찾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중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사무실에서 설교원고를 준비하고 나서는 문을 닫고 혼자 포르노사진을 보고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성적인 포르노중독이 되었으면서 사역을 하다가 어떤 수련회에서 여대생들을 접하면서 부적절한 관계에 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교회를 사임하고 회개하고 치유를통해서 교회의 사역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고 한기독교 상담소의 사역자가 되었다는 고백을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외가 없습니다 . 삼손도 다윗도 솔로몬도 넘어졌습니다. 여기 나도 나를 쳐서 복종하지 않으면 넘어갑니다.이런 넘어진 사람들을 통해서 더욱 나의 몸을 쳐서 복종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복종하지 않으면 나타나는 죄의 유혹 주에 주님을 시험하면서 넘어집니다.
9절에 나타납니다.
이 사건은 구약 민수기21장 4절 이하의 사건입니다.
배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길로 쫓아 에돔땅을 두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식물도 없고 물도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어서 하나님 믿는 믿음의 생활못하겠다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우리가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만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생활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하늘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출애굽기16:12“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질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일줄 알리라”
만나를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나를 향해서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한다”고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시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주시니 바로 만나입니다.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가 시험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신명기 8장 2절을 보십시오.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양식을 주시면서 시험하신 것입니다.이들의 교만을 40년동안 광야에서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좀 어려움을 겪자 하나님을 대항하여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경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하여 죽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준비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준비되지 않는 것처럼 원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양식과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그러나 이 광야를 가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이것만 채워주시면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요구합니다.
"만나"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그 이상의 것을 향하여 구했습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특별히 먹고 입고 쓰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께 주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하면서 자족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되기 바랍니다.
복종하지 않을때 나타나는 중요한 죄 중에 하나가 바로 원망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고난이 올때 그들은 즉각적으로 원망했습니다.다수가 원망했습니다.매일같이 하나님이 만나를 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여도 그것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다수는 문제만 보고 원망하면서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삶에는 고난이 오면 먼저 원망하기 쉽습니다. 원망은 우리의 죄성입니다. 복종하면 감사합니다. 복종하면 자족합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100%하나님의 의지도 있지만 100%인간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 우리의 복종의 의지를 갖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때 우리는 승리합니다. 그 복종을 배우는 시간이 바로 넘어짐의 시간들입니다. 넘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절대 진리 복종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복종의 자리로 나아가시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넘어짐은 자기를 알게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본문12절에 보십시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개 넘어지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줄로 생각하는 교만입니다.여기 "섰다"는 것은 영적으로 자신을 성인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여러분 사람들이 가장 잘 모르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나를 잘 모릅니다. 내가 지금 어떤 형편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교회가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넘어져있으면 자기를 잘 모릅니다. 본문에 소개되는 고린도교회가 그랬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기들에 대해서 자만했습니다. ‘자기’에 대해서 ‘이미’의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특징이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어른의 자세가이 되면 남에게 통제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에게서 권고와 가르침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마 반면에서 주어진 자유를 주고 갖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그러나 바울은 영적으로 완전한 성인은 어려움 것임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미성숙한 신앙인임에도 스스로 교만한 생각 속에 자신을 과대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권리를 주장합니다.자유로움을 주장합니다.누구의 간섭과 제재를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 신앙은 내가 지킨다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간섭을 싫어합니다. 지도자의 코치를 싫어합니다.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할 우선 대상은 자신의 믿음입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내가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나는 꺠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교만하면 결국 복종이 어렵습니다. 교만한 아내는 남자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교만한 성도는 영적지도자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습니다. 교만하면 결국 나에게 말씀을 적용하지 않고 남에게 적용합니다.스스로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위대한 삶을 산 사람들의 고백은 한결같이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안 분들입니다.
위대한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런 고백을 하엿습니다.
‘나는 교황이나 모든 추기경들보다도 내 자신의 마음을 더 무서워한다.왜냐하면 그것은 내속에는 보다 더 큰 교황,자아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최후의 기도를 이렇게 했습니다."주님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나의 수많은 죄를 그대로 심판하지 마소서. 나는 내 속에 허무와 타락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나는 지금 나의 타락을 애통합니다.나는 오직 주님의 긍휼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영적으로 탁월한 거장이었던 미국의 베이비드 브레이너드라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런 말을 했씁니다.
“나는 내적으로 얼마나 불결한지,나의 수치와 죄악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것인지,나는 설교를 할떄 얼마나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무지하고 악한지! 나는 얼마나 사랑과 열심히 부족하고 온유와 평화가 부족한지 모르겠다!고 하엿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결국 실패하는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대안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10:6에서 "그런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가 우리의 거울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모습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자신도 그와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 삶에 매일 자기를 쳐서 복종하시는 삶으로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3. 넘어짐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넘어짐을 통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넘어짐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다수가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수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수의 넘어짐의 사건은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비록 다수는 아니지만 넘어짐의 시간들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발견되는 시간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나서 벌어집니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탐지하게 됩니다. 그때 각 지파에서 1명을 파견하여 총 12명이 정탐꾼으로 파견됩니다. 그래서 그 땅을 12명이 정탐합니다. 40일동안 땅을 탐지합니다. 왜 40일가? 대부분 시험의 시간들은 40이란 숫자가 관련이 많습니다.노아홍수심판때에 홍수가 40일동안이었습니다.모세가 광야에서40년간 있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있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하였습니다.

40일동안 가나안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뒤에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거기서 아낙자손을 보았으며 그땅 거주민은 크고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크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땅을 악평하면서 말합니다.반복하면서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후손인 아낙자손의 거인들을 보았아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앗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12명중 10명의 다수가그렇게 보고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 갈렙 2명은 소수였습니다. 다수가 보고를 마치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이며 통곡하면서 모세를 원망하고 아론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에게 그땅으로 인도하여 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합니다. 지도자 모세 아론은 온 회중 앞에서 죄인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때 였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습니다. 옷을 찢는다는 것은 슬픔과 고통을 표시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가 두루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자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나타나 소수의 신실한 일꾼들을 도와주십니다.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어졌습니다. “안된다 못한다 힘들다”부정적인 말에 다함께 부정적인 사람들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수의 넘어짐을 통해서 누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인지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신실하신 믿음이십니까?
교회 공동체적으로 누가 신실한 자인가 아닌가를 언제 알 수 있습니까? 어렵고 큰 일들을 치루어보면 알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말은 합니다. 어떻게 보면 행동도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모험의 순간 희생의 순간 고난의 순간에 가보면 누가 신실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가 그렇습니다.다수가 신실한 사람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다수가 신실한 교회 역사의 주를 이루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실한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고 감당하지 못할 시련이나 어려움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감당할 만한 시련당함을 허락하십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교회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시련을 만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할 길을주시는 하나님이시오 또 우리가 피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신실한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 갈렙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주의 복을 누리우게 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신실한 주님의 사람들을 도우셔서 결국 모든 은혜와 복으로 함께 하시어 승리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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