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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2 16:17

주린 영혼의 축복 (시 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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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 영혼의 축복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자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기뻤던 때는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경험할 때입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원인이 오직 이 세상의 자원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의 빛을 비추시고 성령의 은혜를 주셔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 우리의 진정한 고통이 사실은 이 세상에 있는 자원들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자신의 주린 영혼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영혼의 굶주린 상태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을 때, 그 때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닙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은총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그 사모하는 영혼은 주린 영혼입니다. 주린 것을 모르는 영혼이 아니라 자신이 주린 것을 느끼고 있으며, 이 세상에 있는 자원으로 자신의 갈한 영혼을 만족시키려는 왜곡된 방식을 버리고 자신의 영혼은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고 자신의 영혼을 만족케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자신뿐이며 하나님은 그 은혜로 자신을 만족케 하심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비유 가운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부자가 뭐라고 했습니까?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곡식을 쌓아 두었으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러한 것을 가지고 먹고 마신다고 해서 영혼이 즐거워하고 편안해 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부자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부자였던 것입니다. 영혼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질 때,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에 비로소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I. 영혼의 주림

우리는 매일 이 세상에서 끊임없는 고통과 삶의 허무를 봅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허무한지, 얼마나 소망이 없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수고와 근심의 멍에를 벗기시고, 우리를 받으실 그 날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 있는 자원을 누리는 날이 아닙니다. 그 날은 이 세상에 있는 자원으로는 도저히 만족을 얻을 수 없었던 그런 주린 영혼들을 만족하게 하시는 날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 맛보게 될 완전한 영혼의 만족과 심령의 참된 기쁨을 하나님이 만약 미래의 것으로만 두시고, 이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맛보게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갈망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목이 마를 때 한 두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그 물을 입술에 축일 때마다 이 사람에게서 생수를 향한, 더 견디기 힘든 육체의 갈망이 생겨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대한 보다 더 큰 사모함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게 하시기 위해서, 미래에 우리들이 맛볼 하늘나라의 신령한 맛을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성도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경험입니다.

A. 은혜를 가로막는 원인 1 : 세상사랑

성도가 죄 많은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도로서 이 죄와 슬픔이 많은 땅에서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이 세상 사람들은 바라보지 않는 또 하나의 본향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그 본향을 사모하면서 사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그 본향에 대한 목마름을 간직하고, 박막(薄膜)과 같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적당히 멸시하며,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그 행복을 더 갈망하고, 그 나라를 위해서 이 나라를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의 부패는 얼마나 심한지,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 깊이 눌러 붙어있어서 웬만해서는 기도의 눈물로도, 말씀의 은혜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상처가 난 곳에 딱지가 앉으면 그것을 미리 없애보려고 떼어버리면 살점이 함께 묻어나오면서 찢어져 피가 나고 그래서 차마 그 딱지를 떼지 못하듯이 우리의 마음에 눌어붙어있는 세상에 대한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세상사랑과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에 우리의 눈물의 기도가 효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섬김은 더럽혀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내면의 깊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내면의 깊은 목소리를 들어보면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떡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내 영혼의 견딜 수 없는 갈함과 주림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절박한 외침은 외면하고, 부지런히 자신의 썩어질 육체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 앞에 죄 죽임이 없고 진실한 성화의 삶이 없는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B. 은혜를 가로막는 원인 2 : 자기아첨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극도의 자기아첨(自己阿諂)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첨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아첨은 자기부인(自己否認)의 반대 개념입니다. 신앙적 사고와 판단력이 살아있어서 자신과 영혼을 공격하는 죄의 모든 속임수와 부패한 욕망의 생각들을 감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해서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이지만 스스로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자기부인이 없이는 누구도 진실한 성화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는 대신 오히려 아첨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욕심과 죄의 소욕을 따라, 어둠가운데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하는 더러운 육체의 욕망에 대해서 아첨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무리 마셔도 목이 갈한 것처럼, 육신을 위해서 아무리 봉사해도 이 인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번뇌, 그리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그 견딜 수 없는 고통, 괴로움과 번뇌는 영혼의 주림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육체가 여러 날 먹지 못해서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프고, 배만 고픈 것이 아니라 손과 발에 힘은 다 빠지고 눈은 어두워져서 기력이 쇠하였는데, 먹을 것을 찾아다녀서 음식물을 입에 집어넣고 소화시켜야 원기를 회복할 텐데도 외모만 꾸미고 화장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II. 은혜의 경험과 사랑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이 많고 부요하면 염려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물질이 많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또 경제적인 문제도 없고, 또 건강의 문제도 없는 사람에게는 그들만이 아는 또 다른 인생의 고통과 고뇌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의 허무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결국 주린 영혼의 문제입니다.

A. 성도의 목마름은 은혜만으로 해결될 수 있음

인간의 영혼의 주림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처음부터 하나님이 아니면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공간을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두셨습니다. 그것이 가득 찰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다운 삶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고갈된 것입니다.

타락 이전의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득 찬 존재였다고 한다면, 타락한 이후의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은 사라지고 사망으로 가득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거듭난 인간은 이제 그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채워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성도는 사망에 의해서 다시는 생명을 빼앗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생명이 전혀 없는, 영혼의 굶주린 상태가 되었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의 은혜가 한없이 밀려오게 됩니다. 그 주린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 때 그 행복은 이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요? 아무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만족이기에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그 처음 사랑을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이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 자신입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득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가득 채우시는 경험 속에는 항상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경험이 동반됩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열심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열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령한 은혜를 받은 사람의 숨길 수 없는 표증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 그리고 인격적인 사랑입니다.

B. 은혜 입은 자의 고백,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진 사람들의 고민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그 사랑 안에 늘 거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초월적인 사랑입니다.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물 붓듯이 특별한 성령의 역사로 부어지는 것입니다. 대개 처음 회심과 함께 경험하는 사랑이 이런 초월적 사랑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내재적 사랑입니다. 이 내재적 사랑의 경험에게는 별명이 있는데 그것은 죄와 싸워 이긴 사랑입니다. 초월적 사랑은 하나님이 어느 한 순간에 확 부어주시는 사랑입니다. 대개 첫 회심에서 사람들이 이런 초월적 사랑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 다음 신자가 경험하는 사랑은, 대부분 죄와 싸워 이긴 사랑의 경험입니다. 죄와 싸워서 이기면서 자신이 성결해지면 성결해질수록, 하나님의 성결한 사랑이 그만큼 우리 속에 뜨겁게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심을 하고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 또다시 초월적 사랑을 경험하는 예보다는 죄와 싸우고 진실한 회개의 삶을 살면서 내재적인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초월적 사랑만 기대하고 내재적 사랑은 발견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죄 죽임이 없이 방종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III. 은혜를 향해 갈망하는 자세

오늘 본문에서 이런 주림을 면하는 놀라운 은혜가 누구에게 주어진다고 되어 있습니까? 사모하는 자에게입니다.

A. 지속적으로 사모해야 함

이 ‘사모한다’는 것은 한 순간에 스쳐가는 감정이 아니라 집요하게 계속 되는 감정입니다. 이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모하는 감정은 죄에 대한 욕망과 매우 흡사합니다. 어떤 죄를 짓기 전에 먼저 마음이 그 특정한 정욕에 집중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강하게 끌리게 되고, 거기에 집중되어 그것을 빨아먹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영혼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쳐지나가는 것이면 우리의 영혼에 해가 덜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집요하게 꽂혀서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를 잉태하고, 장성해서 그 죄를 산출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지속됩니다. 똑같이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그 은혜를 사모하게 될 때에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은혜를 정말 사모할 때는 그것이 마음에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고정되어서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회심한 신자라면 은혜가 고갈되었을 때,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그런 생각들이 생각으로만 떠다닐 뿐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참된 회복이 올 때쯤 되어서는, 그것이 떠도는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딱 꽂혀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는 보다 더 큰 은혜를 갈망하게 되고, 조금 변화를 받아도 그보다도 더 큰 변화를, 조금 변화를 받아도 그것보다 더 간절한 변화, 보다 더 완전하게 이르는 변화를 받고 싶어 하는 갈망들이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린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로 만족함을 얻게 될 때에 나타나는 변화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갈망에 있어서 수동적인 면과 능동적인 면을 동시에 강조합니다. 수동적인 면은 하나님께서 갈망하는 마음을 넣어주신다고 하는 것이고 능동적인 면은 신자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도록 성경에 의해서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갈망하라.” “하나님을 사모하라.”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라.” 수없이 성경에서 신자에게 요구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42:5)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벧전1:13) 하나님께서는 갈망하는 마음을 넣어주시지만, 갈망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갈망하는 마음을 넣어주시고, 사모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목마름을 넣어주십니다.

B. 인내해야 함

그런데 이제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시켜 주신다고 하셨는데 오늘 저녁에 사모하면 왜 오늘 저녁에 만족시켜주시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서 침체에 빠진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는 때로는 낙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회복했는데 스스로 부패해져서 그 갈망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추슬러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생겨났는데 갈망보다도 더 큰 죄의 욕망이 생겨나서 또 갈망이 지워지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미끄러지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나 같은 죄인이 다시 하나님의 처음 사랑으로 충만해 진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는 약속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구나.’라고 말입니다. 죄와 싸워서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이 그렇게 낙심하고 실패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이 오히려 급격하게 굳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다시 이 더러운 죄의 즐거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는데도 왜 하나님께서는 금방 우리를 만나주시지 않고 가혹하리만치 긴 시간동안 목마르게 하시고, 우리에게 보다 더 완전한 목마름으로 당신을 찾으실 때까지 기다리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지만 이 본문에 입각해서 한 가지만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마음을 상당한 시간동안 유지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있던 동안 망가져버린 우리의 내면세계를 고치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았더라면 선악과를 따먹을 이유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만 바라보았다면 거기에서 영혼은 만족을 얻었을 것이고, 하나님으로 인해 영혼의 만족을 얻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통해서 더 큰 만족을 얻으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타락은 예수만 바라보아야할 신자의 의무에서 이탈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거기서부터 구도자의 눈빛을 잃어버리게 되고, 삶의 부패가 들어오기 시작하며 굳건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또한 구속하신 이 아름다운 목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면의 세계는 모두 파괴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받은 은혜를 지키면서 살지 않으면 그것은 신앙생활의 정체(停滯)가 아니라 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급속히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 당신만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 제자리로 찾아가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진 성도들이 어느 한 순간 진실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매달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즉시 회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낙심하면 안 됩니다. 오늘 이 본문,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을 사모하는 사람, 그 사람들이 비록 이전에는 걸레와 같은 죄인이었다 하더라도 주님은 그들을 무한히 용납하십니다.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죄가 커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기에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IV.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 주님 앞에 내 삶이 열납되기를 사모하는 마음, 이러한 것들 없이 형식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영역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이 행하는 신앙의 의무들,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하고 지체들을 섬기고 여러 가지 맡은 일에 봉사하면서도 사실은 우리의 마음에 간절함이 없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는 갈망이 없이, 단지 개별적인 의무를 감당해 나가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모든 것들이 사모하는 영혼, 주린 영혼을 가진 사람의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삶의 구석구석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갈망, 내가 주님 앞에 더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갈망, 그래서 주님께 사랑을 받고 내가 주님을 섬기는 모든 삶 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배어 있기를 원하는 갈망, 그래서 나는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향한 주님의 계획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내 인생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기를 원하는 갈망.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갈망이 없는 신앙생활만큼 이 땅에서 저주받은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그것은 썩은 꽃과 같습니다. 형체는 한때 아름다웠지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잃어버리고 나면, 다 썩어서 악취가 나는 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주님의 향기를 발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있을 때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랑을 기억하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 생명을 버리시면서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되게 하시고 싶으신 그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면서 온전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쓸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에게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자원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갈망하고 그 은혜의 부어주심을 방해하는 내 안에 있는 죄와 불결들을 미워하고 그래서 십자가 지는 고통으로 분투함이 있을 때 그 성도는 예수의 향기를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향기는 완성된 성도에게서 풍겨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완성을 향해서 끊임없이 고통하며 주께로 한걸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성도들의 삶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입니다. 그래서 아무 향기도 풍기기 않던 신자가 자고 일어나서 갑자기 향기를 풍기게 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날마다, 날마다 주께로 다가가는 생활을 통해서 예수의 향기가 풍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생명을 확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지 다만 그 은혜를 만들어만 놓고 누구에게도 나누어주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간절한 소원은 그분이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그 임마누엘의 은혜의 샘에서 우리들이 씻고 먹고 마시고 배부르고 그 안에서 즐거워하고 그것 때문에 생명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눈물어린 갈망입니다. 그래서 일한 것이 없으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은혜를 값없이 거저 나누어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이러한 은혜를 잊어버리고 핍절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방식에 역행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마치 애굽시대의 7년의 풍년기간 중에 창고의 쥐가 굶주리는 것과 같습니다.

빈부나 귀천의 구별이 없이 죄인이나 불의한 사람의 구별 없이 누구든지,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늘의 생명을 절실하게 사모하는 사람, ‘내게는 지금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필요하고 내 영혼에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부어주시고 우리 안에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떠나서 그리스도께 속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그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사모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두루 살피십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신앙 생활한 어른이 받지 못한 은혜를 어린아이가 받고, 성경을 많이 알고 연륜 있는 성도가 받지 못하는 은혜를 이제 처음 믿는 연약한 신자들이 받습니다. 교회에 유력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받지 못한 은혜를 죄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그 은혜를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그 모든 것 보다도 뛰어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갈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갈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을 수시로 타일러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42:5) 낙심될 때 우리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세상의 일로 근심하느냐? 담대히 눈을 들어 예수를 바라보라.”라고 타일러야합니다. 그리고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야합니다. “우리는 공로 없고 하나님 앞에 의롭지도 않지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아들의 공로를 보시고 우리를 거두어주셔서, 주님이 은혜를 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구원해 놓으실 때에 우리에게 살게 하시고 싶으셨던 삶을 우리는 살 수 없사오니 은혜를 부어주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성도들이 낮에, 혹은 깊은 밤에 혹은 새벽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교구별로 모여서 기도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와 교회 한 구석에서 간절히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흐느끼며 간구하는 성도들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우리에게 기도제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끝이 없고, 기도하고 일어나면 기도하지 못한 것들이 마음속에 수없이 떠오릅니다. 우리들에게 은혜에 대한 갈망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런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을 때 어느 곳에서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우리의 마음이 녹고 우리의 영혼의 시선이 그분께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많은 것들은 대부분 잠시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이것의 가치는 결코 우리의 영혼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데 우리의 인생에 형통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이 세상에서의 번영이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모두 휴지조각 같은 것입니다. 간절히 사모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인색하신 분이시기에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을 더 정결한 사람으로 만드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으로 가득 채워 예전에 받지 못했던 더 큰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만 살게 하시려고 우리들의 간절함과 사모함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주님 한분만을 바라고 그분 자신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주린 영혼을 충분히 만족케 해 주셔서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살도록, 그래서 이 땅에 살아있는 날 동안 주님만을 섬기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놓으신 계획에 부합하게 살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사모하고, 의지하고, 매달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결심하고 가장 먼저 회개해야합니다. 사모함이 없는 신앙생활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져 미끄러졌기에 회개해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지 않았기에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V. 결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는 삶을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함은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을 갈망하지 않기 때문에 맛보는 세상과의 평화, 주님을 갈망하며 주님 앞에 다가가기 위해서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는데서 오는 고통, 이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아첨으로 인해서 만족을 얻는 대신,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하고 고발하는 자기 자신의 신앙 양심의 외침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올바른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갈망이 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대해서 통탄해 하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을 고쳐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큼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갈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없습니다. 기도만큼 하나님을 향해 목마른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최상의 방식은 없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경건한 시인들이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으며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찼을 때 무엇을 행했습니까? 많은 사람을 만나서 하나님에 관한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보다는 혼자 조용한 곳을 찾아서 주님을 갈망하며 자신 속에 있는 이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주님 앞에 토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성한 사람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기도 하였고, 부자도 자신을 가난하다고 고백했고, 권세 있는 자도 하나님 앞에 자기는 궁핍하기 때문에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아뢰지 않았습니까. 기도 하지 않은 것, 예배에 나오지 않은 것, 헌금 하지 않은 것, 그것 말고 갈망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 그것을 깊이 회개하고 자신의 영혼의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하나님 앞에 깊이 뉘우치며 그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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