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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사람 (고후 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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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 (고후 5:11-19) 

제가 17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름휴가를 잘 보내셨습니까?
어떤 분은 검붉게 그을리신 것을 보니까 정말 여름을 잘 보내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얼굴이 하얗다고 해서 여름을 잘못 보내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름이 가고 있으니까 올 추석의 생각은 잠시 뒤로하고 가을에는 꼭 전도의 열매들이 주렁, 주렁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을까요?

간혹 마음이 무너지는 재난을 겪는데도 말이죠.
그런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잔인하시고, 불공평하신데도 그래서 왜라고 울부짖다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고난을 생각하면서도 마음을 누그러트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그러하외다.
내가 주님을 살아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만일 주님께서 나에게도 그런 질문을 하신다면 “네! 우리가 주를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은 하면서도

무심했던 나,
신의를 지키지 못한 자,
원하시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나,
주님을 제대로 닮아 보지도 못한 나,
그렇지만 입으로는 “주를 사랑합니다”

참 뻔뻔스럽죠?
그런데도 우리가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우린 어린 시절에 이런 찬양을 불렀습니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죽으시기 까지도, 십자가 위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으신 주님의 사랑,
70번씩 7번이라도 나를 용서해 주시는 주님의 그 사랑,
전율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막 10:21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나...” 라는 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실패합니다.
결단을 합니다.
약속을 하고, 또 약속을 하면서도, 번번히 실패만하는 나인데도,
주님은 “나를 보시고 사랑하사”

예수님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구속의 은혜를 저 버리고, 어긋난 딴 길로 가다가도,
예수의 사랑만 생각나면 곧 다시 예수께 돌아오리”

이번에 아프칸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난리가 났다는군요.
아! 갈 때는 언제고, 지금은 살려 달라느냐고,
비방하고,
보낸 교회를 욕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교회를 조롱하는 안티 메시지로! 도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겠죠.

그런데 바울을 향했던 비난도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정신 나간 놈,
가정을 돌보지 않는 놈,
미친 놈,

그러나 바울은 13절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라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분이죠.

영국의 일어났던 일입니다.
친구에 대하여는, 시다바리가?... 아닙니다.
친구에 대하여 가장 잘 정의를 내리고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니까 수천 개의 답이 물려들었는데 그 중에 상을 받은 답은?
“친구란 세상이 다 나를 떠나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다” 였습니다.
매우 훌륭한 대답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변질 되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면 절대로 다른 마음을 가지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부부들이 행복하게 사는 거고,
예수 믿는 분들을 신뢰할 수 있는 겁니다.

죠셉 스크리분
예수를 깊이 체험하고, 슬픔 중에서 이런 찬송을 하였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다 나를 떠나가도 주님은 찾아오시는 겁니다.

비록 내 마음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해도,
악이 승리하면 수치스럽고, 구역질이 나게 하셔서,
결국에는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시는 주님,

나를 최고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주님이 계시니
어떻게 주님을 외면하고 살겠습니까?

예수 믿고 새롭게 되면, 주님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는 거예요.

주님!! 찬송가 506장을 부르십시다.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나 같은 사람도 써 주시는 주님!
써 주실 뿐 아니라 더 크게, 더 좋게 하시는 주님,
이런 믿음!!
이게 바로 새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알고자 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16절을 보십시다.
시작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저는 팝송을 참 많이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크레이지 러브를 불렀으니까요.
그 때부터 참 놀라운 속도로 팝송을 알았고, 신나게 불러댔습니다.
요즘도 현철 씨가 나와서 “아줌마, 손잡아 드릴까예” 하면 그냥 미친다죠.

그러나 요즘은 듣는 것조차 찬양만 듣고, 부르고 합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닙니다.
누가 들을까 봐도 아닙니다.

그냥 좋아서입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

알고자 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불치병을 앓고 있는 것도 이 병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하시려는 뜻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탄은요 시시각각으로 내가 소유하고 있는 기쁨을 빼앗으려고 하지마는 그럴 수는 없죠. 내가 아는 걸!!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걸.

그래서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욱 찬송을 부르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이상한 마음이 들고,
불안하고,
무서우면,
바로 그 때 찬송을 부르세요.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찬송하시다가,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넘치는 새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18절을 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화목이 얼마나 좋은지 아세요?
얼마나 좋으면 울산에 화목예식장이 다 있겠어요?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을 집에 가득 채우는 것보다 낫다”
고 잠 17:1은 말하고 있습니다.

“욥 22:21에는 하나님과 화목하면 평안하다. 평안하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도 다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가서 화목하게 된다면 그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달려가서 화목하게 만들면 그건!! 진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건 자동차의 시동장치인 거예요.

진짜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같은 것이 하면서도 주님을 의지하고,
그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더욱 알고,
화목하게 하시다가,
진짜 성도들 새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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