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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아의 후손-복의 근원(셈) (창 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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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후손-복의 근원(셈) 창 10: 6-20

1. 셈의 후손(21-32절)

본문의 내용중 살필 것은 셈의 후손인데 이 족속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영에 지배를 받으며 그 삶을 인도받는 자손이 되었습니다. 이는 특별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까닭이었습니다. 물론 그 선택의 최초 원인은 그다지 크지 않은 문제에서 시작했습니다. 가족들간의 작은 문제이며 잠시간의 소요가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 와중에 복으로 선택을 받은 셈의 후손들의 번성함과 삶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먼저 성경에 나오는 대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이어 기록된 족보를 보면 에벨은 셈의 증손자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기록하기를 그 직계 아들인 아르박삿이나 셀라의 조상이라고 하지 않고,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 그리고 아르박삿과 룻, 아람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가 에벨이었습니다.
그 자손의 계보를 보면

      셈
  +------+------+-------+--------+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룻  아람
      |    +----+-+-+----+
      셀라    우스 훌 게델 마스
      |
      에벨
    +------------+
    벨렉  욕단(세상이 나뉨) ; 13명의 아들
+-----+------+------+-----+-----+----+----+------+-------+----+-----+----+
알모닷 셀렙  하살마  예라 하도단 우살 디글라 오발 아비마엘 스바 오빌 하윌라 요밥

보통 우리의 상식으로 대하거나 또 세상에서 이해하는 대로라면 셈은 에벨보다 엘람이나 아르박삿 같은 아들들의 이름이 거론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특별히 셈의 증손자인 에벨의 이름을 들어서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성경만이 가지는 기록방식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기록방식은 하나님의 뜻을 선명히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의 족보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구원을 베풀기 위한 섭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기록한 책인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구원의 섭리를 보게 하시고 또 구원에 대한 미래의 소망을 보게 하시는 구원의 책입니다.

이 본문의 기록도 그와 같은 안목으로 보면 그 시대에 있어서 에벨은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히 선택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후에 믿음을 계승하여 그 자손에게 믿음의 기업을 유산으로 남긴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에벨의 후손인 것을 보아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셈의 족보를 이야기하면서 먼저 에벨에 대한 언급은 염두에 히브리 민족이라는 실체에 대한 고려가 앞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히브리인의 조상인 에벨은 당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하였음에도 에벨만은 그런 시대의 조류를 좇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칭하기를 에벨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벨'은 '건너편', '건너온 자'란 뜻으로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가나안땅으로 건너온 아브라함을 연상시켜 주는 데 '히브리'(Hebrew)란 민족 이름이 여기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는 학설도 있다.  이유는 히브리라는 말의 본 의미와 발음이 유사한 까닭이다. 히브리(  ,이브리) - '낯선 자들', 혹은 '저쪽으로부터 온 자들'이란 뜻으로 구약에서 비이스라엘인들에 의해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43:32, 46:34). 이 말의 두 의미와 발음의 일치 까닭에 히브리 민족의 어원이 되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이 후에는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리우게 된 듯 합니다. 굳이 오늘의 어휘로 바꾸자면 아마도 예수믿는 사람들에 대한 표현으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뜻일 것입니다.

함의 경우는 아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 후손들에게 저주가 뒤따르게 되었고 또 호칭도 함은 가나안의 아비로 불리웠습니다. 만약에 그가 살아서 자손들이 저주스러운 삶과 하나님을 배역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칭호를 들었다면 참으로 불명예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자녀들이 잘못되는 것처럼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함은 살아서도 자신의 죄된 행위의 결과를 보고 살았으며 또 대대로 계승된 저주의 자취를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순종과 경건으로 택함을 받은 셈, 그는 그 한순간의 결정적인 행위로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을 상속받게 되었고 그는 이후에 본문과 같이 많은 자식들을 얻었고,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을 누렸던 에벨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에벨은 셈의 경건과 순종을 이어받은 자손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한 자녀들이 있고 그 자손대대로 하늘의 은총을 상속받는 자손들을 보는 것보다 기쁜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살고 있는 성도의 가정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육의 세상에 살면서 하늘의 삶을 닮을 수 있으니 이것보다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셈의 후손은 처음의 축복이나 경건은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에벨에게서는 더욱 그 경건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아브라함에 이르러는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런데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은총에도 가속도가 있다.󰡕 는 것입니다. 셈의 경우 처음부터 이런 은혜를 누린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비의 수치를 보면서 단순한 인간적 도덕심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함도 만약에 당시에 흔히 있는 계모와의 통간이라도 그렇고, 아니면 단지 벌거벗은 수치를 본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의 실수의 정도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대대로 저주를 이을 정도로 -

생각해 보십시오 이방인은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하고 있으면서도 문제없이 살아가는 듯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 누가 그런 범죄를 했다 한들 그것으로 이런 대대로 내리는 저주를 받으리라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그런데 함에게는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고 그것은 저주로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셈에게 있어서는 갈수록 하나님의 은총은 빛나고 넘치는 역사였습니다. 그 피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총에도 가속도가 있습니다. 저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함의 자손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역하는 무리 속에 언제나 함의 자손들이 그 중심에 섰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요.

에벨의 아들인 벨렉은 그 이름이 “나뉨”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로 벨렉의 때에 온 족속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그 흩어짐을 면하고자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결과는 더욱 이산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미 “나뉨”이 선언된 까닭에 무엇으로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 심각한 양상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이때에 니므롯이 살았고 바벨탐 건설에 큰 영향력이 그에게 있다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리해 보십시오, 은연중에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 함의 자손들, 또 작은 행위 속에 그 속마음의 경외함을 나타낸 셈의 후예는 작은 차이에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바라기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가속도가 붙기를 바랍니다. 은총에 가속도가 붙기를 축원합니다. 셈의 후손들처럼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는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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