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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옛 사람과 새 사람(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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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옛 사람과 새 사람에 대해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22절의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옛 사람의 특징은 먼저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욕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욕심이 있기 때문에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냥 욕심이 아니라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이 바로 옛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욕심을 쉽게 표현하자면 우리로 하여금 바른 길에서 벗어나 그릇된 길로 이끌고 죄악의 길로 인도하는 욕심을 유혹의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심은 자기중심적인 욕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배만 채우고 호의호식하고 안락하게 살아가려는 욕심을 말합니다.  이런 욕심 속에 살아가는 자를 성경은 옛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진 사람은 그 마음에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그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막4:19).  욕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하지만 마음의 욕심이 그 말씀을 막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하늘의 신령한 만나를 먹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짐승들과 달라서 잘 먹고 배부르게 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고는 참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히려 건강한 사람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하는 사람들도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육신이 연약하고 병든 그들의 모습은 만족하며 기뻐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참 만족은 이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후 3:5에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참 만족을 얻고 살아가는 인생은 행복과 기쁨 그 자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참 만족이기 때문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면 우리의 인생은 실패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은 우리를 죄악된 길로 이끌며,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 욕심을 따라 살면 순간적인 만족과 기쁨을 얻는 것 같은데 진정한 만족은 얻지 못합니다.  목마른 사람이 바다의 소금물로 그 목마름을 해갈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이 말라서 자신의 욕심을 계속 채우고 채우다 보면 결국 그 모든 욕심이 허망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1:15)” 고 말씀하십니다. 

욕심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런 거룩한 욕심을 꿈 혹은 비전이라고 표현합니다.  존 하버드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후 그가 가졌던 거룩한 욕심과 비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 황무지 같은 땅에 신실한 하나님의 종을 키우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많이 기도하면서 보스턴의 한 구석에 대학을 세웠습니다.  그가 대학을 세울 당시 가진 것이라고 단돈 700파운드와 200권 책이 전부였습니다.  존이 대학을 세운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거룩한 욕심과 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욕심과 비전에 복에 복을 더하셨습니다.  그래서 존 하버드를 통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이름 있는 하버드 대학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 미국을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바로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 이왕이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삶을 살기보다 거룩한 욕심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 영광위해 살다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866년 8월 9일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조선 땅을 밟은 28세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통역관이란 직함을 가지고 이 배를 탔습니다.  오로지 조선에 예수를 전하고 조선에 사는 영혼들이 구원받기만을 간절히 소원하는 열정으로 그의 가슴은 불타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제대로 전도해보지도 못하고 대동강변에서 참수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외치면서, 결신을 맺은 적도 없었습니다.  세례를 베풀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성경공부를 인도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는 예수 믿으라고 외치며 그가 가져왔던 성경을 건네주며 죽어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죽음은 열매 맺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 사라져가는 의미 없는 한 사람의 죽음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최초로 이 땅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 의 죽음에 복에 복을 더하셨습니다.  그가 참수 당했던 대동강변에 그의 기념교회가 세워졌고 결국 그 교회가 1907년 평양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던 장대현 교회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죽어 가면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조선에 교회가 세워지며 조선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리라 그는 상상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코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순교의 피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제 평양 대각성 운동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한 목회자와 22명의 성도들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젊음을 주님 앞에 드리기로 결단했습니다.  그곳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죽음이 앞을 가로 막을지도 모르는 곳이었습니다.  그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며, 그들 속에 예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사람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산과 계곡으로, 해외로 나가는 동안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어렵고 힘든 자들을 위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직장까지도 내려놓았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름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 목회자와 또 한 사람의 평신도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평양 대각성 운동이 있은 지 100년이 되는 해 이제 한국의 교회는 복음의 불모지에 두 사람의 순교의 피를 뿌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참새 하나라도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사람의 손에 달린 것 같고, 정치적인 관계에 달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하나님께서 만든 만물 가운데 최고의 영광스러운 존재, 걸작품은 다름 아니라 사람이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귀한 생명, 결코 헛되이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저는 그 순교의 피가 결코 헛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이 그 순교의 피 속에 있으리라 확실히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욕심을 따라 사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길 빕니다.

18절에 보니까, 옛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에게는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죽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다 누리고 있어도 하나님 없으면 그의 생명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이고 썩어져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부귀영화를 누렸던 인물은 솔로몬 왕이었습니다.  세상에 왕보다 더한 권력이 어디 있습니까?  최고의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000명의 처첩을 거느린 사람이었습니다.  왕이었기에 세상에서 내놓으라는 미모를 가진 여자를 다 아내로 취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세상에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전1:2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다 가졌고 다 해보았으면 그는 “복되고 복되며 복되고 복되니 모든 것이 복 되도다” 고 고백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는 헛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헛된 것입니까?  왕이라는 권력 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 권력은 헛된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물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재물도 헛된 것이요, 내가 가진 지식과 명예 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입니다.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사업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고 곧 안개와 같이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지 않으면 나의 하루가, 아니, 1년이, 아니 인생전체가 다 헛된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보니까 하나님 없는 인생은 썩어져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솔로몬의 그 부귀영화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없는 부귀영화는 곧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와 같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남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어떤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력도 하나님 없으면 헛된 것이란 교훈을 우리에게 남긴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처럼 부귀영화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늘 죽음의 고비 고비를 어렵게 넘기며 살았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사울 왕으로부터 쫓기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왕이 되고 나서는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쫓기는 부끄러운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 험난한 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편 23:1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늘 나를 인도하는 목자가 되니까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해야 될 사람은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을 다 가졌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어떤 분이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남겼던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목욕을 다 마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계속 울렸습니다.  누군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요즘은 전화기 성능이 좋아져서 통화 하는 내용이 곁에 있는 사람까지 잘 들립니다.  딸이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나 MP3 하나 사고 싶은데 사도 돼?”  아빠가 대답합니다.  “암~ 되고 말고.”  “근데 아빠 여기 나와 보니까 휴대폰이 너무 예쁜 게 많은데 하나 바꿔도 돼?”  역시 아빠가 대답합니다.  “그래 그래라”  조금 있다가 딸이 또 묻습니다.  “아빠, 나 컴퓨터가 너무 느려져서 그런데 신형 하나 사도 돼?”  하고 묻습니다.  그 통화를 듣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MP3나 휴대폰은 1-20만원이면 되지만 컴퓨터는 백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것이라 설마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빠는 “그래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  하고 통화가 끝났습니다.  이 남자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좌우를 둘러봅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휴대폰 주인~ 전화기 좀 찾아 가세요~” 하고 외치더라는 겁니다.  자기 딸이 아니니까 너 하고 싶은 거, 너 원하는 거 그리고 네가 뭘 해도 다 괜찮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겁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은 썩어져 가는 것이요, 허망한 것이요, 하나님이 없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벗어버려야 합니다.  옛 것을 버리지 않고는 결코 새 것을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23-24절에 보니까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속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년 수가 우리의 속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있어야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 붙들고 살아야 변화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 받아야 속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운다고 되지 아니합니다.  힘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뜻과 행실이 착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 속에 오셔야 우리는 변화 받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는 우리는 변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9)”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찾아오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우리는 변화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속사람이 바뀌지 아니합니다.  성령 받고 은혜 받은 사람은 먼저 주님 앞에 회개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라”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전 얼마 전에 ‘우간다의 부흥’이라는 영상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상물을 보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간다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  독재자 이디 아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나라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군인들이 갓 난 아기를 안고 가는 여인을 검문하면서 아기의 신분증을 내 놓으라고 합니다.  갓 난 아기에게 무슨 신분증이 있습니까?  신분증이 없는 아기를 빼앗아 하늘로 던진 후에 총에 꽂아 둔 칼에 찔러 죽였습니다.  거리에는 시체들이 즐비했습니다.  누구 하나 그 시체를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낳은 아기가 아프다고 낳은 지 3개월에 만에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2,3일만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밖에서 죽은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날 군인들이 탄 트럭들이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이 군인들은 그 마을을 빙 둘러섰습니다.  그리고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격훈련을 실시하며 그 마을 사람 전부를 죽이고는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주술이 팽배했던 나라가 우간다였습니다.  그 결과 하늘 문이 닫혀서 비를 내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땅도 그 소산을 내지 아니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에이즈가 창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로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은 교회 목회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합니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잠자고 있다” 고 조롱했습니다.  우간다는 악한 세력이 그 나라를 조정하고 죄가 창궐한 죽음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우간다 교회의 목회자들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늪지에 숨어서 밤을 세워가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주님 도와달라고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 죽음의 땅을 구해 달라고 눈물 흘리며 그들은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공설 운동장에 모여 교회가 철야하며 기도했습니다.  교회마다 구역마다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면서 몸 안에 무엇인가 적셔지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땅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적인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7명을 데리고 개척했던 교회가 2주 만에 2천명이 되었고 지금은 주일 날 다섯 번 예배드리는 자그마치 2만 명이 모이는 교회로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간다의 교회는 모이기만 하면 기도하기 또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이즈가 창궐하던 나라가 에이즈 발생이 급격하게 감소할 뿐 아니라 치유되기 시작했고, 범죄율이 50%나 감소되었습니다.  정치권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서울 상암 운동장 같은 곳에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권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새 천년을 앞두고 그 나라는 하나님 앞에 우간다는 앞으로 우상숭배를 버리고, 주술을 타파하고 주님을 모시고 살기로 다짐하면서 이 나라를 하나님 앞에 바칠 것을 서약하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물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어떻게 죽음의 땅 우간다가 변화되어 영적 부흥을 이루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He was invited.  하나님이 초대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영상물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요엘2:12-13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 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는 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새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된다고 스가랴4:6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읍시다.  이 나라의 참된 광복은 사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너희가 간절히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약속하신 주님께 우리의 소망과 미래가 있습니다.  (방충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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