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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눅 8: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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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눅 8:26-39) 

◈ 유태인들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 3 가지의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키소(돈 지갑을 넣는 주머니)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아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코소(술잔)
술을 어떻게 마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함께 술을 마셔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셋째, 카소(분노를 나타내는 정도)
분노를 어떻게 다루느냐 어떤 때 노여워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는 돈과 술과 노여움 분노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 성도의 믿음을 알아보기 위한 기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의 기준은 돈입니다. 두 번째의 기준은 고난입니다. 세 번째의 기준은 아픔입니다.
마귀는 돈과 고난과 아픔(질병)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성도는 돈 문제에 대해서, 고난 중에도, 아픔 중에서도 믿음을 더욱 굳게 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정금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과 제자들은 풍랑을 뚫고 한 도시에 도착하셨습니다. 거라사라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상당한 수준의 생활환경이 갖춰져 있어 사람답게 살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여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한 사람이 짐승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모습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특징이 있습니다.
① 부끄러운 것을 몰랐습니다.
이 사람은 옷을 다 벗어버리고 발가벗은 채로 무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② 자기 집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자기 집 놔두고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절망인 죽음 가까이에서 살았슴

③ 초능력을 가졌습니다.
이 사람에게 쇠고랑을 채우고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놔도 그 묶은 것을 끊어버릴 정도로 힘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이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는 이 사람이 귀신에 들렸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7,29절)

귀신이 주인이 되면, 성격도 변합니다. 순진하던 사람이 달라집니다. 마음에 끊임없이
나쁜 생각이 몰려옵니다. 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평소에 마음이 곱고 착실한 사람인데도 술만 들어가면 제정신을 못 차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술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 게임중독에 빠진 아이가 자기 동생을 처참하게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왜 동생을 죽였냐고 하니까, 게임대로 한 번 그냥 죽여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모습이 소름이 끼쳤습니다.
우리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서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로 아이들을 대량으로 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기자가 '왜 아이들을 이렇게 죽였냐'고 하니까, 대답하는 말이 '심심해서 한번 해보았다'고 했습니다.
철이 없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 바벨론을 쌓기도 했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어리석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간의 삶을 간섭하는 귀찮은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을 제외하고 하나님 없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벗어난 인간들은 주인이 되려다가 오히려 노예가 되어서 비참한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 다 무엇인가에 미쳐서 정신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모릅니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점점 더 죄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범죄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책에서, 영화에서, 매일보는 신문과 텔레비젼에서/ 인터넷에서/ 게임에서/ 여러 가지 악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거라사의 광인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사관계 등등 모두가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권세는 마귀가 잡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 세상은 점점 더 살기 힘든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귀신들린 세상, 귀신들린 사람들입니다.

◈ 더 큰 문제는 이 거라사의 광인은 속수무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대책도 없이 자기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마귀가 이끄는 대로 끌려 다녔습니다.
무덤사이에 거하며 절망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무덤은 인간의 가장 절망적인 죽음이 있는 곳입니다. 완전히 귀신에게 잡혀서 자기의 의지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마귀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욕심, 미움, 시기, 걱정, 원망, 불평, 낙심 이런 마음은 마귀가 좋아하는 분위기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 속에도 이런 틈이 보이면 언제라도 덤벼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 합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우리가 방심하고 있으면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게 됩니다.
마귀에게 길을 열어주고 나면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닙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아무 힘도 없이 이끌려 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시기 바랍니다.

◈ 그런데 28절에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귀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적인 세계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이 예수님을 알아보고는 엎드리어 절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완벽한 구세주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악력에 사로잡힌 사람이 예수님이 무저갱으로 넣는 심판의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예수님 앞에 엎드리기도 했습니다.
귀신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척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모양을 마귀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양만 성도라고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 예수님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고 계십니다.
이 말은 "너를 움직이는 주인이 누구냐“ ”네가 무엇을 따라 살고 있느냐“ 고 물으시는 것.
사람은 이 껍데기도 중요하지만, 그 중심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마음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 누구를 따라/ 무엇을 의지하며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 마귀가 대답합니다.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여기서 마귀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큰절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당신과는 상관이 없다."
마귀의 본심이 드러납니다.
“이 사람을 이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 “상관마라 하나님과 상관없다”는 것이
마귀의 본질입니다.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 예수님은 마귀의 본질을 밝히시고 마귀들을 처리하셨습니다.
거라사 광인에게 있는 마귀는 군대였습니다. 군대라는 말은 레기온인데 이것은 군인의 수가 6000명 규모의 부대를 의미합니다. 마귀는 막강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귀도 예수님께 굴복합니다.
"무저갱으로 들어가지 말고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마귀는 예수님의 허락을 받고서, 돼지에게로 들어갔고, 호수에 내리달아 다 죽었습니다.
마귀도 예수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이제 이 사람이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① 옷을 입었습니다. (35) 이제 사람구실을 하게 되었습니다.
② 자기 맘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이 이제 정신이 온전해졌습니다. (35)
③ 희망이 없이 무덤 속에서 죽음 가운데서 거하던 사람이 영생을 주신 예수님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38)
④ 자기 몸을 찌르며 자해하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39)
아무 쓸모없던 사람이 유익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하의 권세를 잡은 마귀도 예수님께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마귀는 대단한 적이지만 예수님에게 마귀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군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시길 바랍니다.

◈ 거라사 광인은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인생을 살고자 했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마귀의 노예가 되어서 끌려 다니며 살았습니다. 절망스러운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한 절망 가운데서 완전한 희망을 얻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낙심하고 방황하며 헤매는 이유는 귀신의 세력 때문이 아닙니다.
절망 가운데 한숨쉬는 이유는 귀신의 힘 때문이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내 생활 속에서 내 인생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며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는 예수님의 권세를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자연과 영계까지라도 다스리시는 권세가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풍랑이 이는 배에서 예수님은 주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제자들에게 말없이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군대귀신이 들린 거라사의 광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들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믿음은 생사를 맡기는 것입니다. 주권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이 남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으십니까? 어떻게 고백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누구의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주인이 되어 여러분을 다스리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정직하게 아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고백하시기를
바람.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고백하시기 바람

귀신을 쫓아내시며 병을 고치시는 능력 많으신 예수님을 여러분의 힘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
우리의 인생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주권을 날마다 순간마다 인정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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