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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향기 (고후 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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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 (고후 2:14-17)

      1980년대 초에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충청도 산골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했을 때 많은 동네 사람들이 목장을 만들어 소를 길렀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소를 기르는 사람들은 천연덕스럽게 ‘돈 냄새’라고 자랑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외부사람들에게는 맡기 싫은 냄새였지만 소를 기르는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밑천이 되는 냄새였지요.

      냄새는 쉽게 번져 나가 전염성이 있습니다. 집안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온 가족들의 몸에 담배 냄새가 배게 됩니다. 본인이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옷에 담배 냄새가 배여서 어느 곳에 가든지 담배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제가 여간해서 향수를 치고 다닌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그렇게 합니다. 은은한 향취가 왠지 좋기 때문이지요. 

      오늘 여러분들은 아름다운 향기를 뿜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고후 2: 14절 말씀처럼 우리는 “각처에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야”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 지역 사회에 먼저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향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우리 스스로 내는 것이 아닙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 곁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담배 냄새가 배이듯이, 좋은 향수를 친 분 곁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향수 냄새에 감염이 되듯이, 그리스도 예수와 오랫동안 붙어 있으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절로 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사람숫자가 많다고 해서, 헌금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교회 건물이 아름답다고 해서, 이와 같이 어떤 외적인 것들 때문에 지역 사회에 알려지는 교회가 아니라, 이곳에 모인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 받고 그리스도인다운 향기를 나타내어서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봉독한 고후 2: 15-1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여기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분명히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the aroma of Christ), 즉 소유격 ‘그리스도의’ 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 향기가 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며,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향기는 내가 도덕적 인격적 수양을 많이 해서 스스로 얻는 향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서, 그 분과 오랫동안 교제했더니 나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냄새에 취하고 동화되어서 흘러나오는 향기입니다.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은 화장품 냄새가 몸에 배입니다. 꽃집에서 일하는 분들도 향긋하고 싱그러운 꽃향기가 온 몸에 가득 배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자주 나와서 예수 향기에 취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있어서 그 분의 향기를 드러낼 때 이 향기를 맡는 사람들의 그룹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집니다.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로마 군인들의 승전 개선식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서를 썼을 당시에 나라간에 전쟁이 자주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군사들은 장군을 비롯하여 모든 병사들이 의기양양하게 승전가를 부르면서 개선합니다. 임진왜란이 벌어질 당시의 기록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바다에서 전투를 벌일 때 해변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전쟁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군사를 응원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대대적인 전승을 거두고 군인들이 성안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온 도성 안에는 큰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개선 퍼레이드였지요. 

      이천 년 전 바울이 살던 당시에도 전쟁에서 이긴 군인들이 개선 퍼레이드를 하게 될 때 먼저 나팔과 북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승리의 소식을 알리면 백성들이 호응해서 일제히 박수와 환호성을 울리면서 성문까지 뛰어나와 병사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것을 신호로 성문이 활짝 열리면서 사령관인 장군들이 입성하게 되고 그 뒤를 이어서 여러 장교들과 병사들이 차례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군사들 바로 뒤에 커다란 향로가 여러 필의 말이 이끄는 마차에 실려 들어오게 되는데 바로 거기에 향불이 타오르고 흰 연기와 향내가 성안에 가득 차게 됩니다.

      그 향로 뒤에 전쟁에서 패배한 포로들, 즉 적군의 왕들과 장군들, 병사들이 차례로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 들어옵니다. 이와 같이 온 성안에 가득 진동하는 향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졌습니다. 먼저 개선장군들과 병사들에게는 승리와 기쁨의 향기였지만, 패배한 장군들과 병사들에게는 공포와 수치, 멸망으로 이끄는 냄새가 되었을 것입니다. 승전한 사람들에게는 장미꽃 향기처럼 기분 좋고 상쾌한 냄새가 되었겠지만, 패전한 포로들에게는 유독성을 품은 연탄가스처럼 죽음의 공포를 자아내는 냄새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향기를 맡은 사람들 중에는 생명의 향기를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향기를 느끼는 사람들은 누굽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그리스도를 전할 때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이들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이들은 누굽니까? 그리스도의 향기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향기를 내뿜으면, 이 향기가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과 감사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멸망과 죽음으로 이끄는 냄새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을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갖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와 오랫동안 교제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내 향기가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파되는 곳마다 어떤 이들은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향기를 맡게 되고, 또 어떤 이들은 멸망과 죽음에 이르는 냄새를 맡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냄새의 특징은 강한 전파성과 감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서 나는 악취는 곧바로 온 동네에 퍼지게 됩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 어떤 집이 맛있는 요리를 하게 되면, 제가 8층에 사는데 비록 1층에서 음식을 만들고 문도 다 잠가 놓았지만 8층까지 냄새가 퍼집니다. 냄새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선교사요 유명한 기독교 작가였던 리타 스노우덴(Rita Snowden)이라는 여성이 영국 데본(Devon)이라는 곳에 휴가를 갔습니다. 식당에 들어가 창문 곁에 자리를 잡았는데 갑자기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창밖을 내다봤더니 모든 것이 다 아무 이상도 없었습니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 거리를 왔다 갔다 할 뿐이었습니다. 향내를 참지 못한 리타가 바깥으로 나갔더니만 향내는 더욱 더 강렬하게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온 리타는 주인에게 냄새의 출처를 물었습니다. “아, 손님께서 잘 모르시는군요. 이 동네에는 향수 만드는 공장이 있답니다. 지금 때마침 점심시간이 되어서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이렇게 아름다운 향내가 온 동네에 진동하는 거랍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가는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 거리 저 거리 온 세상에 가득 풍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왜 향수 화장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장 밖으로 나갈 때마다 아름다운 향내를 온 동네에 두루 퍼지게 하는데 왜 우리 예수 믿는 이들이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밖으로 나갈 때 예수 향기가 나지 않는 걸까요? 우리가 교회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도무지 예수 향기를 휘날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 예수 향기에 감염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삶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오래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간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향내에 전염이 되어서 어느 곳에 가든지, 각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교회와 교인들이 다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는 사람들마다 그리스도께 돌아와 구원받고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자, 이렇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한 뒤 사도 바울은 17절에 참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17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볼까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우리말 개역 성경의 번역은 좋지 않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 번역이 훨씬 더 좋은 번역이고 이해도 잘 됩니다.

      그런데 이 17절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위에 있는 16절 맨 끄트머리에 있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누가 이 일을 담당하리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서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게 해야 하는데, 이 일을 과연 누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바울은 17절에서 바로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향기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종교인들 중에는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설교하고 가르칠 때 돈을 받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진리를 설파하면서도 청중들에게 받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청중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가르치지 못하고 청중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했습니다. 이들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었고 젯밥에 더 관심이 갔던 것이지요. 그러니 이들이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뿐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런 거짓 교사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도무지 자격 미달이라고 일갈하는 것입니다! 

      돈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의 상품처럼 팔아 먹는 복음의 장사꾼들과 달리 바울 자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임을 역설합니다. 복음의 장사꾼들과 자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강변하는 것이지요! 교인들에게 신세 지지 않기 위하여 자비량 선교, 즉 장막 만드는 직업까지 갖지 않았습니까? 자신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명리(名利)에 따르지 않고 순전함으로 하나님의 참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정신, 이런 태도로 복음을 전할 때 그것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향기를 흩날려도 우리의 향기에 도무지 감화되는 사람이 없다면, 이것은 우리가 순전한 마음으로 진리 위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백화점 같은 곳에 가면 향수나 화장품을 파는 판매원들이 있습니다. 고객들에게 하나라도 더 팔 요량으로 원하지도 않는데 향수를 뿌려주고 화장품 샘플을 발라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뿌려주는 향수와 화장품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그렇게 향수와 화장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하여, 순전히 영리를 목적으로 샘플들을 뿌려주고 발라준다고 해서 손님들의 마음이 움직여 그 향수를 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장삿속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꼭 알맞은, 정말 은은하고 향기 나는 향수를 치고 아름다운 화장품을 바르게 될 때 사람들은 저절로 우리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의 향취에 취해 매력을 느낄 때, 자기도 그런 향수, 그런 화장품을 갖고 싶다고 이것저것 물어올 것입니다. 세일즈맨들의 샘플과 달리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이 우리의 향기는 금방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 기독교의 사역도 말 그대로 사역(使役)이 되어야지 사업(事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사는 장사꾼들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늘 우리의 향기가 세상에 감화력을 주지 못하고 구원이나 멸망, 생명이나 사망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능력 없는, 그저 하나의 냄새로 그치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란하게 떠들고 과시하고 자랑하고 파는 도붓장수, 외판원과 다름없이 전도하고 선교하기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네티즌들의 기독교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무례하고 안하무인격의 전도방법을 공격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무료 급식을 돕기 위하여 민들레 밥집을 운영하는 두타 스님이 거리에 앉아 탁발을 하고 있는데 아주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 한 사람이 십자가를 손에 들고 스님의 머리 위에 안수하는 사진이 온라인에 떴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요란스럽고 무례한 방법으로 한다고 전도가 되고 개종이 될 리 만무한데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그렇게 용기 있게 전도하니 참 대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뭔지 모를 자괴감(自愧感)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보다는 뭔가 불쾌한 냄새가 더 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전도와 선교가 우리의 교세를 확장시키고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리는 성격의 과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뭔가 우리의 인격과 성품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 이웃에게 잔잔한 감화를 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전도 더 좋은 선교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말 우리의 인격과 성품과 삶에서 잔잔한 그리스도의 향내가 소리 없이 번져나간다면 우리의 향기는 금방 어떤 사람들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생명의 향기가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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