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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믿음의 사람을 보십시오 (단 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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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목은 “이 믿음의 사람을 보십시오”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말씀을 들으러 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을 우리는 본받고자 교회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믿음의 사람들이 받아 누리는 축복과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을 우리는 늘 경험하며 배웁니다. 하나님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잘 믿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셨고, 아브라함 시대 때도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복 받은 것처럼 수 천 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믿음의 사람은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는다라고 히브리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고 하는 세 친구가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으로 남의 나라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풀무불 같이 뜨거운 불에서도 살아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에게도 시험, 죄악에서 승리하시고 모두 풀무불에서 나와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는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져 주시는 정말 놀라우신 하나님, 풀무불에서도 머리털 하나 타지 않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를 하나님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믿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려면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려면 여러분이 잘 믿으면 하나님은 믿음대로 여러분을 늘 가까이 하십니다. 믿음을 떠나도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죽음으로 경험합니다. 큰 불행과 고통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믿으면 우리는 고통에서 승리하고 풀무불에서 사자 굴에서 승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왜 물에 빠지고 불에 타며, 길에 넘어지고 이 세상에서 수많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성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출세는 흔히 어디에서 오는가? 오늘날처럼 줄을 잘서야 되는가? 처세술이 있어야 되는가? 누구보다 더 머리 회전이 빠르고 그 시대와 앞 시대를 잘 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능력이 있으면 성공하는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성공은 하나님께로 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자에게는 풀무불에서 살 뿐만 아니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바벨론 나라에 높여서 모든 지방을 다스리게 하는 큰 성공을 안겨주십니다.

  이 세 가지를 합하면 하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능하시며, 그를 믿는 모든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결코 이 세상에서 머리털 하나 상치 않고 보호를 받으며, 은혜를 받아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잘 믿는 일에 섬기는 일에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짧은 일생, 너무 빨리 지나가는 인생, 이 한 박자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인생을 어디에 목표를 둘 것입니까? 야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면서 그를 사랑하고 그를 경외하는 것, 그를 기쁘시게 하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며 그의 은혜 아래 살아가는데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이 세상에 쓰레기 같은 비천한 존재일지라도 하나님 잘 믿으면 하나님은 그를 높여 주시고 존귀하게 하시며, 열방 세계 열국위에 머리로 만들어 주시고 뛰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지혜”라고 하는 글에 그런 것이 나옵니다. 벌도 하루에 삼분의 일밖에 일하지를 않지만은 일을 할 때는 집중해서 일을 한다라는 것입니다. 다른데 어디에 관심을 안 갖고 오직 꿀을 찾아서 수없이 먼 길을 달려가고 계속해서 그 하나에 집중한다라는 것입니다. 개미도 하나에 집중합니다. 모든 생명이 하나에 집중할 때에 평안, 자유, 번영 발전이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여러분께서도 해 보셨을 것입니다.

볼록렌즈에다가 햇빛을 받아 종이에다가 탁 집중을 하면 종이가 어떻게 됩니까? 불이 납니다. 탁 불이 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 집중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에 유일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집중하면 우리는 살고 하나님의 일에 하나에 집중하므로 다른 건 그럼 안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따라옵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마귀도, 죄 짓는 길도, 망하는 길도, 왜 망하느냐? 하나에 집중해서 망하는 것입니다. 나쁜 길에 집중하니까 생명을 잃고 나쁜 것에 그 하나에 집중하면 어떻게 되느냐 다른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도박에다 집중합니다. 수 백 만 명이 도박에 집중하면 도박에 집중하므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가정도, 행복도 다 잃어버립니다. 죄악에, 술에 집중합니다. 그러면 다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마귀는 잘못된 일에 집중하게 합니다. 좋은 일, 하나님, 하나님 믿는 일에 집중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집중되어서 잘 믿는 일에 성공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마음이 건강합니다. 삶은 부지런해집니다. 생활은 깨끗해집니다. 대인관계는 원만합니다. 이 하나에 집중하므로 오늘 어떤 분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오장육부도 다 제자리로 돌아간답니다. 생각이라든지 잠도 잘 오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답니다. 좋은 일 하나에 집중하므로 모든 것이 따라온다라는 겁니다. 행복도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많은 사랑의 에너지를 만들어서 너무너무 사랑해 주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행복하게 산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인간의 불행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쁜 일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까? 땅도 좁고 환경도 어렵고 모든 것이 불리한대도 왜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합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 믿는 일에 집중하는 민족입니다. 유대인의 요절은 딱 하나입니다. 유대인은 밤낮으로 외우고 끊임없이 가르치는 말씀이 쉐마입니다. 쉐마. 신명기 6장 4절에서부터 5절에 있는 말씀, 쉐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 사랑 안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더 읽어보면 무슨 말씀이 나옵니까? “집에서나 들에서나, 길을 걸을 때나 누웠을 때라도 이것을 강론하라. 너희 자녀에게도 부지런히 밤낮으로 계속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에 집중하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과학자가 나옵니다. 그들은 과학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과학자가 나오는 것은 야훼에게 집중하므로 모든 과학, 물리학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집중하므로 물질의 복을 받아 세계의 부를 다 갖습니다. 유대인의 가정은 건강합니다. 유대인의 사상은 건강합니다. 유대인의 예술이 세계를 이끌어 가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유대인들이 정치를 왜 잘합니까? 하나님 믿는 좋은 일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창조주 나의 하나님으로 알고, 내 영혼이 주님을 향하여 집중할 때 여러분은 승리합니다. 놀라운 능력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고 위대한 생애의 창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저는 물고기를 잘 잡습니다. 제 아무리 잘 잡아도 물고기 잡는 일은 저를 못 따라 옵니다. 저는 물고기 잡는 일에는 비상한 지혜가 있습니다. 물을 보면 어떤 물이든지 여기는 무슨 고기가 살고 어떤 고기를 어떻게 잡느냐가 다 나옵니다. 저의 집은 가난해서 고기를 잡는 장비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흔한 반도도, 그물도 없습니다. 언제나 타잔처럼 빈 몸으로 나옵니다. 원더우먼과 같이 그냥 완전히 아래 옷만 입고 강으로 나가면 저는 잡아냅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수많은 환경 속에서 저는 반드시 고기를 잡아서 한껏 가져다가 아버지에게 늘 바쳤습니다. 늘 지져드렸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비결이 있습니다. 특별히 물이 많아도 잡아냅니다. 큰물이 있어도 그 물에 피라미들이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닐 때에도 수 십 마리를 잡아냅니다. 얼마나 빨리 움직입니까? 떼를 따라 움직이는데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여러분만 아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잡느냐하면 이 피라미를 무리에서 한 마리를 집중해서 이탈시켜야 됩니다. 같이 섞이고 왔다 갔다 하면 어느 것인지 잘 모르니까. 한 마리를 밖으로 이탈시킵니다. 그리고 밖으로 그 무리에서 이탈 된 한 마리를 집중으로 공격합니다. 빨리 움직이도록 제가 따라갑니다. 천천히 가면 안 되니까 한 3분만 계속 물길로 뛰어다닙니다. 막 따라 다니면 이건 3분 내에 지쳐가지고 모래위에 머리를 박든지 안 그러면 돌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잡습니다.

이 전략을 보면 분명히 마귀를 압니다. 교회는 무리이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의 무리가 모인 곳. 모든 생명은 무리가 있을 때 안전합니다. 그래서 사탄, 이단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특별히 한 사람을 표적해 교회 무리에서 떠나게 만듭니다. 밖으로 이끌어 냅니다. 불행도, 영적인 타락도 다 거기에서 옵니다. 이단들이 노리는 백퍼센트가 교회 안에 불평 불만하는 사람, 뿌리 내리지 못하고 뭔가 무리에게서 이탈하려고 하는 사람을 밖으로 유인합니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세뇌를 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폐인을 만들어 버립니다. 이게 100% 이단의 무기입니다. 이것은 이단만 아니라 사탄이 하는 일이 항상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집중하시고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고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을 떠나서 옵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영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는 어두움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나라들은 지금 어두움에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어두움입니다. 예를 들면 그들의 문화와 정치와 경제가 캄캄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나라들, 영혼은 어둡습니다. 방황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정은 어두운 가정입니다. 내 영혼에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질 때 우리는 다 환하게 빛 가운데 살게 됩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95장) 하늘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찬양의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유행가를 많이 불러도 그 마음에는 유행가가 없습니다. 그 마음은 울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의 심령은 괴로움으로 노래 부르는 것입니다. 찬양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찬양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 중에도 속에 기쁨이 없는 사람은 찬양을 못합니다. 내 안에, 내 영혼에 구원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찬양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구원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서울 고검에 부장검사로 계시는 분인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책을 저술 했습니다. 이분은 부장 검사님이신데도 믿음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습니다. 참 좋은 책입니다. 여기 그런 말이 나옵니다. 미국에 어떤 과학자가 사람이 죽는 순간 마지막에 우리 인간이 영적 모습이 어떻게 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래서 두꺼운 납관을 해 밀봉을 해서 이 사람을 딱 봉해 놨습니다. 엑스레이나 레이저나 감마선이나 무엇으로도 통과할 수 없도록 납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지나면서 너무 놀라운 것은 아무것도 통과할 수 없는 이곳에 제 3의 광선이 납관을 투과해서 나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영적인 피조물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 올 때 영적으로 태어나게 되어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살게 되어져 있으며, 이 땅을 떠날 때는 영혼이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갑니다. 소천입니다. 그 분이 불러 주셔서 그 분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나라로 가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음부로 가게 되어 있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삶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온 세계를 정복한 느브갓네살 왕이 바벨론 나라에 27미터나 되는 금 신상을 만들어  누구나 여기 절하게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독재자는 언제나 불안합니다. 국민이 뽑아 준 지도자는 불안하지 않지만 독재자는 누가 나를 대적할지 끊임없이 불안 가운데 지냅니다. 그래서 이 독재자도 누가 나를 대적하는 사람이 없는지 큰 우상을 세워놓고 다 여기와 절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 세 청년은 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붙들려 갑니다. “너 정말 절하지 않았느냐?”, “예. 절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은 어떻게 절하지 않았느냐?”, “예. 저희는 야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우상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그래 지금이라도 좋다. 지금이라도 절하면 너희들 살려 두지만은 절하지 않으면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서 너 살 수 있겠느냐? 저기에 집어넣을 것이다.”, “폐하! 우리는 지금도 절 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절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절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풀무불에 들어갈찌라도 우리는 절 할 수 없습니다. 죽어도 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풀무불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안 건져 주셔도 좋지만은 우리가 믿는 우리의 하나님은 모든 환란에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이 세 사람을 불에 넣었지만은 풀무불속에 들어갈 때 세 명이 들어갔는데 보니까 한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밖에서 보니까 한 사람이 더 있는데 이 한 사람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그 불길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 줍니다. 그래서 이 세 사람은 다시 나와서 바벨론 나라에 훌륭한 지도자가 된 것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이 외에 어디에서든지 무릎을 꿇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이 외에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져버릴 수 없습니다. 마귀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불의와 타협할 수 없습니다. 악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어떤 길이라도 우리는 결혼을 해도 사업을 해도 친구를 사귀어도 길을 걸어가도 정치를 하든 무엇을 하든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에 안 맞는 길은 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삶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를 유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나보고 절해주면 천하의 영광을 다 주리라.” 예수님은 당장 무슨 말씀을 했습니까?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따라가면 천하에 영광이 주어질지 몰라도 바로 뒤에 사망이 따라옵니다. 마귀를 따라가면 번영과 물질이 따라올지 모르지만은 바로 뒤를 실패와 사고가 따라갑니다.

  지난주에 아마 여러분은 신문을 잘 보셨을 것입니다. 1988년 미국 피츠버그에 막 노동자 윌리암 포스트는 160억의 복권을 탔습니다. 그는 집을 사고 자가용 비행기까지 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로 인하여 이혼을 6번이나 하고 형제간에 불화하고 마지막에 가정은 다 파괴되고 망해버렸습니다. 이 분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거기서 악몽이 시작된다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150억이 1600억이 인간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성공과 행복과 축복은 잠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1993년 미국에서 230억이나 복권을 탄 사람이 있지만은 이 사람도 몇 년 만에 다 파산되었습니다.

  지난 주 뉴스에 깜짝 놀랄 뉴스를 들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제일 큰 복권을 히데커라는 분이 2002년에 12월 25일 성탄절에 3억 1490만 달러를 탔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천문학적입니다. 여기서 만 원 짜리 한 다발 그대로 쌓아 주욱 놔도 부산까지 내려가는 돈을 계산 해 탄 것입니다. 그대로 쌓아 올려도 백두산 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러니 이 돈이 얼마나 많은 돈입니까? 이 돈을 가지고 그는 도박하고 타락해서 가족, 건강, 친구 다 잃었습니다. 잠깐이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없는 성공, 하나님 없는 행복은 잠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을 섬기는데  두지 않고 돈 벌어서 할 것이 없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도박 인구가 300만이나 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다른 길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영원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길로 나아가는 사람은 올무에 다 인생이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금생과 내생 영원히 새벽별 같이 빛나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학개서 1장 6절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개서 1장 9절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시편 107편 10절 11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모아도 구멍이 뚫어진 전대입니다. 물을 가져와 부어도 그 곳은 터진 웅덩이입니다. 부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할 때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 위에 설 때만이 그 축복이 영원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인생은 구멍이 뚫어지지 않았습니까? 터진 전대가 아닙니까? 열심히 일해도 모아지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인생 사십 고개만 넘어 서면 벌써 정상에 다 올라와야 되는데 터진 웅덩이에 계속 집어넣습니다. 일해도 안 됩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없는 수고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터진 웅덩이입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여 우물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그래서 이스라엘의 제일 부자는 우물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쪽에는 여자들이 하루 종일 우물 물 길러 갔다 오면 하루가 끝납니다. 한 번 갔다 오면 끝납니다. 우물이 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몇 십리 물 길러 갔다 오면 하루가 끝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생수의 근원이 되는 샘솟는 샘을 주시고, 우리에게 생수의 우물을 주신다는 말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여인에게 “너! 이 물 먹으면 항상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물에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만이 우물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우물을 주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람을, 복권을, 인기를 따라갑니다. 이것은 다 우물이 아닙니다. 터진 웅덩이입니다. 잠깐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아도 여러분이 남편의 사랑만 기대면 안 됩니다. 부모를 사랑해도 부모에만 기대면 안 됩니다. 터진 웅덩이입니다. 내 우물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우물을 주셨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우물을 주시고 제가 어디 가서 누구에게 구걸하지 않아도 평생 살 수 있도록 제 가는 발걸음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은 저에게 우물이 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물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오목사님도 그런 설교를 해 주셨는데 이 이야기를 전에 해 주셨습니다. 어떤 분이 이사가 되어 아들에게 온갖 투자를 했는데 학교 다닐 때는 결혼하기 전까지는 “나는 엄마하고 살래. 엄마~ 엄마~ 평생 결혼 안하고 엄마하고 살래.” 그러던 놈이 장가 가더니만은 금방 인천으로 한주일도 안 되 살림을 내서 이사를 가 버렸습니다. 의사가 되어 뭔가 도와줄 줄 알았더니 집에 올 때도 잠깐 와 밥 안 먹을 때 와서 밥 다 끝난 다음에 먹고는 설거지도 안하고 자기 부인 절대로 부엌 못 들어가게 하고 데려가 버린답니다. 월급 받아 가지고는 하나도 안주고 둘이 다 쓰고 완전히 쟤가 우리 우물이라고 생각하고 거기 충성을 다했는데 이 자식들이 전부 자기만 생각하고 나가 버리니... 저는 우리 교회에서 지금 제일 많이 보는 게 그것입니다. 너무 제게 와서 우는 분이 많습니다. “목사님! 제가 얘한테 생명을 다 걸었는데 이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자녀를 길러도 내가 우물이 되어서 자녀가 여기와 먹는 건 괜찮지만은 내가 두레박을 가지고 자녀에게로 가면 자녀에게 버림받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자기에게 덕이 없으면 다 버립니다. 그래서 요사이 하루에도 수많은 부모를 갖다 버리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인간은 100% 배반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 않습니까? 어느 전직 대통령을 만나서 한번 인사하고 같이 식사하는데 “목사님! 지금 날뛰고 있는 그 사람을 제가 장관을 맡겼는데 저 있는데 와서 큰 절을 하면서 이러더랍니다. 단군이래로 성군이옵니다. 그런데 이 자식이 저를 배반해 지금 가장 저를 반대하는 쪽 라인에 가 가 있습니다.” 저도 신문에서 봤으니까, 그 분 밑에서 그 분이 출세해... 성군이 어디 있습니까? 다 좋을 때는 폐하 망극하옵나이다, 그럽니다. 그러나 예수님같이 영원히 여러분을 지켜줄 이는 이 땅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 친구, 자식 따라 가면 안 됩니다. 자식 있는거 좋습니다. 사랑해 주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우물인줄 알고 기대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아내를, 모두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신줄 믿습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축복이 되십니다. 일하지 말라는건 아닙니다. 일해야 합니다. 농사짓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노래도, 예술도 해야 되고 우리는 주어진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직업이 나의 우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농사짓는다고 사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 주실 때만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절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이 큰 믿음 위에 우리가 서야할 줄로 믿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니 내가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믿는 믿음 위에만 굳세게 서면 이 세상에 여러분을 해칠자가 없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십니까? 저가 어떤 과학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 지구에 있는 인류가 다 사용하는 에너지를 모두 합해도 일 년 내내 모든 원자력 발전소, 수력 발전소, 화력 발전소 흔히 말하는 풍력 발전소 하여튼 석탄, 석유 몽땅 다해도 하나님이 태양에너지 한 시간 주는 에너지를 못 당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에너지를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거 아무리 커도 하나님을 어떻게 대항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높으심을 어떻게 다 측량 할 수 있습니까? 교회에 왜 나옵니까? 잘 믿으려고 나옵니다. 잘 믿는 것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잘 믿는 것이 재산이며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저가 미국 국회에 가서 놀란 것은 국회 의사당 위에다가 탁, 회의장 앞에다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적어 놓았습니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들 같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국회 의사당 위에다가 날마다 회의를 할 때 그것만 보고 회의를 합니다. 12시간 회의를 해도 항상 보는 건 다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여러분의 가정에 야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글자 하나라도 있는 사람의 인생은 절대로 속지 않습니다. 집에 가보면 헛된 거 너무 많이 갖다 걸어놓고 아무것도 아닌거, 여러분의 주소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자랑할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인간은 한없이 약하지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서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믿음의 사람을 만나서 믿음의 가정을 이룩하고 항상 말을 해도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나와 함께 하십니다. 늘 쉐마를 고백하듯이 우리는 이런 고백하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절망의 말을 하지 말고 소망의 말을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말을 하며, 소극적인 말을 하지 말고 적극적인 말을 하고, 의심의 말을 하지 말고 믿음의 말을 하며, 불평불만의 말을 하지 말고 감사의 말을 하고 자녀를 대하든 누구를 대하든 우리는 할 수 있다, 감사하자, 기도하자, 하나님이 하신다라고 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태리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카루소는 선생님으로부터 “너의 소리는 바람 소리에 흔들리는 창문소리 같다.”고 했지만은 그 어머니가 “너는 할 수 있다. 기도하자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리라.” 이 믿음의 말 한마디가 세계적인 사람을 길러내고, 에디슨의 어머니도 그 선생님은 버렸지만은 어머니가 믿음으로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있다.”라는 믿음의 말을 하였습니다. 믿음의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각을 가지십시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능력 있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저가 결론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에 서면 가까운 사람에게도 잘하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잘합니다. 균형, 조화가 있습니다. 한쪽으로 기울어 지지 않습니다. 성격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성격의 불구자입니다. 장애인입니다. 신체장애는 해를 안주지만은 성격장애는 인생을 파멸로 이끌어갑니다. 내 성격을 전체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위에 바로 서면 내 성품도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어떤 분은 보면 남에게는 잘하는데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남한테는 친절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래놓고는 자기 집안 식구하고는 말을 안 합니다. 말도 아닙니다. 인사도 안 합니다. 퇴근할 때 “여보~ 잘 다녀오세요.” 애들이 “아빠~ 잘 다녀와요.”, “그래, 사랑해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아내 안아주고 “감사해요. 감사해요.”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다른데 가서 집만 나서면 밝아집니다. 집에 오면 죽을 상합니다.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네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나쁘다고 그랬습니다. 가족에게 부터 친절해야 됩니다. 형제간에 친절하고 부모에게 친절하고 가까운 사람한테 잘하고 차츰차츰 잘해 가십시오. 교인은 자기 담임 목사한테는 잘 안하고 심방 가보면 다른 목사님 4명이 와 있습니다. 얼마나 기분 나쁜지 모릅니다. 자기 목사한테는 시툭해 가지고 그러고 남의 목사님한테는 “목사님! 목사님!” 여러분! 뭐가 하나님 앞에 잘 믿는 길인지 알아야 되지 않습니까? 가까운데 부터 잘 하십시오. 가까운데 부터 자기 나가는 교회부터 잘 하십시오. 자기 집안 식구, 자기를 기도해주고 사랑해주는 자기 한 몸 된 사람부터 잘해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밖으로 잘해 주십시오. 어디 가서 색색 웃고 그러느냐 말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나오신 우리 모든 성도의 삶 위에 믿음이 여러분을 지배해서 믿음의 사람에게 주는 무한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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