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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과 그의 하나님⑥ : 성화 (창 5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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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그의 하나님 ⑥ : 성화(창50:15~21)

며칠 전 미국의 프로 야구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이 수립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배리 본즈’(Barry Bonds)입니다. 756호 홈런으로 행크 아론의 기록을 경신한 것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성향으로 보면 당연히 난리가 나야 되는데 썰렁했다고 합니다. 중계방송 시청률도 별로였고, 언론 보도도 냉담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약물 복용을 한 혐의가 있고, 평소 그의 교만하고 거친 성격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하, 사람이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한다 할지라도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로구나!”

그렇습니다! 성공이 아무리 대단해도,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것처럼 성공보다 헌신이 중요하고,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신앙 인격입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가 요셉의 인생을 흠모하고 칭송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헌신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의 신앙 인격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인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시고, 부디 요셉처럼 아름다운 신앙 인격을 위해 정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신앙 인격의 중요성 : 성화의 과정

신앙생활 하면서 인격의 중요성을 놓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신앙생활을 한참 잘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죽어서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 살 동안 축복이나 많이 받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인격의 요소를 소홀히 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그 이유는 구원의 과정과 연관이 됩니다.

① 구원의 과정 : 칭의 → 성화 → 영화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생애 전체에 걸쳐 진행되는 긴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대개 9 단계의 과정(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성도의 견인, 영화)으로 설명하는데, 그 중에 핵심 과정 세 가지가 칭의, 성화, 영화입니다.

그 중에 성화의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구원의 목표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예수님)을 닮게 하시는 겁니다. 롬8:29~30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예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예수)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9절을 보면 구원의 목표가 소개되어 있죠.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구원의 긴 과정을 이끌어 가시는데, 그 중에 핵심 과정이 칭의, 성화, 영화입니다. 30절에 미리 정하셨다는 것은 예정 선택을 의미하고, 의롭다 하시는 것은 칭의,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성화와 영화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부연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칭의(稱義, Justification)는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겁니다.(대속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는 법적 선언’) 성화(聖化, Sanctification)는 의롭다 인정받은 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칭의된 자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되는 과정’) 영화(榮化, Glorification)는 성도가 최종적으로 영광스러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임종 시에 영혼이 영광스러워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육체가 영광스런 부활체로 변화될 겁니다.(임종 시에 영혼이 변화되고 재림 시에 육체가 부활하는 ‘구원의 최종 완성’)

이 세 가지를 비교해 보면, 칭의와 영화의 과정은 단번에 이뤄집니다. 믿으면 의롭게 됩니다. 성도가 죽으면,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 순간 영화됩니다. 그런데 성화는 일평생 계속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화의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② 구원의 열매 : 성화 -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

성화는 칭의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마치 접붙임을 통해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로 바뀌면 열매가 맺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칭의는 죄의 나무가 의의 나무로 바뀌는 겁니다. 성화는 그 나무에서 의의 열매가 맺어지는 겁니다. 의의 열매는 곧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을 의미합니다. 마7:17~20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러니까 믿음으로 구원 받지만, 그 결과로 성화된 인격이 있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으면 즉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당장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우리를 이 세상에 오래도록 남겨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보다 천국이 훨씬 좋은데 말입니다. 두 가지 때문입니다. 헌신과 성화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명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성화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이 살아남아 있는 동안 성화를 위해 평생 힘써야 됩니다.

③ 하나님의 기대 : 성공보다 신앙 인격

또 한 가지 성화가 중요한 궁극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 된 성도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 같습니까? 대단한 업적이요?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그런 것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전능하신 능력으로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정말 어렵게 여기는 것은 성화입니다. 성화는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도와주시지만, 인간 스스로 평생 동안 힘써야 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삼상16:7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 ...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여기서 중심은 바로 인격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 인격이라는 겁니다. 살전4:3 보면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 ” ‘거룩’이란 말은 구별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룩’은 세상의 죄악과 구별된 모습을 가리키고,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인격을 갖춰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을 보면 성화된 인격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불신자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행2:47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믿는 자를 가리키는 말 중에 ‘성도’(聖徒, Saints)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거룩한 사람들! 그러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예수님)을 닮은 인격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100% 완전해진다는 뜻은 아니죠. 우리가 일평생 노력해도 예수님과 똑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신앙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기대에 충족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닮은 사람, 예수님의 인격을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상급도 헌신만 갖고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성화된 인격의 상태에 따라 결정됩니다.

요즘 아프간 피랍 사태로 심란합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다른 면으로도 답답합니다. 기독교회와 크리스천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너무 거셉니다.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이 정도였다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피랍자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선교하러 간 것인데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왜 이리 심하게 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영적으로 세상은 어둠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빛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선교에 관한 그들의 무지와 오해 때문입니다. 봉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선교를 지향하는 게 크리스천들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누가 그런 지역에 봉사이든 선교이든 하러 가겠습니까? 크리스천들이니까 간 겁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어렵던 시절 그런 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와서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은 고귀한 것입니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잘못이죠. 그런데 세 번째 이유가 있는데,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의 도덕성의 실패입니다. 앞의 두 가지는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달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만히 지난 10여년 동안 걸어온 한국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당연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고급 옷 로비 사건 때 유수한 교회의 중직자들이 국회 청문회장에 나와서 성경책에 손을 얹고 새빨간 거짓말 하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 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의 눈에 크리스천들은 거짓말이나 하는 존재로 비춰졌을 겁니다. 일부 대형교회들의 담임목사 세습이 중앙 일간지에 보도되었던 일, 모모 교회들의 비리와 추태가 TV에 특집방송으로 방영되었던 일 ... 이런 몇 가지만 생각해 봐도 세상 사람들의 비난은 당연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성화가 구원의 중요한 과정이고, 거룩한 인격이 크리스천들의 표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신앙생활을 잘못해도 한참 잘못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국교회와 우리 크리스천들은 통절하게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제 3일 후면 광복 62주년 기념일이 되는데, 일제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크리스천들이 소수이고 핍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쟁이라고 조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차용증서를 받지도 않고 돈을 꾸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크리스천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류관순을 비롯해서 독립 운동가들 대다수가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많아지고 건물도 대형화되고 화려해졌지만 가정에서 직장에서 곳곳에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졌다는 뼈아픈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인격 중심의 신앙생활에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이제부터라도 성화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2] 요셉의 신앙 인격 :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습

요셉은 성경 기록을 죽 보면 알 수 있는 대로, 정말 많이 성화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가 애굽 총리가 된 후 흉년이 들자 형들이 곡식을 사러 오지 않습니까?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상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45: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왕과 신하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바로와 신하들이 그만큼 요셉을 존경하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아버지 야곱과 이스라엘 족속 전체가 애굽 이민을 갑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죽게 되는데, 그의 장례를 위해 애굽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창50: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장례법은 애굽이 단연 최고입니다. 시신을 미라(mirra)로 만들기 위해 40일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70일장으로 국장을 치릅니다. 다 요셉을 보고 특별대우를 해 준 게 아니겠습니까? 그가 아무리 정치를 잘 했어도 인격이 고매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존경받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면 요셉의 고매한 신앙 인격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성결, 정직, 신실, 온유, 겸손, 용서, 섬김, 사랑, ... 여러 가지 인격적 덕목이 나타납니다. 그 중에 두드러진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① 성결 : 요셉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이 유혹해 와도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깨끗하게 지켰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집요하게 유혹했지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늘 자신의 인격을 성결하게 가꾸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창39:9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 올 때 그가 보인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추하고 더러운 것은 단호하게 거절한 요셉의 모습입니다. 그는 청문회가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뒷조사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진가가 드러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추한 모습이 없는 성결의 인격자였기 때문입니다.

② 겸손 : 요셉은 늘 겸손했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는 성공한 후에도 하나님만 높이고, 사람들 앞에서 거만을 떨지 않았습니다. 겸손은 외적인 모습보다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인격입니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두 관원장이 꿈을 꾸고 근심할 때, 얼마든지 신비로운 은사를 받았다며 잘난 척하고 거만을 떨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자기는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 높입니다. 창40:8 “ ...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 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두 관원장에게 꿈의 해석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증거하는 모습입니다. 나중에 바로 왕이 꿈을 꾸고 불안해 할 때 불려가서도 그랬습니다. 창41:16 “ ...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저의 청년 시절 영향을 주었던 여전도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각양 은사를 받은 분으로 금식 기도를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전혀 티를 내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눈치를 챌 뿐 본인의 입으로 전혀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으셔서 많은 환자를 고치셨지만, 요란을 떨지 않고 웃으면서 잠시 등에 손을 대고 기도해 줍니다. 치유 받은 사람이 감사하다고 인사하면 “아니, 하나님이 해주셨지. 그리고 집사님이 기도 많이 했잖아”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교회 일은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은사는 저렇게 사용하는 것이구나 ...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우리는 올챙이 적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이 된 것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니면 멸망할 죄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적으로도 이만큼 살게 된 게 다 하나님의 은혜임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교만할 수도 없고, 교만해서도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요셉이 형제들과 상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세했다고 자랑하고 거들먹거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립니다. 창45:5,7,8 “5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7 하나님이 ...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 ” 그는 말할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 형제들이 혹시 요셉이 옛날 노예로 팔았던 것을 보복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데 뭐라고 말합니까? 19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여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겸손은 향기롭습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도 겸손의 인격을 가졌던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작곡을 하고 악보를 쓸 때 항상 여백에 이렇게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S. D. G.(Soli Deo Gloria) 라틴어인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이런 뜻입니다. 자기 재주로 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영감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서 작곡을 했기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③ 용서 : 요셉의 위대함은 특히 용서하는 인격 때문입니다. 형들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보디발 아내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한이 서리서리 맺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들을 깨끗이 용서합니다. 보디발 아내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용서했을 것으로 추측 가능합니다.

본문에 보면 형들에게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가 죽자 그들이 요셉의 보복이 두려워 떱니다. 그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때 요셉이 어떻게 하죠? 17절. “ ...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는 이미 용서했는데도 죄책감이 사로잡혀 있는 형들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을 설득하고 위로합니다. 18절~19절.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1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제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용서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용서하는 게 진짜 지혜로운 겁니다. 만일 용서하지 못하고 과거에 붙잡혀있다면 자신부터 불행해집니다. 나치의 아우스슈비츠에서 고통을 받았던

유대인 여인에게 기자가 물었답니다. “당신은 독일인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그녀가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아뇨. 복수심으로 내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그래봤자 자기만 손해라는 겁니다.

물론 마음대로 잘 안 되죠. 그러나 용서해야 됩니다. 어려워도 싫어도 순종해야 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엡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기 마련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 일쑤입니다. 먼 사람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없습니다. 용서해야 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사는 길입니다. 이게 안 되면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육신적으로도 병들게 됩니다. 눈 딱 감고 순종하면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마치 육중한 기계가 꼼짝하지 않을 것 같지만 스위치를 올리면 작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순종하면 성령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임하셔서 용서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④ 사랑 : 요셉은 용서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세심하게 사랑을 베풉니다. 창45:2 보면 요셉이 형제들과 상봉한 후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그가 얼마나 다정다감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7절을 봐도 그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형들이 보복할까봐 벌벌 떨자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눈물을 흘립니다. 위로하고 심지어 온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재확인합니다. 17절(하). “ ...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21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정말 요셉의 인격 하나하나를 보면 불수록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요셉이 평생 성화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3] 성화의 길 :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법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성화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잘 이뤄갈 수 있을까요?

① 신령한 교제 : 무엇보다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늘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그의 인격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하나 형성된 것입니다.

여러분, WWJD 운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WWJD는 “What Would Jesus Do?”(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의 약자입니다. 이 말은 본래 찰스 쉘던(Charles M. Sheldon)이 지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In His Steps)라는 책의 부제입니다. 이 말처럼 순간순간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변화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로 인해 세상에 변화될 겁니다. 그래서 가장 큰 개혁은 나 자신의 성화입니다. 성도들이 각자 성화를 이루며 살아갈 때 그 영적인 파도가 온 세상으로 퍼져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삶 속에서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경건의 시간(큐티)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엉뚱한 일로 분주하지 말고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꼭 가지시기 바랍니다.

② 고난을 통한 연단 : 요셉은 오랜 세월 고난 속에서 그 인격에 성화되어 갔습니다. 사람이 고난을 통해서 철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고난을 겪으면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악한 모습이나 모난 모습이 깎여지고 새로워집니다. 요셉이 소년 시절에는 철부지였습니다. 경솔한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편애하면 자중해야 되는데,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고 꿈을 꾸고는 진중하지 못하고 나불거렸습니다. 형들이 미워한 게 잘 한 것은 아니지만 미움을 돋운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고난을 겪으면서 그는 성숙해졌습니다.

진주가 조개에서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개 안에 날카로운 이물질이 들어가면 상처가 납니다.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물을 내뿜게 되는데, 이물질 주위를 오랜 세월 여러 겹으로 감싸면서 아름다운 진주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진주를 ‘눈물의 보석’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고 상처가 방치되면 그 부위가 썩어 결국은 죽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고난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잘 극복하면 성숙해집니다. 부디 고난에 짓눌려 손해 보지 말고 성숙한 인격으로 성화되는 기회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③ 지속적인 성령충만 : 성화를 위해서 우리 자신이 노력하고 순종하는 게 중요하지만 결국은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죄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잡초를 뽑아도 계속 돋아나는 것처럼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쓴 뿌리를 뽑아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악한 성품을 태워주시고, 예수님을 닮은 새로운 인격을 우리 안에 새겨 주셔야 됩니다. 갈5:16 이하 보면 성령을 좇으라고 말씀하고, 그 결과가 성령의 열매(예수님의 인격)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저절로 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의 목표를 어디에다 두고 있습니까? 점검해 보십시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겁니까?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천국에 당장 가야 됩니다. 세상에서 축복 받고 잘 먹고 잘 사는 겁니까? 그런 것은 예수 안 믿어도 얼마든지 되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 목표는 성화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고상한 인격입니다. 평생 과정으로 목표 삼고 기도하면서 애를 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하늘의 상급이 될 것입니다. 부디 요셉처럼 착실하게 성화의 과정을 걸어감으로 인생을 마치는 그날 무엇보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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