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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열매 - 충성 (갈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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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충성(갈라디아서 5:22~23) 

  한국인에게서는 한국인의 냄새가 납니다. 우리 한국인에게서는 마늘냄새, 김치냄새, 된장 냄새와 같은 한국적인 냄새가 납니다. 문인에게서는 문자향이 나며, 엔지니어게서는 엔지니어 냄새가 납니다. 남자에게서 남자 냄새가 나고 여자에게서는 여자 냄새가 납니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당한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천국백성의 냄세가 나야 할 것입니다. 언어와 행실 그리고 삶의 양식을 통해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야 할 것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서는 담배 냄새가 납니다. 술 취한 사람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냄세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를 일컬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에 취한 사람에게선 성령에 취한 냄새가 납니다. 성령에 취한 냄새, 그것을 신앙적인 용어로는 성령충만이라고 합니다. 성령에 취한 냄새는 우선 성령에 이끌려 살기 때문에 나타나는 변화된 삶의 태도, 성품의 변화, 성화된 냄새로 나타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을 때 여기 성령충만은 바로 변화된 삶, 성화된 냄새를 말합니다. 가치관의 변화에 이어서 성품의 변화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성령에 취한 냄새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로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에 목숨 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강한 냄새입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서 다른 것 바라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냄새, 성령의 냄새가 나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갈 때면 피하지 않고 더 가까이 가서 맡고 싶은 냄새가 있다면 그것은 남자의 냄새도 여자의 냄새도 아닙니다. 학문의 냄새도 아니고 소유의 냄새도 아닙니다. 물질의 냄새나 세상 냄새가 아닙니다. 향수 냄새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냄새이며 성령의 냄새입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열매 맺기 위한 성령의 열매 기획시리즈 그 7번째 시간 "충성의 열매"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모두 충성의 열매가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충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성령충만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면 충성스러운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충성이란 헬라어로 "피스티스"라고 하는데 우리말 성경인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에서는 "충성"으로, 공동번역에서는 "진실"로, 표준번역에서는 "신실"로 번역했습니다. 영어로 믿음이 faith라면 충성은 faithfulness입니다. 충성이란 믿음이 가득찬 것, 믿을만한 태도를 말합니다. 충성이란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신실하게 믿을 만하게 감당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믿을만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믿을만한 것이 없다는 것, 믿을만한 것이 부족하다는 것은 실제로는 영적 비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감정적 비성숙의 한 표시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확실한 책임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책임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불복종한다면 우리는 신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신실하다고 할 때에 그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책임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이 영적 성숙의 표시이며 그것은 우리 삶 안에 나타나는 성령의 한 중요한 열매인 충성의 열매인 것입니다.

  잠언 25:13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했습니다. 입추가 지났으나 오히려 더위는 더 심합니다. 이럴 때 시원함은 간절한 염원입니다. 비지땀을 흘리고 목이 갈할 때 마시는 얼음냉수 같은 존재가 게으르지 않는 충성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불신의 시대입니다. 세상이나 교회는 충성된 사람 즉, 믿을만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에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을 볼 수 있고 가정이 어려울 때 어진 아내를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어려운일 당할 때 더욱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려고 '하여가'라는 시를 읊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하여가'를 들은 정몽주가 '단심가'를 지어 답을 했지요.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번 고처죽어
  배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우리는 이 두사람을 통하여 충성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얽혀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고, 또 한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무심하고 변화무쌍하더라도 일편단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위대한 신앙인들을 보면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어려울 때에도 죽도록 충성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믿을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믿어주실만한 믿을만한 사람들입니까?

  작은 일도 큰 일처럼 다루는 신실한 사람이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소인은 크고 특별한 것에만 충성하고
위인은 평범한 것에도 충성하고
성자는 작은 것에 크게 충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성도라는 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란 곧 성자인 것입니다. 작은 것에도 크게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어느 부자가 섣달 그믐날에 종들을 불러놓고 볏짚 한 단씩 주며 새끼를 꼬라고 했습니다. 새끼를 꼬되 새끼 손가락보다 가늘게 꼬라고 했습니다. 종들은 투덜거렸 습니다. "아무리 지독한 주인이지만 섣달 그믐날까지 이렇게 새끼를 꼬라고 할게 뭐람?  그것도 굵은 새끼가 아니라 손가락보다도 더 가늘게 꼬라고 하니 밤새도록 꼬아도 이 볏짚을 어떻게 다 꼴 수 있담?"
  어느 종은 새끼를 꼬다 말다 하는가 하면, 어느 종은 손가락의 몇배나 굵게 꼬아 서 빨리 볏짚을 없애려 했습니다. 그러나 한 충성스러운 종은 아무 불평없이 주인 이 꼬라는 대로 가느다랗게 그리고 보기 좋게 꼬았습니다. 그는 다른 종들이 요리 조리 요령을 부려 일찍 끝내고 자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혼자서 밤새도록 새끼를 꼬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커다란 부대를 하나 들고 나왔습니다.
"모두들 들어라. 작년 한 해는 다 나를 위하여 너무나 수고가 많았다. 이제 너희들이 꼰 새끼줄로 이 엽전을 마음껏 끼워 가져 가거라.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 가져 가도록 하라. 단 새끼줄에 끼워 가는 것에 한한다."
  이 말을 들은 종들은 당황했습니다. 자기들이 꼰 새끼로는 돈을 끼워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들은 후회가 막급하였으나 이제는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그러나 주인이 하라는 대로 충직하게 밤새도록 가느다랗게 새끼를 꼰 종은 그가 충성스럽게 한만큼 많은 엽전을 가져갈 수 있어서 마침내 종살이를 면했다고 합니 다.
 
  충성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딤후 4:7-8).라고 했습니다. 계 2:10에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
니"(마 25:21)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야고보는 뒤에 말하기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라고 하였습니다.

  징기스칸에게는 그가 황제가 될 것을 믿고 끝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한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징기스칸은 그들을 타르 탄이라고 따로 불렀습니다. 징기스칸은 황제가 되자마자 타르 탄들에게 다음과 같은 특권을 부여하였습니다.
첫째 언제든지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왕의 집에 들어올 수 있다.
둘째 전쟁이 끝나고 나면 노획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골라 가질 수가 있다.
셋째 세금이 면제된다.
넷째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지어도 9번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
다섯째 나라 안에서는 가지고 싶은 땅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여섯째 이러한 권리는 앞으로 4대까지 이어줄 수가 있다.

  이 땅에 속한 한 나라의 군주를 위한 충성에도 이런 보상이 따르는데 만왕의 왕되신 주님께 우리가 충성할 때 하나님나라에서 주어지는 축복은 크고도 놀라운 것이리라 믿습니다. 어디 4대뿐이겠습니까? 자기 스스로의 삶도, 직장 생활도 게으르지 말고 충성스럽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타르 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겐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바로 영원한 타르 탄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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