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위로의 동역자들 (행 20:1~6)

  • 잡초 잡초
  • 353
  • 0

첨부 1


위로의 동역자들 (행 20:1~6)

세상 살아가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경험하고 있습니다.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 평안한 세상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때때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날들이 우리들 앞에 펼쳐지곤 합니다. 앞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하기만 한 날들이 계속될 때 도무지 살아갈 힘조차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정도로 힘든 날들이 이어지게 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길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리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죽음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엎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향이 다른 것처럼 그 결과 역시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절망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전혀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매달리기에 그 마음의 소망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거기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우리들 가운데도 모든 일에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여전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지만 그 하나님이 과연 나와 어떤 관계인가? 그 하나님이 과연 나를 돌아보아 주실까 생각해 보면 아닌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좌절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고 믿는 사람은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게 되는 것이요 그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부르짖던 성경의 사람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은 이런 어려움이 계속해서 밀려오게 될 때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바울 사도의 모습을 통해서 함께 배우고자 하는 것이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시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고난의 때에 오히려 바울은 성도들을 찾아 격려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의 2년간의 시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며 제자들을 키워나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하시고 또 변화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힘을 얻어감에 따라 바울의 손을 통해 놀라운 역사들이 나타나게 하여 주셨는데 심지어는 사람들이 바울이 쓰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어놓으면 병자가 고침을 받고 일어나는 일까지도 생겨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변화되는 사람들과 나타나는 역사를 볼 때 바울이 얼마나 힘이 났겠습니까? 죽어가던 사람들이 살아나고 또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도 하고 또 감사도 드리면서 참으로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마냥 그렇게 즐거운 날들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변화 받아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시구나 하고 믿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런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기어린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일종의 점쟁이와 같은 일은 하면서 살아가던 마술사들이 자기들이 점치는데 사용하던 도구였던 마술책들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다 불살라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새 삶을 살았던 반면 우상을 만들어 먹고 살던 사람들은 그 삶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들의 삶의 터전을 다 잃어버리게 만들었다고 해서 바울과 그 일행들 특히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사람들을 붙들고 데모를 하며 소란을 피워댔습니다. 물론 에베소시의 서기관 중의 한 사람이 나서서 논리적으로 저들을 설득해서 일단 데모는 그쳤지만 그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저들이 더 심한 모습으로 나올지 모르는 날들이 이어지게 되자 바울은 에베소의 신자들을 불러오게 해서 격려한 뒤에 작별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나 마케도니아 지방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냥 간 것이 아니라 마케도니아로 가는 길에 여러 지방에 들러 신자들에게 격려하는 말을 많이 하고 그리스에 도착을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을 당할 때 나도 힘들지만 함께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아니 나 혼자서는 그것을 이겨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자칫하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잠시는 스스로 견디는 것 같아도 그런 힘든 날들이 계속되게 되면 먼저 마음이 약해지게 되고 마음이 약해지게 되니 불안한 마음이 점점 더 자리 잡게 되고 나중에는 쓰러져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는 지경까지 떨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도 그런 고통이 계속되게 되면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아픔이 쌓여나가면서 마치 단단한 응어리처럼 자리 잡게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그 마음이 위로받고 새 힘을 얻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그래도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다가 점점 그 고백이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나중에는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는 약한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한번 그런 마음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섭섭하게 느껴지게 되고 그 섭섭한 마음이 또 다른 상처를 가져와서 견딜 수 없게 되다 보면 마음도 병이 들도 몸도 병이 들어서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를 떠나기에 앞서 에베소 성도들을 불러오게 해서 저들을 격려하였던 것이요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주위의 성도들을 또한 가는 길에 들러서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힘들지 않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더 힘든 사람은 바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은혜는 내가 약하기에 주저앉기보다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약한 사람을 돌아보고 격려하다 보면 오히려 내가 격려하는 그 사람도 힘을 얻게 되고 그렇게 격려하는 동안 내 안에도 힘이 샘솟듯 솟아나게 되더란 것입니다.

이번 전인 치유 수양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그런 것을 놀랍도록 경험하고 그래서 그 놀라운 위로와 역사하심을 깨달아 새 힘을 얻고 돌아오신 줄로 믿습니다. 저도 참으로 감사한 것이 바나바 훈련원을 처음 시작할 때의 바나바 훈련원 원장이신 이강천 목사님은 다 죽어가던 분이었습니다. 그 마음에 상처가 스스로 일어나기도 힘든 그런 지경까지 갔었습니다. 그런 이 목사님을 제자들 몇 사람이 위로 드리기 위해서 찾아갔습니다. 물론 저들이 학교에서 배울 때 교수로서 스승으로서 이강천 목사님이 베풀어 주셨던 그 사람이 얼마나 놀랍고 귀한 것이었던가를 경험했고 그래서 새 힘을 얻고 학업을 마치고 목회를 시작했던 분들이 이 목사님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우리가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되겠다 선생님을 찾아뵙고 위로와 격려를 드리도록 하자”고 해서 이강천 목사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을 찾아뵙고 “선생님 힘을 내십시오. 오히려 지금의 어려움은 또 다른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하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다가 찾아간 제자 목사님들 중 한 분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그럴 것이 아니라 지금이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을 말씀으로 훈련하여 주십시오.” “아니 지금 내 모습이 어디 가르칠 만하기나 하는가? 그럴만한 힘도 지금은 하나도 없네.” “아닙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저희들을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럴 때 하나님도 새 힘을 주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간곡하게 말씀을 드리니 목사님이 “알았네. 그렇다면 내 죽기를 각오하고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함께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네” 하고 결단을 하고 요양원에서 시작한 것이 오늘의 바나바 훈련원이 된 것입니다. 첫해 제가 3기생인데 1기 여덟 분의 목사님 그리고 2기로 열 분의 목사님과 더불어 3기는 인천 쪽에서 함께 세미나도 다니고 함께 어울리며 목회를 고민하던 여덟 분이 말씀을 배우며 훈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다 죽어가는 모습이셨습니다. 가르칠 때는 어디서 힘이 나는지 펄펄 뛰다가도 끝나기만 하면 나 좀 쉬어야겠네 하고는 방으로 돌아가시곤 하던 그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오죽하면 본인 스스로도 “나 몸무게가 1킬로그램만 더 나가면 원이 없겠네”라고까지 하셨던 분인데 이 훈련의 사역을 계속해 나가면서 요양원에서 시작했던 훈련원 사역이 옥천의 문 닫은 공장을 함께 힘을 모아 인수하여 정식으로 바나바 훈련원이라 이름 붙이게 되었고 다시 지금의 옥산의 문 닫은 초등학교를 인수하여 2단계 훈련원으로 그리고 지금은 다시 제대로 된 훈련원을 이루기 위해서 3단계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나바 훈련원에 들어오는 목회자들이 거의가 다 목회를 하다가 진이 다 빠지고 나는 목회자로서의 자질이 없나봐 하고 다 포기하려던 사람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심정으로 들어와서는 훈련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새 힘이 넘쳐서 돌아가 목회를 승리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이더란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강천 목사님 자신도 지금은 얼마나 건강해지고 더 힘이 넘쳐나는지 그래서 아하 이게 바로 하나님의 역사의 살아있는 모습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처럼 이강천 목사님처럼 고난을 우리로 하여금 더 성숙된 믿음으로 나가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이며 이 어려움을 겪어보았기에 또한 다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격려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위로하고 격려하다보면 내게 더 큰 은혜가 임하는 것을 우리는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 속에서 또 하나 깨닫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런 어려움 속에 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를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불러주시면서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때 그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계신 아들이요 딸된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이 시간도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땅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이 감동과 감격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또한 위로하고 격려하기를 힘쓰심으로  말마다 새 힘이 넘쳐나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는 위로자요 격려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위로가 되는 동역자들을 허락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에서 세 달을 지냈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가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몄기 때문에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시리아로 돌아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때, 바울과 동행한 사람은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였습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보십시오.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 이들이 얼마나 귀한 사람들입니까? 이들이야말로 바울 이후 아시아의 교회들을 이끌어가게 되는 귀한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귀한 일꾼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을 당해 에베소를 떠나 그리스를 거쳐 시리아로 가는 길에 바울과 동행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이들과 함께 길을 가면서 얼마나 큰 힘을 얻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일을 할 수 있다 싶으면 훼방꾼들이 나타나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래서 어려움이 닥쳐와 그 어려움 속에 다시 길을 떠나게 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지치고 힘이 다 빠질 수도 있을 텐데 바로 그때 좋은 동역자들이 함께 하도록 하여 위로를 얻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위로하는 사람이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을 말씀하시는 가운데도 위로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이 다른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를 계속했더니 바울 자신이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도록 좋은 동역자들이 함께 있어 동행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길을 가는 동안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동행했던 사람들이 바울을 대신해서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을 맡아 큰일을 하게 되지를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어려울 때 더욱 앞서서 수고하는 분들과 함께 동행하며 힘이 되어주고 격려가 되기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렵기에 도망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렵기에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어렵기에 더욱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힘들기에 더욱 그 곁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들이 또한 좋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 받게 되고 큰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복의 통로로 사용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감히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지금 모든 일이 평안할 때뿐만이 아니라 때로 어려움이 닥쳐오고 때로 이건 아닌데 싶을 바로 그때에도 곁을 지켜주고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이런 귀한 삶을 우리가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는 것이요 그로 그 일을 통해 공동체가 성장하고 우리 자신과 자녀들도 함께 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고난의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진짜 귀한 일꾼들을 추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병으로 고통당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분들 곁에서 위로와 격려를 베푸는 위로자요 격려자가 되어 주십시오.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성령의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다가 그들에게 덮어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럴 때 내 옆에도 많은 위로자와 격려자가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어려움을 겪는 나를 하나님께서 또 다른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자요 위로자가 되게 하시고 아픔을 어루만져 치료하는 치료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런 사랑을 우리 모두가 마음 가득히 품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먼저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여러분들 곁에 좋은 위로와 격려의 동역자가 있게 하시고 여러분 또한 저와 모든 지도자들을 위한 그리고 모든 성도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의 동역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모든 것은 대로 법칙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어렵기 때문에 죽겠다가 아니라 오히려 어렵기 때문에 더욱 살맛난다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이 이 어려움을 통해서 얼마나 큰 복을 주실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고 그렇게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오히려 어렵기에 더욱 당당하게 사십시오. 내가 어렵기에 오히려 다른 어려운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격려하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게 격려하던 나도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 새 힘이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어려움에서 벗어나 밝게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요? 하나님이 그런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전인 치유 수양회에서 위로 받고 고침을 받은 모든 분들이 먼저 이런 자리에 서실 수 있기를 바라고 우리 모두가 이런 위로자요 격려자로서 항상 함께 할 수 있는 귀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당당하게 살고 신나게 살고 멋지게 살되 언제나 져주는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으로 웃게 만들고 그래서 나도 웃을 수 있는 그런 귀한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