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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척 증후군 (마 23: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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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증후군 (마 23:13-22)

사람들은 거짓말과 거짓 행동을 수없이 많이 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현대는 자기 PR 시대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합니다. 능력을 인정받고 대우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한 취업 전문 회사에서 직장인 이천 여명을 대상으로 직장의 꼴불견 문화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1위가 ‘∼척’ 하는 사람이라고 꼽았습니다. 10 명 중에 8-9명은 척하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척’을 국어사전에서는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직장에서 어떤 척을 가장 많이 하는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1 위가 아는 척이라고 나왔습니다. 아는 척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풀이 됩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무능력으로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아는 척 다음은 빽 있는 척, 성격이 쿨한 척, 잘난 척, 예쁜 척, 돈 많은 척, 고위층과 친한 척, 머리 좋은 척, 착한 척 등이 거론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서 힘든 척, 배고픈 척, 아픈 척, 힘센 척, 화난 척을 합니다. 교회 다니는 우리는 믿는 척, 거룩한 척, 착한 척 합니다.

지난주에는 신정아라는 젊은 여교수의 가짜 학위가 뉴스의 화두였습니다.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속이고 교수가 되었고, 광주비엔날레 감독직까지 맡았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학사, 석사 학위도 가짜였다고 하여 더놀랐습니다.
이렇게 온통 척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사회는 어느 정도 이 척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너무 심하지 않으면 험한 세상을 사는 수단으로 약간의 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를 일컬어 ‘척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이 척하는 것은 모두 고난도 연기력입니다.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흉내 내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연기로 척한다고 해도 결코 속일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머리털 하나까지 다 세고 계신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척 연기를 아주 잘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질책하고 계신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아주 과격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거침없이 저주를 쏟아 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화 있을진저’ 라는 단어가 일곱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얼마나 분노하고 계신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일곱 개의 화 가운데 세 가지를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매번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치명적인 잘못들을 지적하십니다.

첫 번째 화는 천국 문을 막아서고 있는 잘못 때문입니다.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도 들어가지 못하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두 번째 화는 어렵게 얻은 교인을 타락하게 만들어 지옥에 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교인 하나를 전도하려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녀야 합니다. 정말 어렵게 한 사람을 전도했으면 정성으로 돌봐야 합니다. 신앙심이 생기도록 기초 교리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착하게 살고, 믿음으로 사는 법을 일러줍니다. 또 당장 손해를 보긴 하지만 앞날의 은혜와 복을 바라보고 참고 견디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위선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새신자를 실족하게 만듭니다. 천국문을 막고 서있으니 자연 지옥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너희들 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야단치셨습니다.

세 번째 화는 앞 못 보는 인도자 역할 때문입니다. 이들은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성전보다 성전의 금에 맹세를 해야 지킵니다. 제단보다 그 위에 있는 예물에 맹세하면 지키겠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중요한지 분간하지 못합니다.

이런 한심한 자들이 종교 전문가들입니다. 가장 고상하게 하나님을 잘 믿는 척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엄한 규정들을 빠짐없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율법을 줄줄 외우는 자들이었습니다.

율법에도 없는 세부적인 규정들까지 만들어서 지켰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마음으로도 음행을 하지 않으려고 길에서 여자를 만나면 눈을 감고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실족하거나 벽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다칠 수 있지만 계명을 범하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고 여겼습니다. 겉으로는 신실한 신앙인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은 부패했습니다. 모두 겉으로만 그런 척한 것입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만 그런 것입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죄를 저질렀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 전문가입니다. 누구보다도 구원의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길을 가르치고 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선적이었던 그들은 예수님을 테스트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지하게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올무에 걸려들게 해서 예수님을 자멸시키려는 흉계일 뿐이었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예수님이 자기들 밥그릇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거하는데에만 집중했습니다.

이런 한심한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던 예수님은 급기야 참기 어려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노어린 음성으로 이들을 질타하셨습니다. 예수님 같이 온유하신 분이 화를 내면 무섭습니다. 더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일곱 가지 화는 우리도 새겨 두어야 할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서 나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우리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같은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이들은 천국문을 막는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실제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둘이 아닙니다. 현재 불신자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자기도 예수님을 안 믿고 자기 가족, 이웃도 못 믿게 합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천국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다릅니다. 이들은 천국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천국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결국 천국 가는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천국 가는 길을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간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 간다고 갔지만 길이 똑바르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비뚜로 가고 말았습니다. 잠간 한 눈 파는 사이에 길이 어긋나고 만 것입니다. 비뚤어진 처음에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두 길은 영 딴 길이 되고 맙니다.

천국 가는 길은 광야에 난 길과 같습니다. 따로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 발길이 닿는 곳이 길이 됩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습니다. 항상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만 합니다.

종교 다원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나 미신이나 모두 가는 길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천국 가는 길을 광야로 보지 않고 산으로 봅니다. 산 정상을 오르는 등산 코스는 여러 개입니다. 어디로 오르든지 결국 산 정상에서 다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를 믿든 귀신을 믿든 결국 다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의 문선명도 세계 종교를 통일하겠다는 것입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예수와 석가와 마호메트가 대화를 하자고 합니다. 기독교가 타종교에 배타적인 것을 가지고 옹졸하다고 합니다. 불교의 스님들과 가톨릭의 신부님들이 함께 어울려 축구 시합을 하면 멋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번 같이 놀았다고 길이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은 산꼭대기 정상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은 광야에 난 먼 길입니다. 방향을 잡고 끝까지 잘 가야 합니다. 중간에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천국 가는 길과 멀어집니다.

그래서 이 천국 가는 길에는 반드시 길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그 안내자가 바로 양을 치는 목자와 같습니다. 좋은 목자를 만나야 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좋은 꼴과 물가에서 쉴 수 있습니다. 나쁜 목자를 만나면 양들은 목숨을 잃어 버립니다.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천국 가는 길에서 조금씩 비뚤어진 것들입니다. 진리에서 살짝 비켜 선 비진리입니다. 이단과 사이비를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천국 가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입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믿으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 이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다른 어떤 것도 예수님과 겸하여 믿지 마십시오.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유대교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분입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슬람교의 믿음의 조상도 아브라함입니다. 같은 조상에서 나왔습니다. 이슬람권은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후예들입니다.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의 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다른 길은 가고 말았습니다. 이슬람교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이 없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바로 앞에 두고도 몰랐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이런 엉터리들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함께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잘 믿으십시오. 내가 믿는 것을 보고 따르는 이들이 있다면 더욱 잘 믿어야 합니다. 의심스러운 집회에 가지 마십시오. 의심스러운 책을 읽지 마십시오. 의심스러운 설교를 듣지 마십시오. 정통 신학을 뒤집고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면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종교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많은 이단 논쟁을 거쳐 다듬어지고 걸러졌습니다. 정통 신학을 무시하는 것은 그 세월의 연구와 논쟁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지금 정통 기독교의 모습이 가장 진리에 가깝습니다.

저는 요즘 아우구스티누스의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4 세기 때의 인물인데도 그가 쓴 책들이 얼마나 깊은 신학적 사고를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의 깊은 영성에 감탄하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이런 위대한 선조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이천년 동안에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들의 책들을 읽다가 보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내가 선택한 예수 그리스도, 이 진리의 길이 너무나 확실하고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멋진교회 강단을 믿으십니까? 저는 정통 신학을 공부한 목자입니다. 저를 믿고 진리의 길을 따르면 틀림없이 천국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새신자를 실족시켰습니다. 새신자 실족시키는 일은 아주 쉽고 간단합니다. 먼저 믿은 우리들이 엉터리로 신앙생활하면 됩니다. 새신자들을 일부러 못되게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새신자는 하얀 도화지입니다. 처음 본 것을 그대로 따라서 합니다. 먼저 믿은 자들은 원하지 않아도 거울이 됩니다. 새신자들은 아주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새신자는 낯선 곳에 왔기 때문에 아주 민감합니다. 그래서 약점을 잘 포착합니다. 새신자 눈에는 나쁜 것이 더 많이 들어옵니다.

한국을 체험한 외국인들이 약점을 잘 꼬집어 냅니다. 그들이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 그 이유는 낯선 곳에 와서 긴장하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외국에 관광을 가면 마찬가지입니다. 짧은 시간 지나치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보려고 살피게 됩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우리는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친하다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새신자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그걸 보면 아 저래도 되는구나 하면서 못된 것을 빨리 배웁니다. 흉보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한 부분입니다. 교우들끼리 진지하게 대하십시오. 함부로 농담하고 놀리지 마십시오. 뒤에서 흉보지 마십시오. 누구 믿음이 부족하다고, 누가 교회 일에 게으르다고 지적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신앙생활을 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잘 못하겠습니다. 혼자 일하다가 지치지 마십시오. 알아서 도와주지 않는다고 투덜대지 마십시오. 내가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도움을 청했는데도와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청하십시오. 도와주지 않는 것에 대해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울 수 없는 그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영성입니다.

여러분! 저를 도와주십시오. 목사님을 힘들게 하지 마세요. 목사님 속을 썩이지 마십시오. 제 말씀을 잘 순종하면 은혜 받고 복받습니다. 제가 하자고 하는 일은 빤합니다. 기도합시다. 전도합시다. 성경공부합시다. 예배합시다. 이런 영적인 것 외에 다른 것 요구하지 않습니다. 기도해주고, 전도해주고 성경 읽어 주고 예배 드려주면 됩니다. 그러면 저는 목회가 행복할 것입니다.

셋째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헛맹세를 했습니다. 성전보다 성전의 금에, 제단보다 예물에 맹세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맹세는 더 상위의 것에 해야 합니다. 최고의 대상에 해야 합니다. 더 큰 이에게 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해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서약하십시오. 예수님 잘 믿겠다고!, 신앙생활 열심히 해보겠다고!, 그리고 그 약속을 꼭 지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한 약속 부도내지 말고 성실히 지키면 복받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게 됩니다. 놀라운 일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척 하지 말고 제대로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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