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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직한 자의 복 (신 6: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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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신명기 6장 18,19절
제  목 : 정직한 자의 복
 
1. 정직의 위기

지금 우리나라는 학력위조문제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현재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는 학력 위조 문제는 광주 비엔날레 최연소 예술 감독이라는 것만으로도 빛났던 신정아 동국대 교수의 학위가 모두 가짜라는 것 때문에 시작된 일입니다. "나, 예일대 나온 박사야." 이 한 마디에 학계와 예술계 모두 깜박 속아 넘어갔습니다. 또 모 방송사의 집지어주기 프로그램인 <러브하우스>를 통하여 국민 디자이너로 알려졌던 이창하 씨, 동숭아트센터 대표이자 국내 예술계의 1인자로 알려졌던 김옥랑 씨, <디워>의 감독인 심형래 씨, 굿모닝팝스의 진행자였던 이지영 씨, 명지대 교수인 정덕희 씨, 연극인이자 뮤지컬배우인 윤석화 씨, 그 외에도 영화배우 장미희, 코미디언 강석, 작곡가 주영훈, 유명 MC인 김승현, 그리고 탤런트이자 방송 진행자인 최화정 씨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짓 학력으로 자신을 포장해 오다가 그것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이뤄놓은 모든 것을 잃었거나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져서 우리나라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이 제기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학력위조는 우리 사회가 대학 졸업장이나 그 이상의 학위가 없어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학벌이 따라주지 못하면 그 능력마저도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학계와 예술계를 모두 포함하는 범정부 단위의 검증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면서 현재의 학력 위조 여부를 밝혀내고, 이러한 문제들을 미리 막아보자는 쪽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어 두고 볼 일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바라보면서 가지게 되는 생각이 바로 “정직”의 문제입니다. 이미 밝혀진 그들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어디에선가 거짓말 경연대회가 열렸습니다. 상금이 푸짐하게 걸렸는지라, 많은 사람들이 출전했습니다. 첫 번째 도전자가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소나기가 내린 후에 산에 갔다가 큰 바위 하나가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저는 두부를 먹다가 이가 부러져서 치과에 다녀오는 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이런 이야기들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도전자가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래 뵈도 저는 정말 정직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거짓말이라고는 단 한 마디도 해본 일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심사위원들은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1등으로 결정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거짓이 자연스럽고 정직이 어색한, 그런 이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스갯소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신앙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인 이 정직의 문제를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정직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라”고 권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정직은 어떤 것일까요? 본문의 정직은 “야샤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곧은, 똑바른, 올바른, 정당한' 등의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약 120회 나오는데요. 하나님께나(출 15:26, 신 12:25, 신 13:18, 왕상 11:33, 렘 34:15 등) 혹은 사람에게(신 12:8, 삿 17:6, 삼하 19:6, 렘 40:5, 잠 12:15 등) 옳거나 의로운 것, 그리고 하나님께나(신 32:4, 시 25:8, 시 92:16, 호 14:9, 느 9:13, 시 119:137, 시 33:4, 잠 8:9 등) 사람에게(전 7:29, 미 7:2, 욥 1:1, 욥 1:8, 욥 2:3, 시 37:37, 욥 8:6, 잠 29:27, 시 37:14, 대하 29:34 등) 올바른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향해서, 그리고 사람을 향해서 올바르며 진실하고 거리낌이 없는 것이 정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6)."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이러한 말씀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은 정직과 참 마음과 온전함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도는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로 부끄러움을 당케 하기 위해서라도 정직한 삶, 거리낄 것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무슨 허물이나 약점이나 비방거리가 있는가?’를 살피는 악한 세력과 그런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당당한 것이 바로 성도가 가져야할 정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말은 “여호와 보시기에”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시고, 다 아시고, 그 이면까지 꿰뚫어보는 분인데, 바로 그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르고 옳은 것이 정직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라”는 이 말씀은 어떤 면에서는 불필요한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우리의 행동과 삶은 정직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보시는데요.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요. 세상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고, 때로는 자신과 자신의 양심까지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굳이 그 뒤에 “정직”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자연히 정직해야만 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요 행동일 것입니다. 사실 부정직과 거짓의 원인을 캐보면 거의 대부분이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입으로 하나님을 부르지만 실제로는 세상만 보고, 세상만 신뢰하기 때문에 정직하지 못하고 적당히 거짓을 행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서울 지구촌교회의 조봉희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이런 예화가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토요일 저녁에 심방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그만 옆에 주차해 있던 차를 받았습니다. 차에서 내려 확인해보니 받힌 차가 약간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시간이라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어 예배를 마친 후,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한 교인이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목사님, 어제 저녁에 제 차를 받고, 그냥 가셨지요? 제가 아파트 10층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차가 바로 자기 교인의 차였다는 것, 그리고 그 교인이 하필 그 장면을 다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안 목사님은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는 것, 그것도 하필 그 차의 주인이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실한 크리스천 사업가인 장로님 한 분이 주일 저녁, 다른 교회에서 아주 감동적인 간증을 했습니다. 간증의 주제는 “정직하게 사업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마침 승용차가 고장이 나서 좌석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금 박스에 2000원을 넣고 자동기기에서 나오는 잔돈을 받아 뒷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 쥐어진 잔돈을 세어보니 300원이 더 나왔습니다. 아주 작은 공돈이었지만 월요일 아침부터 상당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님은 갈등을 했습니다. “그냥 집어넣어, 아님 돌려줘?” 그러다가 장로님은 300원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 운전기사에게 반납했습니다. 그 순간 운전기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저녁에 우리 교회에서 간증하신 장로님 맞으시지요? 제가 장로님의 정직한 사업 원리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을 한 번 테스트해보려고 요금기기에서 잔돈이 더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이 어떻게 하시나 백미러로 지켜보고 있었지요.”

어떻습니까? 좀 섬뜩 하십니까? 이제부터 사는 것이 불편해질 것 같습니까? 혹시 그럴지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여러분이 불편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니까요!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들이 세상이나 사람이나 그 누구보다 하나님이 보신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정직하게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아주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나, 혹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조차도 정직하지 못하다면, 그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호해주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정직하십니까? 여러분은 정직이 곧 믿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직함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입증하시기 바랍니다.

3. 정직한 자의 복

오늘 본문은 성도가 “정직”하게 살아야할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정직하게 살 때에 받을 “복”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을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여기서 “복”이라는 말은 '잘되다, 성공하다'라는 의미입니다(창 12:13, 창 40:14, 신 4:40, 신 5:16, 신 5:29, 신 6:3, 신 6:18, 신 12:25, 신 12:28, 신 22:7, 왕하 25:24, 룻 3:1, 렘 7:23, 렘 38:20, 렘 40:9, 렘 42:6). 이 단어는 원래 '잘 놓여 있다, 적절히 위치하여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좋아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즉 정직한 자가 받는 복이란 그가 하는 일이 막힘이 없이 형통한 것이요, 그가 하는 일에서 성공하는 것이요, 그가 일과 인간관계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성도를 이렇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정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적들에 대하여 이기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몰수히”라는 말은 ‘전부 다, 완전히, 하나도 남기지 않고’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앞에서 정직한 성도를 위하여 그의 대적, 그를 가로막고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철저히 쫓아내시고 몰아내버리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면 “아름다운 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아름다운”이란 ‘좋은’ 혹은 ‘번영, 이익’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정직한 자에게 이익이 되고 번영케 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직장을 구하고 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력서를 넣었던 한 회사로부터 1차 서류 심사 결과에 대한 통보가 왔습니다. 그래서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경쟁률이 아주 높아서 긴장한 탓이었는지 청년은 면접 도중에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실수를 한단 말인가!’ 청년은 자신을 책망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채용 여부는 며칠 후 개별적으로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청년은 자신은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면접 실을 나서는 청년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청년은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았습니다. 면접을 보았던 그 건물에 식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해서는 그 음식 맛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식사를 마치고 그 건물을 나왔습니다. 건물을 나서면서도 면접에서 실수한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미련을 뒤로 하고 청년은 버스 정류장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지갑을 열었을 때, 청년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5천 원짜리 지폐 두 장만 들어 있었던 지갑이었습니다. 조금 전 그 식당에서 3천 5백 원짜리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지갑에는 6천 5백 원이 남아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갑에는 5천 원짜리 두 장에 1천 5백 원이 더 들어있었습니다. 식당에서 거스름돈을 잘못 준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는 없었던 것이지요. 청년은 잠시 고민했습니다. 흔히 더 거슬러 받은 돈은 받은 사람의 작은 행운이라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던 그 청년은 거스름돈을 건네주던 자기와 같은 또래인 듯했던 청년을 떠올리고는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그 청년도 자신처럼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스름돈을 잘못 주어 자기 돈으로 변상할 것을 생각하니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다시 그 식당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좀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식당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식당은 방금 자신이 면접을 봤던 회사의 사원들이 이용하는 식당이었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그곳에서 면접관으로 있었던 회사 사장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면접에서의 실수 때문인지 사장은 청년을 알아보고 “무슨 용무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장은 청년의 말을 듣더니 껄껄 웃기만 했습니다. 그 웃음을 뒤로 하고는 서둘러 아르바이트 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청년에게 합격 통지서가 왔습니다. 청년의 양심적인 행동에 감동을 받은 사장이 그를 채용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회사가 신입사원을 필요로 하는 부서가 경리부라는 것과,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양심적인 청년과 같은 사람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작은 정직함이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복은 아주 크고 놀랍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세탁소로 성공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요. 거기서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자 지인들의 권유로 세탁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세탁소를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이전 모습과 비교하면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한심하고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탁을 하기 전에 맡겨진 세탁물을 살피던 그는 어느 옷의 안주머니에서 2천 7백 달러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투덜거리며 말했습니다.
"하는 일도 힘들고 자존심도 상하는데, 이제는 시험거리까지 생기는군."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그 세탁물의 주인이 오자 그 사람에게 버럭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왜 이런 것으로 나를 시험하는 거요?" 얼마 후 세탁물 주인은 이 사람을 다시 찾아와 자기 회사의 세탁 공장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 세탁물 주인은 유명 항공사의 부사장이었습니다. 남들은 공돈이라며 자기 것으로 삼을 일인데, 도리어 그 공돈 때문에 ‘잠시 시험에 빠질 뻔 했다’며 화를 내는 그의 정직 때문에, 그는 현재 직원 700명을 고용한 대규모 세탁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들이 거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됩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복주려 하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신앙은 정직이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여호와 보시기에”, 혹은 “여호와 앞에서”라는 이 한 마디만으로도 충분히 정직하고 진실하게, 즉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되지, 굳이 “정직하라”는 말씀은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저는 설교를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정직”에 대한 도전보다는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계신다는 것과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모두 보시고 아신다는 것을 인정하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신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정직해야하고 진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정직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면 그는 불신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얼마나 정직하냐?‘ 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믿음이 어느 정도이냐?‘를 묻는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정직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주 여호와의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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