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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딤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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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디모데후서 4:6-8)

어느새 9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여름을 만족스럽게 지냈는지요?  금년에는, 이번 여름에는 꼭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을 여전히 이루지 못하고 시간만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고 아쉬움이 후회가 되어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실수와 헛점이 많은 우리는 늘 지난 일에 대한 후회 속에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멀리 보내놓고, 부모님을 떠나고 난 후에, 사람들을 떠나 보내면서 곁에 있을 때 좀 더 잘해 줄 걸하고 아쉬워합니다.  정들었던 곳을 떠나야 할 때 아쉽고,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난 후에 아쉬움과 후회가 남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사람들은 못다 이룬 일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탄식하며 후회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모 방송국에서 10대 청소년부터 70대 노년세대까지 연령별로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1위~5위’ 설문결과를 방송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서 요즘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 대하여 후회하며 사는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남녀가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제1위는 공부하지 않은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50대에서 70대에서는 공부에 대한 후회가 1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더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대답이 5위 안에는 들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역시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공부에 대한 열심과 그 중요성을 우선으로 여기고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하여 뒤늦게 후회하고 있음을 봅니다.  옥스포드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은 나중에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열심히 노력하기 바랍니다.  공부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인생의 후회 가운데 30대를 지나면서 여성들은 배우자 선택, 결혼에 대한 후회가 의외로 많았고, 남성들은 50대 이후로 갈수록 아내에게 잘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남성들이 아내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부부지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더 많은 사랑과 공경과 돌봄이 더 필요했다는 후회의 내용을 통해 평소 소홀하게 여기던 가족간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재삼 깨닫게 됩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더디게 깨닫고 후회하는 우리의 미련함이 이런 설문조사에서 드러나는 셈입니다.

후회함이 없이 만족한 삶을 살았다고 감사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갈 수는 없을까요?  후회 없는 인생의 좋은 모델이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입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바울은 아들처럼 사랑하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내는 유서와 같은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점의 아쉬움도 없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휴양지의 화려한 호텔 침상이나 고급스런 병원의 독실 병상에서 편안하게 누워 유언장을 받아 적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어느 음침한 지하 동굴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 몸을 맡기고 철창 밖으로 흘러 들어오는 희미한 등불 빛을 의지하여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그가 처한 환경은 최악이었지만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의 심정은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집으로 돌아갈 날짜를 받고 떠날 날을 기대하는 병사의 벅찬 가슴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주님을 위해 자기의 일생을 아낌 없이 드릴 수 있도록 고난과 아픔과 기쁨과 감격의 순간에도 항상 함께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로 가득하였습니다.  어느 한 구석에도 후회나 억울함의 호소 같은 탄식이 없이 오히려 감옥 밖에서 자기를 염려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을 향한 격려와 축복으로 가득합니다.  결승점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린 선수의 만족감이 그의 얼굴에 환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올려놓은 글을 보았더니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지내온 일생을 회고하면서 보편적으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죽을 때가 되면 "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 모으고 움켜 쥐어봐도 별 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나서 이것이 가장 큰 후회랍니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 하고 후회한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하며 복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며 또한 이러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피 끓는 청년이었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철저했던 그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 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체포 영장을 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주님을 만난 이후 그의 인생 목적은 완전하게 변화되었고 새롭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예수를 핍박하고 그를 믿는 자들을 죽이는 일에 앞섰던 사람이 이제는 주님을 위하여 죽기를 작정하였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오직 주님이 존귀케 되기를 원하는 결심을 하였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리라는 분명한 목표가 세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최상의 가치로 발견한 이후 자기가 그 동안 누리고 사랑했던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바울이었고, 자신의 목숨을 걸만한 진정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화를 자랑하고 선전하는 일에 온 일생을 걸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교우들에게도 나의 목숨, 인생을 걸만한 목표가 정해졌는지요?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주님을 위해 관제와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전제라고도 부르는 관제는 무엇인가요?  전제는 희생제물 위에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붓는 제사의식이며 제사장이 포도주를 제물에 붓는 것으로 희생제사가 마감이 되었습니다.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순서는 이제 제사가 마쳤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려 최후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자신을 드림으로 텅 빈 그릇이 되어 주님 앞으로 나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에베소의 장로들과 이별하는 자리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했던 바울은 빌립보서 2장17절에서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하였습니다.  자신이 희생 제물이 되어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된다면 오히려 기뻐할 일이라고 했던 말 그대로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물과 지식과 건강을 아낌 없이 주를 위해 관제로 부었던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후회함도 아쉬움도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며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려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신 것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하시고 숨을 거두신 것처럼 바울은 이제 마지막 남은 방울까지 완전히 떨어진 상태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것은 반칙이나 속임수가 없이 법대로 경주를 하였다는 말입니다.  선수가 경기장에서 규칙을 따라 경기를 해야 정당한 승리자가 되듯이 바울은 인생의 경기장, 싸움터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정당한 경기를 치른 선수였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것은 정해진 코스를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경주에서 내가 달려야 할 코스를 벗어나 편안한 지름길을 찾거나 남의 길을 침범하지 않고 내가 달려야 할 나의 길을 마지막까지 달리는 성실한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법대로 자기 코스를 끝까지 달리는 선한 싸움을 한 선수에게는 의로운 재판장이 주는 의로운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어떤 유혹이나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을 지켰던 바울이었습니다.

장례식을 인도하는 자리에서 오늘의 본문이 마음 깊이 파고들어 고인이 된 분을 추억하는 자리에서 유족들과 조문객들에게 이 말씀을 마음껏 전하면서 먼저 가신 분을 귀감으로 삼고 남은 자들을 위하여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산 것도 아니고 믿음의 본을 보인 분도 아니었던 어떤 주검 앞에서는 가슴이 답답하여 무슨 말로 유가족들을 위로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죽음 이후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조사가 쓰여지고 읽혀지길 원하십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생활은 일상생활과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호흡과 운동, 사업과 가정생활, 학업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수고함으로 그 진실한 땀과 눈물 속에서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성도들은 주께 받은 은혜를 따라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함으로 주님 사랑하는 일을 다시 불일 듯 하게 합시다. 

지치고 낙심이 되며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면 말씀을 통해 다시금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말씀과 기도로 경건훈련을 힘쓰면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갑시다.  사람들이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처세술과 잘 사는 기술을 배우려고 분주하게 오가며 허송세월 하는 순간에 우리 성도들은 그런 가벼운 테크닉이나 방법보다는 삶의 소중한 원리를 먼저 발견하고 그 원리를 따라 법대로 경기하며 내게 주어진 코스를 따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봅시다.  그 원리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 곁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인생을 정리하도록 돕는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 하여 그 사람들이 말하는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받아 적어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그 교훈을 전하기 위해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 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당신은 죽음의 실체를 인정하는 순간, 삶이라는 실체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고, 지금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신에게 있는 것은 지금의 이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모든 날들을 최대한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자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이것은 다시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경험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한 번만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별 아래에 살지만 가끔이라도 하늘을 올려다 보나요?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신은 세상을 존속시키기로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눈을 뜨는 매일 아침,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그 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았나요?  이번 생과 같은 생을 또 얻지는 못합니다.  당신은 이 생에서처럼, 이런 방식으로 이런 환경에서, 이런 부모, 이런 아이들, 가족과 또 다시 세상을 경험하지는 못합니다.  당신은 결코 다시 이런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는 이런 생처럼 경이로움을 지닌 대지를 경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그렇습니다.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입니다.  끝나가는 여름과 함께 휴가도 방학도 여행도 다 지나가고 9월 새 학기를 맞아 옥스포드에는 새로운 시작이 열리고 있습니다.  멀리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으며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못다 이룬 일 붙들고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 새롭게 시작합시다.  지금 사랑하고, 지금 경험하고, 지금 가슴 뛰는 열정을 불태우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지난 후에는 ‘그때 ~ 할걸’ 하고 후회만 남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학생으로서, 직장인은 일터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주님과 함께 걸으며 후회 없는 삶을 만들어갑시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지난 날을 후회하는 것이 결국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을 보면 늦었다고 여기는 지금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회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비웃지만 소 잃은 다음에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다시 잃지 않는 법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더 큰 후회 하기 전에 후회로 가득한 삶의 자세를 바꾸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갑시다.   

바울이 자기 열심만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며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 서는 일만 하다가 일생을 마쳤다면 오늘 본문과 같은 만족스런 인생의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청년 사울의 후회는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순간 삶의 참 목표를 발견한 그날로 그쳤고 주를 위해 살기로 결단한 그날부터 바울의 삶은 후회하지 않는 인생으로 변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완전하게 이루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 받아 최후의 한 방울까지 자신의 몸과 영혼을 관제로 드렸던 바울처럼 이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의 사명을 확인하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의뢰하고 달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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