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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자씨 신앙 (마 13: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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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신앙 (마 13:31-32)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꿈은 인간을 지탱시켜 주는 힘입니다. 꿈이 있다는 것은 미래가 있다는 뜻입니다. 즉 꿈은 미래 지향적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가진 사람은 과거를 초월해 살아갑니다. 과거의 상처나 아픔을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고통을 이겨냅니다. 꿈은 앞에 있는 즐거움입니다. 꿈은 지금보다 더 나은 변화를 의미하기에 꿈을 생각하면 즐겁고, 꿈이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면 기쁨이 솟구칩니다.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견디도록 도와주는 것이 꿈입니다. 또한 꿈은 소망입니다.

소망이란 장차 바라는 것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아름다운 환경, 지금과는 다른 관계, 지금과는 다른 위치, 지금과는 다른 성품, 지금과는 다른 시각, 지금과는 다른 보람을 추구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가진 사람은 오늘을 가꾸며 충만한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꿈을 가진 사람은 시간을 아끼고, 미래를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신을 개발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음을 가꾸고 지성을 가꾸고 관계를 가꾸는 부지런한 사람이 됩니다.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꿈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만큼 강한 이가 없고, 꿈을 가진 사람만큼 유연한 사람이 없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강하면서 또한 유연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그래서 꿈을 가진 사람은 분노하거나 부딪치지 않습니다. 작은 꿈이 세월이 지나면 큰 열매로 변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입니다. 겨자는 배추과의 일년생 또는 이년생 풀로서 씨가 많고 향기롭기 때문에 양념과 약재로 사용되며 잎과 줄기는 식용으로 이용됩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쉽고 실제적이고 실물을 사용하여 교육하셨습니다. 겨자씨와 겨자나무를 바라보시면서 영적인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꿈이 없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큰 꿈을 주신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새로워지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실망하지 맙시다

  본문 31-32절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사용하신 검은 겨자씨는 비교급 ‘미크로테론’이 사용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작은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보다 작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당신 유대 격언에서는 가장 작은 것을 의미할 때 ‘겨자씨 만큼 작은 것’이라고 말했을 만큼 그 크기는 매우 작은 것으로 공동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씨의 크기가 아니라 씨의 결과인 나무의 크기입니다. 복음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겨자씨 한 알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처음은 미약 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해 지는 것입니다. 요즘은 작은 것이 아름답고 위력이 있고 값도 비쌉니다. 나노기술(nano-technology)의 나노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나노기술은 100만분의 1을 뜻하는 마이크로를 넘어서는 미세한 기술입니다. 작아진 기술을 통해 소형화를 노리는 산업입니다. 작아서 간편하고 사랑받고 어디나 함께 가고 그래서 모든 큰 것을 다스리고 점령하는 기술입니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행길 앞에는 언제나 그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나 여행을 고달프게 하는 비포장도로나 웅덩이들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펑크 난 타이어처럼 예상치 못한 일들도 불쑥불쑥 터집니다. 낙담하거나 좌절하는 일도 없이, 항상 룰루랄라 콧노래만 부르며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핵심은 그 사건들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런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것 때문에 여행을 망치지 않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현명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긍정 에너지’를 선택하는 사람은 결과도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부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에너지가 많습니다. 하지만 긍정 에너지로 무장하면, 수많은 부정적인 사람들과 부정적인 상황들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긍정 에너지는 버스를 앞으로 달리게 만드는 힘입니다. 속에는 부정적인 마음을 잔뜩 가지고서 겉으로만 안 그런 척 요란하게 자신감을 떠벌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장애물과 힘든 문제들을 극복하게 해주는, 진정한 긍정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 신념, 열정, 목적, 즐거움, 행복… 그런 것들 말입니다. 긍정 에너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욕을 불어넣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긍정 에너지는 힘을 주지만, 반대로 부정 에너지는 힘을 빼앗아갑니다. 매일매일 인생이라는 버스에 연료를 넣을 때 긍정 에너지를 넣을지 부정 에너지를 넣을지 선택해야 합니다. 긍정 에너지는 옥탄가가 높은 휘발유와 같아서 차를 힘차게 달리게 해주지만, 부정 에너지는 싸구려 가짜연료처럼 엔진에 찌꺼기가 끼게 만들고 결국엔 차까지 망가뜨립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약점과 단점이 있습니까?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맙시다. 그것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용기와 희망을 가집시다.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 겨자씨와 같은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성장합시다 

  본문 32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라고 하였습니다. 겨자씨는 다른 모든 씨앗보다 작은 것이지만 생장력(生長力)이 대단하여 보통 1m 정도로 크게 자라며 특히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약 3m 가량 자라 마치 나무처럼 무성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중에는 겨자나무를 정원수로 심기도 합니다. 겨자씨와 마찬가지로 천국이 비록 현재는 미약하고 보잘 것 없게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고대하는 바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도록 크고 웅장하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임하였습니다. 살아있는 씨앗처럼 생명력을 가진 복음의 결과로서의 교회는 예수님→12제자→120→500명→3,000명→5,000명→헤아릴 수 없이 발전되어 현재는 온 인류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큰 나무로 우뚝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평소 근검하고 효 사상이 높아 이웃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 온 세 명이 ‘올해의 훌륭한 백성’으로 뽑혀 임금님으로부터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틀림없이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그들에게 ‘평생에 있을까 말까 하는 기회를 잡았다’고 부러워 하지만 엄연히 따지고 보면 그 기회는 그들이 우연히 잡은 것이 아니고 일평생 만들어 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노리고 근검 생활과 효를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회를 노린다는 것은 한계에 빨리 봉착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엔 한계가 없습니다. 묵묵히 일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그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고 그 열매들이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아주 비싼 값에 팔려 나가고 그래서 돈방석에 앉게 되고 하는 것들이 바로 그 좋은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암튼 그 세 명의 백성은 궁중으로 가 백성들의 상벌을 관리하는 어르신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관리 : 전하께서 상을 내리실텐데 소망을 한 가지씩만 얘기해 보시오.

  백성1 : 예, 집 한 채만 주시면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백성2 :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곡식을 창고에 채워 주신다면 평생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어르신네는 세 번째 남자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관리 : 그대는 소망이 무엇인가?
  백성3 : 예, 저는 임금님께서 딱 하룻밤만 저희 집에서 유하시고 가신다면 더 이상의 가문의 영광은 없는 줄 아룁니다.

  흔히 얘기하는 기회를 잡았는데 이처럼 딱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집이나 곡식을, 아니면 재물을 달래도 모자라는 판에 고작 임금님이 하룻밤 자고 가는 것이 소망이요 소원이요 가문의 영광이라니 말입니다. 백성 세 명의 뜻은 임금님께 전달되었고, 임금님은 세 명 모두의 소원을 들어 주겠노라는 윤허를 내렸다고 합니다.

한 백성에게 고래등 같은 집 한 채를, 또 한 백성에겐 곳간에 곡식을 가득 채워 줬는데 마지막 백성이 문제였습니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임금님이 묵으실 집인데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어떻게 보낸단 말입니까? 그리고 임금님 행차인데 울퉁불퉁 꼬불꼬불한 그 길은 어떡하고요. 그뿐입니까? 집안 살림이 얼마나 옹색, 궁색하고 불결하며 악취가 나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주방 기구와 식기는 금제품으로 바뀌고 초가집은 궁궐 버금가는 기와집으로, 또 좁디좁은 도랑길은 아주 널찍한 신작로로 바뀌고… 거기다가 온 가족은 비단옷으로 임금님 맞을 준비를 하게 되고… 곳간은 온갖 곡식으로 가득가득 넘치고… 임금님과 하룻밤을 잘 때 놀라운 복을 받듯이 평생 변함 없이 하나님을 잘 섬길 때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됩니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듯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여러분의 몸, 건강, 가정, 생업, 지혜, 신앙, 꿈과 비전이 크게 이루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섬기며 삽시다 

  본문 32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공중의 새들’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고통에 지쳐 평안과 안식을 갈망하며 쉴만한 곳을 찾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인간 모두는 참 포도나무요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새의 깃들임은 새들이 단순히 가지 위에 잠시 내렸다가 다시 날아가 버리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검은 방울새와 홍방울새와 같이 겨자나무에 떼를 지어 지속적으로 깃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 겨자나무는 반드시 다른 존재를 섬겨야 합니다. 나무 자체를 위해 나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금을 위해 소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식 속에서 녹아야 짠맛을 내게 됩니다.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이 시대의 방주가 되어야 합니다. 겨자나무는 섬기고 나누고 베풀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더 많은 사회와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섬길 때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고 선교가 됩니다. 섬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돼지 한 무리가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돼지들은 묶이지도 않은 채 꼬리를 흔들며 스스로 도축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신기하게 본 그는 돼지를 몰고 가는 사람에게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돼지들이 어떻게 당신을 따라갑니까?” 그 사람은 손에 들고 있는 콩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콩을 조금씩 길에 떨어뜨리며 앞서 가고 있었습니다. 돼지들은 죽을 줄도 모르고 당장 눈앞에 있는 콩을 주워 먹는 맛에 도살장 안에 제 발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렴풋이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과 권세와 쾌락과 명성이라는 달콤한 콩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콩을 주워 먹는 재미 때문에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콩의 유혹이란 너무나 달콤해 지옥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지금 수많은 젊은이가 성적 타락과 인터넷과 위성 TV에 돌아다니는 음란의 콩을 주워 먹으며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또 싸움 때문에 수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지금 현대인들은 롯의 사위들처럼 심판을 농담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늘을 손으로 가린다 해서 하늘이 없어지지 않듯이 심판을 외면한다고 해서 심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더뎌 보이지만 반드시 임합니다.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결코 싸워서는 안 됩니다. 섬겨야 합니다. 더욱 섬겨야 합니다. 어떠한 방해와 고난이 있어도 섬겨야 합니다. 섬김을 위해서 우리에게 교회와 직분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섬겨야 합니다. 다비다처럼 섬겨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크게 하시고 복의 근원으로 살게 하십니다. 섬기는 겨자나무가 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기대와 사명이 있습니다. 실망하지 맙시다. 성장합시다. 섬깁시다. 이 시대에 큰 겨자나무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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