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 되는 공동체 (겔 37:15-19)

  • 잡초 잡초
  • 588
  • 0

첨부 1


하나 되는 공동체 (겔 37:15-19)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아는 절친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두 친구는 성인이 되는 날 함께 사막을 횡단하기로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성인식을 치르고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사막을 향해 떠났습니다. 사막에 온지 열흘이 지났을 무렵 눈 앞을 가리는 사나운 모래 바람과 살갗을 태우는 강렬한 태양 탓에 두 친구의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져만 갔습니다.
물통에는 물이 채 한모금도 남지 않았을 때 였습니다. 그 험난한 순간, 한 친구가 그만 물을 사막 위에 전부 쏟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물을 생명보다 귀한 것이란 걸 몰라!”

“내 잘못이 아냐 너도 봤잖아 저 모래와 태양 때문인 것을”

언성이 점점 높아져 가더니 결국에는 한 친구가 물을 쏟은 친구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친구는 기분이 몹시 상해 말없이 ‘모래’위에 이런 글귀를 적었습니다.

“오늘 단 하나뿐인 나의 소꼽친구가 내 뺨을 때렸다.”

둘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대화도 없이 서먹한 표정으로 다시 사막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모래 폭풍이 불어왔습니다. 두친구 모두 모래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뺨을 때렸던 친구는 모래 무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최선을 다해서 모래 속에 빠진 맞은 친구를 구해 주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친구는 ‘돌’에다 이런 글귀를 깊이 새겼습니다.

“오늘 평생을 함께 할 나의 소꼽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목숨을 구해준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며 물었습니다.
“뺨을 맞을 때에 심정은 모래에 썼는데 도움 받은 마음은 왜 돌에 썻나?”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상처를 받았을 때는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을 수 있도록 모래에 써야 해 .... 그러나 내가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받았을 때는 어떠한 바람이 불어와도 지워지지 않게 돌에 새겨야 해”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 놓은 글귀는 무엇인가요?
혹시 원망과 미움속에 나쁜 기억들만 새기고 살지는 않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도록 마음 깊이 은혜의 기억들을 새겨 놓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야 3:18 “화평케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다툼을 머리고 관용하고 화평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름답고 좋은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엡4:1-3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를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오 주도 하나이시며 성령이 하나이시니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디에서든지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분열과 분쟁을 일삼는 어떤 자들과 같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거하고 머무는 곳에는 분쟁이 사라지고 화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 여러분의 삶에 분열과 분쟁이 사라지고 하나 되게 하시는 일치와 화해와 하나 됨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부부사이도, 자녀들과 부모들 사이에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도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갈등은 분열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분열은 상처와 아픔의 결과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멸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분열은 갈등이라는 죄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갈등의 문제를 꼭 극복해야 합니다.
갈등을 넘어 분열을 화합으로 일치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막대기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쓰게 하신 후 다른 막대기에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이라고 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통일 왕국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이스라엘은 남 유다의 멸망으로 완전히 멸망당하였습니다. 기원전 721년경 앗수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가 멸망당하고 기원전 586년에 남 유다가 바벨로니아에 의해 멸망됨으로 이스라엘 모든 민족이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다윗과 솔로몬의 시절 그 화려했던 이스라엘의 영광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찌 이렇게 비참하게 멸망하고 말았습니까?
그 이유는 갈등과 분열 때문이었습니다.

멸망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특히 일천 번제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그 구하는 것에 또한 감동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는 물론이고 모든 부귀와 영화의 축복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의 말년에 타락하고 방종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우상숭배를 조장했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더욱 높이고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많은 국고성을 짓게 하며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과 노역을 강요했습니다.

드디어 솔로몬이 죽자 억눌렸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백성들은 그동안 솔로몬에게 당한 고통을 호소하며 선정을 베풀어 줄 것을 요구합니다.

르호보암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솔로몬의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선정을 베풀고 강제 노역과 세금을 줄여줄 것을 진언합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이 세운 젊은 신하들은 오히려 강한 정치를 펼치라고 말합니다.  더욱 강하게 백성들을 다루지 않으면 왕권에 대한 도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편을 택합니다. 그래서 더욱 강한 정치를 펼치게 됩니다. 백성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이것을 이용해서 솔로몬을 피해 망명했던 여로보암이 백성의 장로들을 등에 업고 북이스라엘을 세워서 이스라엘은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2지파 가운데 10지파라는 많은 지파들은 여로보암을 쫗아 북이스라엘에 속하게 되고 2지파만이 남유다에 속하여 분열 국가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반목하며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점점 더 우상 숭배와 타락의 길로 치달아 가며 그 힘이 약화되었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리아에 남유다는 바벨론니아에 멸망을 당하며 나라와 민족은 뿔뿔히 흩어지고 노예와 포로가 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분열은 죄의 결과입니다. 어디서든지 죄가 있는 곳에는 분열이 있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결국 분열은 멸망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회복과 비젼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을 들었듯이 마른 뼈들의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고 이제는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를 취하여 에스겔의 손에서 하나가 되게 하며 이 둘이 하나가 되게 하라는 또 다른 비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에스겔에게 이렇게 하게 하셨을까? 그것을 통해 주시고자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에스겔에게 주시는 하나 됨의 비젼과 사명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주시는 비젼이며 사명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비젼과 사명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나 됨의 비젼과 하나 되게 하라는 사명이 있음을 깨닫고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 되게 하시는 비젼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되게 하는 일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 민족을 향한 하나 되게 하시는 비젼과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이미 분단이 고착화되어 과연 통일의 가능성이 있을까?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통일론 저런 통일론이 서로 심각한 의견충돌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우리 나라가 통일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통일이 될 것이라는 비젼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런 비젼이 없다면 말할 이유도 없겠지만 통일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를 하나로 묶어 잡게 하시고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사명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라.”입니다. 네가 해야 할 사명이라는 말씀입니다.

흔히 우리는 비젼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비젼을 나의 사명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라의 통일을 말합니다. 통일의 비젼을 멋지게 늘어 놓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네 사명이야 라고 말하면 왜 나의 사명이냐고 반문합니다.

사명은 생명을 걸고 그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사명은 목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거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사명을 위한 일에는 목숨을 걸 생각과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에게도 목숨을 걸고 행할 사명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특별히 에스겔을 통해 우리에게 민족을 향한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통일에 대한 비젼이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이지요.

사명을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거기 헌신과 충성이 들어가야 사명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민족의 통일을 위한 헌신이 요구되고 희생과 충성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헌신과 희생과 충성이 없이는 사명을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의 비젼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반목과 분리가 아닙니다.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몰상식한 것으로는 안됩니다. 분쟁을 일삼는 편협한 논리만을 내세워서는 안됩니다.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기다려 주고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희생할까? 어떤 헌신을 해야 하는 것일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남북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곧 정상회담도 진행될 것 같습니다. 계속적으로 민간 교류와 남북 협력과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 단체에서 방북단이 구성되어 지금은 평야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꽤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북한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통일의 비젼은 꿈이 아닙니다.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구체적인 명령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깊이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북한 동포들은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먹을 것과 기본적인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큰 홍수 피해로 인하여 도움의 손길이 없이는 살수 없게 되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통일의 비젼을 보며 사명으로 받아드리고 믿는다면 우리들은 그들을 더 많이 생각하며 기도하고 사랑의 손길들을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교회를 향한 하나 되게 하시는 비젼과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교회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입니다.
성경도 교회가 하나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 지체가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룬 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분리되고 있고 분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열과 분리를 조장하는 사단의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교회에 대한 비젼과 사명에 대한 말씀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수 주일에 걸쳐서 공동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의미의 공동체성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공동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말씀드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공동체를 생활이나 운명을 같이 하는 조직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성격에 따라 공동체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모여 선교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한 조직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가 자기 이익을 따라 분리되고 분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파의 분리뿐만이 아닙니다. 한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각기 다른 이익을 따라 분쟁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말 지루한 교회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결국 교회는 분리되고 쪼개지는 것 뿐 아니라 사회에 선교적인 악 영향을 미치게 되고 전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교단도 교파를 넘어설 수 없을 까요? 없을까요?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 될 수 있는 것,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해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맊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1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망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절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나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를 향한 하나되게 하시는 비젼을 이루어야 할 사명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먼저 희생하고 낮아지고 섬기며 이해하고 관용하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되어 세상을 비추며 구원의 방주로서의 생명을 위한 일에 아름답게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가정을 향한 하나 되게 하시는 비젼과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쩌면 민족과 교회에 대한 비젼과 사명보다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곧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교호,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동체의 기본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공동체에서부터 건강한 공동체들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요즘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가 가정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요즘 가정 폭력 상담소가 많이 세워졌습니다. 아동 폭력 상담소, 학대 여성을 위한 쉼터가 생겨났습니다. 
왜? 이런 생소한 단체들의 이름이 이제는 익숙하게 들려오게 되었을까? 가정의 하나 됨이 깨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로부터 시작된 가정 공동체가 파괴도고 분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문제들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중요한 메시지는 네 손에서 하나가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사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가정의 하나 되게 하는 비젼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특별히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 귀를 기우려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많이 힘들겠지만 가정을 하나 되게 하는 비젼이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듣고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명입니다. 분리된 가정, 신음하는 가정, 분쟁하는 가정, 깨어진 가정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하며 희생하며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주시고 지혜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을 향한 사명뿐 아니라 교회를 한한 사명, 민족을 향한 사명을 다하도록 함께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희생과 헌신과 눈물과 충성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의 아름다운 역사가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분단된 이 민족 가운데 꼭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