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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 행복한 삶의 공동체 (신 6:1-9;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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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행복한 삶의 공동체 (신 6:1-9; 엡 6:1-4)

옛날 어느 화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그림의 소재를 찾기 위하여 아침 일찌기 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제일 처음에는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목사님 이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목사님 대답 하시길 “그것은 바로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 제일 아름답지요” 예배당에 가보세요 성도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죄사함을 받고 기쁨과 희망에 젖어 예배드리는 것을 보시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래서 그 화가는 다음날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교인들의 모습의 그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그 자신은 여기에서 만족함을 얻지를 못했습니다.

다음엔 갓 결혼한 듯한 아리따운 여자 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물어 봅니다. “보아하니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새댁 같은데 새댁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 이라고 생각이 됩니까?” 그 여자가 말하기를 “그거야 사랑이 제일 아름답지 않겠어요?” “아 그렇겠군요”  이윽고 화가는 그 아름다운 얼굴과 만족스레하는 그녀의 모습속에 나타난 사랑의 자태를 그렸다. 그러나 그래도 그 자신에겐 만족을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날 한 군인이 피곤한 기색을 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화가는 그 군인을 또 붙잡고 물어본다 “군인 아저씨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나요? ”그거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제일 좋지요! 바로 그거로구나 이 화가는 다시 켄버스에 그림을 그립니다. 한 시골의 들녂에 무르익은 곡식으로 누렇게 덮여있고 그 옆에는 한 농부가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추수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야! 이거로구나 이 화가는 좋아 하면서 만족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상당히 변덕쟁이인 것 같읍니다. 며칠이 못가서 그 만족 스러움이 싹 가셔 버렸습니다.

안되겠다 새로운 그림의 소재를 찾아야지 하고 집을 나섰다가 그날은 아무 재료를 얻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낯으로 피곤한 모습을 지닌체 그냥 짐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가 집으로 들어서자 마자 그의 어린 아이들이 “아빠 이제 오세요?” 하면서 두 팔로 아버지를 감싸안고 반갑게 맞으면서 마냥 좋아합니다. 뿐만아니라, 그의 아내가 따뜻한 웃음으로 “여보 이제 오세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하면서 반겨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온 집안 식구가 식탁에 삥 둘러 앉아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그의 부인이 “자! 우리 아빠의 무사히 돌아 오심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합시다.”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이때 이화가는 그토록 애써서 찾던 그 무엇이 번뜩인 것입니다.
그 아내와 자녀들의 얼굴에 빛나는 광채와 사랑 그리고  신앙과 평화를 보고 그렇게 애써서 찾던 문제를 해결 했다고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되뇌이기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 그것은 바로 이렇게 따뜻한 가정 이로구나”라고 했다고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가정을 우리 인류에게 창설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행복의 원천은 가정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의 원천인 가정은 
       
1. 가정은 하나님 창조의 결정체 입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의 창조적 산물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실때 모든 피조물은 말씀 으로 창조했으나,
특별히 사람은 하나님이 손수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특별 순서를 취하셨습니다(창 2:7)그리고 그 사람을 가리켜 아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그 자리는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서 취한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친히 그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남자(Adam)와 여자(Eve)를 짝지워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연합의 신비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창 2:21-25).               

그러므로 새로운 가정의 탄생은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에 속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은 모든 창조된 영광들 중에도 절정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만이 행복의 공동체가 될 수 있고, 지상의 천국이 될 수 있으며 낙원 곧 paradise 도 될 수 있는 곳 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정을  혹자(或者)가 말 한데로 home sweet-home 이라고 합니다.
     
2. 경건한 자손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말라기 2장 10절에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2장 15절에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설정하신 가정은 경건한 자손을 번식시키는 행복의 산실입니다. '경건한 자손'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자손' 곧 '신앙인'의 자손을 말 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을 말합니다. 경건한 자손은 바로 아담과 아벨, 셋과 노아, 모세와 다윗, 사가랴와 세례요한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혈통의 아들을 말합니다.  나아가 '경건한 자손'은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정은 역사를 창조하고 계승하는 기관입니다.       

전 교육부 장관  이어령 교수는 말하기를 "삭막한 세상에서 '가족적'이란 말처럼 정다운 것이 없다. 타인들 끼리지만 형이요, 아우요, 어머니요, 아버지요, 아들이고, 딸이라면 그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잘못이 있어도, 서운한 일이 있어도 한 울타리 안에서 한 핏줄기를 나눈 가족끼리는 모든 것이 애정의 이름으로 용서된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같이 즐기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슬픔을 나누는 것이 가족의 모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한 핏줄, 한 혈족이란 뜨거운 애정이 가족을 동여매는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혈통에서 더 뛰어넘은 아가페의 힘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하신 보혈이 영적 가족공동체를 이루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건한 자손이 있는 가정에는 하나님 경외가 있고, 부모 공경이 있고, 부부 사랑이 있고, 형제 우애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용서가 있고 감사와 찬송과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전파의 능력이 생활속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대 영국 제국의 영화를 누렸던 빅토리아 여왕이 어느 때인가 한적하고 이름없는 한 시골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여왕은 한 가난한 농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은 그 가족중에 한 사람에게  '무슨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 가족 중에 한 사람은 '우리 가정에는 아무런 소원이 없고, 그저 만족하고 행복할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왕은 다시 강청하면서, '그래도 왕을 향한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왕을 향한 소원은 왕께서 주 예수를 믿고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둘러선 모든 가족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왕은 '나는 이미 당신들처럼 주님의 사랑을 받고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한 사람은 '그러면 됐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누구 앞에서나 복음전파를 주저하지 않는 경건의 능력이 우리네 가정에 있어야 합니다.   

3. 가정은 경건한 삶의 교육적 도장 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신 6:7)고 하였습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열심히, 꾸준히, 계속해서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쉬지 말고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사탄의 역사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녀들의 성장에 영적 양식을 계속해서 공급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집에 앉았을 때'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신 6:7).           
그것은 부모와 가질 수 있는 절호의 대화 시간이 됩니다.         
'길에 행할 때'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신 6:7).             
여행중에나, 다른 용무로 가족끼리 움직일 때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네 손목에 메고, 기호를 삼고, 두 눈섭 사이(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고, 가르치기를 계속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성경은 바로 기독교의 가정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경건한 자손은 경건한 부모의 가정교육의 열매입니다.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ell)라는 사람은 자녀를 영적으로 갱신된는 가능성의 존재로 보면서 자녀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6:4-5).
신명기에 기록된 유대인의 자녀교육의 장(場)인 쉐마의 첫 조건은 부모들이 신앙적 모범을 보일 것을 강조한다.
둘째, 말씀을 통하여 자녀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야 한다(신6:6-7).
여호와를 아는것이 지식의 근본이므로 자녀의 양육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야 한다.
셋째, 가정의 분위기를 신앙적으로 이끌어야 한다.(신 6:8-9).
분위기는 말 보다 더 큰 영향을 줌으로 부모의 애정과 보호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깨닫게 하며 가족간의 우의와 의미는 세계 인류는 한 형제라는 정신과 동족애를 갖도록 해준다.
기독교 가정은 항상 주님의 은혜 안에서 나타난 믿음의 생동력을 지녀야 한고 발전 시켜야 합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중단되는 날, 유대인 랍비였던, '벤자이카'(유대의 유명한 교육가)는 웨스 파샨 장군을 만나서, 교육의 도시 '아브레'만은 남겨 달라고 애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벤자이카'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어도, 그 성전이 불타버려도, 영토와 주권이 송두리채 박탈 당한다 할지라도 교육이 계속되는 민족은 언젠가 역사에서 재기할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말은 이천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적중 되었음을 볼때에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이민간 우리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해서 유대인들이 하던 과일가게 채소가게 세탁소등을 점령했어도 유대인들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미국에 이민간 교포들의 65%가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에 건너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자녀 교육에는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자녀교육에 성공한 요소는 선민공동체, 가족공동체, 예배공동체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학교나 어떤 교육기관이나 교육제도를 통한 교육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교육이 되고 특히 가정은 교육의  중심이었다. 그들의 교육은 어릴때부터 가정에서 철저히 종교교육으로  시작된다.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름을 지으며 40일이 되면 어린양을 잡아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 이때부터 유대인의 최고 신앙고백인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을 암기 하도록 하는 것이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신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11:13)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신11: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11:15)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11: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 절하므로(신11: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신11: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신11: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신11:20)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신11:21)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

(민15: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15: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민15:39)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민15:40)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민15:41)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세계의 영광이라고 자랑하던 로마인들은 '유대 아카프다'라는 '유대인을 잡았다'는 뜻이 새겨져 있는 승전기념의 동전을 만들어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던 그 때, 유대의 랍비들은 망국의 비참을 씹으면서 저들의 자손에게 율법을 교육 하였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교육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지 오래이나, 유대인은 지금도 건재하고 세계사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람아메드(The learuing pepole)' 곧 배우는 백성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가정은 행복의 원천이요 하나님의 축복의 기반이다.
가정이  흔들리면 개인이 흔들리고 축복의 터가 흔들린다.
사람이 가정에서 평안과 안정을 찾지 못하면 세상 어느곳에서도 행복을 찾을 길이 없다.
 
오늘 우리의 가정들은
철저하게 주안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한 인간으로 기독교적 인생관, 가치관을 정립하고 가정공동체를 형성하여 미래를 여는 희망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가정 공동체를 구축하여 하나님의 동산을 이루어야 한다.
(홍정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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