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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한다 (행 4: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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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한다 (행 4:13-22)

‘경영의 귀재’라고 불리는 잭 웰치(Jack Welch 1935-)는 이제 73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1960년에 General Electric- ‘GE’에 입사하여 1981년 41세라는 최연소의 나이에 GE의 회장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현대 리더십의 4가지 요소를 “4E”라고 하였습니다.  그 첫째는 Energy - 열정, 둘째는 Energize- 격려, 셋째는 Edge-결단력, 예리한 판단력, 넷째는 Execution- 실행력이라고 했습니다.  리더는 무슨 일이든 몰두하는 열정을 갖추어야 하고, 구성원들에게 격려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또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Yes와 No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예리한 판단력을 보여 주어야 하고, 한번 결정한 일들은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경영을 이룬 여러 사람들이 주장하는 리더십에 대하여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리더십에 대한 이론들이 다양한 것을 봅니다.  잭 웰치가 말하는 ‘4E’의 리더십은 간결하면서도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리더에게 ‘열정’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열정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감을 사고, 함께 갈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없다면 자기 혼자는 잘 할 수 있어도 모두가 함께 가고, 함께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열정을 보완하는 것이 격려입니다.  또한 리더에게 결단력이란 얼마나 중요한 덕목입니까?  그러나 그가 그런 결단력을 가지고 실제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면 그는 구호만 외치면 선동가는 될 수 있어도 전체를 어우르면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실행력이란 본을 보일 수 있기에 중요한 덕목이라고 봅니다.  열정, 격려, 결단, 실행력 이 4가지는 리더가 되려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잭 웰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잭 웰치는 자기의 경영에 대한 많은 철학이나 신념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에게 닥치는 많은 경영상의 난제를 풀어나갈 때에, 그에게 필요한 결단력과 추진력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합니다.  잭이 학생 시절에 5과목에서 4개의 A학점을 받고, 하나에서 B학점을 받았다고 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잘 받은 A학점에 대하여 칭찬하셨지, 잘못한 B학점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항상 격려하는 것을 잊지 않고, 축하해주고, 칭찬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아주 중요한 예를 들어보면 잭 웰치는 어려서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가 말을 더듬는 이유는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입술이 그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너는 말을 더듬는다고 해도 아무런 걱정하지 말아라.  너는 커서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다.”  이렇게 자기에게 격려해준 것이 그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리더는 격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열정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의 열정이 모든 사람들의 열정이 되려면 격려해야만 합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열정과 격려가 있고, 그리고 결단력과 실행력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열정과, 격려, 결단과 실행력을 고루 갖춘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사를 읽다보면 우리 주님은 베드로를 들어 교회의 초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그는 실패한 인물의 대표자요, 재기한 사람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칭찬받기를 천국의 열쇠를 받은 사람이었지만,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여 지옥으로 떨어져본 사람이요, 다시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아 재기한 사람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므로 기독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하여도 죽으신 후에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회는 세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독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빈무덤 위에 세워진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유대 교권자들이 생각할 때에 나사렛 예수 그 한 사람만 죽이면 따르던 무리들이 다 흩어지고, 기독교 운동은 사그라질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유대교회의 최고 실력자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산헤드린이라고 하는 의회가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은 대제사장이었고, 그를 보좌하는 제사장의 대표들, 백성의 원로인 장로들, 그리고 율법학자인 서기관들이 모이는데, 의장을 제외하고 70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들어오면서 사도들이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 들어가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몰려왔습니다.  여기의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대제사장을 도와서 제사와 의식을 집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전 맡은 자는 성전을 관리하고, 성전의 경계의 임무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사두개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유대교의 제사제도를 지지하고 대제사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요, 귀족계급에 속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까지 약300년 정도 유대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대교회의 실권을 잡았고, 정권에 야합하여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었고, 로마제국에 아부하는 세속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건인데도, 이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쳐가고는 부활하였다고 거짓말하고  있다고 헛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입니다. 

12제자들은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목격하였고 모두들 체험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약40일 정도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약속하신 성령 받기 위하여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전하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파하였습니다. 

저들 사도들은 유대교의 심장부인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예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 죽은 예수를 증거하니 세상적인 말로 하면 ‘한번 싸워보자’는 말이요, ‘우리도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말이요, ‘예수를 죽인 엄청난 죄악을 책임지라’는 말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직 예수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제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나섰습니다. 

주의 사도들은 말씀만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이적도 행하였습니다.  한 날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함께 오후 3시 기도 시간에 맞춰 성전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성전의 미문이라는 문 앞에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장애인을 사람들이 메어다가 길가에 앉혀놓고 구걸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에게  “우리를 주목해 보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면서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어가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이런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으니 부인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40년이 되도록 쳐다본 사람이었으니, 우연히 일어났다고 할 수도 없고, 사도들의 능력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주의 사도들이 성전 마당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외치고 있었으니, 교권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목구멍에 가시와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유대교권자들은 자기들이 죽인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이나 무식한 갈릴리의 청년들이 와서 성전에서 메시아가 오셨다고 가르치는 것이 미워서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레위인들을 풀어 12명의 사도들을 잡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날이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예수 믿겠다고 하는 이들이 남자만 오천명이 되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남자만 오천 명이라고 하니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게 된 것입니다.  유대교권자들은 다급해졌습니다.  그래서 12사도들을 잡아들인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에 백성의 지도자들인 관리들, 백성의 원로들인 장로들, 그리고 율법학자인 서기관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와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산헤드린 의회에 사도들을 세우고 심문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도대체 당신들에게 어느 누가 성전에 들어와 예수를 전파하라고 임명하였고, 누구의 권위로 이런 일을 하였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이때에 베드로 성령에 충만하여 말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장로 여러분, 우리가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과 또 그가 누구의 힘으로 낫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라면,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이 예수는 '너희들 집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들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유대 교권자들은 깜작 놀랐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벌벌 떨면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번만 살려만 주세요.”라고 호소할 줄 알았는데 아주 세게 나옵니다.  베드로나 요한이란 사람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요, 걷지 못하던 거지가 옆에 서 있으니 아니라,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고, 비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권자들은 두 사람, 베드로와 요한을 의회에서 나가게 한 뒤에 서로 의논하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들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고, 우리도 이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더 퍼지지 못하게, 앞으로는 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합시다.”고 했습니다. 

다시 두 사도들을 불러서,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면서부터 40년 동안이나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서서 다니는 것을 보면서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므로, 사도들을 함부로 처벌하다가는 도리어 교권자들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위협만 하고 돌려보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도 베드로를 보면서 전에 주님을 부인하던 그 베드로가 아님을 압니다.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3년이나 따라다닌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가야바 법정에 심문을 받으실 때에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버린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데, 처음에는 단순하게 부인하다가 재차 물으니, 저주하면서 부인하였고, 또 다시 예수의 제자라고 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저주하면서 맹세하여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심약한 사람, 자기만 살려던 사람이었는데, 대제사장 앞에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의 이름을 변호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그를 제자로 맞아주셨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목숨을 걸고 담대한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순교의 제물이 될 각오를 가졌습니다.

행1:8에는 우리 주님의 마지막 명령, 지상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자신을 이기고 주님을 위하여 담대한 일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사람의 힘과 능력이나 아는 것을 가지고는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고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한 확실한 체험이 없으면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고,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벧전3:15절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속에는 영원한 소망의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인생이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도 담대하십니까?  무엇이라도 믿는 구석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여야 하는데, 온유한 마음과 거룩한 두려움으로 해야 합니다.  복음을 가장 바르고 알아듣기 쉽게 요약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제시에 능하도록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잘 제시할 수 있도록 요약된 말씀을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일1:13에 보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말씀, 태초로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란 누구입니까?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우리가 들은 바요, 우리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습니다. 

요일1:3에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보고 들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사귐이 이루어진 것처럼 세상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사귐이 이루어져야 그들도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전부이십니다. 정말 우리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을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구원이 정말 엄청난 가치가 있고, 영원한 생명이기에 우리도 보고 들은 것을 말해야 합니다.  시시한 구원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이기에, 지금 조금 잘 살고 못 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를 주셨기에 이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약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렘20:9에서“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불붙는 것과 같은 뜨거운 열정과 골수에 사무치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불붙는 열정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정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하십니까?  먼저 성령이 충만해야 하고, 성령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자아가 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그의 자아에게 갇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의지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 의지를 성령님에게 맡기는 사람에게만 성령은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고 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나서는 사람 앞에 대제사장도 할 말을 잊었고, 산헤드린 의회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가 살려고 하니 무엇이 안 되지 정말 죽으려고 하면 안 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인간 베드로가 희한한 능력이 있어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을 고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능력 있게 살고, 복되게 살고, 승리하는 비결이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고, 하늘나라를 준비해주셨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살고 싶습니까?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잘 살아야 합니다.  공부 많이 하고 싶습니까?  공부 많이 해야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공부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습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천국을 예약해놓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나는 이렇게 예수 믿게 되었고, 예수 믿어 구원받았고, 천국에서 산다고 증거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을 만나면 “목사님, 저 같은 사람이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2000년 전에 죽은 예수님을 믿어지는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간증하시는 이들이 있습니다. 믿어지는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받은 선물이 하도 귀하기에 이 선물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을 주십니다.  우리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완전한 구원자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을 증거하여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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