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막 1:9-15)

  • 잡초 잡초
  • 393
  • 0

첨부 1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막 1:9-15)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이미 시작만 하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중요합니다.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습니다. 시작이 있어야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기대감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내 의지 내 뜻만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작하는데 따른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시작하면 그 시작과 더불어 포기할 것 버려야 할 것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주님이 원하시는 시작이라면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이신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의 내용입니다. 주님은 내시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작의 삶을 사셨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위하여 모든 것을 헌신하셨습니다.
이땅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기간은 3년이었습니다.33년의 삶 속에서 3년의 기간은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막바로 사역을 하시지 않고 30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위해서 3년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3년의 공생애사역은 엄청나게 큰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나폴레옹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나를 놀라게 한다. 그의 정신적 능력에 나는 전율하고 그의 의지력에 나는 당황한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에 견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유사한 인물을 찾기 위해 혹은 복음에 필적할 만한 어떤 것을 찾기 위해 역사를 뒤진다면 헛수고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마태,마가,누가,요한 4개의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동안 하신 사역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주님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삶을 사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그 삶과 그 사역의 시작이 어떻게 시작되는가? 우리에게 소개합니다.오늘 우리가 새로운 인생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귀한 교훈을 나누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때에 시작하셨습니다.

9절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라고 합니다.
여기 “때”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자랐던 갈리리 나사렛이란 동네에서부터 요단강으로 오던 때입니다. 이때는 이제 30년동안의 침묵과 기다림 끝에 이제 자신의 생애가 공생애로 바뀌던 때입니다.이제 예수님은 공생애의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시작하시되 기다리고 침묵하시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때를 기다려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우연히 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상황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변덕을 부리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계획과 때를 가지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의 때를 아셨습니다. 기다릴때를 아셨습니다. 시작할때를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보면 하나님의 때를 따라 인도를 받으시면서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서 3장에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때가 있다고 합니다 날때가 있고 죽을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고 심을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죽일때가 있고 치료할때가 있고 헐때가 있고 세울때가 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시작할때를 아셨고 그 때에 순종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때를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때를 아시는 분들은 결코 조급하지 않습니다. 초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관심하거나 게으르지 않습니다. 하나나님의 때를 아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복된 삶을 삽니다.

여러분 무엇을 시작하려고 하십니까?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시간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간 훈련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약속의 자녀를 받기까지 25년을 훈련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30년이란 시간을 준비하고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주님께서는 절대로 조급하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때가 오면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 주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먼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질서인 세례요한에게 세레받는 일에 순종하셨습니다. 당시에 예수님보다 6개월먼저 온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주었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회개의 메시지와 함께 세례요한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세레는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세례는 죄인들이 받는 것이지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받아서는 안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요한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자기에게 나아오자 어떻게 반응합니까?
이미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니 내게로 오시나이까? ” 세례요한이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어쩔 수 없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십니다. 그러자 오늘 본문에 보면 3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먼저 ‘하늘이 갈라짐’입니다. 다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는 현상’입니다. 셋째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십니다.예수님께서 순종하여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늘에서 공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 증거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만 겸손하게 낮아져서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는 깨끗하고 의롭고 온전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질서 그 뜻 앞에서 겸손하게 나를 내려놓고 순종하셨습니다. 이 세례는 자신을 위해 받는 세례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서 그분이 받으시는 세례인 것입니다.

종종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라고 하면 세례받는 것을 주춤거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직 세례받을때가 안되었다’고 합니다. 여기 준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은 회개가 아직 안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가 안되는 것입니까? 못하는 것입니까?
회개를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나의 고집 나의 자존심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직 항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내 인생을 바꾸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교만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단지 세례의 문제만 그렇습니까?
오늘 교회 속에서 우리가 걸리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왜 시작해야 하는데 못하는 것입니까? 하늘 나라에서 원하는데 나의 교만 나의 자존심 교만에 걸려서 시작하지 못하고 순종의 자리에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도 과거에 그랬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가기 위해서 목사후보생고시를 합격하고 이제 신학교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가야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좀 공부도 더하고 돈도 더 벌고 그래서 좀 더 준비가 되어 해야 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고향교회 목사님이 저를 불러 ‘지금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변명을 하자 ‘지금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내생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순종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으라고 할때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저는 아직 목사가 될만한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해서 ”나중에 안수받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아시는 장로님이 ‘지금 받으십시오’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음성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기준에서 저는 교만하고 나의 생각을 앞세운 것’입니다. 주님의 질서 주님의 뜻이라면 지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결단하고 새롭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종종 인생을 살다보면 미련하게 고집을 피우다가 기회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습관들이 무엇입니까? ‘나중에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기도하겠다고 합니다 .나중에 전도하겠다고 합니다. 나중에 성경보겠다고 합니다. 나중에 봉사하겠다고 합니다. 나중에 열심히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 깨달앗다면 지금 하셔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결단하시고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복음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시기를 기대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복과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시작의 때에 시험을 이겼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께서 공새애를 시작하실때에 시험이 있었습니다.마가복음에서는 그 시험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 정한 때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는 길 앞에 좋은 일이 있어야 하는데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세례도 받으시고 시작을 위해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는 그때에 그앞에는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 시험을 주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마귀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 예수님도 유혹하여 시험을 줄 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그 마귀가 시험을 줄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그때에 마귀도 역사합니다.하나님도 때를 아시고 역사하시지만 마귀도 때를 알고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여 시험할까요?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3가지 유혹을 받습니다.
마태복음4장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먼저 이 돌들로 떡덩어리가 되게 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하십니다. 셋째시험은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말하기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당한 시험은 아담과 하와가 당한 시험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당한 시험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 오늘 우리도 당하는 시험입니다.

예수님이 당한 이 3가지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귀가 성도들을 향해서 대표적으로 3가지를 시험합니다. 특별히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열심을 갖고 주님의 뜻을 순종하고자 하는 분들이 넘어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그 유혹의 핵심은 너가 하나님이 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해서 아들로서 하나님처럼 높아지기를 유혹했습니다.그래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고하는 표현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에게 마귀에게 경배하면 하나님의 소유인 천하만국과 모든 영광을 보여주며 소유할 것이라고 합니다.
첫사람 하와에게 유혹할 때에도 선악과열매를 따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수 있다”라고 유혹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마귀가 유혹하는 전략입니다. 왜 마귀가 이 전략을 고집하는 것일까요? 저와 여러분들에게 어떤 죄성이 있습니까?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죄성이 있습니다. 육체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원천적으로 우리 속에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죄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하여 내가 지배해야 속이 시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내 주장 내 생각 내 뜻으로 주장하여 모든 것 속에서 내가 하나님이 되어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새들백교회의 릭워렌 목사님이 쓴 “회복의 원리‘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신앙과 삶을 회복하는 첫걸음 그 시작의 비결은 간단하다고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부인하고 자기가 통제하려고 하는 것을 그치라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하나님처럼 행동하려고 합니까? 내 자신이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의 4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 이미지를 통제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스스로 통제하려고 합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알리지 않고 연기를 하고 가면을 쓰고 자기의 약점 허물을 자꾸 숨기는 것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통제 하려고 합니다. 가정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통제합니다. 교회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통제합니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해서 책망을 하기도 하여 두려움을 불러 일러일으키고 칭찬을 통해서 사람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셋째 우리의 문제를 통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도 사람의 도움도 받지 않고 언제나 난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의 고통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지금 고통을 갖고 있는데도 그것을 부인하고 피하고 숨기면서 혼자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채 초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도 아니고 하나님이 될수도 없습니다.
마귀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우리를 공격하고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마귀의 유혹을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주님께서 이기신 그 승리의 비법은 주님만의 비법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심으로 우리의 승리의 비법이 되게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나아가시고 승리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단호하게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귀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우물쭈물 탸협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마귀는 타협할 수 없고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주님의 길로 새롭게 시작하고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시작하고자 할때에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때 마귀를 대적하여 이시기기 바랍니다. 약4:7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시면서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시작하시기 바랍니다.우리의 약점을 알고 우리를 시험하는 마귀를 우리 혼자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약하지만 주님의 능력은 강합니다. 그 주님의 능력을 여기서 체험할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주님처럼 말씀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꾀와 경험 지식들을 바라보지 마시고 오직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말슴을 의지하고 말씀대로 믿고 외치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승리의 역사가 나타날줄 믿습니다.


3.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복음으로 시작하셧습니다.
이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여기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통치하는 곳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는 새시대의 복된 소식이 예수님과함께 이땅에 도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인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15절에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에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메신저로서 2가지를 선포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왔다”고 합니다.다음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회개하고 믿으라 고 선포하십니다.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사역에서 3가지 중요한 사역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둘째는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셋째는 치유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물론 이 3가지가 상황에 따라서 때로는 가르치시고 때로는 선포하시고 때로는 치유하시기도 하셨습니다.그런데 3가지 중에 가장 주님께서 강조의 우위에 두신 사역이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사역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복음서 곳곳에 주님의 설교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실때에 여기 강조하는 주제가 무엇입니까?
회개와 믿음입니다.회개란 원어는 “메타노이아”입니다. 이것은 ‘방향을 바꾸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리라,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주님께서 왜 회개의 말씀을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이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보통 “나라”라고 하면 통치자가 있고 국민이 있고 땅이 있습니다. 가령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대한민국 국기를 게양하고 환영합니다. 왜냐하면 통치자는 바로 그 나라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회개할 때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5장에 집을 나간 둘째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에 허랑방탕하여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버지께 돌아와 새롭게 풍성한 삶을 출발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기쁨의 소식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구주이시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자신의 구원의 사역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에 속한 모든 것으로 선물을 주십니다.

오늘 이땅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임하는 복을 누리게 될줄 믿습니다.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마음을 통치하시고 가정을 통치하시고 인생을 통치하시는 가운데 쉼과 평안과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성경에 베드로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다시 인생을 시작했습니다.삭개오가 회개하고 인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죄인의 괴수였던 사울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회개와 복음 속에 새인생이 있습니다. 회개와 복음 속에 새로운 가정 새로운 축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가을에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복음을 모르고 죄가 죄인줄 모르고 자기도취에 빠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우리 지역의 복음화율은 약 6%밖에 안됩니다. 10중에 한 사람도 안되는 사람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있고 나머지는 그 대상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그 복음으로 새롭게 인생을 사셨다면 이제 복음의 메신저로 소망의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이 가을에 모든 것이 허무하게 보여지는 이 계절에 새인생의 기회 오직 복음이 기회입니다. 복음으로 우리의 삶들도 다시 시작할 수 잇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