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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은 어떻게 임하는가? (삿 16:28~30, 삿 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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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부흥은 어떻게 임하는가?
본  문: 사사기 16:28~30절(구약p.391), 이사야44:3~5절(구약p.1020)

부흥에 대한 설교를 한지 몇 주 됩니다. 앞으로도 시간시간 하겠습니다. 오늘은 ‘부흥은 어떻게 임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부흥을 경험해야 되고, 부흥이 우리에게 임하고, 부흥가운데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또 교회를 통하여 세상이 새롭게 되는 역사를 가져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해야 우리에게 부흥이 임하겠는가하는 해답을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이 사사기 16장에는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있는 삼손이라는 사사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삼손은 무엇보다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에 의해 사사로 세움을 받았고 남다른 육체적 능력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하게 사사의 일들을 해왔습니다. 나귀 턱뼈하나로 블레셋 천명을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 분에게 영적인 침체가 왔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삼손에게 영적인 침체가 왔을 때 쉽게 블레셋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오늘 여러분이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까?
결국은 블레셋 여자에게 속게 되고, 마침내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그 놀라운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블레셋의 포로가 되고, 자신의 두 눈을 뽑히고, 마침내 짐승처럼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 결과 자신의 신세가 그렇게 처량하게 되어지고, 남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되고, 그뿐 아니라 더 엄청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고마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삼손은 그런 부끄러운 인생으로 자기 인생을 끝마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의 반열에 그 이름을 올려주시고 있습니다. 삼손은 궁극적으로는 성공한, 승리한 크리스챤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비참한 상황속에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영적인 부흥이 내게 다시 한번 와야 된다는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비로소 삼손은 사사답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오늘 28절에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절규와 같은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양손으로 다곤신전의 두 기둥을 잡고 기도하고 힘을 주는데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부흥이 그에게 임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회복되어서 다곤신전이 와르르하고 무러졌습니다.

삼손이 다곤신전을 무너뜨렸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왕국을 무너뜨린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삼손은 승리했습니다. 삼손에게 하나님의 부흥이 임했을때 삼손은 마귀의 세력을 때려 부수고, 그곳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나타나지게 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삼손에게 부흥이 임했을 때 삼손은 지금까지 그가 죽였던 블레셋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한 순간에 죽이고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노라고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흥을 맞이한 삼손은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온전히 돌리면서 마지막 생을 마감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 아버지, 마지막에 잘 죽게 하옵소서!”가 되어야 합니다. 내 마지막 죽음의 자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어둠의 권세를 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그런 참 사사다운 죽음, 그리스도인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본문에 삼손의 모습은 부흥이 우리교회와 우리 개개인에게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도 부흥이 임하지 않으면 우리가 영적으로 침체될 수 밖에 없고, 영적으로 잠들수밖에 없고, 우리도 역시 삼손처럼 마귀의 유혹에 속아서 넘어갈 수 밖에 없고, 세상에 포로가 될 수 밖에 없고, 영적으로 눈을 뽑혀버린 소경이 될 수 밖에 없고, 세상에서 멸시와 무시를 당하는, 그리스도인이지만도,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세상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교회가 되고만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됩니까? 오늘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입니까? 너무나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입니까? 내가 움직일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모습으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불행하게도 블레셋에게 포로된 삼솜의 모습을 내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까?

포로된 삼손의 모습은 영적 침체에 빠진 무기력한 현대교회의 모습이요, 오늘 부흥을 상실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이시간 우리는 블레셋에 포로되었으나 다시금 능력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사사답게 거룩한 사명을 잘 완수하고, 사사답게 인생을 마치는 삼손을 통해서 어떻게 교회와 우리 개개인이 영적으로 부흥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하여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정말 위대한 생애로써, 정말 아름다운 생애로써 남은 생애를 마치게 될 수 있을까?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내게도 부흥이 임해서 이와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세가지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삼손에게 임했던 부흥처럼 우리에게 임해서 삼손처럼 마지막이지만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드러내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데 쓰임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려면, 우리에게 부흥이 임하려면,

첫째, 내 자신이 지금 나에게 영적 부흥이 얼마나 시급한가를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흥이구나! 금도 아니요, 은도 아니요, 어떤 세상의 명예와 성공이 아닌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영적 부흥이다라는 이 필요성을 절감한 사람에게만이 그에게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서 삼손에게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게 되엇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도 부흥이 임하려면 삼손처럼 내 자신이 처한 영적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탄은 지금 이 시간도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잘못보게 만듭니다.

라오디에아 교인처럼 나는 부자라 부족함이 없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 어려움이 없고 사업이 그런대로 되고, 자식들이 잘 자라면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무너져 있어도 자신에게 부흥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깨닫지 못하고 살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얼마나 잘 살고 얼마나 사업이 잘 되고, 얼마나 자식들이 잘 커주고 아무런 세상적인 염려가 없어도 내 영적인 상태를 바로 보고서는 하나님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부흥입니다라고 절실히 부흥을 필요로 하는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부흥의 다가갈수가 없습니다. 그 은총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부흥이 임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에게 부흥이 얼마나 시급한가를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무감각때문입니다. 그만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왜 수 많은 교회가 영적인 잠을 자고 있습니까? 자다가 깰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깨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만큼 무감각해져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필요한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처한 영적 실상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결단코 부흥의 필요를 느낄 수 없습니다. 기도안해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고, 부흥이 내게 오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생활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사람은 더 영적으로 더 빈곤한 자리로 떨어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이란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현재의 모습을 바로 보게 될 때 긴급한 부흥의 필요를 내가 절실하게 느끼고 부흥의 목마름이 내게 나타나게 될 때 비로소 부흥의 역사가 내게 임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부흥의 목마름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지금 내게는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오직 내게는 부흥이 필요합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44:3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부흥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내가 갈한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갈한자, 마른 땅에 하나님의 부흥의 주시고, 은혜를 주시마고 약속하셨습니다.

갈한자와 마른자란 물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우리 사람의 심령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마음이 갈한 자, 가물어서 갈라진 땅을 보세요. 그 땅은 물 한방울을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심령이 목마른 자와 같고, 마른 땅과 같아서 그토록 물을 갈망하는 것처럼 우리 심령이 그토록 부흥을 갈망하는 절실함을 가질 때 그곳에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현대사회에 왜 부흥이 임하지 않습니까? 너무 잘 살기 때문입니다. 옛날과 비교하면 열배, 스무배 잘 삽니다. 예수믿으면서도 영적으로 부요하면 영적인 기갈에 대하여 느낌이 없습니다.
시편 42편 1에 시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누굴 찾아요? 주를 찾기에...오늘 여러분, 주님을 찾아나왔습니까?

이 시대의 교회 안에는 주님을 간절히 찾기 위해서 이곳에 나온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주님의 은혜와 힘과 도움을 빌어서 내가 좀 더 나아지고, 좀 더 부요해지고, 좀 더 건강해지고, 좀 더 육신의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그것을 찾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 내가 주를 찾기에 갈급한 사람은 부족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부흥이 임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주를 찾기에 갈망하는, 갈급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겁니다.

예레미야 29:13에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오늘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찾나이다. 하나님 만나기를 원합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의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 만나기를 원합니다. 내게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그곳에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찾기에 갈망하세요.

돈도 좀 있고, 세상에 살기가 넉넉해지면 이상하게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잘못입니다. 이게 바뀌어지지 않으면 부흥을 경험할 수 없어요. 예수 믿고 일생을 살아도 부흥을 경험할 수 없어요.
시편 69:32에 “여호와를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지어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찾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부흥의 은총을 입혀 주실줄 믿습니다. 내영혼이 살아납니다.

둘째, 우리에게 부흥이 임하려면 우리의 죄를 깨닫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부흥이 임하게 됩니다.
회개하는 하나님이 그곳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또한 부흥을 통해서 더 깊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감으로 정결하게 됩니다.

28절에 보면 삼손의 기도 내용이 나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하옵소서.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원수 블레셋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한번만 자신을 강하게 하여 블레셋을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기도를 언제 합니까?  여러분은 때때로 이 기도를 드려보신 분이 이 가운데도 있을 겁니다. 언젭니까? 내가 갑자기 중한 병에 들었을 때, 내가 너무나 어려운 사업의 실패를 가지고 있고, 내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여건에 처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한번만 봐주십시오. 지금까지 잘못살았습니다. 한번만 봐주시면 내가 잘 살겠습니다.
이 기도가 얼마나 절실한지 모릅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분들 다 이렇게 기도 합니다. 간절한 회개를 하는 겁니다. 이제 나를 한번만 더 살려주시면 지난날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런 간절한 회개가 삼손의 입에서 터져나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가 언제 회개합니까? 언제 아버지를 찾습니까?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먹지 못할 때 고백합니다. 회개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잘못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이 돌아간다는 말이 회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개란 죄의식을 조금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우리에게 부흥이 임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내 생활의 잘못된 것,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다 청산해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참된 회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개하지 않는 곳에는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수 없습니다. 회개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겁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노라고....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진심으로 회개할 때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도 내게 돌아오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만남의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부흥의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회개할 수 있느냐? 말씀을 들을 때...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날 때,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앞에 우리의 심령이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히브리서 4:12-13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앞에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것없이는 부흥을 경험할 수 없어요.

그 말씀을 듣고 내가 어찌할고하며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모든 지구상의 부흥의 역사는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게 된 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는 겁니다.
버릴 것을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제시대때 첩을 버리고, 잘못된 제물을 버렸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친구가 죽으면서 유산으로 남긴 돈을 떼먹었는데 만인 앞에서 그 죄를 자복했습니다. 청산했을 때 그곳에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임하게 되고 새롭게 되고 축복이 임하게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개없이는 부흥이 임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우리에게 부흥이 임하려면 삼손처럼 부르짖어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달라고 부르짖을 때 부흥이 옵니다. 28절에 삼손이 부르짖었다는 말은 삼손의 생애에 단 한번 나오는 말씀입니다. 즉 삼손이 진심으로 기도했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의 생애에서 진심으로 기도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을 까요? 삼손은 딱 한번 기록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생명을 건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삼손을 찾아오시고 그에게 능력주셔서 승리토록 역사하신줄 믿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이사야 64:1-2에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셔서 이 백성들에게 부흥을 경험케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상에서 이 백성들에게 부흥을 달라고 두 무릎 사이에게 머리를 넣고 은혜의 단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누가 부흥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이걸 한 가지 생각하고 마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느냐? 따라합시다. “기도에 부담을 가지는 사람.” 거룩한 부담을 가진 사람. 야단쳐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잘 할 수 없어요. 오늘의 현실과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부흥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내가 기도해야 하는데...이런 거룩한 부담감이 내 마음에 임하게 될 때 두드려패도,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넣겠다고 협박을 해도 거룩한 부담을 가진 주의 백성들은 기도의 자리로 나올 줄 믿습니다.

거룩한 부담을 가진 주의 백성들이 주님 앞에 모일 때, 그 한 사람 때문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기독교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여, 나 한 사람으로 인해서 주의 교회에, 우리 가정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런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지금처럼 사시면 죽을 때까지 부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지만 크리스찬답게 죽지 못합니다. 심각한 고민거리입니다. 마지막에 잘 죽어야지요.
내 전부를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삼손은 제물이 되었습니다. “나는 저들과 함께 죽기를 원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 쏟아서 하나님을 높이고, 그는 장렬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부흥은 결코 인위적으로 일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자발적인 기도의 부담이 있게 될 때, 그래서 자원하여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어서 기도의 자리에 나올 때 그 때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시고 그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그 가정에, 그 교회에, 그 땅에 부흥으로 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평양대부흥이 그냥 일어난게 아닙니다. 길선주 장로님이 박장로님께 말합니다. “장로님 우리에게도 부흥이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우리 두 사람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새벽에 나가서 기도합시다.” 이것이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기원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우리 두 사람이 새벽에 나가서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에 부흥이 임하도록 기도합시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부담 때문에 스스로 기도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한 사람, 두 사람에게 번져나가서 공식적인 새벽기도가 되었습니다. 그 기도로 인해서 평양땅에 부흥이 임하게 된 줄 믿습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정말로 삼손처럼 내 모습에서 삼손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 부흥이 없다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릴 수 없습니다 .무기력해져 있습니다. 주여, 내게 부흥을 사모하는 갈급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죄를 자복하고 깨닫고 회개자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흥을 사모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게 하여 주옵소서.”

부흥의 부담, 기도의 부담 때문에 스스로 주님앞에 찾아나와서 눈물을 쏟으면서 부흥을 달라고 외칠 때 삼손을 회복시켜서 위대하게 쓰신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때 옛 생활을 청산하고 위대하게 일어나서 민족과 역사를 살리는 하나님의 종들로 쓰임받는 하나님의 종들로 쓰임받을 줄 믿습니다.

하박국 2:14에 부흥이 임할 때 그 부흥을 통하여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젼이 저와 여러분의 비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정말 이제부터 열심히 불타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다 부흥을 경험하고 부흥을 통해서 새롭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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