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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승리 (마 5: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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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38~48/ 진정한 승리

지난 7월 19일 아프카니스탄에 의료봉사를 하러갔던 분당의 샘물교회 성도들 23명이 납치를 당하였습니다.
오늘까지 딱 10일이 지났지만 협상은 진전이 없고, 점점 더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지난 26일, 팀의 인솔자인 배형규 목사가 탈레반 납치범에 의해 살해됨으로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하루가 지난 27일과 어제 저녁 두 번에 걸쳐, 억류중인 청년들이 살려 달라는 육성음성이 전 세계로 퍼져나감으로 해서, 가족들의 슬픔과 인내는 극에 달했습니다.
한국정부와 아프카니스탄 및 미국이 모든 외교채널을 동원해서 석방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모든 상황은 불확실한 상황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여러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우리나라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고 김선일씨 납치살해 때도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까, 저들이 깔보고 자꾸 납치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방법이 뭔가? 우리나라 특공대를 보내서, 탈레반들을 완전히 박살내자는 것입니다.
해군최고의 부대 UDT, 육군최고의 부대 공수특전단, 북파공작원등을 보내서 복수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성은 없는 얘기지만,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들을 납치해서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는 그들의 나쁜 행동을, 그만큼 참기 힘들고 용서하기 힘들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씩 생각지도 않는 어려움을 당하면서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나가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 “두고보자, 가만두지 않는다” 뭐 이러면서, “복수”라는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피해가 크면 클수록 복수하려는 마음이나 생각이 깊어지고 굳어지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던 때는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일제 36년 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우리가 일제 36년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이스라엘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나 로마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겠습니까? 그것을 다 아시고 보시고 지금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뭐라고 하십니까? 복수하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복수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더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복수는 쉽고 마음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그 뒤에 다가오는 문제는 평생갈수도 있습니다.

중국영화의 가장 큰 주제는 무엇입니까? “복수혈전”입니다.
우리 아버지를 죽인사람, 복수하기 위해서 아들이 무술을 연마합니다. 어떤 때는 먹지 않고 머리에 띠를 띠고 이를 악물고 연습합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복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복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렇게 죽은 상대방의 자식들이 또 복수를 합니다.
지난번에는 가해자가 되었는데, 이제는 피해자가 됩니다. 물고 물리는 원수관계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한 사람의 문제로 시작되었는데, 가문의 문제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옵니다.
그 사람이 당대에 복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죽으면서 유언을 합니다. “저 사람 꼭 복수해서 내 원수를 갚아다오”

현대판 “복수혈전”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모그룹 사건입니다.
물론 결과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이랬더라면 어댔을까요?
아들을 때린 술집종업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술집종업원들도, 가만히 앉아서 술 먹고 있는 아들을 아무 이유없이 때렸겠습니까?
뭔가 그 아들도 잘못을 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불러가다 내가 보니, 니네들이 좀 심했다 생각한다. 나 앞에 사과하고 우리 아들에게 사과해라, 봐라 눈밑이 찢어졌잖냐.
좀 힘들었겠지만, 그 정도까지만 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한국굴지의 대기업 회장이 그 술집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복수를 한 것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간 것도 아니고, 수하의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무기나 장비도 들고 가고 여러분 이게 무슨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 모습은, 태권도 사범과 이제 태권도 흰 띠를 단 사람과의 싸움과도 같습니다.
복수했습니다. 아들을 때린 사람 찾아내서 맞은 부위 그대로 때려라, 그때는 좋앗습니다. 그때는 시원했습니다.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복수해서 기분도 좋고 마음도 시원했는데, 복수한 결과는 어떻습니까?
온 국민들이, 그 그룹에 대해서 좀 좋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도 복수해야 합니다. 당연히 복수해야지요. 그런데 복수의 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 복수의 방법을 오늘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1.소극적인 방법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4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 비유는, 39절에 나옵니다. #39절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여러분, 이 말씀이 정말 대단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오른손잡이입니까? 왼손잡이입니까? 오른손잡이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왼손잡이를 장애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오른손으로 상대방이 잘못했을때 뺨을 때릴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내가 오른손으로 상대방 얼굴을 때리면, 상대방은 어느편 뺨을 맞게 됩니까? 왼뺨입니다.
그런데 오르편 뺨을 친다는 말은 뭡니까? 손등어리로 때린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행동이, 손등어리로 뺨을 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인격적인 모욕을 받는 상황이 오른편 뺨을 손등어리로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뭐라고 하십니까?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비유는, 40절에 나옵니다.
#40절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해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겉옷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막이도 될수 있고, 바깥에서 잘때에 이불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속옷은 줄수 있어도 겉옷은 자신의 권리와 재산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능한한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까지도 원하거든 줘라고 하십니다.

세 번재 비유는, 41절입니다.
#41절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해라”
로마 군인들이 자기가 들고가야 할 짐을 힘이 드니까, 이스라엘 사람 아무나 불러서 이것 들고 오리가자 하면, 제가 10리를 들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부역이나 노역을 시키면 저항하지 말고 하라는 것이지요.

네 번째는, 42절입니다. #42절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네가지 비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사랑하고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누가요? 피해자인 내가 말입니다. 참 이해가 안되는 말입니다.
지금이 어떤 시댄데, 어떻게 하든지 상대방을 밟고 올라서야 내가 이기고 빨리 되는데, 내가 피해자고 내가 손해를 봤는데, 어떻게 내가 희생하고 내가 용서를 하라고 합니까?
여러분, 그것이 바로 주님의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수의 방법입니다.

#38~39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세상에서의 복수는, 받은 대로 아니 받은 것 이상으로 그대로 되갚아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지만, 자기를 때리고 고문하고 못 박는 자들, 벌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이 있으셨지만 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원수는 없습니다. 돈 뺏어가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대항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로마 군병과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이 더 악을 쓰고 대들었지만, 주님은 아무반응도 없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복수방법입니다.

우리성도들을 납치한 탈레반, 한 두 사람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어느 군인들을 보내야 할까요? 몇 명이나 보내야 할까요?
파견된 용감한 우리 군인들이 탈레반 몇 명을 죽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오히려 더 힘들게 하고 더 어렵게 할 뿐입니다.

생후 20개월 만에 고속도로에서 연쇄충돌로 숯덩이가 되었다가 기적같이 살아난 조엘이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온 몸이 불에 타서 얼굴은 거의 외계인같이 되고, 어린 몸으로 5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사고 후 18년 만에 열린 법정에서, 자기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 운전수를 만났습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이지선씨가 있습니다. 만취차량의 사고로 차에 불이 타서 거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후에 그 범인이 체포되었습니다. 이지선씨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 내가 용서했는데 보면 뭐할 겁니까?

우리는 원수를, 가해자를 세상의 방법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으로 복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겉으로는 지는 것 같고 무력한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 이것보다 더 큰 힘이 없습니다.
용서는 누가 할 수 있습니까? 높은 사람입니다. 윗사람입니다.
윗사람이 용서해 주는 것이지요.
내가 잃어버리고 내가 빼앗겨도 내가 용서해 주면, 내가 윗사람이 됩니다.

2.적극적인 방법입니다.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여기서 핍박한다는 말은, “공갈하고, 협박하고 천대하고 멸시하고 무시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나를 모욕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지요.
#롬 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최대의 복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7마디를 하셨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완전히 원수지요. 원수라도 그런 원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 원수를 위해 기도하신 것이지요.
스데반 집사도 순교할 때,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참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뭔지 아십니까?
내가 힘이 잇는데, 그 힘을 못 쓸 때입니다. 참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뭐라고 합니까? “야 주먹이 운다 울어”
그런데 이길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위하여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내가 너를 이길 힘이 있지만, 내가 참아서, 공동체가 유익이 되고 모두가 좋다면, 나는 기꺼이 참는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요.

예수님은 하늘의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들을 불러, 그 사람들을 완전히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만일 그렇게 한다면 성경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고, 우리가 어떻게 구원 얻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마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내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기는 것이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탈레반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 사람들이 모르고 그렇게 한 것이지요. 한생명의 귀중함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아무갓도 모르니까 그런 나쁜 행동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 중에, 토마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나서 조선에 성경책을 전해주면서 선교한 사람입니다.
제너널 셔먼호를 타고 조선에서 성경책을 전해주다 배가 대동강에 좌초하자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사장에서 칼에 맞아 순교 당했습니다.
토마스 목사님의 목을 칼로 벤 사람은 박춘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내리칠려고 하는데, 선교사님이 한마디 하면서 조그만 물건을 하나 주었습니다.
"잠깐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물건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일로 조선 땅에 뿌린 복음이 열매로 맺게 하여 주옵소서."
그때가 1866년 9월 3일이었고, 토마스 선교사의 나이 28세였습니다.

영국정부가 조선에 어떤 복수 행위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의 힘을 아시지요, 지금의 미국보다 더 큰 힘을 가진 나라가 그 당시 영국이었습니다.
만일 영국이 그 사건을 계기로, 무적함대를 이끌고 복수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토마스가 죽고 33년이 지난 1899년에,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박춘권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33년 전의 그 일이 평생에 잊지 못할 일이었고, 그 계기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지요.
그런 선교사님들의 눈물어린 순교와 피로, 이 나라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라크의 고 김선일씨, 아프카니스탄에서의 고 배형규 목사님, 이 외에도 여러 힘든 나라에서 직간접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피와 땀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우리가 과거에 그랬듯이 반드시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수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속에서도 힘들수록, 더 어려울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에게 어려움을 주고, 힘든 상대가 되는 되는 사람들을 위해 더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혜가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길을 따라 가는 길이요, 주님의 방법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늘의 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46절이지요.
세상에서는 원수같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해주는 것이, 마음상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지만, 그 마음을 주님께서는 아시고 하늘의 상으로 위로해 주신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굳이 원수관계가 아니더라도, 조금 소원하신 관계로 힘들어하고 있는 분들, 먼저 내가 희생하십시오, 내가 먼저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내가 희생해서 전부가 좋아지면, 내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주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하는 것이, 참는 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없어서, 못나서 그렇게 하는 것인줄 압니다.
그래서 사람 찾아다니면서 호소하고 알아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내가 힘들테니, 네가 좀 더 잘되라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와 자식이 말로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그렇습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습니다.
부모가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부모가 성숙하기 때문에 그렇게 양보해 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성숙한 자가 마음이 아프고, 성숙한 자가 양보하고 성숙한 자가 먼저 고개를 숙입니다.

*믿지않는 동네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은 양씨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에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집에 어미 돼지 5마리가 있는데, 이 돼지들이 옆집 채소밭을 다 먹어 치웠습니다. 옆집에서 배상요구를 하는데, 5마리 어미 돼지 다 달라고 합니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럴 때 화가 안나는 사람어디 있겠습니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형제님이 어떻게 변했는지 시험할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형제님이 흥분하고 화내면, 예수믿는 사람이라도 별수 없구나 하고 형제님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취급, 그러니까 그렇게 못할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다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손해보게는 안하실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양씨는 어미 돼지 5마리를 다 주어 버림, 동네에서는 ‘양씨 미쳤다, 또 역시 예수 믿더니만 달라졌다’ 목사님은 그가 그렇게 했을까 의문,
몇 달이 지나고 그 양씨가 다시 한 밤에 찾아왔습니다. 처음 목사님 말씀을 따르기는 했지만 몹시 분해서, 그 옆집 사람을 못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집 황소 일곱 마리가, 우리집 밭에서 실컷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 사람이 그걸보고 난처한 얼굴로, ‘양씨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 그대로 황소 일곱 마리를 다 끌어오고 싶었지만, 목사님께 여쭤 보려고 왔습니다.
역시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어미돼지 다섯 마리에 황소 일곱 마리, 역시 하나님은 잃은 것보다 더 많이 주신 것입니다’ 양씨의 얼굴은 목사님이 그렇게 하시지요 동의를 얻으려 왔던 것입니다.
목사님 - “형제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을 용서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심”, 양시 실망하며 돌아감,
다음날 저녁 양씨가 신이 나서 또 왔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말씀이 맞았어요, 목사님이 어제 말씀하신대로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옆집 사람이 돼지 90마리를 끌고 우리집으로 와서, 이 돼지 자네 걸세, 자네 때문에, 지난 밤에 한숨도 못잤음. 지난번 일로 화가 잔뜩 나 있을 텐데, 왜 황소 7마리를 달라고 하지 않느냐, 자네 돼지가 낳은 새끼 열 여덟마리씩 합해서 90마리 전부 데리고 왔으니 자 가져 가게, 그리고 이젠 이웃끼리 잘 지내보세,”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안빌려 주더라는 것이지요. 며칠 뒤, 그 이웃이 호미를 빌리러 왔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호미를 빌려 주었습니다. 이웃이 가고 난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은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빌려줍니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복수와 증오다. 하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것은 용서고 사랑이란다."

지금 내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요? 용서와 사랑이 복수와 증오의 마음을 덮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탈레반들에게 납치된 사람들, 아무 대책없이 그냥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구출하도록 열심히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던 모습으로도 복수하고 원수 갚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정신대 문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알리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그렇게 했으니, 우리도 일본여자들을 정신대로 삼아야 되겠다 그런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또 다른 피의 복수가 다가올 것이고 결국은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사건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원수같이 보이는 탈레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탈레반은 없습니까?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관계가 소원하고, 마음속에 뭔가 거리감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내가 네한테 이런 어려움을 당했으니 내가 결코 잊을수 없다, 안됩니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손을 내 뻗고 기도해 줘야 합니다. 그것이 이기는 것이고 그것이 승리하는 것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입니다.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원수지만, 납치했지만, 내가 먼저 용서하고 사랑하고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 성령님의 은혜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크고 작은 인간관계속에서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속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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