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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책임은 아름다워라 (민 1: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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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아름다워라 (민 1:47-54)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어느 모임, 어느 공동체에서든지 책임지는 사람이 기둥입니다.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이 나라의 사람입니다. 교회를 책임지는 사람이 교회의 사람입니다.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가정의 사람입니다.
책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두 가지 이야기로 열겠습니다.

책임 첫 이야기
이 철환 작가가 쓴 <연탄길>은 아직도 책 분야에서 인기가 대단합니다. 제 3편까지 나왔습니다. 제2편에 실린 글입니다.
<아빠는 우리 가정의 지붕>이라는 글이었습니다.
회사에서 퇴출 당한 후 가정이 점점 가난하여졌습니다. 그 동안 벌어 놓은 돈이 없어서 다 까먹고 나니 이제는 거지같았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다녀와 말했습니다.
<아빠! 내 친구들이 내 신발을 보면서 거지 신발이래.>
그 날 밤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집이 새어서 안방이 물투성이었습니다. 아빠가 잠깐 나간다고 나갔는 데 밤 1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집안식구는 무슨 일인가 걱정이 되어 밖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 하고 돌아오는 데 지붕 위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우산을 받쳐들고 있는 남자는 분명히 아빠였습니다. 놀라서 아빠를 부르려고 하는 데 엄마가 말했습니다.
<부르지 말아라. 아빠가 가장으로서 자기 책임을 못 다 하니까 저렇게 라도 하여 책임을 지려고 하는 마음을 꺽지 말아라. 아빠의 보람을 망가뜨리지 말자. 아빠는 우리 가정의 우산노릇을 하려고 하고 있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책임지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책임을 지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책임 두 번째 이야기
일본 사무라이 정신은 책임지는 정신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가게 주인이 손자를 데리고 할아버지에게 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 오는 길에 이 아이가 가게 빵을 훔쳐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했습니다.
<당신 손자가 우리 가게와 들어와서 빵을 훔쳐 먹었습니다. 그리고 안 먹었다고 거짓말을 뻔뻔스럽게 합니다. 빵값을 내시오. 그리고 교육도 시키십시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었습니다.
<너 정말 빵을 훔쳐 먹었니?>
손자가 말했습니다.
<훔쳐 먹지 않았어요. 나 학교에서 돌아 오는 길이라 배고파요. 그러나 훔쳐 먹지 않았어요. 친구가 훔쳐 먹었어요. 난 절대로 안 훔쳐 먹었어요.>
그러나 가게 주인은 막무 가내였습니다. 분명히 이 아이가 훔쳐 먹었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몇 번 물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칼을 가지고 와서 손자의 배를 갈랐습니다. 빈 속이었습니다. 주인이 멍하게 보고 있을 때 칼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아이를 죽인 책임을 지고 죽으시오.>
그 주인은 사무라이 정신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죽게 한 책임, 의심한 책임을 지고 자살하였습니다. 할아버지도 두 명을 죽게 한 책임을 지고 자살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입니다.
책임지는 정신입니다.

오늘 성경으로 들어갑니다.
레위인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이 되었고 기둥이 되었습니다.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하나님은 레위인에게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증거막은 성막입니다.
성막을 짓고 동서남북에 각각 세 지파씩 12 지파가 진을 치고 살았습니다. 레위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게르손, 고핫 그리고 므라리입니다.
성막 문 앞에는 모세와 아론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 게르손은 성막 서편에 진을 치고 살았습니다.
둘째 아들 고핫은 남쪽에 집을 쳤습니다.
막내 아들 므라리는 북쪽에 진을 치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책임이 있었습니다. 무슨 책임이 있었습니까?

1. 하나님에 대한 책임.

레위 자손들이 하나님을 향한 책임은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짐승들이 쓸 데 없이 드나들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성막에 있는 성물들은 거의 값비싼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성물들이 도둑맞지 않도록 지키는 일도 하였습니다.
번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일,
등대에서 빛이 그치지 않게 하는 일,
떡상에 떡을 만드는 일,
물두멍에 물을 채우는 일,
성막에 관계된 일은 모두 레위인들의 책임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향하여 주신 책임을 목숨을 걸고 책임졌던 자랑스러운 지파입니다.

레위는 연합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이름대로 됩니다. 특별히 성경의 이름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비둘기처럼 니느웨성에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가나안 온 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별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론은 고상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중에 최고로 고상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아간은 말썽군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이성 싸움에서 물건을 훔쳐 감춤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게 하는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말썽을 일으킨 다음에 아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닙니다. 이름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이름에는 예언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는 연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레위는 온 형제들을 연합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합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 각부 일들 모두 하나님의 일에 충성스러운 책임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에 대한 책임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기둥입니다.

2. 사람들에 대한 책임

사람마다 하나님에 대한 책임이 있고 사람들에게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레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책임은 막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는 파숫군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사해에 들어가 수영을 몇 번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영을 하는 곳에는 망대가 있습니다. 그 곳에는 망을 보면서 수영하는 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조금 멀리 나가면 호르락을 요란하게 불어 댑니다. 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10분 이상 물속에 있으면 몸이 졸아 든다고 나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들이 사해에서 수영하는 이들의 생명을 지켜 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지켜 주는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성막 중심으로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시하였습니다.
이들은 늘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벗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제2성전 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로마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공부를 절대로 금하고 있었습니다. 만일에 토라공부를 하는 이가 발견이 되면 사형이었습니다. 그러나 랍비 아키바는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태연하게 토라를 가르쳤습니다. 한 유대인이 물었습니다.
<랍비님은 로마인들에게 사형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
걱정스럽게 물어 보는 유대인에게 랍비는 말했습니다.
어떤 여우가 지나가다가 보니 물고기가 물속에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잡아 먹고 싶었으나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어부가 오더니 그물을 치고 물고기들을 잡으려고 고기들을 그물속으로 몰고 있었습니다. 여우가 물고기들을 보고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물고기들아! 어부들이 너를 잡으려고 한단다. 빨리 마른 땅으로 나와 나와 같이 살자. 나와 친한 친구가 되자.>
이 말을 들은 물고기들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여우야!
우리가 곧 그물에 잡히게 될 것은 뻔하다. 그러나 우리가 물속에서 나가면 당장 죽는다. 그물에 잡힌다고 하더라도 네게 갈 수가 없다.>
이 말을 하면서 아키바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율법 밖으로 나가면 곧 죽고 마는 민족입니다. 잡히더라고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율법공부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율법을 향하여 가다가 죽을 수는 있어도 율법을 피하다가 죽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로마인이 무서워도 할 수 없이 율법 공부는 계속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율법공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책임이 레위인에게 주어졌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죽습니다. 안식일을 꼭 지켜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물질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어도 황충이가 먹습니다. 월급을 많이 받아도 구멍 뚫린 전대에 넣은 것 같아서 다 새어 나갑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말하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합니다.>
늘 잘못 가게 되면 호르라기를 불어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험한 지역에 가지 못 하게 하는 책임을 레위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레위인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을 때 막아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 세계인이 지옥을 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향한 책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3. 가정에 대한 책임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책임은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책임도 생명을 걸고 지켰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위한 책임도 잘 지고 나가는 이들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은 24 반차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1,000명씩 교대를 하였습니다(대상 23;4) 그리고 일년에 네 절기 즉 유월절, 칠칠절, 대속죄절 그리고 초막절에는 모두가 같이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레위인들은 일년에 6주 성전에서 일하고 나머지 46주는 집으로 돌아가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가정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레위인의 가정이 불행하였다는 이야기가 성경에는 한 구절도 없습니다. 레위인의 가정에 문제가 생긴 일을 기록한 것이 없습니다.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레위인들은 가정에 대한 책임을 성실히 준행하였습니다.

나는 한신대 교수이신 정 태기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이런 인상깊은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삼양동에 자기가 잘 알고 계시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는 현대건설 현장 소장님이십니다.  그가 한번 공사 소장으로 나가면 몇 년이 걸립니다. 큰 건물 하나를 완성할 때까지 현장 감독을 하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부산에 현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년 가량 걸리는 공사입니다. 한번 나가면 보통 6개월에 한번씩 집에 오곤하였습니다. 하도 오랫동안 오지 않으니까 아내가 중학교 2학년 된 딸을 아버지에게 보냈습니다. 옷도 보내고 필요한 것을 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부산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집에 갑자기 들이 닥쳤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밥상을 차려놓고 희희낙낙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 날 밤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호텔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아무 말없이 하룻밤을 지내고 딸을 서울로 보냈습니다. 딸을 서울로 보내면서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내일 서울 집으로 간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서울로 풀이 죽어서 올라 왔습니다. 어떻게 딸을 대하고 아내를 만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대책이 서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집으로 들이 닥쳤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아내가 너무나 반갑게 맞는 것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딸이 부산갔다 와서 이야기하는 데 혼자 사느라고 고생이 말이 아니라면서요.... 미안해요....고마워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밤새 한 잠도 못 자고 혼자 훌쩍거리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기특한 딸....>
딸이 결혼하던 날 아버지는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말했습니다.
<너는 내 스승이자, 너는 내 은인이다. 너는 딸이자 내 보호자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기둥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에 대한 일을 책임지고, 백성에 대한 일을 책임지고, 가정에 대한 일을 모두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4. 자기에 대한 책임

하나님에 대한 책임도 중요하고 아릅답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가정에 대한 책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에 대한 책임입니다.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修身諸家治國 平天下)라고 하였습니다.
. 자기의 영관리를 잘 하여야 했습니다. 자기 인격관리, 자기 행동관리, 자기 몸관리가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지낼 때면 골방에서 골몰하였습니다.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 9;33)

레위인들은 자기 일에만 골몰하였지 다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자기 관리의 표본입니다.
켄터키 주립대 정신병원에 지난 3년간 입원한 환자 가운데 목사가 7명이 있었습니다. 목사가 다른 사람의 정신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정신병원에 들어 온 이유를 분석하여 보았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영적생활을 철저히 하면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가정에게 책임을 다 하며 열심히 살다보니 자기 관리가 소홀하였습니다. 점잖을 빼느라고 잘 놀지도 않았습니다. 잘 웃지도 않았습니다. 목사라는 강박관념에 빠져 감정을 털지 못 한 분들이었습니다. 웃고, 즐기고, 화도 격할 때에는 내기도 하는 소탈한 성격을 가지고 못 하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모든 책임을 다 잘 하였어도 자기 관리 책임에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레위인들은 항상 자기 관리에 정성을 다 하였던 이들이었습니다. 일년 6주는 일에 골몰하지만 나머지 46주는 가정으로 돌아와 자기 할 일을 하였던 이들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이 자기에 대한 책임을 잘 지킨 결과가 확실하게 들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금식기도하고 십계명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 왔습니다.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 하시는 것은 우상이었습니다. 모세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두 돌판을 금송아지에게 던졌습니다. 돌판도 깨지고 금송아지도 깨졌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외쳤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사람들을 죽일 사람은 나오라.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 헌금하지도 않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오라>
그 때 모세앞으로 나온 지파가 레위 지파였습니다. 이들은 우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모세가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출32;29)

그 때부터 하나님은 레위 지파를 하나님의 일군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레위 지파는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있었음을 확실하게 들어내 주고 있습니다. 그 지파가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서울 시장을 지낸 김 상돈 씨를 우리를 어렴프시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LA에서 80세에 돌아 가셨습니다. 그가 중년에 그렇게 건강하였던 비결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장로입니다. 새벽 5시면 꼭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원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깡통, 그리고 휴지를 주웠습니다. 아침마다 팔아서 동아일보 꿈나무 장학금에 기부하곤 하였습니다. 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일어나기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줍기가 창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나는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가난한 아이들 한 명이 더 공부하는 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내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내 믿음도 유지되었습니다. 휴지를 줍고, 폐지를 모으는 일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영을 지키고, 건강을 지키려는 자기를 위한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레위인은 책임질 줄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네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책임
2. 사람들에게 대한 책임
3. 가정에 대한 책임
4. 자기에 대한 책임

결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 네 가지 책임을 책임지시는 데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책임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다 하셨습니다. 온 인류가 멸망되지 않도록 책임을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정도 30세까지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러 가시면서까지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책임지신 본보기이십니다. 네 가지에 책임을 아름답게 지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책임은 아름답습니다.

왜 책임이 아름다운 것일가요?

1. 책임 자체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개미 허리에 쌀가마를 올려 놓지 않습니다. 그런 책임을 맡았다는 말은 그 만큼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입나다. 책임없이 사람은 사람은 허전한 사람입니다. 허탈한 사람입니다. 누구도 인정하여 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2. 책임에 충성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골방에서 골몰하는 레위인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니다. 충성하여야 합니다.

3. 책임을 완성하면 더더욱  아릅다운 것입니다. 이번 부흥회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책임을 완성하십시오.
(1) 금식기도
(2) 두 명 전도
(3) 확실한 성령 체험

그러면 부흥회의 책임을 완성한 아름다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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