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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서(2) : 바울의 2차 선교여행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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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서(2) : 바울의 2차 선교여행 (행 16:6~10)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의 네 차례에 걸친 선교여행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성경에도 맨 뒤에 나온 컬러 지도에 이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 여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세 번의 선교여행을 마친 후 로마를 향해 떠나는 마지막 네 번째 선교여행을 하게 되지요. 율법을 신봉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바울이 되고 안디옥 교회에서 이 바울과 바나바를 안수하여 기독교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하는데 이 때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안디옥을 출발하여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오늘날의 키프러스 섬)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 다음에는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는데 이 때 함께 동행했던 요한(마가 요한)이 그만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도 버가라는 곳에 가보면 찬란하고 화려한 그 당시의 유적들이 남아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야, 이렇게 화려하니 힘든 선교여행에 지친 마가가 눈이 획 돌아서 돌아가 버릴 만도 하다"고 느낀답니다. 여러분도 마가처럼 세상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사명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중에도 15장 36절부터 18장 22절에 걸쳐 사도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여정이 나오는데 1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 바울과 바나바가 다시 동행하여 선교지를 재방문하기로 했지만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문제로 다투어 갈라서게 됩니다. 바나바는 어떻게든지 조카인 마가를 다시 데려가기를 원했지만 바울은 반대했기 때문에 다투다가 그만 따로 헤어져 각자 선교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구브로 섬(키프러스)에 선교하러 가고 바울은 실라를 새로운 선교 동역자로 택하여 안디옥을 출발해 2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번 성지순례에서 이 사도 바울의 선교지를 많이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 중에도 특히 이 2차 선교여행지를 거의 다 돌아보는 특별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했던 그 현장들에 제가 직접 서보니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이 사도 바울의 2차 선교여행 루트를 따라 가다보니 그 선교지에서 있었던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 사건들을 통해 오늘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야 할 중요한 교훈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첫 번째 시간으로 사도 요한의 발자취를 따라 밧모 섬과 에베소에 가보았는데 오늘은 이어서 두 번째 시간으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2차 선교여행지를 함께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제 1 : 막으심과 허락하심

실라와 함께 2차 선교여행을 떠난 바울은 안디옥을 출발해 고향인 다소를 지나 더베와 루스드라 지역에 가서 디모데라는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을 지나 여러 성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데 이 때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사도행전 16:6~7을 함께 읽지요.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리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사도 바울은 이 때 계속해서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지난번 선교여행 때 전도한 지역도 다시 가보고 싶고 또 아직 아시아 지역에도 복음이 안 들어간 곳이 많은데 굳이 아시아를 벗어나 다른 곳에 가서 복음 전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이 때 본문에 나온 대로 성령이 아시아에서 전도하는 일을 막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는 수 없이 방향을 틀어 소아시아 끝에 있는 항구 도시 드로아에 가게 됩니다. 바로 그 때 밤중에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막으심과 허락하심'이라는 아주 중요한 주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는데 자꾸 상황들이 그렇게 되어서 결국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반대로 나는 정말 하고 싶은데 자꾸 일이 꼬이고 안 되어서 결국 그 일을 못할 때도 많이 생깁니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이런 경우 상당수가 성령님의 뜻일 때가 많습니다. 인간적인 나는 간절히 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 성령께서 어떤 방법을 써서든 막으십니다. 또 나는 정말 하기 싫은데 하나님의 뜻이 하는 것이라면 성령께서 어떻게든 내가 하도록 몰아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막으심과 허락하심'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내 뜻대로 안 되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도 개인적으로는 아시아에서 전도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못 전하도록 막으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막으셨는지는 본문에 안 나와 있어서 모르지만 아마 어떤 병을 주시거나 어떤 환란을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성령께서 자꾸 막으시니 바울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잠시 선교를 멈추고 있었는데 바로 이 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게 됩니다.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하나 나타난 것입니다. 마게도냐란 마케도니아, 즉 알렉산더 대왕이 태어난 것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지역 이름입니다. 이 그리스의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간곡히 요청합니다. 즉 아시아만 말고 유럽 지역인 그리스에도 와서 복음을 전해달라는 요청인데 사도 바울은 이 환상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인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도 바울은 배를 타고 에게 해 바다를 건너 그리스의 네압볼리에 상륙하고 마게도냐 지역의 첫 성인 빌립보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다가 자주장사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 전도하고 세례까지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교회사에 있어 정말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즉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아시아에만 머물던 복음이 드디어 유럽으로 건너간 사건이고 이를 통해 전파된 복음이 전 유럽을 기독교의 땅으로 만들게 되고 이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미국이 세워지고 또다시 아시아로 복음이 전해져 우리 한국에까지 선교가 되는 엄청난 사건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번 성지순례에서 바울이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건너가 처음 상륙한 그리스의 항구 네압볼리에 가보았습니다. 지금은 '까발라'라는 이름의 도시인데 여기에는 사도 바울 상륙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바다를 건너 그리스에 오는 장면이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고 사도 바울이 상륙할 때 처음 밟았다는 돌도 놓여 있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유럽에 들어가 처음 발을 디딘 네압볼리 항구에 서서 이런 복음성가 가사가 떠올려 보았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이 복음성가는 사도 바울의 주제가요 오늘 우리 하나님의 일꾼들의 주제가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주님 뜻이 아니면, 성령이 막으시면 안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주님 뜻이 그렇다면, 그래서 성령이 시키신다면 순종하여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사도 바울의 이런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위대한 유럽 선교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비록 지금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혹에 빠져 내 뜻대로만 하려고 들면 이런 놀라운 역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동의가 안 되고 지금은 이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의 힘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막으심과 허락하심'의 이유입니다.


주제 2 : 환난과 핍박 중에도

네압볼리를 떠나 저는 빌립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에 가보니 사도 바울이 이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 들어와 자주장사 루디아를 처음 만난 장소에 루디아 기념교회가 서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3절에 보면 사도 바울 일행이 기도할 곳을 찾다가 성문 밖 강가에서 여자들이 모인 곳에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성문 밖 빨래터였던 모양입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한 여인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데 바로 자주장사 루디아라는 여자였습니다. 이 루디아에 대해서는 시간관계 상 다음 주에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고 아무튼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전해들은 루디아는 예수를 믿게 되어 유럽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됩니다. 지금 이 루디아를 만난 강가에는 루디아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고 그 빨래터에 루디아가 세례 받았다고 하는 장소에는 기념 세례 터가 남아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세례입교식을 갖게 되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이 세례 터를 찾아와 세례를 준다고 합니다. 우리는 비록 이곳 빌립보까지 찾아가 세례를 베풀 수는 없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도 성령께서 아주 뜻 깊고 감격적인 세례입교식을 갖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돈밖에 모르던 자주장사 루디아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세례를 받고 새사람 된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서 세례와 입교를 받을 모든 분들도 오늘 2007년 11월 4일 새사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 일행은 이곳 빌립보에서 큰 봉변을 당하게 됩니다. 어떤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 귀신을 쫒아내고 고쳐주었는데 그만 그 귀신들린 여종에게 점을 치게 해서 먹고 살던 주인들이 자기 수입이 끊어진 것을 알고 분노하여 사도 바울 일행을 고발한 것입니다(행 16:16 이하). 사유재산침해죄였을까요? 이에 고발을 받은 빌립보의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를 심하게 때린 후 감옥에 가두게 되는데 이번에 사도 바울 일행이 끌려가 매를 맞았다는 시장 터(아고라)에도 가보았고 그들이 갇혔었다고 전해지는 감옥 터에도 가보았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들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우리가 잘 아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23부터 그 사건이 나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실컷 맞고 발에 차꼬가 채워져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쯤 되면 그들의 입에서 아픔을 못 이겨 신음소리가 나거나 "아이고 죽겠다" 소리가 나올 만 합니다만 그들의 입에서는 이런 소리 대신 기도와 찬송소리가 나옵니다. 바로 이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다 열리고 죄수들은 죄다 도망을 가고 맙니다. 물론 지금도 이 지역에는 크고 작은 지진이 자주 일어납니다. 하지만 마침 이 때 지진을 일으키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죄수들은 다 도망을 가는데 바울과 실라는 도망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물론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 때 이 죄수들을 지키던 간수가 칼을 빼어 자결을 하려 듭니다. 대개 이 당시 간수들은 퇴역 군인들이었는데 이처럼 대규모 탈출사고가 일어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기에 낙심하여 차라리 자살을 하려고 들었던 모양입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바울과 실라는 간수를 말리고 결국 간수와 온 가족이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빌립보 감옥 터에 갔을 때 또 이런 찬송 가사가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지난주 이 시간에 불렀던 찬송가 3367장이지요. 여러분, 성경을 보면, 특히 성지를 방문하게 되면 어김없이 우리는 환난과 핍박 중에도 신앙 을 지킨 성도들의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터키 갑바도기아에는 핍박을 피해 광야로 나가서 거기 동굴을 파고 신앙생활을 한 선배들의 발자취가 남아있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황량한 그곳에서 성도들은 굶주림과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면서도 오직 자유롭게 예수 믿을 수 있다는 기쁨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로마군이 쫓아오면 지하에 8층 깊이로 판 지하도시에 숨어들었고 그러다가 잡히면 원형경기장에서 사나운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실컷 두들겨 맞고도 신음소리나 원망 대신 찬송하고 기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랬더니 지진이 나고 감옥 문이 열리지요? 간수와 그 온 가족을 전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 일행은 이런 기적이라도 일으켰지만 그 고생을 한 성도들 대부분은 심지어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에게 물어뜯기는 그 순간에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들이 갇힌 감옥 문이라도 열리든지 아니면 원형경기장에서 다니엘처럼 사자의 입이라도 막는 기적을 일으켜주셔야 할 텐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허무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그 자리에서도 놀라운 일은 일어났습니다. 어떤 일일까요? 그 고난 중에도 꿋꿋하게 지킨 성도들의 믿음이, 그들이 흘린 순교의 피를 통해 하나님이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성도들은,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영적인 눈으로 이것을 보았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일 없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성도들은 분명히 보았습니다. 자신들이 당하는 환난과 핍박 위에, 오늘 내가 흘리는 이 거룩한 순교의 피 위에 장차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복음을 역사가 일어나고, 신앙의 후배들이 핍박 받을 각오, 생명 잃을 각오까지 하고 복음 들고 온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이것이 순종의 힘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복음전파의 놀라운 사명을 위해 순종과 믿음으로 무장한 용사로 불러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오늘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복음의 기적을 이루어가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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