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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엡 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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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엡 2:8-10)

오늘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을 보니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여기까지 올 때 얼마나 마음에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인사)

몇 해 전에 '반 고흐'의 작품과 피카소의 작품 몇 점이 없어져서 세계 화랑이 발칵 뒤집혀지고 국제 경찰들이 나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작품의 하나의 값이 얼마쯤 되는가 신문을 보았더니 수 십억에서 어떤 작품은 수백 억이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가 그림을 그린다면 여러분이 얼마에 사겠습니까? 한 1억쯤에 살 사람이 있겠습니까? 가만히 놔둔 깨끗한 종이라면 누가 사 갈 사람이 있을텐데, 제가 그려놓으면 낙서해서 버린 것이라고 그때부터 휴지 취급할지 모릅니다.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값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0절 말씀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 "만드신 바"란 말을 공동번역이나 새 번역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한번 실력 삼아 만들어 본 연습작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 것이 그 자체가 신비요 이적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1억5천만 대 1의 엄청난 경쟁을 뚫고 태어났다는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지구상에 65억 가운데 나와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책 가운데 “우리 몸의 이야기”라는 책에 보니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속에 내장기관 하나 하나 신비가 아닌게 없어요. 심장은 1분동안 펌프질하는데 4L이상 피의 양을 펌프질합니다. 양동이 ½, 1시간에 30통, 하루 720 양동이로 피를 퍼 올리고 있습니다. 신경의 신호는 빠른 신호인 경우 1초에 120m 전달합니다. 1시간당 서울 부산간의 거리인 432km를 우리 몸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콧구멍이 냄새를 맡는데 얼마나 섬세한지 1만가지 이상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겉으로 얼굴만 봐도 신비하기 짝이 없습니다. 널찍한 운동장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밑에 송충이 같은 눈썹이 있는데 눈썹이 옆으로 비스듬히 났어요. 왜 그러나 그랬더니 땀을 흘리면 땀을 옆으로 밀어내기 위해서 그렇답니다. 어떤 사람은 싹 밀어버린 사람이 있는데 땀이 눈으로 들어갈 거예요. 눈이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눈이 한번 깜짝깜짝 할 때마다 기름을 쳐서 눈을 얼마나 맑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이 코가 구멍이 밑에서 뚫려서 다행이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코가 뒤집어서 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라구요. 만약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비가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큰일납니다.

귀가 얼마나 기가 막힌지 모릅니다. 달팽이 관이라고 있는데 동물들은 일어서서 못 다닙니다. 사람은 걸어서 다니고 뛰어다니고 그렇게 밀어도 안 넘어지고 귀에 균형 잡는 달팽이 관이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귀가 소리를 듣는데 너무 파장이 큰 것도 안 들립니다. 너무 파장이 작은 것도 안 들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 지구 돌아가는 어마어마한 큰 소리가 납니다. 데쉬빌이 너무 높기 때문에 우리 귀를 스쳐지나 가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마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 날로 고막이 파혈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너무 작은 소리도 안 들립니다. 그것도 복이예요. 고층 아파트에서 사는 분들 가운데 지하실에서 개미 밥 먹는 소리까지 다 들려보세요. 그게 복이겠습니까? 안 들리는 것도 복이예요. 그래서 적당한 소리만 듣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신비 아닌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의 육체만 보아도 하나님의 걸작품인데 우리에게는 영이 있고 혼이 있습니다. 기억을 합니다. 말을 합니다. 판단을 합니다. 느낍니다. 사랑을 합니다. 행복을 느낍니다. 꿈을 꿉니다. 결단합니다. 행동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품 아닌 게 없습니다.

더더구나 우리의 영혼을 한번 보십시오. 영적인 기능, 우리가 무엇인데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까? 솔로몬 성전도 추하고 작아서 계실 수 없는 그분이,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거하시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신비한 영적인 교제입니까?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납니다. 찬양의 시간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기도시간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우리가 사랑하며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이 모든 영적인 기능, 이것이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작품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도 못한 채 이런 비참한 자리에 빠지는 줄 아십니까?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죄 때문입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 인간을 보시고 구원받아야 될 존재로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이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우리 모두 다 죽습니다. 육신이 죽고 난 다음에 죄의 결과로 따라 오는 것이 있습니다. 심판입니다. 여러분 심판의 무서움을 압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압니까? 여러분 법원에서 판사가 호출을 해도 가슴이 덜렁덜렁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다면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아십니까?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심판을 면하려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독생자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주셨고(행 2:17), 선물까지 주셨습니다(행 17:25 ; 고전 12:4-11). 하나님께서는 사망에서 건지시고, 자녀의 권세를 주시며,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며 승리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기 위해 우리를 초청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은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루신 분입니다. 벧전2: 24절에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죄를 범한 일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친히' 즉 자진해서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담당했다'고 하는 이 말을 깊이 음미해 봅시다. 여기 '담당한다'는 말은 '아나페로'라고 하는 헬라어 용어인데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떠맡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길은 가다가 한 사람이 무거운 짐을 다 못지면 옆 사람이 그 짐까지 떠맡아서 이중으로 지고 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까닭으로 사도 요한은 세상 짐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예수님을 보라고 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간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죄를 떠맡아서 혼자서 지고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담당'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당신이 과거에 범한 모든 죄를 혼자 떠맡으신 분입니다. 당신이 은근히 마음에 비밀히 숨겨둔 죄를 대신 맡으신 분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 약해서 범할지도 모르는 죄까지도 주님은 떠맡으셨습니다. 전부 다 떠맡으셨습니다. 혼자서 다 대신 지셨습니다.

세상에 이것만큼 기쁜 소식이 있을까요?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죄를 그 분이 대신 맡아 주셨다니! 이것만큼 눈이 번쩍 뜨이는 뉴스가 있을 수 있나요? 당신이 몇 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하여 그 빚을 전부 떠맡았다고 할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당신의 표정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마음에는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까요? 빚 좀 갚아준 사람만 생각해도 이렇게 감격하는데 평생토록 자신의 힘으로 감당치 못할 죄를 무조건 떠맡아 주신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우리는 얼마나 감격해야 할까요?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안 목사, 네가 도둑질했느냐?" 도둑질한 모든 죄, 주님이 대신 떠맡으셨습니다. 안 목사, 네가 거짓말했느냐? 거짓말한 모든 죈, 주님이 다 떠맡으셨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가에서 그 분이 전부 다 떠맡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죄를 사함 받은 새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천근 바윗돌처럼 무겁게 짓누르던 죄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음으로, '담당했다'의 의미는 '희생제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참지 못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혼자 떠맡으셨으니 그에게 무엇이 뒤따르게 될까요? 하나님의 심판이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죄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 주님에게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리심으로 희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이런 놀라운 뉴스는 또 없을 것입니다.
몇 해전에 일입니다. 화재가 난 현장에서 소방관 6명이 아까운 목숨을 던져 순직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가 가슴을 치며 괴로워 한 일이 있습니다. 방화범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정신적으로 약간 온전치 않은 사람인데 정신병원이나 기도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 날도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다투다가 어머니를 때리고 홧김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이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급히 밖으로 뛰어 나와서 소방관을 붙들고 아들이 아직 못 나오고 있으니 살려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소방관 6,7명이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우르르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불 더미에 힘없이 쏟아져 내리는 벽돌더미 아래 그 고귀한 생명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TV를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 현장에 방화범은 오히려 멀쩡하게 살아서 밖에 있는 모습이 비쳐졌을 때 참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죽어야 될 사람은 저 사람인데 너무나 아까운 사람들이, 처자가 딸린 6명이 희생을 당했구나. 저 사람이 평생 살면서 자기가 6명의 소방관의 생명을 대신해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빚진 감정을 가지고 살까? 정말 사람이 좀 달라질까? 인간다운 존재로 바뀔 수 있을까? 자기를 위해 희생한 가족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던져 사람답게 살아 보려고 애를 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참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 역시, 이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이 세상 한 복판에 당신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물들고 오염된 나하나를 건지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뛰어드신 것입니다. 뭐 자격을 따지지도,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달려와 십자가에서 나의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는 나의 죄를 그대로 끌어안으시고, 희생 제물로 나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내가 뭔데, 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길래, 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셨는지, 어거스틴은 어느 날 이 은혜 앞에 눈물을 쏟으며 고백합니다. "내가 이 세상의 유일한 존재라 할찌라도 주님은 나를 위해 기꺼이 당신을 주셨을 것이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너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노라. 나는 내 생명보다 너를 더 사랑하노라. 십자가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 없이 너를 사랑하노라." 그리고 그 사랑을 아낌없이 우리 각자에게 쏟아 부어 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 오신 분들에게 이 하나님의 사람을 함께 누리며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방황'이라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 우리 인생에 있어서 방황, 그것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더 무서운 방황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황입니다. 방황은 눈에 안 보여요. 남자고 여자고 마음 속에 이루어지니까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번뿐인 인생을 병들게 하고, 우리를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 방황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채 방황하는 분계십니까? 내가 일하긴 하는데 손을 대긴 대는데 내가 이 정도로 할 사람인가? 하면서 하는 일에 대해서 방황 중에 계신 분계십니까? 또 무엇인가 사업을 추진하다가, 그만 장애물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 한 분들이 계십니까? 그 분은 자신에게 맡겨 준 일 조차도 끝내지 못 한 채 인생을 마칠 사람입니다. 또 10년, 20년을 한 지붕 밑에서 부부가 함께 살면서도 아직도 내가 누구하고 살지가 결정 안된 분이 계십니까? 그 방황 빨리 끝내야 합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 마져도 꺼뜨리기를 심히 원치 않으시는 그 주님의 가슴에 내 인생을 던지셔야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그렇습니다. 어떤 인생의 짐도 심지어 내가 내 힘으로 벗어 던질 수 없는 죄 짐도 그 분은 당신이 나 대신 짊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 짐을 대신 져 주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성령으로 오셔서 죄 많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와 범벅이 되어 사는 나로 하여금 그 죄와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할 뿐만 아니라!!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새 삶을 살게 하려고!! 하나님은 나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오프라 윈프리를 아시죠? 그녀는 미국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입니다. 그녀가 진행하는 오프라 윈프리 쇼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방영될 정도로 대단한 프로입니다. 그녀는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가운데 뽑혔고, 기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합니다. 얼마 전엔 남아공에 무려 4천만 달러를 들여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여자고등학교(오프라 리더십 아카데미)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라이프 스토리를 알면 더욱 놀라게 됩니다. 그녀는 사생아입니다. 할머니에게 맡겨져 학대 속에 자랍니다. 아홉 살 때 성폭행을 당했고, 열네 살 때 사생아를 낳습니다. 마약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매일 기도하는 가운데 인생이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조롱합니다. “당신 사생아지? 마약도 했다며? 사생아도 낳았다지?” 그러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그렇소. 그게 바로 오프라 윈프리요! 그러나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은 위대하십니다!” 통쾌할 정도로 멋진 대답입니다.

우리 안에 연약함이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인해 염려가 있습니다. 불안한 우리의 미래를 앞에 놓고 두려움에 갇혀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임을 알아야합니다. 나를 이처럼 생각하시는 그 분은 나를 포기하지도, 놓치지도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내 인생 한 가운데 계셔서 나를 붙잡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닥쳐오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그 섭리를 믿을 수가 있다면, 그리고 내 삶의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을 수만 있다면, 내 삶의 죄악의 상황 속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나를 지키신다는 이 믿음, 이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우리 인생 가운데 다가오셔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그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겨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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