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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 (전 3:9-14, 골 1:14-20, 마 9: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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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 (전 3:9-14, 골 1:14-20, 마 9:18-26)

저희들은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성경말씀 읽어도 은혜의 말씀이 처음부터 끝까지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중에 아주 이상한 성경책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읽어드린 전도서의 말씀인데 성경말씀을 시작하면서 인생이 얼마나 허무했던지 허무한 얘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런 성경 처음 봤습니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 한마디만 하지 네 마디는 헛되다고 했습니다. 근데 이 성경 말씀을 쓴 전도서 기자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힘들었기에 이렇게 허무한 얘기를 하고 있을까. 전도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허무하긴 한데 그런데 한 올의 희망은 있습니다. 그게 초점입니다.

허무하다는 인생관 일부 긍정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도 힘들면 전도서 기자처럼 헛되다고 얘기하겠지요. 한참 헛되다고 생각하다 보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살아갈 힘은 또 살아갈 여유는 있다. 그래서 헛되다고 한참 해놓고 나서 삼장 째 갔더니 전도서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을 만족하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여러분 이말 동의하십니까? 못 먹는 사람 있습니까? 못 마시는 사람 있습니까? 잠 못 자는 사람 있습니까? 혹시 하는 일에 만족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초생활은 다 되어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렇게 하고 사십니까? 아마 전도서 기자는 오늘의 현실을 보고 세상이 너무 헛되지만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목마를 때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오늘 인터넷에 어느 분의 이런 말씀을 보고 허무한 세상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래도 당신들은 상대적으로 행복합니다.

이 얘기를 통계를 들어서 써놨습니다. 몇 개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 잠에서 병 걸리지 않고 일어나셨지요. 그러나 이번 주에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백 만 명이랍니다. 그보다 행복하시지요. 오늘 교회 예배 나오실 때 교회가면 체포 될 거다, 구금될 거다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면서 교회 오신 것은 아니지요.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오셨으면 세계에 30억 인구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냉장고에 먹을 거 가지고 계시지요. 옷장에 가면 바꿔 입을 옷들이 많이 있지요 집에 가시면 방도 있고 침대도 있지요. 전 세계 75% 인구는 그렇게 못삽니다. 혹시 은행에 예금해 놓은 게 있습니까? 지갑에 돈 좀 가지고 계십니까?

잔 돈 치룰 것도 있고요. 당신들은 전 세계에 8%에 속하는 상류층 인간들입니다. 그런데도 허무해요. 그런대도 불평해요. 그런데도 울어야 합니까. 오늘 전도서가 이 말을 들으면 인간에게는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도 있고 죽을 때도 있고 울 때도 있고 웃을 때도 있고 그런데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이 있으면 일단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신앙태도 좀 가지십시오. 그거 없으면 허무합니다. 그 뜻입니다.

사실 인간은 허무할 때가 많지만 한번 비교해 보면서 살아갑시다. 사람이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안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은총을 많이 받았는지. 성경 말씀 이야기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으니 받은 은혜를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이 안보이시거든 하늘이 너무 멀다고 느끼시거든 딱 한 군데를 찾아가 보세요.

여러분에게 주신 예수라 이름 하는 장소,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가 왜 왔느냐 하면 너무 넓어서 잡을게 없어서 힘들어서 뭔가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싶을 때 저를 대신해서 기도해 줄 사람을 찾을 때 뭔가 그루터기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천지 만물과 인간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데 서로를 매줄 연결 고리가 없습니다.

그 연결고리가 예수란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이렇게 고백하시면 됩니다. 예수가 누구냐 물으면 하나님과 내가 만나기 위한 연결고리이다. 인간의 몸을 입었지만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 보람된 세상으로 만들려면 예수란 사람을 잡자. 오늘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걸 가지고 유대 땅에 와서 사람들과 같이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이스라엘에 지도자라 이름 하는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간구합니다. 제 딸이 죽었습니다. 손만 얹어주시면 살겠는데. 보통 유대지도자 같으면 제 딸이 죽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그러면 기적적으로 살든지 안 살든지 해야 되는데 오늘 예수한테서 하는 말은 당신이 하나님의 대행자로 오셨다는데 그러면 저 대신 하나님 대신 죽은 딸에게 얹어주면 제 딸이 살겠습니다. 이미 이 사람은 예수를 통하여 예수와 함께 예수 안에서 구원받고 살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간구했습니다.

이 예수께서 마지막에는 그 집에 가서 죽은 딸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딸은 죽은 게 아니다. 잔다. 일어나라 손을 잡고 일어났더니 딸이 살았습니다. 이 얘기가 오늘 마태복음에 있습니다. 그 중간에는 길을 가는 중간에 갑자기 어떤 여성이 뛰어 들어왔는데 여인이 와서 제가 12년 동안 하혈 증을 앓고 있는데 내가 당신 옷소매만 잡아도 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옷만 만져도 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옷을 만졌더니 예수님 말씀이 옷 만진 것 때문에 산 것이 아니라 옷 만지고 싶은 네 믿음 때문에 네가 살았다. 근데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긴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소녀가 죽은 게 아니라 잔다. 이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예수가 처음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읽는 성경말씀에 그렇게 써있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은 예수가 처음이라서 그분의 부활에 관해서 성경 모든 곳에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셨다. 이렇게 기록돼있습니다.

예수는 죽었다가 사신 분 그분입니다. 근데 예수께서 자기가 살아나기도 전에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을 보고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잔다. 죽으면 못 깨어납니다. 자면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잔다. 그리고 일어나라고 했더니 잠자다가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는 내가 죽고 내가 살아난 이후에나 죽음이후에 부활 있다고 해라. 그걸 암시한 말씀이 하나고. 두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에게는 하나님에게는 죽으면 끝이라는 얘기는 없습니다. 잠자는 자는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는 부활해야 되는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인간의 모든 죽음은 잠자는 것과 같다.

왜 깨우면 되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용어지 하나님의 언어는 아닙니다.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을 규정하면 제 규정이지 하나님의 규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께서 심각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것도 잔다고 한다. 다시 깨우려고. 그걸 받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다시 빌면 사랑하는 여러분, 괴롭습니까. 아프십니까. 힘드십니까. 작은 잠입니다. 길게 자는 잠도 있지만 잠깐 낮잠 잘 수 있습니다. 모든 잠에서 하나님은 깨어나게 하십니다. 아프십니까. 깨어나면 낫는 거지요. 작은, 큰, 짧은 잠들. 잠자는 자들이여 일어나라. 마지막 길게 자는 사람도 일어나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깨우침만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예수를 보내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오늘 그대들을 잠에서 깨워주마. 그리고 시시때때로 필요한 만큼의 먹고 살고 자다가 깨어나고 죽었다 부활하고 이 모든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시시때때로 필요한 만큼 은혜를 주마.

자는 자들이여 자라. 깰 때가 가까워 왔느니라. 여러분 죽음을 마지막 죽음이라고 인정하시면 사람으로서 잘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덤에서 편히 주무십시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예수께서 원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사실은 그럼 어떻게 살면 됩니까? 얘기를 드렸습니다만 유대 땅에서 어느 랍비가 보니까 성전 예배에는 아주 잘나오는데 율법도 잘 지키는데 일상생활에선 못된 행실을 하는 사람에게 충고를 하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왜, 그대는 그렇게 성전 예배는 잘 다니면서 행실은 불충한가? 그랬더니 이사람 하는 말이 제가 성전예배를 제대로 들이고 경건하게 율법도 외우고 경건하게 신자로 사는데 왜 그러십니까? 예수의 말씀입니다. 이 사람아 자네가 매일 동물원 구경한다고 구경하는 사람이 동물이 되나. 매일 교회 나온다고 실제 하나님 보신 신자가 돼나. 사실은 이 말씀은 랍비가 신자에게 한 얘기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하는 얘기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을 가지고 진실로 되나. 그럼 뭐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창조섭리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아십니까? 똑같이 살아있는 동물들인데 동물은 자기 새끼를 낳으면 새끼에게 젖을 먹입니다. 동물의 젖은 심장에서 가장 먼 곳에 젖꼭지가 있습니다.

인간은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젖꼭지가 있습니다. 모유를 통해서 젖을 먹이시지요. 인간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서 젖을 먹일 때 그 젖은 모유라고 하는 젖만 먹이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심장 속에 담긴 사랑을 가장 가까운데서 먹입니다. 그래서 모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먹는 젖, 생명의 젖, 생명의 떡, 생명의 물 그게 예수라고 합시다.

그 예수의 몸과 피를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려고 합니다. 그게 뭡니까? 하나님의 심장 가장 가까운데 있는 몸과 피를 그대들에게 주고 싶어 합니다. 오늘 먹고 마실 때 그냥 포도주 한잔 빵 한쪽 먹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심장을 제가 먹고 마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제가 먹고 마십니다. 그러니 오늘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심장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젖을 먹고 행복하십시오, 보람되게 사십시오. 복되게 사십시오. 유형의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가슴을 하나님의 가슴속에 있는 자다가 깨어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끝날 까지 우리의 고통 속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오늘 먹고 마시려고 합니다.

인간도 먹고 마시면서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와서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저는 하나님을 먹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마시고 싶습니다. 떡과 포도주라는 상징을 통해서 하나님 드릴 테니 잡수세요. 마시세요. 그런 결단으로 오늘 우리가 왔습니다.

그러면 오늘 예배는 진실로 복된 예배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허무하다고 하겠느냐. 나는 오늘과 함께 하고 싶다. 잠에서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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