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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디모데의 믿음 (행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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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의 믿음 (행 16:1-5)

  오늘은 11월 11일입니다. 젊은이들은 오늘을 빼빼로 데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빼빼로데이는 우리나
라에만 있는 기념일입니다. 이것은 지난 1994년 부산에 있는 학교의 여학생들이 1의 숫자가 네 번 겹치
는 11월 11일에 친구끼리 우정을 전하며 키 크고 날씬하게 예뻐지자 라는 의미에서 빼빼로라는 막대과자
를 선물하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고 합니다. 이것을 기업들이 각종 이벤트와 문화행사를 가지면서 점차 우리나라의 젊은이를 겨냥한 기념
일이 되어, 지금은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에 견주는 날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최근에는 빼빼로 데이가 서구적이기 때문에 기왕 한국에만 있는 기념일이라면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가래떡데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가래떡 데이는 농림부가 앞장서서 서양식 행사보다 순수한 한
국적 행사, 농업관련 행사에 더 관심을 가지고 우리 농산물을 더 많이 이용하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합
니다. 그래서 정부는 아예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정하고 젊은이들에게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
고 있다고 합니다.

  빼빼로데이니, 가래떡데이니 하여 오늘 이래저래 마트와 거리가 분산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
리 믿는 자에게는 어떤 날입니까? 오늘은 주의 날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은혜 받고,
힘 얻고, 교제하고, 격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날입니다. 오늘도 그런 심정으로 이 자리에 오신 줄
로 압니다.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주실까요? 오늘도 계속해서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을 살펴봅니다.
오늘은 디모데라는 인물입니다. 디모데는 어떤 믿음의 사람일까요? 본문을 통해 3가지로 찾습니다.

  첫째는 칭찬받는 믿음입니다. 디모데는 성경에서 디모데전서와 후서로 널리 소개되고 알려진 사람이
고, 사도바울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신실하게 일한 일꾼입니다. 본문은 디모데라
는 사람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부분은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 그를 소개하는 말씀에서 우
선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2절의 말씀입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
는 자니...” 디모데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칭찬 받는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 살면서 그를 아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귀한 믿음입니다. 우리
가 믿음을 갖고 믿음의 삶을 산다면 디모데와 같이 칭찬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칭찬을 기준으
로 내 믿음과 지금의 모습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칭찬 받는 자로 살고 있습니까?

  칭찬을 받으려면 칭찬 받을 만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칭찬할 때 그냥 마음에도 없는 칭
찬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칭찬할게 없는데 칭찬한다면 그것은 사회에서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
거나, 빈말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잘하면 잘한다고, 좋으면 좋다
고, 표현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칭찬받을 만한 무엇이 있던 사람인
것이 분명합니다. 디모데가 여러 형제들에게 칭찬받은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선 두말할 나위도 없
이 그의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실히 믿은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안 사람입니다. 주님께
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던 사람입니다. 이
런 사람이기에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사람만이 아니라 주님도 칭찬하는 부분입니다. 주님
께서 세상에 계실 때 칭찬했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믿음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병으로 고생할 때 백부장은 주님이 집으로 오시려고 하자 그저 말씀만 하시면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놀
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백부장을 보면서 주님은 ‘이스라엘에 이만한 믿음을 가진 자가 없다’
고 칭찬, 극찬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칭찬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갖
고 있습니까?

  또 디모데가 칭찬받은 것이 무엇일까요? 믿음 외에 그가 칭찬 받은 것은 역시 그의 삶입니다. 믿음에
따르는 열매와 모습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인격과 성품이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사람들
을 사랑하고 힘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신실히 섬기고 봉사하
던 사람입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마지막까지 가장
사랑하는 동역자로서 디모데를 기억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칭찬 받은 모습입니다. 믿음과 함께 삶이 있
어야 칭찬을 받습니다. 인격과 행동과 섬김이 칭찬을 받습니다. 인격이 되먹지 못하고, 성품이 온순하지
않고, 행동이 거칠어 상처주고 치고받고, 섬기거나 봉사하거나 수고하지 않고 자꾸 뒤로 빠지는 자를 우
리는 결코 칭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칭찬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월은 자꾸 흐르고, 한해
도 점점 마지막으로 가는 이때에 나는 어떻습니까? 아무런 변화도 없이, 감각도 없이, 그냥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칭찬을 고사하고 책망을 받지는 않습니까? 예수 믿고 이제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
니까?

  우리가 믿음이 있을 때, 우리가 삶에 내용과 열매와 변화가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칭찬을 받고, 사람
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디모데처럼 칭찬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족한 우리
의 모습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칭찬받는 자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좋은 스승을 가진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디모데의 이야기는 디모데 자신보다도 바울과 관련해
서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아들과 같았고, 함께 일하는 동역자였고, 무엇보다
도 좋은 제자였습니다. 또한 스승이요, ‘멘토’였습니다. ‘멘토’라는 말은 원래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머가
남긴 '오디세이'에서 나왔습니다. 이타카의 왕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그의 자녀를 돌봐
줄 보호자를 두었습니다. 그 보호자의 이름이 바로 멘토르(Mentor)입니다. 멘토르는 20여 년 동안 오디
세이가 낳은 자녀들의 친구이자 선생, 상담가로서 훌륭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뒤로부터 인생
의 조언자, 교사, 스승, 상담가의 뜻으로 사용되어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키치는 용어로 사용
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멘토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늘 디모데와 함께 했습니다. 그러면서 격려하고, 가르
쳐주고, 훈련을 시켰습니다. 본문 3절에서도 바울은 디모데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위해 떠나려는 것을 봅
니다. 디모데는 이런 바울을 만나 삶에 큰 영향을 받으며 좋은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의 개
인은 물론, 기독교역사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큰 인물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있어서 바울
은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스승, 멘토였습니다. 이것이 또한 그의 믿음생활에 중심입니다. 좋은 스승을 만
나는 것보다 소중한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합니다.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이 아이들에게 큰 축복입니다. 본받을 만한 스승을 두는 것이 인생을 결정합니
다. 지대한 영향을 주는 멘토가 있을 때 우리는 성공하고 승리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영향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좋은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뒤에 사람은 앞에 사람을 보고 따라 갑
니다. 처음 온 사람은 오래 자리를 잡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을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처럼 디모데에게 좋은 영향
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울러 좋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스승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삶의 귀한 인도자 성령님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 믿는 선진들을 따라가야 합니다. 인생은 멘토링을 통해 결정됩니다. 좋은 스승이 되고, 좋은 제자
가 되어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잘 다듬어져 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대를 이어가는 믿음입니다. 본문 1절에 디모데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 디모데
라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전서 1장에서 바울은 디모데
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
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는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외조
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 대가 이어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디모데의 믿음입니다. 그의 믿음은 한
마디로 대가 이어지는 믿음입니다. 조상 적부터 믿는 믿음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갑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대를 이어가는 믿음을 매우 중요하게 강조합니
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삭에게로, 야곱으로, 요셉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레위지파로 시작된
제사장의 대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이어갑니다. 유대인의 신앙은 조상부터 예수님시대를 거쳐 오늘까
지 이어집니다. 대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성경의 역사요, 흐름입니다. 그러면서 대가
끊어지는 것이 얼마나 큰 개인과 공동체의 비극인 것을 알려줍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윗과 솔로몬입
니다. 다윗의 신앙이 아들 솔로몬에게까지는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신앙은 다음으로 연결
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라는 둘로 갈라집니다. 결국 나라는 멸망합니다. 성경
을 보면서 우리가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대를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보여
줍니다. 믿음의 대가 이어지고, 섬김과 봉사의 대가 이어지고, 직분과 명예의 대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
니다. 조상의 신앙,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이어지고, 어머니가 봉사한 자리를 딸이 이어가고, 아버지
의 직분이 아들에게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소중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 후대까지 깊
이 생각해야 할 귀한 믿음입니다. 아울러 성경과 역사는 신앙의 대가 이어지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
는가를 경고해 줍니다.

  ‘강돈욱’이란 사람을 아십니까?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하리의 칠골교회에서 신실하게 믿음 생활하
던 장로님이셨습니다. 그 장로님에게는 ‘강반석’이란 딸이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딸의 이름을 반석이라
고 지을 만큼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강반석은 성장하여 믿음 좋은 가문의 청년인 ‘김형직’을 만났습
니다. 김형직은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가 세운 숭실중학교 출신으로서 그 학교에서 종교부장을 할 만
큼 역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김성주’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김성주는
바로 우리가 잘 아는 ‘김일성’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강돈욱의 믿음이 강반석에게까지는 잘 이
어졌습니다. 그러나 강반석의 믿음이 김성주에게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과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민족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이 자리에는 이북을 고향
으로 가지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두고두고 한이 되는 이산가족의 슬픔과 분단
의 아픔은 신앙의 대를 잇지 못한 한 사람, 한 가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김형직의 신앙이 김성주
에게 이어졌다면, 만약 아들에게 공산주의는 안 되고 하나님만을 심어주었다면, 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한 가정에 신앙의 대가 끊어진 것이 민족의 분단과 슬픔으로 이어진 것을 잊
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교육을 전문가들은 지금 세대를 ‘신앙의 대’가 이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합니다.
100년 전 영국은 100명중 80명이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0명중 여덟 명 만이 다닙니다.
2020년경에는 1000명중 4명만이 교회에 다닐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것이 비단 영국교회만이 아니라 유럽
과 미국교회, 그리고 나아가서는 온 세계 교회의 상황입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한국교회도 이제 교회성장이 정체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
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만 해도 어른에 비해 아이들은 절반도 못됩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일반
적인 상황입니다. 물론 옛날에 비해 자녀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한 가정에 아이 둘
만 기준 삼아도 최소 어른 숫자만큼은 되어야 하는데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30년 안에 전체 숫자가 지
금의 절반 밖에 안 될 거라고 경고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지금 대가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대가 이어져야 합니다. 아울러 섬김의 대가 이어지고, 직분의 대도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사
명이고, 소망이고,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디모데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그는 좋은 스승
을 만났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 듣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
고, 디모데와 같은 믿음의 길을 걸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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