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참된 해방과 자유 (롬 6:20-23)

  • 잡초 잡초
  • 526
  • 0

첨부 1


참된 해방과 자유 (롬 6:20-23)

자유인의 행복

동물과 인간의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동물은 본능에 의해서 움직이고 인간은 선택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선택하며 산다는 것은 곧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인간이 자유를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은 오히려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은사 가운데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자유입니다. 자유는 인간을 참 인간 되게 하고 최고의 가치와 행복을 갖게 합니다. 비록 가진 것이 많고 위치가 높다 할지라도 그에게 자유가 없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하고 악한 것을 판단하고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창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역사를 창조하며 살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고귀한 영성을 닮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유로웠고,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웠으며, 자연 만물에 메이지 않고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은 인간이 자유하며 살 수 있는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자유를 잃었습니다. 죄의 종이 되었고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죄에게 결박을 당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자유로운 관계가 끝났습니다. 부부간에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제 인간은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자유를 잃어버린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는데 이 구원은 죄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상실한 인간을 원래대로 회복시켜주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구원 받는다"는 말과 "자유를 얻는다"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풀어준다", "해방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묶인 모든 결박들로부터 자유를 누리도록 풀어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죄의 결박으로부터 풀려서 자유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자유인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성으로 하나님과 자유로운 관계, 천지만물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최고의 행복이며 최대의 영광이 됩니다.

자유로운 존재는 창조의 형상입니다. 오늘 잃어버린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구원이고 이 구원을 노래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자유인의 찬양, 자유인의 행복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 축제요, 예배입니다. 인간은 자유를 누리는 만큼 행복을 얻습니다. 자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돈을 벌어도 돈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권세를 얻거나, 명예를 얻거나, 세상에서 그 어떤 것을 얻든지 그것을 얻고도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것이 복이고, 그것에 매이면 복이 되지 못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라고 했습니다. "쉰다"는 말은 자유롭다는 말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쉬지 못합니다. 근심은 우리 마음을 결박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쉼과 평화를 얻을 때 자유인이 됩니다.

인간이 누릴 자유

육체적인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병이 없어야 합니다. 병들면 자유가 없습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또 우리의 몸이 결박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옥에 들어간다든지, 묶임을 당하면 자유가 없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도 자유가 없습니다. 또 너무 많이 먹어도 자유가 없습니다. 적당히 먹어야 자유가 있습니다. 옷을 입는 것도 몸에 편한 옷을 입어야지 값비싼 옷을 사 입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여 자유가 제한됩니다. 우리가 먹어서 자유로운 것이 있고, 먹어서 부자유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자유가 없습니다. 마음에 평화를 항상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잘못 배우면 그것이 고통이 됩니다. 아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것이 도리어 근심을 주는 때도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 가운데 내적인 자유와 외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외적인 자유는 투쟁으로 얻습니다. 육체적인 자유, 정신적인 자유는 투쟁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내적인 자유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습니다. 자기와 싸워서 이기는 자는 영적인 자유를 누립니다. 영적인 자유만이 참 자유입니다.


영적인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영적 자유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영적인 자유만이 참 자유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자유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란 물론 주님 자신을 말합니다. 진리란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복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모든 참된 행복은 진리와 더불어 있고 모든 참된 기쁨도 진리와 더불어 있다. 진리가 떠나는 날 행복도 기쁨도 우리 곁을 떠난다."(잠바타) 사람이 진리를 알지 못하고 무지에서 종노릇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지로 말미암아 오는 병, 잘못된 악습과 미신으로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끌려가고 있는 인간들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해 주시는 진리 즉 복음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 진리 그 복음이 우리를 종에서 자유케 하고 멸망에서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우리가 구원받는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제자요 너희는 자유를 얻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자유가 바로 영적인 자유입니다. 진리로 자유케 되는 자유가 바로 진정한 자유입니다. 진리를 떠난 것은 자유가 아니고 방종입니다. 물고기가 자유로워지려고 물에서 나와 버리면 그때는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죽습니다. 물속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물속에 있는 고기만이 끝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님 간섭이 싫다고 자유를 얻기 위해 가출을 하면 이 아이는 죄악에 매이고, 방탕에 매여서 결국 타락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 말씀을 떠나 궤도를 벗어났습니다. 인간은 그때부터 제정신이 아닙니다. 마귀에게 매이고, 죄악에 매이고, 정욕에 매여서 제정신을 가지고 살수가 없게 됩니다. 성경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만 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새를 만드셨고 새에게 날개를 달아주신 것은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새들이 날개를 펼쳐 움직이는 순간 창공을 날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걸어 다니라고 날개를 붙여준 것이 아니고, 뛰어 다니라고 날개를 붙여준 것도 아닙니다. 날아다니도록 날개를 붙여준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기어 다니는 것들은 대부분 미생물들이고 걷는 것은 두 발 달린 동물이고 뛰는 것은 네 발 달린 동물이고 멀리 창공을 날아다니는 것은 날개 달린 동물입니다. 걷고 뛰는 것은 강이 있으면 건너지 못합니다. 산이 있으면 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새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자유롭게 다닙니다. 날개 때문입니다.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자유에는 외적인 자유가 있고 내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외적인 자유는 다른 사람과 싸워 이겨서 얻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자유는 자기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결박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결박시킵니다. 내 마음이 괴롭습니다. 탄식합니다. 원한에 사무칩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얻는 자유

진리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는 예수의 사랑으로만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 남을 미워하고서는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손해를 입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미운 사람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 미운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나도 미운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미운 사람에게 매이게 됩니다. 손해보고 미워하면 이중 패배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미움을 받아도 사랑하고, 욕을 먹어도 사랑하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사랑하는 일이 있어야 비로소 자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곳에 자유가 있고 미워하면 죄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잃어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소망을 잃지 않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나라 소망을 가진 자는 자유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사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 첫째는 사백년간의 애굽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많은 기적을 나타내며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습니다. 그들은 감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출15:13) 주께서! 은혜로! 주의 힘으로!-오직 그들이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 사흘 길을 채 못가서 그 은혜와 감격은 잊어버리고 물이 없다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해방은 받았으나 정신과 영적인 삶의 해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차라리 애굽에 있었다면’하고 애굽을 동경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 사십년 이란 세월을 통하여 참된 해방의 역사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진정한 영적해방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다윗왕국 이후 솔로몬 제위 때 이스라엘은 분열 되었습니다. 나라는 힘을 잃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기간이 칠십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사제국이 바벨론을 점령하면서 이스라엘은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파사의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예루살렘으로 귀향케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시126:1-2) 이게 웬 갑작스런 해방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로 그들은 감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예루살렘 성을 회복하고 성전을 되찾는 것, 그래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들 삶의 중심을 세우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의 감격과 기쁨을 잊어버리고 성전 짓는 것도 중단하고 자신들의 삶만을 추구하며 삶속에서 참 된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노예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었을 겁니다. 억압 받고 고달픈 자유롭지 못한 삶이 싫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젠 전쟁도 없이 평안히 배부르고 잘 먹고 잘 살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괜히 이간질 하는 사마리아 같은 주변 국가들에게 미움 받다 또 다시 포로 생활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그 거룩한 사역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두 해방의 역사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불순종과 죄로 말미암아 삶의 고통이 왔다는 것과 2) 그 고통에서의 해방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요,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3)그러한 해방의 감격과 기쁨을 쉽게 잊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는 사실입니다.

4) 자기중심적인 삶을 위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포기한 채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을 잊어  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쉽게 하나님의  사랑을 져버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신7:6-8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는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민족이 억압 받는 고통에서 해방을 맞게 된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죄와 사망에서 영적 해방을 얻게 된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심을 인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택하여 주신 까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권능의 손으로 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하여 그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엡2:8-9)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 받았음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잊어버리고 살아왔다면 우리에게도 제2의 참된 해방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참된 해방과 자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참된 해방은 그 아픔과 그 해방의 기쁨을 잊지 않는 삶인 것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은 자유를 얻었으나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마음의 성전을 짓기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쓰기보다 자신의 삶을 앞세운다면, 참된 영적 해방과 자유를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재앙이 건너갔으므로 그날을 기념하여 그 구원하심을 잊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지키는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던가?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저렇게 고통당하시고 죽으셨단 말인가 ? 또한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내 죄가 저 십자가위에서 해결되었구나, 나의 영적이 해방이 저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졌구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쉽게 잘 잊어버리는 민족’이란 말을 듣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히틀러의 나치 정권 때 학살 당한 육백만 유대인들을 기억하는 기념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 기념관 이름이 ‘야드바심’즉 ‘기억’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마라” 그 아픔의 날들을 후손대대로 잊지 않는 민족이 되어 오늘날 세계를 이끄는 뛰어난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영광이 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고통입니다.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하나님께 오늘 저와 여러분이 참된 해방을 가져다줬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참된 해방과 자유는 삶속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방된 자가  여전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진정한 해방은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여전히 죄에 매여 있고 마귀에게 붙잡힌 인생을 산다면 어찌 진정 해방된 자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20절 말씀에 "전에는 죄의 종이 되어 부끄러운 일을 했었으나 이제는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 영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때 참된 해방을 받은 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 역시 죄의 법에서 해방되기를 갈급해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롬 7:22절에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과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하노라 ”하면서 롬 8:1절에 가서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육체의 소욕을 이기며 살 수 있습니다. 전에 죄의 종이 되었을 때 무슨 열매를 맺었느뇨? 부끄러운 열매를 맺었는데, 그것은 육신의 썩어질 것들이었습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살았었습니다. 미신 섬기고, 부적붙이고, 굿하고, 뭐든지 날 잡아 하고, 못도 제대로 못 박고, 신주단지 모셔 놓아야 집안에 악이 물러가고 잘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봤자 결국 그 마지막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진리를 알고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었더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속임수요 종노릇 한 것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부터, 진리를 알고부터 우리는 참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두려움에 속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 거룩한 열매를 맺는 영생의 기쁨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로, 참된 해방과 자유는 그리스도를 섬길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재앙을 내릴 때마다 자기의 행복 된 삶만을 위해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20,9:1,9:13,10:3) 참된 해방과 자유를 얻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입니다. 23절에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영생의 기쁨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죄의 노예에서 그리스도의 노예가 될 때 자유하는 종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자유하는 종으로서의 자유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출 21:5-6 이스라엘의 종의 제도는 빌린 돈 값을 능력이 없거나, 도둑질한 것 배상할 능력이 없거나 할 때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7년째 되는 해엔 조건 없이 주인에게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7년 째 되어 ‘나가라’하는데 ‘안 나가겠다’는 종이 있습니다. 결코 딴 맘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인이 사랑과 은혜를 잊을 수 없어서 그냥 그 집의 종으로 남아 있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제 자유인으로서 나가서 사는 것 보다 주인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고자 괴로워도 힘들어도 평생 주인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럴 때 주인이 그 종을 재판장에게 데려가서 확인한 후 그 집 문설주에 세우고 그 종의 귀를 송곳으로 뚫었습니다. “이에 그가 영영히 그 주인을 섬기리라”(츨 21:5-6)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받은 사랑, 구원의 은총에 감사해서 그 은혜 잊지 못해서 그리스도를 평생토록 섬기기로 헌신하는 ‘자유하는 종으로서의 자유’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해방과 자유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유롭고 평안하고 행복한 곳을 찾아 보금자리를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언제나 하나님 앞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해방과 자유는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안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날 창문 열고 손으로 흩으시면 자유도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누리는 자유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이 나라와 민족도 하나님 안에서 해방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스림을 받는 나라가 될 때 참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잊지 않고 그리스도를 섬김으로 말미암아 그 긍휼하심 안에서 참된 해방과 자유를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