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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은 유익하다 (약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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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유익하다 (약 1:1~8)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1-8

지난주에 수능시험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학생 200여 명도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새벽 1시 40분쯤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 20층에서 술에 잔뜩 취한 젊은이가 뛰어내려 죽었습니다. 명문대에 진학하려고 준비를 했는데 수능시험을 보고 집에 와서 채점을 해보니 점수가 잘 안 나왔어요. 그 젊은이는 수능시험에도 불합격했지만, 인생에도 불합격하고 말았습니다. 시험은 그동안의 공부를 평가하고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발전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시험을 잘 못 쳤다고 자살하는 것은 시험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인내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처럼 공부를 많이 하고 시험을 많이 치는 국민도 드물 것입니다. 제가 6.25 직후에 중학교 진학 국가시험을 본 첫 세대입니다. 지금은 대입수능시험 하나지만 그 때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시험을 봤습니다. 모두 열심히 공부했지요. 저도 중학교 3학년 한 해 동안은 하루도 이부자리에서 잔 적이 없습니다.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서울의 고등학교에 가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고 해서 하루도 안 빼고 책상에 엎드려 자고, 깨면 세숫대야 물에 세수하고 또 공부하고, 이렇게 죽도록 해서 겨우 서울에 갔습니다. 우리가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지요.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죽도록 공부하는 습관 때문에 국민의 실력이 늘었습니다. 그 덕분에 겨우 반세기만에 오늘과 같은 세계 12대 경제국가가 된 것입니다. 철저한 공부 방법을 익혔고, 공부를 열심히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면에 상당한 힘이 축적되어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학교에 가도 다 해냅니다. 사막에 풀어놔도 사막에 꽃을 피우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이민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빈손으로 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우뚝우뚝 일어섭니다. 오랜 공부를 통해 인내심을 기르고 능력을 키운 이런 한국인의 저력 때문에 오늘의 한국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죽도록 공부해 온 것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공부해서 남 줍니까? 다 우리 것입니다. 학생 때 뇌의 능력을 극대화 시켜놓는 경험은 유익한 것입니다. 공부하면 머리가 좋아집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하면 절대로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끝까지 공부해서 건강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학교 공부를 다 마치고 나서도 인생은 계속 다양한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시험이 하나 끝나면 잠시 후 또 다른 시험이 옵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시험을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문 1절 말씀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 문안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왜 흩어졌습니까? 예수님 부활하신 다음에 사람들은 부활하신 증거를 듣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2만 명 정도 되는 대형교회가 되자 핍박이 가해져 스데반을 죽이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핍박이 점점 심해지자 사도행전 8장에 이르러는 더 이상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서 살 수 없게 되어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가 된 것이지요.

우리나라 백성들도 6.25때 고난을 겪었습니다. 전쟁이 나자 많은 사람들이 북에서 남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중의 대부분이 6.25 이후에 태어났으니까 그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57년 전 이 땅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형 둘과 누이 한 명과 함께 평양에서 피난을 내려왔습니다. 서울 마포에 이르러 한강을 건너려고 보니 다리가 끊기고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만 남아있었습니다. 언덕 위에 올라가서 보니까 조그만 배에 사람들이 가득 타고 옆으로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하며 한강을 건너고 있었어요. 큰 깡통을 붙잡고 건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트럭을 하나 잡아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마침 트럭 하나가 천천히 오고 있었어요. 우리 짐을 몽땅 트럭에 싣고, 누이가 먼저 타고 형님들이 타고 마지막으로 제가 타려는데 키가 작아서 트럭에서 떨어졌어요. 셋째 형이 나를 태우려고 내렸는데 트럭이 큰형과 누이만 태운 채 그만 떠나버렸어요. 언덕 위에 올라가서 보니까 트럭은 저만치 남쪽 어딘가로 가고 있었어요.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셋째형과 나는 다음 트럭을 타고 가기로 마음을 먹고 있는데 마침 트럭이 하나 왔습니다. 셋째형이 탔는데 나는 또 키가 작아서 동동 매달려가다가 형이 위에서 끌어줘서 겨우 탈 수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보니 먼저 갔던 큰형과 누이가 우리 둘이 안 탄 것을 알고 트럭에서 내려 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겁니다. 운전사에게 차를 좀 세워달라고 했더니, 누가 타라고 했냐고 혼쭐이 나서 내리지 못하다가, 언덕을 올라가면서 차가 기어변속을 하려고 속도를 줄일 때 얼른 뛰어내렸습니다. 그렇게 네 명이 다시 만나 부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6.25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옛날이야기 같죠? 모두 우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가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 형제는 먼저 탔던 트럭에 짐 보따리를 다 실었었는데 그것을 몽땅 잃어버렸습니다. 그 보따리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십니까? 금덩어리가 들었어요. 우리가 떠날 때 어머니가 그동안 모았던 금덩어리를 한 주먹 주시면서 남쪽에 가서 팔아서 먹고 살라하셨어요. 그런데 그만 몽땅 잃어버리고 빈 털털이가 되었으니 부산에서 디아스포라처럼 살면서 온갖 고생을 했지요. 인생은 어차피 디아스포라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하늘나라이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천국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 분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 땅에서 피난민처럼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야고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흩어져 있는 12지파에게 문안 하노라”고 했습니다. 문안한다는 단어의 본래 뜻은 “기뻐하라”입니다. 자기 나라와 친척과 집을 떠나서 고생하며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첫마디가 “기뻐하라”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인사입니다. 신앙인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2절)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시련을 당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인생에는 다양한 각종 시험이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시험을 칠 때마다 무섭고 두렵습니다. 왜 기뻐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잘 모를 때, 다시 말해서 믿음이 부족하고 인내가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할 때는 두려움, 염려, 근심이 가득 합니다. 저도 제 과거를 돌아보면 두려움에 많이 떨었던 것을 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 ‘그 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학교를 가지?’ ‘어디 가서 살아야 하나?’ 걱정 근심이 참 많았어요. 왜? 시험도 자주 처 봐야 되는데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경제적 시험, 육체적 시험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편안해야 할 텐데 여기저기 옛날에 없던 고장이 나고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 속에서 사업의 고난, 재정의 고난, 정신적 고난, 영적 싸움 등 여러 전쟁을 치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영어번역은 “Consider it all joy”(모든 것을 다 기쁘게 여기라), 또는 “Consider it pure joy”(순수한 기쁨이라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인생의 시련들을 어떻게 순수한 기쁨으로 여기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시련을 당할 때 순수한 기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별로 없을 것입니다. 고민하고 슬퍼하고 짜증도 내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의심했어요. 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왜 시련을 기뻐하라고 합니까? 시련은 믿음의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3절)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대한 시험을 처서 낙제하지 않고 합격해서 계속 진급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영원 전부터 사랑하셨고 오늘도 사랑하시고 하늘나라 가는 그 시간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지 않고 나를 미워하시는 것 같고 나에게 채찍을 드는 것 같아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거든요.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인데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시련과 시험은 이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왜? 결국은 우리가 잘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안에서 능력의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시련을 당하면 처음에는 겁이 좀 납니다. 저도 돌이켜 보면, 혼자 서울에 올라와서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이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나?’ 늘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를 여러 번 믿음으로 거치고 보니, 인생은 마치 긴 밧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밧줄에는 종종 매듭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 매듭이 안 풀리면 어쩌나?’ 걱정합니다. 그런데 때가 되니까 안 풀릴 것처럼 보이던 매듭도 풀리는 겁니다. 그것을 한 번, 두 번, 스무 번, 백 번 경험하고 나니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매듭은 풀리는구나!’ 그렇습니다. 매듭은 풀립니다. 매듭은 풀리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전진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경험합니다. 큰 매듭이 내 앞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이 매듭도 반드시 풀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기다리면 풀립니다.

시련은 무엇입니까? 시련은 우리 믿음을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에게 어떤 시련이 있다면 믿음으로 그 시험에 꼭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으면 합격할 수 있습니다. 시련을 거치면 우리의 인격이 성장합니다. 우리 내면의 능력이 증가합니다. 초등학교 시험과 고등학교 시험의 내용과 질은 다릅니다. 계속 성장합니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울 때 처음에는 엉뚱한 건반을 짚어요. 그러나 엄마가 계속 연습하라고 하니까 귀찮지만 연습을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악보도 안 보고 칠 정도로 실력이 는 것을 봅니다. 시험을 치면 칠수록 우리는 완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3절) 내 믿음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고, 결국에는 믿음으로 인내를 기른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끝까지 하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대우의 사장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서울대 상과대를 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재수를 했는데, 무서워서 전 해에 지원했던 학과에는 지원하지 못하고 다른 과에 지원을 해서 붙었답니다. 대우의 사장이 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처음에 떨어진 것이 얼마나 잘 된 일인지 모릅니다. 그때는 참 서럽고 낙심이 되었지만 돌이켜 보니 하나님께서 내가 재수를 하게 하셔서 다른 과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대우 사장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시련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찬송가처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십자가를 붙드는 믿음으로 그 고난을 견디고 나면 부활의 영광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제가 군생활을 할 때의 일입니다. 우리 중대가 행군을 하게 되었습니다. 완전무장을 하고 네 줄로 서서 군가를 부르면서 신나게 출발했습니다. 한참 가다 보니 네 줄이 두 줄이 되고 군가소리가 사라졌어요. 산꼭대기까지 헉헉대면서 올라가는데 두 줄이 다시 한 줄이 되면서 그 줄이 얼마나 길어지던지요. 제일 먼저 도착한 군인들이 기분이 좋아서 만세를 부릅니다. 그랬더니 미처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야, 다 왔구나!”하면서 모조리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겁니다.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하는데 자기들도 다 온 줄 알고 주저앉았어요. 저도 따라서 앉으려고 하다가 ‘아니지, 나도 저 꼭대기에 올라가서 만세를 불러야지!’하고 일어나서 조금 더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전경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만세가 저절로 나왔어요. 그때 제가 배운 것이 있습니다.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시련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테스트요, 우리의 인내심을 길러 승리하게 만드는 훈련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의 능력을 완성해야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4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시련은 늘 있는 것인데 미리 훈련하고 배우고 성숙해서 어떤 시련도 넉넉히 이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시련을 거치면 거칠수록,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시련을 이겨나가면 우리는 성숙해집니다. 인생이 성숙해지면 사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전전긍긍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깨달은 것이 많으니까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지혜의 부족입니다. 시련을 만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잘 대처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지혜, 삶의 지혜가 모자라면 자꾸 실수하고 넘어지고 고생은 고생대로 더 하게 됩니다. 시련은 여러분과 저에게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지혜가 부족한 것을 깨달을 때마다 바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5절)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요, 경험도 부족합니다. 시험에 늘 합격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 떨어지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삶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면 반드시 주십니다. 한 번 구하고, 두 번 구하고, 사사건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혜롭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판단력과 분별력이 생깁니다. 불필요한 고생을 하지 않습니다. 닥친 일을 잘 해석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할 줄 알아서 인생을 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할 때마다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판단력을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하나님께 구했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줄 믿고 결정하겠습니다.”하고 믿음으로 행동하면 우리의 지혜가 날마다 늘고 더욱 성숙하게 됩니다. 믿음이 부족하고 인내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시련이 올 때마다 자꾸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은혜 주셔서 어떤 시련이든지 그 시련을 통하여 여러분의 믿음이 굳건해지기를 원합니다. 최후 승리할 때까지 믿음으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가 부족할 때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성숙하고 지혜롭고 인내심 있는 사람으로서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시련을 통해 성장하여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넉넉히 이겨내고 승리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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