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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처럼 사랑하사 …!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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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랑하사 …! (요 3:16)

할렐루야!
오늘도 기쁨으로 만났습니다. 그렇죠?
억지로 만났다 할지라도, 억지로 끌려왔다 할지라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시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에 남미 파라과이 ‘뻬드로 후안 까발례로’에 사시는
안경환선교사님으로부터 e-mail을 받았습니다.
이 분은 미국에서 살며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아 파라과이에 도착했는데 …
그곳에 한인 3가정이 3년 넘게 예배를 드리고 있더랍니다.
우리 교회 비디오테이프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아마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예배를 드린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이 친척 분 결혼식 때문에 파라과이에 가셨다가
그 선교사님을 만나셨다고 합니다.)

저는 메일을 받고 방송실과 인터넷선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데
교회가 없어서 우리 교회 예배에 인터넷으로,
혹은 비디오로 동참하는 분들이 세계 곳곳에 있는데
우리는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입니까.
옆의 분들과 “우리는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이든지 가장‘초보적’이고, 가장‘기본적’인 기초가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믿음의 기초가 중요합니다.
가장 초보적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기초를 바르게 배운 사람은
엉터리 신학 사설에 흔들리거나 이단자들의‘말도 안 되는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몇 차례씩 어떤 때는‘너무 자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만큼
오늘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영생에 대하여 … 설교합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사도 바울도 성도들의 안전을 위하여 같은 말을 반복하여 가르쳤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반복했습니까? “안전을 위하여”
안전을 위하여 하는 말은
열 번, 스무 번 … 매일 해도 또 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1학년 아이에게 처음 학교 가는 날,
“차 조심해라”고 말했다고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안합니까? 매일 합니다.
아이가 머리 나빠서 합니까? 기억력이 나빠서 합니까?
아닙니다. “안전을 위하여”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신앙의 기본, 신앙의 기초를 다시 한번 전하려고 합니다.
잘 듣고, 잘 배워
확신(確信: 굳을 확, 믿을 신)하여
확실(確實: 굳을 확, 열매 실)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났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We have all separated ourselves from God.)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안 사람이‘다윗’입니다.
그는 시편 51편 5절에서,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왕’입니다. 이스라엘의 일인자로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참고: 삼하 12:1~15, 나단 선지자의 책망)
그리고 다윗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왕임에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사람(선지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죄를 인정하고 뉘우쳤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사람 앞에서‘나는 죄 없습니다. 회개할 것이 없습니다.
부끄러운 것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 성 어거스틴, 성 프랜시스, 그 밖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스스로 자신을‘죄인의 괴수’,‘망할 자’,‘죄 덩어리’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이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자신의 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였습니다.

죄에 대하여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하늘 백성이 되는 첫걸음입니다.
죄의 결과에 대해 로마서 5장 12절에서
“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의 문제는 사망, 멸망으로 연결됩니다.
죄 때문에 그 죽음의 길, 멸망의 길로 가야하는 인생이기 때문에
세상 삶이 고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But He still loves us…)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향해/멸망을 향해 가는 우리를 건져내기 원하십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사랑이 “여기 있으니!” (This is love.) 라는 말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태어났든지, 얼마나 잘났든지, 얼마나 잘 살든지…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표현한 것이 오늘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을 아는(만나는) 길을 내셨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아는(만나는) 길을 내셨습니다.
(So He has made a way for us to know Him!)

죄와 함께 태어나 죄 속에 사는 인간이 멸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이 그 죽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바램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에게/사람에게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 길을 내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했습니다.

죽음으로 치루어야만 하는 죄의 값을(롬6:23)
예수님을 죽게 하셔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고 하신 것입니다.

구원에는 중간 길이 없습니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 둘 중 하나입니다.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하는 분들은 안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 입니다.
멸망이냐 구원이냐 둘 중의 하나이지 중간은 없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인터넷에 접속하여 예배에 동참하시는 분 …
DVD로, Tape로 설교를 들으시는 분 …
미국에/파라구아이 … 등 세계 곳곳에 계신 분들 모두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믿음 위에 온전히 서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이 … 사람 때문에 그 믿음을 저버립니까?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고전15:58)

우리는 오직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오직 믿기만 하면 됩니다.
(All We have to do is believe.)

로마서 10장 9절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9)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 지게 하심으로
완벽한 구원의 길을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 받기 위해
더 이상 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설령 사람인 우리가 구원을 위해 애쓴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선행을 많이 하고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잘 들으십시오.
작은 방에 켜 있는 촛불은 골방에서는 유효합니다.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태양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켜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켜 놓아봤자 사람들이 꺼버립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노력하면 … 수양하면 …
세상을 초월하게 되고,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자기 혼자 수양을 하고 깨끗하게 살다가 죽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죽음의 문제까지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 어떤 사람은 죽은 조상을 잘 모시면 복도 받고 좋은 데 갈 거라고 말합니다.
물론 조상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조상을 추모하는 것도 잘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명절 때 고향에 가시고 산소에도 가십시오.
그리고 조상들을 귀히 여기고 그분들의 유훈을 기억하고 사십시오.
그러나 조상이 신앙의 대상, 섬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산해진미가 얼마나 많은데…
명절 때 조상은 옛날식 제사상을 안차려 주면, 밥 먹을 것이 없습니까?
그렇게 자기 끼니도 해결할 줄 모르는 귀신을 뭐하러 섬깁니까?
제사상 차려 줄 후손이 있어야 된다고요?
그래서 아들이 있어야 제사상 차려 준다고 생각하는 분들 …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요즘 딸 있는 노인은 외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들만 있는 노인은 오히려 외롭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보면 아들만 있는 노인은 외롭고 힘들어합니다.
딸 있는 집은 딸들이 이 것 저 것 챙기고 대우받고 삽니다.
그래서 저도 (아들만 둘 있어서) 걱정입니다.

- 점치러 다니는 분들 잘 들으세요. 여기는 없습니까?
저를 보세요. 고개 숙이지 말고 제 눈을 보세요. 왜, 눈을 피해요?
점쟁이들이 그렇게 족집게처럼 잘 맞추고 잘 알면 왜 자기는 그 꼴로 살고 있나요?
왜 자기 자식, 친척들은 못사나?
어떤 주식 값이 올라갈지 왜 못 맞춥니까?
점쟁이 자식들, 친척들은 좋은 대학 못가나? 벼슬 못하나?

착각하지 마세요. 정신 차리세요.
신문을 보면 오늘의 운세를 보는 분들 … 정신 차리세요.
그런 거짓 것들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4:12)

진리와 거짓은 한 집에 살지 못합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작은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구상에서 대략 5명 중 4명꼴로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신을 믿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60억 이상의 사람들이
300가지가 넘는 신을 받들고 섬기고 있습니다.
(2007.7.1 현재 세계 인구는 66억 1천 6백 57만 8천 3백 15명)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만이 옳다고 믿어야 합니까?」

<두란노 서원 발행 「빛과 소금」 2007년 9월호 별책 부록12호
「네 영혼이 잘 됨 같이」p.20. 참조>

기독교의 배타성은 오늘날 신앙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에만 참된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선교하러 나가고, 선교하려고 애쓰는 것에 대해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만 배타적인 믿음 체계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식한 것입니다.

불교는 힌두교의 두 가지 중요한 교리를 거부한 데서 생겨났습니다.
시크교는 힌두교와 불교 두 가지 모두를 거부했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이슬람이 얼마나 극단적인 배타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슬람은 신학적으로 배타적일 뿐 아니라 언어학적으로도 배타적입니다.

<두란노서원 발행「빛과 소금」2007년 9월호 별책 부록12호
「네 영혼이 잘 됨 같이」pp.11~12. 참조>

자기가 진리라고 말하려면 다른 것이 거짓이라고 말해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결국 가는 곳은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 것도 안믿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자와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예수 ‘믿느냐 믿지 않느냐’분명히 말하라고 말하니까
저보고 너무 세다고 말하더군요.
내가 믿는 것이 확실하니까 큰소리치며 분명히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것, 진품은 가짜에 대해 배타적입니다.
진짜 기름은 배타성이 강합니다.
이 것 저 것 섞일 수 있는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섞일 수 없는 것, 섞을 수 없는 것 … 그것이 진짜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진리이기 때문에 거짓에 대해 배타적입니다.
여러분, 진리이신 예수님을 잘 믿으셨습니다.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습니다!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습니다! 받았습니다.
(And receive His gift!)

로마서 3장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 “의롭다하심”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모든 죄 문제의 씻김’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죄에 관계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적당히 섞여 사는 것 같지만…
예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과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과 구별할 때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여긴 사람을 찾으실 때가 옵니다.

노아의 홍수 때를 보십시오.
홍수전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도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갈 때까지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120년 동안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홍수를 만났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판단으로
짧은 인생의 경험으로 함부로 얘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갇혀 있는 생각의 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경험의 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고정관념의 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판단의 항아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항아리 속에서 허우적거리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 중국 북송에 “사마광”이란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사마광”이 어렸을 때 동네에서 큰 일이 생겼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가 물이 가득 찬 아주 커다란 독에 빠진 것입니다.
아이가 어떻게 올라갔는지는 몰라도
아이가 독 위에 올라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독 위로 올라가려고 해도
독이 너무나 커서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어
독만을 손으로 치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아이구 어쩌나. 아이가 죽네, 큰일 났네!”
하면서 야단법석일 때 아이는 숨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소년 “사마광”이 큰 돌멩이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아이의 부모와 동리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이는 큰 돌멩이로 항아리 밑 부분을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항아리가 깨지면서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와아!” 하고 동네 사람들이 놀라는 사이에
독의 물은 다 빠지고 아이는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 독을 깰 생각을 한 사람은
“사마광”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2007년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는데
‘나는 안돼’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 그 생각을 깨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들은 의심의 항아리에 빠져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항아리를 깨야 합니다.
절망의 항아리, 비난의 항아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항아리를 깨야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옳다고 인정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견고하게 믿음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 …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골3:17)
“ …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전10:31) 사십시오.

비록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raquo; 가정에서 화목하게/용서하며/덮어주고/이해하고…
참고/견디며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나라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raquo; 여러분의 일터에서도 예수 향내 풍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raquo; 교회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콩 자루 같은 교회>와 <메주 덩어리 같은 교회>
자루 속에 있는 콩들은 다 잘났습니다. 예쁩니다.
다른 콩과 섞여 있는 것 같지만 섞여 있지 않습니다.
자기 모습 그대로 간직한 콩들이 콩 자루가 찢어지면 데굴데굴 다 흩어집니다.
콩 자루에 담겨 있는 콩은 아름답지만 하나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런 콩 자루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메주덩어리는 콩들이 다 으깨지고 부서져 옆의 콩과 붙어 있습니다.
이 콩과도 저 콩과도 붙어 덩어리가 됩니다.
자기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못생겼지만 한 덩어리가 됩니다.
집어 던져도 메주덩어리는 메주덩어리입니다.
이런 메주덩어리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메주덩어리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도 잘난 콩들이 있습니다.
“난 저 사람과 어울리기 싫어. 우리 선교회에, 속회에 …
저이가 있어 난 못 붙겠다.”하는 이들 … 잘 ~ 났습니다.
동글동글한 것이 좋은 것 같지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 잘 ~ 난 여러분!
마음에 안 드는 이들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붙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메주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어떤 선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식들이 고3, 혹은 재수해서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고 수고 많이 했습니다.
수능시험날도 종일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 엄마들이 관광버스를 빌려 놀러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러가기로 한 그날,
선교회원의 남편 한 분이 갑작스럽게 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같이 놀러가기로 한 선교회원이 남편의 수술로 병실을 지키게 되자
선교회원들이 놀러가기로 한 것 다 취소하고 기도하러 갔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교회는 이래야 합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우리 교회 좋은 교회구나.’
‘우리 교회 좋은 분들이 많은 교회구나’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이래야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메주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으깰 줄 알아야 합니다. 어울려 하나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길 되신 예수님을 따라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
천국을 향해 가는 믿음의 발걸음이 곁길로 가지 않도록 …
믿음으로 하나 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험하고 죄 많은 세상살이이지만 한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향해
저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승리자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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