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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말씀 (시 11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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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 (시 119:103)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남태평양의 핏카린 섬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망망대해에 한 점과 같은 외딴 섬입니다. 1790년에 바운티호라는 배에서 항명 폭동사건을 일으켰던 9명의 선원이 이 섬에 당도하게 되었는데 이섬에는 원주민 27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원 한명이 술을 만들기 시작하여 이 섬은 방탕함과 악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났을 때에 그 섬에 살아 남은 남자는 백인 한 명뿐이었고, 원주민 여자들과 혼혈아로 태어난 아이들만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선원이 바운티호에 실려있던 헌 궤짝에서 성경책 한 권을 발견하고 성경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게 된 그는 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섬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드디어 모두 변화를 받아 1808년에 그 섬 부근을 지나던 미국의 배 토파스호에 의하여 발견된 핏카린 섬은 감옥이 없고, 술이 없고, 범죄가 없고, 게으름이 없는 번영하는 공동사회였습니다. ((21세기 예화-말씀으로 변화된 섬)

프랑스 시인 빅토르 위고는 [영국이 세익스피어를 만들었다면 성경은 영국을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은 원래 해적의 나라요 도적들이 들끓는 야만적인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받아들임으로써 가장 신사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나 조지 뮬러도 죄악의 밑바닥을 걷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받아 들인 후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시인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103절)라고 고백합니다.
성서주일을 지키며 주의 말씀에 대하여 성경이 주는 교훈을 살펴 봅니다.

  주의 말씀은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입니다.

(렘 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삭개오는 여리고 성의 세리장이었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상업의 길목으로 매우 많은 통관세를 받는 고장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세리장인 삭개오는 부자로서 별 어려움이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기 때문에 일반 민중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세리는 창기와 더불어 죄인의 대명사로 불렸습니다. 왜냐하면 세리들은 로마 정부의 앞잡이로서 국민들에게 받는 세금으로 부정 축재를 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누렸지만 영혼의 만족을 누리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항상 죄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분을 보고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은 삭개오는 많은 군중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가 없자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보실 때 구원을 갈망하는 그의 갈급한 심령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부르시며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오늘 유하여야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자 삭개오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는 즉시 뽕나무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시자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참된 회개와 전적인 자기 포기에서 우러나온 구제의 고백을 보시고 구원이 삭개오의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선포와 더불어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물질은 있으나 심령에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주님을 만나 구원의 은혜를 입을 때 참 기쁨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참 기쁨과 즐거움은 구원의 은혜를 입을 때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참된 지혜는 주의 말씀인 성경이 줍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합니다.

이 세상의 학문이 인생에게 지혜와 지식을 가르치고 있으나 세상 지혜란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지혜 있는 자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셨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19-21).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는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므로 이 세대의 인간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고전 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혜입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는 성경이 줍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심령은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꿀 보다 더하니이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는 복음입니다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꽃과 초목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라 하시며 아울러 모든 육체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함으로써 인생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여실히 드러내 주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영원함을 말씀합니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며 또한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말씀도 세세토록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살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은 지금도 죄인을 변화시키고, 말씀을 대하는 자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며 새 소망을 갖게 합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과학도 변하고, 철학도 변하고, 사회 윤리도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썩지 아니할 말씀의 씨로 거듭났으므로, 비록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인생의 한계를 극복할 것을 권면합니다.

  인생이 죄와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셨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는 길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하나님이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절)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한 분, 곧 메시아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약과 구약은 별개의 책이 아니라 한 권으로 된 책입니다. 다만 구약이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록이라면 신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한 기쁜 소식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말하기 위해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 1:2)고 증거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이요,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증거했고, 그 복음이 현재 우리에게까지도 전해진 것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믿음으로 거듭나게 되며 구원을 얻게 됩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세세토록 살아있는 복음을 통하여 변화된 심령에 말씀은 달고 꿀보다 더하게 됩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바울의 전도 사역은 단순히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확신있는 복음 증거는 놀라운 이적을 동반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행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합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동안 몇 가지 중요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중에 바울을 통해 나타난 것은 병 고치는 이적이었습니다. 이때에 바울의 손수건과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돌리면 손수건이나 앞치마에 닿은 병 든 사람의 병과 악귀가 떠나는 하나님의 희한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바울을 따라 하다가  오히려 귀신들에게 놀림만을 받게 되는 사건도 생겼습니다.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이적 행한 것을 모방하려고 했습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바울을 모방하다가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악령은 그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에게 뛰어올라 그들을 이김으로 그들이 벗은 몸으로 도망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많은 마술사들이 죄를 고백하고 마술을 버리고 그들의 책을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이나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음으로 풍성한 열매로 가득찼습니다. 이 열매는 살아계신 하나님앞에서 주 예수의 이름이 높혀지는 것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나아와 죄를 자복하며 은 오만이나 되는 그들의  모든 마술책이 불살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승리요,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이로 에베소에 있는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흥왕했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더 많은 사람이 주께 나아왔고 큰 세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말씀이기에 흥왕합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발의 등이 되고 인생 항로의 길잡이가 되어 실족하지 않게 하시며, 구원의 확실한 안내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니 이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불과 유황이 타는 곳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날이 이르게 됩니다.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오래 전에 이태리와 프랑스의 국경지대인 몬데인이라는 곳에서 큰 기차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를 기해서 국경을 지키던 천이백명의 불란서 군인들이 특별 휴가를 받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탔습니다. 서로 빨리 집으로 가서 사랑하는 식구들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너무나 많은 군인들이 발디딜 곳이 없도록 탔지만 집으로 간다는 기쁨 때문에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이 빨리 가자고만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나 기관사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많이 태워가지고 가면 얼마 못가서 급경사와 급커브가 있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많으므로 못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군인들을 인솔하던 장교 중 하나가 기관사에게 와서 총을 빼어 들고 이 군인들은 나라를 위해서 국경을 지키던 영웅들인데 당장 이 기차를 움직여 이 군인들을 고향으로 태워가지 않으면 이 총으로 쏘아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할 수 없이 기관사가 기차를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얼마 못가서 급경사에 도달하자 기차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가게 되었고. 결국 급커브를 돌지 못하고 탈선하자 군인들이 탄 객차들은 마치 성냥갑 쓰러지듯 쓰러져 큰 사고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런 끔찍한 사고가 났을까요. 그 것은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며 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신나게 달리다가 삶의 급커브에서 제대로 돌지 못하고 사고를 만나는 삶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주신 말씀을 무시하다가는)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말씀으로 살기  때문에 복이 될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계 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지킴이 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 11:28)고 말씀하시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마 13:23). 사도 바울을 통하여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1:13)말씀하시고 사도 요한을 통하여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온전케 되었나니'(요일 2:5)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니라'(계 22:7) 합니다.

말씀이 흥왕하여 질병을 고침 받고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 되는 심령에 말씀은 꿀처럼 단 말씀이 됩니다. 
기쁨과 줄거움의 근원이요 세세토록 있는 복음이 흥왕하여 셰력을 얻어 질병을 고치고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 된 사실을 깨달은 심령은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말씀 따라 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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